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흑룡강성 대법제자 거안(居安)
【정견망】
세월은 화살처럼 빨라 법을 얻은 지 이미 21년이 되었다. 매번 사부님께서 친히 법을 전하시던 날을 회상할 때면 사존의 자상하고 위대한 형상이 뚜렷하게 나의 뇌리에 떠오른다. 매번 사존께서 고생을 마다 않으시며 각지에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법과 공을 전하며 대법제자들을 제도하고 중생제도를 위해 지불한 일체를 생각하면 내 맘속에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이 더욱 명확해진다.
1. 법을 얻다
나는 삼림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태어날 때부터 체질이 약했다. 자란 후 신체 건강을 위해 나는 많은 문파의 기공을 배웠다. 전국 각지에 적지 않게 다녔으며 돈도 많이 썼다. 하지만 몸은 별 변화가 없었다. 또 나는 이런 기공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점이 있었고 그런 소위 기공사는 많이는 모두 돈을 위해 사람을 속이는 것이었다. 이래서 나는 기공을 포기하도 또 불교로 들어갔다. 적지 않은 절, 도관을 다녔고 고생도 많이 했다. 한동안 수련하여 나는 그곳도 지저분한 일이 많음을 발견했다. 그곳도 정토가 아니었다.
내가 낙담하고 있을 때 94년 3월, 하얼빈에 내가 알고 있는 한의대학 친구를 만났다. 당시 그가 머물던 곳에는 <중국법륜공> 한권이 있었다. 그는 내게 “이 공법이 아주 좋아. 사부님이 직접 전수하시는데 각지에서 학습반을 열고 있어. 고덕(高德)대법(大法)이며 병을 제거하고 신체 건강에 효과가 아주 좋아. 보통 기공이 아니야.”
그날 밤 나는 얼른 이 책을 다 보았다. 읽어본 후 나는 격동해 마지않았다. 이전에 다른 공법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문제는 여기 사부님의 몇마디로 명백하게 말해놓았다. 또 매우 이해하기 쉬웠고 대도는 지극히 간단했다. 당시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반드시 이 공법을 배우겠다.’ 다음 날 나는 노점을 찾다가 어느 노점에서 <중국법륜공> 한권을 구했다. 그 노점상이 말했다. “이 책은 하얼빈에서 이미 품절되었어요.” 그의 노점에 이 한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듣고 매우 격동했다. 나는 파룬궁과 반드시 인연이 있을 것이다.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날마다 이 책을 보았는데 그곳의 몇 친구들이 돌아가며 보았다. 본 후 다 좋다고 말했으나 사부님이 언제 이곳에 와서 학습반을 열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날마다 생각하며 일찍이 사부님을 만나 뵈었으면 했다.
2. 사부님 은혜에 푹 빠지다
94년 8월 초 아버지 직장의 어느 동료가 하얼빈 출장을 갔는데 돌아온 후 나에게 사부님이 하얼빈 학습반 입장권 하나를 보내주었다. 그는 “일이 없어 공원을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한 장 사게 되었어.” 그는 당시 내가 이 책을 보는 것을 알고 내가 이 공법을 배우려 하는데 사부를 찾지 못하는 것을 알고 마침 간 김에 한 장 사온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했다. “마침내 사부님을 뵐 수 있게 되었다.” 이 며칠 나는 마침 배가 아팠는데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표를 받아들자 배가 갑자기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사부님께서 이미 신체를 정화해주시고 파룬을 넣어 주셨다. 당시는 깨닫지 못했는데 그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좋은 소식을 다른 몇사람에게 전했고 이렇게 우리 일행 6명은 8월 5일 하얼빈의 전수반에 참가하게 되었다.
당시 전수반은 하얼빈 시 8구의 아이스하키장에 설치되었다. 그곳은 4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왔다. 게다가 우리 성(省)과 현지에서도 사람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표를 사지 못했다. 사부님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임시로 좌석을 더 팔아 당시 법을 들은 사람이 5천여 명이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위치는 회의장 중간 한쪽이었다. 간단한 탁자와 의자만 있었다. 매일 강의하실 때면 사부님께선 주머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셨는데 그것이 원고였다. 사부님은 매번 회의장 전면 통로를 통해 입장하셨다. 나는 관람석 북쪽에 앉았기 때문에 사부님을 똑똑히 뵐 수 없었다. 둘째 날 통로 보조자리에 있는 친구좌석에 앉으니 비로소 잘 볼수 있었다. 사부님은 신체가 크고 자상한 얼굴을 하셨으며 매일 흰색의 반소매 셔츠를 입으셨다. 비록 날이 매우 더웠고 회의장에 사람이 많았는데 사부님의 옷깃에는 조금도 땀이나 오염이 묻지 않았다. 늘 깨끗했고 옷은 매우 소박했다.
