구세력에게 틈탈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자
[정견망] 며칠 전 신체검사에서 복부에 큰 낭종이 발견됐다. 나는 안으로 찾아보았는데 연공하기 싫어하고 게으른 마음,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을 찾아냈다. 하지만 웬 영문인지 단번에 돌파하기 엄청 어려웠다. 수련생은 교류에서, 모두 가상이니 그것을 승인하지 말며 부정하고 해체하라고 했다. 나는 물론 그것을 승인하지 않았고 또한 모두 가상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가상이 생겼을까? 틀림없이 나에게 그것을 승인하는 곳이 있어서 틈을 타고 들어온 것이다.
나는 며칠을 찾다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이전에 나에게 이런 생각이 있었다. 대개 이러하다. 만약 구세력이 반드시 어느 방면을 틀어잡고 박해해야만 비로소 심리가 평형 되고, 비로소 나에게 지나가게 한다면 나는 병업 이 방면에서 어찌된 일인지를 꿰뚫어 볼 수 있으므로 나는 건너갈 수 있다고 여겼다. 아마 당시의 이 생각을 구세력이 틀어잡고 놓지 않았고 그래서 이번 일을 연화해 냈을 것이다. 이로부터 보건대 수련은 얼마나 엄숙한가, 일사일념은 얼마나 관건적인가?
나는 깨달았다. 구세력의 손에서 수련하고, 구세력이 배치한 이 길에서 수련한다면 어느 방면에서든 당신은 건너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건너가지 못하거니와 목숨마저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오직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 부정하고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며 그것의 배치에서 벗어나 사부님 안배하신 길에서 수련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안전하고 당신은 비로소 지나갈 수 있으며 당신은 비로소 수련성취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소의 일사일념에서 절대로 구세력이 어떠어떠하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구세력에게 조그마한 생각이라도 남겨 주지 말아야 하며, 설령 무의식 간에 그것을 약간이라도 승인했다면 그것은 그 약간의 승인을 가지고 당신의 명을 앗아가려 할 것이다. 이는 아주 관건적이다. 우리는 언제든 구세력에 어떠한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되며, 망령된 생각은 더구나 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는 언제든 대법으로 자신의 행위, 일사일념을 가늠하여 자신을 귀정해야 한다.
신변의 한 수련생은 한 속인이 그녀 앞에서 누구에게서 갑상선암을 검사해 냈다면서 갑상선암은 어떠어떠하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그 수련생은 신체검사에서 갑상선암이 발견됐다. 물론 수련생은 가상이라고 승인하지 않으면서 발정념으로 그것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해체했다. 하지만 사악이 가상을 연화해 낼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수련생에게 수련해 버려야할 것이 안에 있으며,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한 요소가 존재하고, 심성에 누락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사악이 틈을 타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수련생은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
한 수련생이 이 암의 위치는 입과 가까운데 있다고 알려주면서 수구방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이 수련생은 그제야 문득 깨닫게 됐다. 원래 이 수련생은 남이 의논하는 말을 듣기 좋아했고, 친척 사이에 서로 상대방이 나쁘다고 하는 말을 듣기 좋아했으며, 정신을 집중해 듣고 나서는 결론을 내린다. “맞아, 바로 그런 거야.” 여러 해 동안, 평소에 남의 흉을 잘 보았는데 얼마나 친근한 사람이든 모두 그녀 입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습관이 됐다.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정신을 집중했고 남이 나쁘다고 하는 말을 듣기 좋아 했는데 바로 질투심이었다. 남의 사생활을 파고들기 좋아하는데 호기심, 참견하기 좋아하는 마음을 폭로했다. 배후에서 말하는 자체가 바로 업을 짓는 것이며, 동시에 쟁투심이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오늘 수련생과 교류하다 수련생이 한 가지 일을 말했다. 원래는 가족 앞에서 대법을 실증하고자 가족에게 혈압을 재게 했는데 혈압이 아주 높았다. 수련생은 깨달았다. 이전에 혈압을 재어 보니 아주 높았다. 비록 스스로 정념으로 부정하긴 했지만 평소에 무의식간에 그래도 혈압의 일이 떠오르곤 했으므로 여전히 구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생각을 많이 하면 곧 집착심이다. 당신이 지나치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바로 집착하여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일부 사람, 그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그에게 점을 쳐달라며 말한다: 당신이 나에게 점을 쳐서 내가 어떠한지 좀 봐 주세요. 이 공을 연마(煉)한 것이 어떻습니까? 혹 나에게 무슨 난은 없는지요. 그는 사람을 찾아서 이것을 점쳐 본다. 만약 그 난을 당신에게 점쳐준다면 당신은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 연공인(煉功人), 그의 일생은 개변을 거쳤는데 손금・관상・사주팔자와 신체에 갖고 있는 정보의 것들은 이미 같지 않으며 개변을 거친 것이다. 당신이 그를 찾아서 점을 칠 때 당신은 이미 그를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무슨 점을 치겠는가? 그가 말한 것은 표면적인 것으로서, 말한 것은 당신의 과거의 것이지만 실질상으로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이 그를 찾아 점을 쳤으니 당신은 듣고, 믿은 것이 아닌가? 그러면 당신은 정신적으로 부담이 조성된 것이 아닌가? 부담이 조성됐다면 당신은 마음속으로 그것을 생각하는데, 집착심이 아닌가? 그러면 이런 집착심을 어떻게 제거하는가? 이것은 인위적으로 난을 더한 것이 아닌가? 생겨난 이 집착심은 더 많은 고생을 겪어야만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매 한 관(關), 매 한 난(難)에는 모두 수련하여 올라가는가 아니면 떨어져 내려가는가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본래 어려운데 또 인위적으로 이 난을 더한다면, 어떻게 넘을 것인가? 당신은 이 때문에 난과 번거로움에 마주칠 것이다.”
수련은 정말로 아주 엄숙하며 자신의 일사일념을 귀정하는 것은 아주 관건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일념은 사악의 천군만마를 흙으로 되게 할 수 있으며, 또한 틈만 있으면 사악이 들어오게 할 수도 있고 미친 듯한 교란과 잔혹한 박해를 할 수도 있게 한다. 우리는 구세력에게 조그마한 틈도 주지 말아야만 비로소 세 가지 일을 더 잘 할 수 있고, 비로소 조사정법, 중생구도를 더 잘 할 수 있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발표시간: 2012년 5월 27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print/11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