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대륙 어린이 대법제자 호호(浩浩)
【정견망】
내가 막 철 들 무렵 부모님은 내게 늘 이런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대법소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데 말을 알아듣게 되자 어른들과 함께 법공부,연공하며 수련인의 요구에 따라 하였다.더욱이 사악이 하늘땅을 뒤덮는 거짓과 모함으로 대법을 공격하고 붉은 공포가 덮었을 때 엄마 아빠가 나를 데리고 성소재지에 가서 상방을 하던 천안문 광장에서 연공하며 플래카드를 펼치던 여태껏 울거나 귀찮게 하지 않았으며 매우 사리를 분별할 수 있었다.
그때가1999년 7월 20일 오후였다. 부모님은 급히 나를 탁아소에서 데려와서 다른 동수들과 함께 세낸 자동차를 타고 제남으로 달려갔다.가는 다음날 아침 성정부에 도착하여 상방하여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신성함과 초상적인 면을 설명하며 대법이 억울함을 당하고 있다는 정황을 반영하려고 했다.막 제남에 도착하자 경찰에게 가로막혔으며 강제로 연행되어 파출소의 간수소에 불법으로 잡혔다.날씨가 더워 숨도 못 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곳으로 끌려갔으며 아빠는 나를 안고 있었는데 심문실에서 악경이 아무리 미친 듯이 큰소리 질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두 눈만 동그랗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며 아무소리도 않고 있었다. 20여시간 동안 시달렸는데 겨우 세 살된 나는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나 평상시처럼 울지도 않았다.그러다 그들은 아빠를 직장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을 실증하고 법을 수호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정부를 향해 대법이 억울한 진상을 말하고 대법과 사부님을 위해 바른 말을 했다. 2000년 설날 기간에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의연히 북경으로 갔다.북경에 있는 동안 우리가 빌린 방에 난방이 안 되었는데 마침 큰 눈이 내렸다.하지만 안전을 위해서 나가서 사먹지 못하고 굶었으며 가져온 만두 몇 개를 먹었는데 나는 엄마의 따뜻한 품속에 기대고 생활이 매우 고되었으나 나는 한마디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사람들은 다 나를 칭찬했다. “호호야,대법소제자는 속인과 다르단다.”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호법을 하러 왔잖아요!”
설날이 되자 나는 아빠 엄마를 따라 날이 밝기도 전에 천안문 광장으로 출발했다.천안문 광장에 도착하여 나를 눈 위에 내려놓자마자 아저씨 아주머니,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쩐싼런”과“파룬따파하오”의 플래카드를 펼치거나 연공을 하기 시작했다.엄마 아빠도 쏵하고 매우 긴 플래카드를 펼쳤는데 장면이 매우 장관이었다.달려온 많은 경찰들은 미친 듯이 사람들을 단단히 둘러싸고는 발로 차고 때리기 시작했다.이때 나는 몇 명의 악경이 플래카드를 탈취하고 아빠 엄마를 차서 넘어뜨리고 팔을 비트는 것을 보았다.나는 울며 소리쳤다. “엄마를 놔줘요….”사천에서 호법하러 온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나를 안았는데 어느 악경이 달려와서 그의 얼굴을 향해 쳤고 나도 눈 위에 내동댕이 쳐져 멍하니 쳐다보았다.악경은 우리를 천안문 파출소로 데리고 갔고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철장 속에 갇혀 직장에서 인수해 가기를 기다렸다.
엄마 아빠는 직장에서 요주의 인물이기 때문에 연말이나 민감한 시기가 되면 늘 사악이 감시거주를 한다고 잡아 가둔다.나는 낮에는 유아원에 가고 밤에는 수련하는 할머니집에 머물며 날마다 그분들과 법학습을 하고 밤에는 늘 함께 나가서 진상자료를 뿌리거나 전단지를 붙인다.할머니는 내가 길을 갈 때 잘 달리고 스티커도 똑바로 잘 붙인다고 칭찬하신다.어떤 때는 한밤이 되어야 돌아오는데 밤에도 엄마 아빠를 생각하지 않고 매우 잠을 잘 자며 다음날 일어나 유아원에 간다.하지만 나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고 고생을 느끼지 않는다.하지만 유아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 크게 우는 일이 있는데 수련의 길에 관을 잘 넘기지 못할 때가 있다.