당시 나는 오성이 낮아 사부님이 내 앞을 지나가실 때 사진을 찍었다. 사부님께서는 자상하게 매번 손으로 가볍게 막으셨지만 나는 깨닫지 못했다. 이렇게 찍어도 나중에 현상해보면 늘 노출이 너무 많아 허옇게 되었다. 나는 사부님과 법에 불경했고 마땅히 찍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오성이 좋지 못함을 후회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어느 날 아직 학습반이 열리기 전이었다. 나는 회의장 옆 대청에서 밖으로 걸어갔는데 갑자기 사부님께서 정문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알고 보니 사부님께서는 매일 사람들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시려고 늘 미리 회의장에 도착하신 것이었다. 이때 대청에는 오직 나와 사부님 두 사람만 있었다.
당시 나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격동하여 사부님 앞으로 몇걸음 다가가 두 손으로 사부님의 손을 잡으며 외쳤다.“사부님!” 이때 내 머릿속은 텅 비었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사부님은 나를 보시며 자상하게 말씀하셨다. “이러지 마세요.” 이렇게 나는 사부님께서 휴게실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지금 매번 이 말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고 사부님께서 사람을 제도하기가 아주 어려웠음을 깊이 이해한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이렇게 알려주려 하신 것 같다. “성숙해져야 하며 일시적인 충동으로 들어와서는 안된다. 수련은 견지해 내려가야 하고 쉽게 오지 않는 이 만고의 기연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3. 보고회에서 부친의 병을 치료해주다
하얼빈 전수반 기간에 사부님께서 노동자 문화궁에서 한차례 기공보고회를 열었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더 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이 설법을 듣게 하기 위해 학습반에서 말씀하셨다. “학습반 사람들은 갈 필요가 없습니다. 기회를 법을 얻지 못한 사람이 참가하도록 해야 합니다.” 당시 나는 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고회 당일 마침 할 일이 없어서 문화궁에 놀러갔다. 마침 어느 중년 부녀가 표를 팔고 있었다. 보고회가 막 시작할 즈음 나는 표를 사서 들어갔다.
이렇게 나는 또 한번 운 좋게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이 기간에 사부님께서는 보고회에 참가하러 온 모든 사람의 신체를 조리해주셨다. 당시 사부님은 사람들에게 한가지 병을 생각하라고 하며 병이 없는 사람은 가족의 병을 생각하면 그들의 병을 치료해준다고 하셨다.
당시 나는 이미 신체를 조리했기에 곧 생각했다. 나는 이 몇 년간 온천지를 돌아다니며 공을 배웠고 부모님은 나를 위해 적지 않게 걱정을 하셨으니 응당 그들을 위해 뭘 좀해야 겠다. 그래서 부친의 머리를 생각하며(전에 부친은 현기증이 있고 또 한쪽 팔과 손이 마비되어 뇌에 병이 있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 병이 낫도록 했다. 그 후 사부님은 하나 둘 셋, 소리에 따라 사람들이 함께 발을 굴렀다. 보고회에서 사부님은 우리 부친의 머리 질병을 낫게 해주셨다.
오늘까지 부친의 머리는 어떤 병도 없다. 2002년 나와 부친이 심양 뇌졸중센터에서 CT검사를 했는데 어떤 병도 없었다. 재차 사부님의 불은호탕을 견증했다.
4. 사부님을 따라 연길에 가서 법을 듣다
하얼빈 학습반이 끝난 후 나는 8월 20일 사부님을 따라 연길시 설법에 참가했다. 연길 설법 기간 몇 차례 큰 폭우가 내렸다. 한번은 비가 500미리미터 이상 내렸고 길가의 가로수가 번개에 맞아 쓰러졌다. 시내 주요 거리는 물이 흥건했지만 수련생들이 강의를 듣는데 영향은 없었다. 당시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하는 말을 들었다. “다른 공간의 마가 사부님이 법을 전하는 것을 교란했는데 사부님이 이런 마를 청리하고 동시에 연길을 위해 이 공간장을 청리하셨다.”
마지막 날 질의응답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의 요구에 응해 강단에서 사람들에게 대수인(大手印)을 쳐주셨다. 수인을 마친 후 각지 수련생은 사부님에게 깃발을 드리며 사부님에 대한 존경과 감격을 표시했다. 동시에 사부님은 또 각지 보도원에게 깃발을 답례로 증정하셨다. 마지막으로 사부님께서는 설법반의 일부 수입을 연변 적십자회에 기부하셨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들은 후 회의장에 박수가 우레같이 울렸다. 헤어지기 전에 사부님은 회의장 중심에 서서 다시 한번 나는 듯이 빠르게 대수인을 해주셨다. 비록 나는 사부님의 수인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나의 심령(心靈)은 매우 진감되었고 사부님의 불은호탕에 감사했다. 당시 나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사부님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떠나고 싶지 않았다.
사존께서는 제자와 중생을 위해 지불하신 일체에 대해 제자는 갚을 길이 없다. 오직 부단히 정진하여 세 가지 일을 잘하도록 노력해 조사정법으로 역사상 최대의 사명을 완성하는 수밖에 없다.
http://www.zhengjian.org/2015/11/17/149290.回憶參加李洪志師父哈爾濱、延吉傳法班的日子.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