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최후에 ‘헛수련’이 되지 말아야

작자/ 중국대법제자

【정견망】

2015년 6월 4일 오후 잠시 잠이 들었는데 아주 뚜렷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동수 L과 어느 농촌에서 걸어 나왔는데, 얼마 후 물이 없는 하천에 길이 가로막혔다. 이때 정면에 있는 계곡에는 많은 사람과 승려들이 앉아 있었는데 모두 계곡 안에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매우 깨끗한 옷을 입었는데 모두 백색 옷을 입었다. 온 산도 깨끗한 백색이었고 산에는 나무나 풀이 전혀 없어 마치 순정(純淨)한 곳 같았다. 그러나 스피커에서 불교 색채를 띤 종교 음악같은 노래가 틀어져 나왔다. 이때 문득 계곡의 가장 바깥쪽에 동수 C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매우 젊어 보였는데 머리카락도 빛이 났으며 온몸이 깨끗한 백색이었다. 가부좌를 한 상태로 곡조에 따라 매우 힘차게 손을 흔들며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한번 보았다. 그러나 나와 L 동수는 개울 이쪽 편에 서서 보았다. 우리 둘이 입은 옷은 다른 색의 복장이어서 이 사람들과는 뚜렷이 달랐다. 깨어난 후 음미해 보았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이어서 계속 법공부를 하는 중에 무의식적으로 법 중에서 여러 차례 말씀하신 ‘헛수련[白修]’이란 글자를 의식하게 되었다. 이것은 더욱 놀라웠는데 이 꿈은 큰 경고였다! 우선 안으로 찾아보니, 아마 꿈에서 C동수가 처한 경지가 바로 자신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이미 ‘헛수련하는 변두리’에 와 있는데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와 L은 이 방면에서 마땅히 비슷한 위험한 문제가 있다. 이미 꿈에서 C동수가 진입한 ‘헛 수련하는 곳’인 반대편 계곡으로 거의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C동수 이미 위험한 경지에 처해 있으나 자각하지 못한다. 아마 수련 중 모종 상태 하에서 잘 되지 않고 있는데 스스로는 옳다고 느끼며 무의식중에 눈치 채기 힘든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헛수련’의 상태에서 일순간 떨어져 훼멸에 직면한 것이다. 이는 위험한 경고이자 또한 나와 L동수에게도 같은 누락이 있음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아울러 C동수가 바르지 않은 종교 형식이 있는 곳에서 걸어 나오도록 도와야 한다.

오늘 공부한 <2015년 미국서부법회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해 주겠는데, 이 일 자체가 바로 이렇게 어려운 것으로, 구세력이 끼어들지 않는다 해도 다른 세력이 끼어들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다. 그것들은 곧 이렇게 소란을 피울 것이며 그것들은 곧 이렇게 할 것이다. 대법의 순정함, 대법의 위엄, 이 위덕, 이 역량, 구도 중에서 바른 일면의 펼쳐보임[展現]은 그 신이 보아도 깜짝 놀라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부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정면적인 형식으로 출현하여 그 속에서 그것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려 하며, 심지어 매우 큰 범위로 하나의 어떤 물건을 형성하여 이렇게 한다. 이것이 바로 구세력이며 이것이 바로 교란이고 파괴이다.”

꿈에 본 장면 역시 매우 세력이 있는 단체이다. C동수는 막 참여했기 때문에 계곡 부근의 가장 변두리에 있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들의 의상은 깨끗하고 환경도 깨끗하며 들고 있는 깃발도 깨끗하여 모두 백색이라 미혹되기 딱 좋다. 유독 틀어놓은 음악은 오히려 종교와 유사한 음악이었다. 이는 흰색의 세력 범위이며 표면상 대법 수련생 중에서 수련한 것이 매우 순정하고 깨끗한 것 같지만 오히려 걷는 길이 쉽게 식별할 수 없어 불이법문의 법리에 위배되는 길, 구세력의 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비록 법을 얻었고 또 보기에는 수련도 잘한 것 같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뼛속에서는 아직 그것들의 그 한 문의 것을 놓지 않고 옹호하고 있다. 표현된 것은 바로 불교의 모종 음악이다. 뿌리에서 여전히 대법을 인정하지 않거나 단지 대법 수련을 이용하여 그들 마음속 신이나 종교 형세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스스로 눈치 채지 못하며 또 자신이 수련을 잘 닦았고 정진하며 정면적인 작용을 일으킨다고 생각하고 있다.이미 구세력 범위를 형성했음에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진심으로 수련하고 대법에 동화하려고 온 것이 아닌 것으로, 최후에는 여전히 ‘헛수련’한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산 주변의 환경은 조금도 녹색 생기가 없었다. 이는 바로 뿌리 문제다. 진정한 수련경지의 생기발랄하고 생명이 왕성한 그런 경치가 아니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절에 이런 정황이 나타나면 더욱 위험하다. 화상(和尙)이 그것을 모시면 그것이 곧 화상을 단속한다: 당신이 나를 모시지 않는가? 당신은 명명백백하게 나를 모시고 있구나! 좋다. 당신은 수련하려고 하지 않는가? 내가 당신을 책임지며,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수련하게 해 주겠다. 그것이 당신을 안배하는데, 그러면 당신이 수련 성취했다 해도 수련되어 어디로 갈 것인가? 그것이 안배해 수련한 것은 위의 어느 법문도 받아주지 않는다. 그것이 안배한 것이므로 당신은 장래에 그것의 관할에 속하게 된다. 당신 이것은 헛된 수련이 아닌가? 지금은 인류가 수련하여 정과(正果)를 얻으려 해도 아주 어렵다고 나는 말한다. 이런 현상은 상당히 보편적이다. 우리 많은 사람이 명산대천(名山大川)에서 본 불광(佛光)은 대다수가 모두 이 부류로서, 그것은 에너지가 있어 현현(顯現)할 수 있다. 진정한 대각자는 함부로 현현하지 않는다.”

또 개인적으로 깨달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수련생들 중 일부 뿌리 상에서 모종 불교의 사람이 대법을 얻어 수련하는 것인데 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이들이 비록 대법을 수련하고 수련도 아주 잘하지만 뿌리 문제에서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때문에 이들은 대법 수련을 이용해 그들의 위사위아(爲私爲我)와 그 종교의 존재를 위한 목적으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최후에는 ‘헛수련’과 마찬가지다. 23K의 백금 역시 24K의 순금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일부 수련생들이 ‘돈을 벌어 대법에 사용한다’는 이유로 진지하게 수련을 견지하지 않고 구실을 잡아 돈 문제를 내려놓지 못한다. 이 역시 일종 사람마음과 형식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는 마치 다른 종교에서 돈을 모아 사찰을 세우는 것과 같은 관념이다. 하지만 ‘돈을 벌어 대법에 사용한다’는 구실로 자신과 동수들을 미혹시키고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이렇게 벌어온 돈으로 사람을 구하고 법을 실증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스스로 바르게 수련하지 못했다. 아울러 최후에는 마치 속인이 대법 일을 하는 것처럼 되어 돈을 버는 항목에 집착한다. 이는 최후에 속인이 ‘수련의 깃발을 치켜들고’ 대법에 돈을 기부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본래 대법의 것이다. 이것 역시 최후에 ‘헛수련’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이니 바르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http://www.zhengjian.org/2015/10/28/148851.別最後變成了“白修”.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