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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따파의 신기

작자/ 호북 대법제자

【정견망】

우리 부부는 1996년 7월 대법수련으로 들어왔다. 전에는 남편의 몸이 좋지 않아 각종 질병을 앓았다. 예를 들면 흡혈충으로 인한 간경화 말기, 담결석, 왼쪽 다리에 사상충(filariasis)으로 인한 부종, 좌측 겨드랑이 아래 계란만한 혹 등이었다. 나 역시 담결석, 신경쇠약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3층에 사는데 남편은 매번 오르내릴 때마다 두 손으로 계단 가드레일을 붙잡아야 했다. 건강을 위해 우리는 1987년부터 각종 기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몇 가지 기공을 연마했는데 적지 않은 약도 먹었으나 별 소용없었다. 1996년 6월 어느 날 밤 꿈속에 비몽사몽간에 어느 신선 같은 사람이 알려주었다. “당신들 병은 파룬궁을 연마해야만 나을 수 있소.”

나는 전에 이 공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내가 연공장에 가서 어젯밤 꿈이야기를 들려주자 내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알려주면서 또 시내 서점에 가서 <전법륜>을 사라고 했다. 나는 여러 서점을 돌아다녔는데 구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어느 개인 서점에서 한권을 구해 돌아왔다. 당시 이 책을 손에 받들자 책의 겉표지에 파룬이 도는 것을 보았다. 내가 책을 펼치자 속에 매 하나의 작은 검은 글자가 마치 작은 파룬처럼 도는 것을 보았다. 당시 나는 즉시 이 책이 일반적인 책이 아니며 신서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흘만에 책을 다 보았는데 연공동작을 할 줄 몰랐다. 같은 해 9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동수를 찾았다. 동수는 매일 시내에서 사존의 <제남설법>과 연공동작 테이프를 가지고 와서 우리는 함께 설법 녹화를 보았으며 그는 연공을 가르쳐주었다. 아침에 나가서 늦게 들어오느라 고생했다.

수련 후 우리 신체는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남편의 각종 병이 나았으며 이전에 아래 위 오르내리는데 난간으로 부축해야 했는데 이제는 300미터 밖의 보일러 건물에서 끓인 물 두통을 들고 (한통은 5병 들어간다) 쉬지도 않고 집으로 들고 간다. 나의 담결석도 아프지 않고 저녁에 잠을 자도 편안하여 벼락이 쳐도 깨지 않는다.

2005년 직장 상사가 찾아와 우리에게 각서를 쓰라고 했다. (퇴직 전 우리는 모두 직장의 중견 간부였다) 퇴직 후 우리더러 지조를 지켜 다시는 파룬궁을 연마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단호하게 대답했다.

1. 이런 각서는 쓸 수 없다.
2. 단호히 공산당에서 탈퇴하겠다.
3. 파룬궁 수련을 끝까지 견지하겠다.

나중에 직장 서기 지부 서기와 퇴직 주임 등이 차례로 세 번이나 찾아와 설득하려 했다. 나더러 신중히 고려하라, 마음대로 퇴당하지 말라는 등등.

하지만 나는 모두 단호히 했다. 이상 세 가지 뜻에는 변함이 없으니 시간 낭비하지 마시오. 공산당은 부처를 믿지 않고 무신론인데 우리는 부처 수련을 하는 사람으로 한손으로 부처를 잡고 한손으로 무신론 조직을 잡고 놓지 않을 수 없소. 이 때문에 우리는 당조직에서 퇴출하는 겁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어 우리의 탈당에 동의했다.

19년간 수련하면서 신사신법(信師信法)하고 세가지 일을 견지했지만 정진하는 동수와 비하면 차이가 매우 크다. 여러 차례 시험 치는 꿈을 꾸었는데 복습할 겨를도 없이 급히 깨었는데 최근 한번 꿈에서 63점을 맞았다.

이번에 전 국민이 장쩌민을 기소하는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 7월 상순 어느 동수가 찾아와 장 기소장을 쓰라고 했다. 아울러 99년 7.20 대법이 박해 받을 때 우리가 북경에 가지 않았으니 이번에 장을 기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당시 한마디로 거절했다. “쓰지 않겠소. 우리는 박해를 받지 않았는데 무엇을 쓴단 말입니까? 또 고소장을 쓰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하고 도장도 찍어야 하는데 개인 정보가 다 드러납니다. 이는 개인 정보를 사악에게 공손히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닙니까? 이는 스스로 번거로움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까?”

며칠이 지나 또 다른 동수가 찾아와 장쩌민 기소의 중요성을 말했다. “당신은 당적도 공개적으로 거절했는데 고소장 쓰는 게 무엇이 두렵습니까?”

나는 이 말을 듣고 활짝 깨우쳤다. 비록 우리가 육체적인 박해를 받지는 않았지만 박해원흉 장쩌민은 권력으로 법을 농단하고 제멋대로 파룬궁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핍박하고 육체를 소멸시켜 수백 만 대법제자들이 사망하게 했다. 이는 ‘眞善忍’ 우주 대법을 믿는 대법 수련자들에 대한 박해이자 전 인민에 대한 박해이며 또한 전 세계인들에 대한 박해다. 그래서 나는 즉시 고소장을 쓰기로 했다. 고소장은 7월 21일 EMS 특급 우편으로 북경 최고 인민 검찰청과 법원에 전해졌다.

소장을 부친 다음날 새벽 연공하는데 기침이 나지 않았다(나는 만 60세 되는 해부터 기침을 시작했다) 9년간 줄곧 낫지 않았고 기침 소리가 매우 컸다. 아파트 앞뒤 집에서 다 들을 수 있었다. 이따금씩 기침하다 요실금이 있었으며 나는 이것이 교란이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내 심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안으로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나는 늘 “속인은 병이 있거나 암에 걸리면 성심껏 ‘파룬따파하오, 쩐싼런 하오’하면 낫는데 나는 수련인임에도 기침을 9년이나 했다. 나도 늘 9자 진언을 외웠는데 왜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지금 69세로 여생을 사존께 바치고 약을 먹거나 병원에 전혀 가지 않았다. 7월 21일 소장을 부친 후 현재 1개월 이상이 되었는데 9년간의 기침이 정말 나았다.

2015년 8월 3일 오후 6시 발정념 5분 전 청리할 때 두손으로 아랫배에 결인을 하자 갑자기 천목이 환해졌다. (나의 천목은 연공 후 열려 있었다) 오른쪽 손에 붉은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특히 오른쪽 식지(고소장 찍을 때 지장 찍는 식지)가 황금빛으로 약 3초간 환해지더니 사라졌다.

8월 5일 오후 6시 발정념 때 또 천목이 환해지더니 눈 앞에 광활하고 곧은 대도(大道)가 나타났다. 길의 양변에 전신주가 일렬로 줄지어 있는데 매 전신주 위에는 연꽃같은(연황색) 등잔불이 있었는데 원형의 등잔불은 환하고 아주 예뻤다. 길 양변의 전신주는 끝까지 직통하는 것이 아니라 전신주는 길의 10분의 9 정도 되었고 나머지 10분의 1은 수목이었는데 약 3초 후 사라졌다.

내가 이 글을 써내는 것은 자신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교류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곤두박질하듯이 수련을 19년간 했는데 무슨 특수한 공헌이 없었다. 그저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좀 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장쩌민 기소에 대답하지 않았고 두 번째에 기소장을 썼다. 동수들의 지적을 바란다.

http://www.zhengjian.org/2015/10/18/148661.法輪大法的神奇.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