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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주혜민을 추도함

어머니 주혜민을 추도함

글: 주한양(쓰촨 성도시)

【정견망 2008년 3월 26일】며칠 전에 나는 만 15살이 되었는데 어머니의 이름은 주혜민이고 44세이다. 성도의 모형공장의 관리인이었으나 건강하고 선량한 어머니는 며칠 전 박해치사 당했다. 어머니가 잡혀 가족들은 밤낮으로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붙잡힌지 198일 만에 뜻밖의 비보를 듣게 되었으니 믿을 수 없다. 나는 비통에 잠겨 어머니와 함께 지내던 날을 회상하며 사랑하는 어머니를 애도하려고 한다. 동시에 박해가 중지되어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호소한다.

내가 막 태어나서 몇 개월 되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했고, 이때부터 서로간에 왕래가 없었으므로 나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 심지어 어머니는 그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내가 자라서 그에게 보복행위를 할까봐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키우기 위해 어머니는 한편으로 일하며 나를 돌보았다. 어머니는 매우 능력이 있었으며 일찍이 외국 상인과 합작하여 장사가 잘 되었고 차를 사고 집을 분배받았다. 그러나 바쁜 일과 거대한 압력 때문에 몸이 갈수록 나빠졌는데 엄중한 신경증, 심장병, 위병, 편도선염 등이 있었다. 가장 심할 때는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하고 거의 폐인이 되었다. 바로 이 때 어머니는 파룬궁을 만나 98년 수련을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모든 병이 사라졌고 거짓말처럼 완전히 건강하고 즐거운 사람이 되었다. 특히 원래 좀 날카롭던 성질이 매우 평화롭게 변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파룬궁을 박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어머니는 직접 경험을 했고 심신에 거대한 수익을 얻었기에 신념을 견지하여 많은 불법적인 박해를 받았다. 한번은 도강언 친구의 집에서 붙잡혔는데, 2003년 5월 21부터 7월 8일까지 갇혀 있었다. 도강언 시의 610 사무실의 서문해, 도강언 중심 파출소 소장 하근은 어머니의 두 손을 침대 끝에 수갑으로 채우고 두 발은 침대에 묶어 49일 간이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의 심장박동은 분당 160차례나 뛰었고 두 어깨는 굳어지고 오른쪽 다리에도 상처가 나서 근육이 전부 괴사했으며 썩어(나중에 다리에 상흔이 남았다) 오른쪽 다리를 굽힐 수 없었다.(상세한 것은 <파요>라는 글에 기록되어 있다)

2007년 9월 26일 밤 9시, 성도 성화구 국보대대의 악경이 집에 쳐들어와 또다시 엄마를 납치했고 먼저 불법(不法)적으로 신진 세뇌반에 가두어 박해했다. 2008년 2월 1일에 어머니는 무후 공안분국 국보대대의 불법 체포에 단식 항의하다가 2월 5일에 악명 높은 원청양구 인민병원에 강제로 보내졌는데 보낼 때 어떤 사람은 그녀가 입구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파룬따파 하오”를 외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위험이 나타났다. 박해에 참여한 성 국안, 시 국안, 무후 공안국보대대 등은 오히려 식구들에게 통지하지 않았고 3월 10일이 되어 어머니의 사촌오빠가 찾아가자 무후 공안국보대대는 알려주기를 사람의 생명이 이미 위험하다고 했다. 엄마를 보러갔을 때 이미 혼미한 상태였으며 말을 하지 못하고 장작처럼 야위어 있었다. 어머니의 사촌오빠가 사람을 놓아줄 것을 요구하자 두 간수경찰은 오히려 식구들에게 후사를 준비하라고 하며 성 국안이 놓아주지 않는다고 했으며 또 “주혜민은 죽어도 병원에서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들으니 당시 이 일에 참여한 경찰은 어머니와 파룬궁에 대해 동정이 일어나 사람을 놓아줄 것을 제의했는데 성 국안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구실은 상면의 지시라고 하며 올림픽이 가까우니 파룬궁을 “엄밀하게 방비하고 타격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어머니의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 갔다.

비통한 나머지 나는 말하고 싶다 : 나는 평화를 사랑하며 중공이 올림픽 개최를 따냈을 때 세계에 파룬궁 박해 정지를 포함하여 인권을 개선하겠다고 승낙했으니 올림픽을 피의 도살의 구실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어렸을 때를 회상하면 어머니는 일이 바쁜데다 몸이 좋지 않아 나를 양부모 집에 맡겼다. 양부모 일가는 나를 매우 총애했지만 나는 성질이 있어 제멋대로 했고 말을 안 듣고 늘 화를 내어 양부모는 탄식하며 걱정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한번은 나는 거의 학교에서 제명당할 뻔 했다. 이전에 어머니가 늘 나를 보러 왔는데 6살이 되던 해에 엄마는 7차례나 잡혀갔으며 그중 세 차례는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을 당했고 근본적으로 나를 돌볼 수 없었다. 2005년 말 엄마가 돌아온 후 겨울, 여름 방학에는 나를 데리고 신변에 두었다. 엄마의 수련 후 변화는 나를 변하게 했고 나도 철이 들었으며 말을 잘 듣는 아이로 변했다. 학업성적도 반에서 끝에서 몇 번째 하던 것에서 상위 몇 번째로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어머니는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것들과 같은, 나에게 사람이 되는 많은 도리를 가르쳐주었다. 양부모에게 보답하기 위해 어머니는 나를 보낼 때 양부모 집에 적지 않은 돈을 주었으며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와 다시 일을 했을 때 매월 보조금을 보내서 도왔으나 어머니는 종래 그 말을 나에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나서 그들에 대한 감사의 정(情)에 영향을 줄까 염려해서였다. 어머니가 박해치사 당한 후 나는 비로소 알았다. 평소 어머니는 양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게 했다.

어머니, 아들은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잘 대해주려는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어머니, 나는 당신이 생명을 다하여 “파룬따파는 좋다”를 실증한 것을 알며 생명을 바쳐 양심이 마비된 사람을 깨우쳐 주려고 했고 거짓에 미혹된 생명을 구하려고 했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생명으로 거짓에 미혹된 생명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파룬따파가 좋다”를 믿지 않고 아직도 계속 대법수련생을 박해하는 사람이 얼마 안 가 큰 난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머지 않아 대난이 올텐데 그것은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데 춥지 않습니까? 춥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몸에 내내 “쩐싼런(眞善忍)”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갔지만 만일 어머니의 죽음이 더 많은 생명을 깨우칠 수 있다면 아마 우리에게 위안이 될 것입니다.

아저씨, 아주머니들, 나는 진심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 다시는 어머니와 같은 좋은 사람을 박해하지 마세요. 선유선보, 악유악보이니 대법수련생을 선하게 대하면 좋은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나는 당신이 이기심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는 것을 압니다.

친애하는 어머니, 나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며 미래의 사람은 대법수련생들의 무사무아(無私無我)한 댓가에 감사할 것입니다.

발표시간 : 2008년 3월 26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3/26/519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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