기억하기에2000년5월 어느 날 오전,나는 엄마 아빠가 보위부에 끌려갔음을 알고 매우 걱정했다.기분이 즐겁지 않아 유아원에서 묵묵히 있었는데 어린 친구들은 마치 나의 심사를 안다는 듯이 이 기회를 틈타 나를 놀려댔다.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파룬궁”라고 불러 나는 그 아이들과 따졌다.그들은 나를 둘러싸고 때렸으며 내 몸 위에 올라타서 나는 너무 괴로워 울었다.이때 유아원 아주머니가 들어와 내 뺨을 때렸다.나는 울면서 상황을 설명했는데 아주머니는 더욱 화를 냈다. “네가 바로 파룬궁이지,네 집은 모두 파룬궁이니 넌 말타기 자세를 해.”이렇게 나를 오전 내내 말타기 자세로 벽에 기대고 있으라고 했다.오줌을 바지에 싸도 못 움직이게 했고 땀이 외투를 다 적셨다.
할머니(수련생)가 나를 할머니 집으로 데리고 갔을 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하 웃었다.그러나 밤에는 이불을 덮고 몰래 크게 울었다.나는 억울해서 운게 아니라 내가 관을 넘기지 못하고 사당에 독해된 그 불쌍한 어린친구들,그 아주머니들이 속아서 사악에게 통제당한 것이 불쌍해서 울었고 또 그녀를 설복하여 괴롭고 자책하도록 할 능력이 없어서 운 것이었다.
그때 이후 나는 대법제자의 표준으로 자기를 단속하며 보통 사람들과 식견을 같이 하지 않았다.문제를 만나도 자기가 어디에 잘못했는지 찾았다.때로 참지 못하고 맞받아치고 싶을 때 그들은 사악에 속은 것이며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대법으로 그들을 구해야 옳다고 생각했다.나중에 나는 적극적으로 어린 친구들에게 대법의 신기함을 알려주고 예쁜 호신부를 주었다.
2001년4월의 어느 날 오전7시 경,토요일이어서 학교에 가지 않았다.나는 건물 아래층에서 놀고 있는데 오토바이가 달려와서 나를 부딪혀 몇미터나 멀리 날려 뒤통수가 시멘트 바닥에 단단히 부딪혔다.그 사람은 원래 그곳에 우유배달 아르바이트 하는 젊은 사람이었는데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나는 기어 일어나서 팍팍 몸의 흙을 털고 소매로 얼굴의 먼지를 닦고 말했다. “괜찮아요,형 가보세요!”하면서 그가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도왔다.이때 주위에 구경하던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다 다가와서 이 젊은이를 가리키며‘빨리 얘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해봐,만일 머리가 상해서 뇌출혈이면 네 평생동안 책임져야 되’.나는 얼른 말했다.할머니 아주머니 감사합니다.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니 아무 일 없을 거예요.걱정하지 마시고 가보세요.당시 그들은 여전히 반신반의 하면서 나를 보더니 이해 못하면서 가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이 일을 엄마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다.밤이 되자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보니 아까 그 젊은 우유배달부와 그의 어머니가 사온 물건을 들고 서 있었다.이리저리 물어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엄마 아빠는 놀라서 나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나는 비로소 있는 그대로 아침에 일어난 일을 말했다.아빠는 마침 이런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 대법의 신기함과 초상적인 일,사부님이 없는 곳이 없이 항상 제자를 보호하신다는 것과 대법으로 세인을 구도하신다 등등을 이야기 하셨다.공산사당은 대륙의 사람들을 속여 지옥으로 이끌어 순장한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떠날 때 그들에게 진상 자료를 주었고 가져온 선물은 돌려보냈다.그들은 연신 고맙다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대법 사부님께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2003년3월2일 엄마는 진상자료를 나눠주다 사악에게 체포되어 먼저 간수소에 갇혔다.나중에 노교소를 끌려가서3년간 불법으로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나와 아빠는 집에 있었고.그때가 내가 초등학교2학년 다닐 때였다.매일 저녁 아빠와 집에서 법공부 연공을 했다.아빠는 늘 말씀하시기를 내가 몇 년이나 수련했는데 아직 가부좌를 못한다고 하셨다.어느 날 밤 아빠는 손에1998년9월에 나온《스위스 설법》을 들고 내게 들려주셨다. “우리 우스개소리 하나 하자.우리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확실히 아주 잘 수련했는데 당신들이 다리를 틀지 못하면 천상의 그 보살들이,저 수련하는 사람 좀 봐,다리를 아직도 틀지 못하네 하고 입을 가리고 웃는다.”나는 진땀이 났다,정말 부끄러웠다.그러나 나는 사부님이 도우시니 반드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음날 오전 내가 체육 수업을 할 때 발을 삐어 디딜 수 없었다.이를 악물고 땀을 흘리며 그저 팔짝팔짝 뛰어서 집으로 돌아갔다.아빠는 내 복숭아 뼈 관절이 매우 많이 부은 것을 보시고 마음이 흔들려서 내게 괜찮으냐고 물으셨다.혼잣말로“네 엄마가 또 집에 없으니 만일 골절하면 어쩌지?”내가 아빠를 한번 보고 말했다. “사부님과 법이 있는데 뭐가 두려워요.걱정마세요,난 아무 일없을 것예요.”나와 아빠는 함께 발정념으로 구세력과 사악의 박해와 교란을 해체했다.
