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호북성 대법제자 영자(英子 가명)구술, 금옥(金玉 가명) 정리
【정견망】
나는 1994년 심한 심장병을 앓았다. 심장수술 후 장기간 약과 주사로 생명을 유지해왔으며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었다. 특히 육체노동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나를 데리고 함녕시(鹹寧市)로 데려가 작은 장사를 했다. 당시 딸이 무한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방학에 집에 돌아왔을 때 무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연마하는데 효과가 아주 좋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연마하고 싶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우리 지역에도 연공장이 있어서 즉시 참가했다. 매일 저녁 다른 사람들과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보고 전법륜을 읽었으며 아침마다 연공했는데 빠트린 적이 없었다. 연마한지 3주 후 심장병이 다시 도지지 않았고 신체는 병이 없는 가벼운 상태에 도달했다. 나는 매우 기뻤으며 이 공법은 정말 좋구나 하며 집에 두었던 약을 모두 버렸으며 지금까지 약과 주사를 맞아본 적이 없다.
1996 정월 경 부모님을 뵈러 가어(嘉魚)에 가다 교통사고가 났다. 당시 허리뼈가 골절이 되었으며 나중에 또 고혈압 증상이 나타났다. 당시 대소변도 모르고 머리가 침대틀에 부딪혀 여기저기 혹이 났어도 아픈 줄도 몰랐다. 의사는 내 허리뼈가 부러져 머리를 지탱할 수 없으니 장애가 남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대법제자이며 사부님이 계시며 법이 있으니 반드시 나아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우리는 무한에 집을 났으며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집에서 법공부를 하며 사부님께 내가 연공하도록 가지를 청했다. 우선 아픔을 참고 반가부좌 했더니 머리가 많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으며 나중에 결가부좌를 30분 견딜 수 있게 되자 더 좋아졌다. 그 후 침대를 붙잡고 두 가지씩 동공을 했으며 20 여 일후 5장 공법을 한꺼번에 다 할 수 있었고 사람이 정상을 회복했다. 당시 내심으로 어떻게 사부님께 감사를 드려야 좋을지 몰랐다.
내가 병원으로 돌아가 결재 할 때 병원의 모든 의사 간호사들이 내가 파룬궁으로 이렇게 빨리 신체가 회복된 것을 보고 모두 신기하다고 자자했으며 파룬궁이 정말 좋고 신기하다고 연신 말했다.
나는 신체가 좋아진 후 이 좋은 공법을 모든 사람에게 소개해주려고 했다. 1999년 7.20 이전 나의 직접경험으로 대법을 널리 전했다. 당시 두 성을 다녔는데 호북성의 황파, 가어, 함녕, 포은, 홍호, 무창 등이었으며 호남성의 익양, 원강 등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대법이 좋음을 믿었으며 인연 있는 사람들이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당시 우리지역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의 심장병 고혈압 자동차 사고 후 골절 등이 단기간에 낫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고 하며 친구, 동료, 의사, 학생, 직장간부 등 수십 명이 대법수련 행렬로 걸어 들어왔다.
1999년 7.20 강택민 집단이 파룬궁을 탄압하여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억이 넘는 우리 많은 대법제자들이 잔혹한 박해를 받아서 정상수련 환경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대법은 내 마음속에 뿌리 박혀 있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법공부 연공 발정념 진상 등이 끊어진 적이 없었다.
진상을 말하기 위해 거짓에 독해된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나와 언니는 함께 우리가 원래 홍법하던 곳에 진상 자료를 가지고 갔다. 매번 늘 크고 작은 진상 자료 포를 짊어지고 갔다. 하오에 출발하여 친척과 동수 집에 머물며 12시가 지나면 곧 나가서 자료를 뿌린다. 다 나눠주고 나서 바로 새벽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만일 친척이니 동수가 없는 곳에 가면 우리는 밖에 목화밭이나 큰 나무 아래, 강변 등에 앉아서 사람들이 잠들기를 기다려 진상자료를 뿌린다. 밤에 야외에는 모기가 매우 많고 쥐도 맞닥뜨린다. 먹을 것을 가져가도 먹으면 모두 차가우며 배고프기도 하고 큰 비를 만나 온 옷이 다 젖어 사람이 벌벌 떨게 된다. 그러면 《홍음 2》을 외운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
그러면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한번은 외할머니 집에 가서 자료를 돌리는데 그곳에 커다란 묘지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 그곳에서 귀신이 나온다고 들었으며 밤이면 아무도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곳은 자료를 나누어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었다. 나와 언니는 사부님과 법이 계심을 생각하고 무엇이 두려우랴 하며 《홍음1》의 ‘위덕’을 외웠다.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에 眞善忍(쩐싼런) 있네
세간의 대나한(大羅漢)
신도 귀신도 몹시 두려워하네”
그러면서 대담하게 그 묘지를 지나갔다. 아래쪽 마을에 진상자료를 다 돌렸다. 다음날 아침에 자료 뿌린 사람을 추적하는 사람이 쫓아와서 우리 둘이 한 짓이 아닌가 추측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묘지를 당신이 감히 지나갈 수 있겠소 하자 그들도 우리가 지나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놓아주었다. 우리도 신사신법이 아니면 감히 지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또 한번 어느 날 밤 우리가 스티커를 붙이다가 길 맞은 편에 있는 경찰에게 들켰다. 경찰은 달려와서 우리를 추격했다. 아래쪽은 논밭이 있는데 우리가 더 이상 갈 길이 없었을 때 하늘에서 아래 위 하나씩 두 개의 파룬이 나타나 논밭 사이의 작은 길을 비추어 주었다. 우리는 즉시 이 작은 길을 따라 달렸으며 고개를 돌려보니 파룬이 보이지 않았고 길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비로소 사부님이 우리가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신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신기한 일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일어났는지 모른다.
최근 사이트에서 동수가 말하기를 사부님이 머리를 바꾸어주었다고 하는 것을 본적이 있고 나도 혀를 바꾸어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리고 세상 사람을 일깨우기 위해 오늘 그것을 써내려고 한다. 내가 열몇 살 때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혀가 시리고 마비되며 혀 끝에서 위까지 견디기 힘들었다. 특히 입춘 이후 3-4 개월간 잠도 잘 못잤다. 수십년간 고통에 시달렸는데 2003년 어느날 밤 꿈을 꾸었다. 꿈에서 두 사람이 내 침대 앞에 서서 오늘 네 혀를 바꾸어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바꾸려면 바꾸시오, 혀는 걸 데가 없는데 어떻게 하죠? 라고 말했다. 잠시 후 그 중 한 사람이 이미 바꾸었다고 했다. 깨난 후 혀끝을 만지자 시큼한 가래가 한바탕 토해져 나왔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 병은 한번도 재발한 적이 없다. 사부님이 고쳐주신 것이다. 이 신기한 일은 거의 십여 년이 되어가는데 오늘 이 기회에 써내어 법을 실증한다.
나와 언니는 둘 다 70대로 글을 쓸 줄 몰라 동수에게 대필을 부탁했다. 내가 수련한 것을 낱낱이 적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동수들과 함께 나누며 자기의 당초의 열정을 일깨우며 동수들에게 격려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 원만하여 진정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발표시간: 2013년 1월 15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6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