15분 후 내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연공음악을 틀어주세요,다리를 틀어볼래요.”아빠는 멍하니 있었다,나는 그의 심사를 알아챘다.‘발이 삐어 그 모양인데 다리를 틀면 더욱 심하지 않겠는가?’그러나 여전히 내말대로 음악을 틀었다.나는 이를 악물고 오른 발을 끌어당겨 결가부좌를 했다.나는 기뻐 소리 질렀다.아빠 보세요!아빠“이를 악물고 견뎌봐!”시간이 길어지자 나의 고통도 참기 어려웠고 다리를 내려놓고 싶을 때 갑자기 사부님의《전법륜》에서 말한“난인능인,난행능행”이 생각나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다리는 점점 마비되어갔고 고통을 느끼지 못했으며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이번 처음으로 한 것이40여 분간이나 되었다.나는 소파에 쓰러져 아침까지 잠이 들었다.일어나 보니 다리도 붓지 않고 아프지도 않았다.
아빠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으며 사부님의 법상(法像)에 대해 두손으로 허스 하며 연신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사부님 감사합니다!저는 대법의 신기를 보았습니다,저는 어린 제자만큼도 오성이 좋지 못합니다.”다음날 학교에 가니 반 담임이 신기하다고 하며 말했다.“넌 근육을 다치지 않았니?그래도 발을 절지 않다니?”나는 웃으며 파룬따파를 수련한다고 했으며 이 기회에 선생님께 대법의 신기함과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는 진상을 알렸다.선생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다.이때부터 나는 자연적으로 결가부좌하고“신통가지법”을 할 수 있었다.다시 연공을 배울 때 아빠는 내가 가부좌를 못한다고 하지 않으셨다.
세월은 화살처럼 흘러 눈깜짝할 사이에 몇 년이 지나 나는 고등학교 시험을 앞두게 되었다.우리 일가는 늘 사악의 박해를 받기 때문에 엄마는 노교소에3년있었고 아빠는 월급도 매우 적었으며 일단 시험 성적이 낮으면 고등학교 올라갈 수 있어도 많은 돈을 내야 했다.그래서 심리적 압력이 매우 컸다.나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아주머니 동수들과 법공부 교류하며 동수들은 다 말하기를 사부님과 대법을 견지하면 반드시 사악의 박해를 깨뜨릴 수 있고 우리가 걷는 길은 사부님이 안배해주시니 안심하고 세가지 일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교류후 법리상 인식이 명확하고 학습에 성적도 빨리 올라갔다.우수한 성적으로 중점고등학교에 쉽게 들어갔다.
현재 나는 문화(文化)과목 성적이 늘 좋았으며 또 예술을 전공하고 싶다.사부님께서는 내게 영감과 지혜를 주신다.비록 이전에 미술을 배우지 않았지만 고 여름 방학기간 며칠 동안 배웠는데 선생님은 나의 기초가 괜찮다고 하시며 문화과목 시험에서400점을 받으면 일류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하신다.나는 매우 즐거우며 행복하다.나는 대법제자이고 사부님의 자비로 돌보시기 때문에 무엇이든 초상적이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사부님의 자비와 보호로 정성껏 안배하지 않은 것이 없다.내심 사부님께 무한한 감은으로 충만하며 나는 반드시 계속 법실증의 길을 걷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제자는 사부님께 무릎 꿇어 감사드립니다.
발표시간: 2014년 3월 2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27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