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호북대법제자 선진(善珍)
【정견망】
모친의 말에 따르면 나는 어려서부터 팔자가 사나웠다고 한다. 5살 때는 우물에 물을 길러 갔다 실수로 우물에 빠진 적이 있다. 어머니가 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고 오직 작은 물통만 있어 사고가 난 줄 알았다. 얼른 동생을 안고 우물로 달려가 보니 과연 내가 우물 속에서 떠 있었다. 어머니가 얼른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불렀다. 마침 부근에서 일하던 한 아저씨가 고함소리를 듣고는 막대기를 들고 달려왔다.
그는 막대기를 우물 벽에 꽂고는 그것을 발판 삼아 아래로 내려왔다. 그가 나를 받쳐올리고 모친은 위에서 밧줄을 내려보내어 나를 끌어올렸다.
모친은 또 내가 어려서부터 이유 없이 배가 자주 아파 바닥에 떼굴떼굴 굴렀다고 했다. 이렇게 내내 아프다가 십대가 되서야 겨우 좋아졌다고 한다.
성장한 후에는 어렵사리 결혼을 했는데 결혼 생활도 순조롭지 못했다. 그곳 농촌 출신 남편에게 시집갔다. 그는 대학생으로 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학교에 다니지 않아 일자무식이었으며 나중에 독학으로 겨우 몇 글자 읽을 수 있었다. 어려부터 머리가 단순하여 말을 돌려하지 못하고 직설적으로 하여 시집 식구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시집가서 딸을 낳았는데 시어머니는 나쁜 말을 하기 시작하여 내가 남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며 우리 모녀를 쫓아내려고 했다. 어린 시동생들도 따라서 우리 모녀를 괴롭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딸을 안고 큰 눈이 내리는 날 현에 있던 남편에게 찾아갔다. 하지만 남편 역시 냉랭하게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남편에겐 이미 다른 여자가 있었고 우리를 버리려 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깊은 심연에 빠진 것같이 절망이 극도에 달했으며 하늘을 바라보며 도움을 구하고 신이 나에게 아들을 하나 내려주기를 기도했다. 이후 두 아이를 데리고 살며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달라고 빌었다.
내 정성이 지극했는지 나중에 과연 원하던 대로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내가 아들을 낳자 좀 마음이 바뀌는 듯했으며 더는 바람을 피지 않았다. 우리 일가족은 이렇게 작은 장사를 하여 생활을 유지해왔다.
비록 이혼을 하진 않았지만 그때 집은 늘 시끄러웠다. 남편은 늘 내가 성에 차지 않아 때리고 욕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남편은 나를 때려 넘어뜨리곤 했고 나 역시 손톱으로 남편의 얼굴을 할퀴어 온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곤 했다. 그때는 정말 지내기 힘들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남편이 출장을 가는데 내게 책을 한권 주며 정중히 부탁하기를 누구누구에게 대신 전해주라고 했다. 남편이 간 후 내가 책을 펴서 내용을 읽어보니 제목이 《/span>전법륜이었다. 나는 책 내용에 빨려 들어가 내려놓을 수 없었다. 책에서 말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왜 운명이 이리 사나운지, 무엇 때문에 부부 사이에 불화하는지 알았다. 모두 업력과 생생세세 지은 연분 때문이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생활에 희망이 가득하게 되었고 정말 천서(天書)였다. 평생의 모든 미혹을 해결해주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각도 지체하지 않고 인근 연공장을 찾아가 파룬궁 공법을 배웠다. 저녁에 장사를 마친 후에 또 연공과 단체 법학습을 하러 갔다. 이때부터 나는 성격이 좋아졌고 곳곳마다 대법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단속했다. 마침내 인생의 갈 곳을 찾았음을 느꼈다. 마음속에 대법과 사부님이 계시니 아무리 생활이 곤란해도 참을 수 있었다.
나와 남편이 대법에 입문한 시기는 1995년 봄이었다. 그때 우리는 아직 외지 소도시에서 장사를 하느라 작은 셋집에서 초라하게 살고 있었다. 때로 퇴근이 늦어지면 아이들은 자기들이 간단히 밥을 지어 먹곤 했다. 어느 날 내가 퇴근하고 철로를 따라 집으로 걸었는데 머릿속에 어린 아이들이 밥을 먹었을까 하며 걱정하느라 뒤에 기차의 경적 소리를 듣지 못했고 기차의 굉음이 다가와서 비로소 발견했다. 나는 얼른 궤도를 벗어났으며 막 궤도를 벗어나자마자 기차는 나의 어깨를 스쳐 지나가며 멀지 않은 곳에서 멈추었다. 기관사는 화가 매우 났고 물 호스로 나를 향해 물을 뿌렸는데 온몸에 물을 뒤집어썼어도 당시는 두려운 줄 몰랐다.
며칠 후 생각하니 매우 겁이 났다. 까딱하면 기차에 치여 죽을뻔 하지 않았는가. 저녁에 연공장에서 법공부를 할 때 동수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들은 알고 보니 당신이 기차를 세운 것이 아닌가 하고 말했다. 사람들은 대낮에 기차가 사람 때문에 멈춘 일을 들었다고 했다. 동수는 사부님이 보호하신 것이라며 아니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수련 후 나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단속했으며 점점 독립적인 성격이 되어 더는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남편도 많이 변했다. 그는 원래 근본이 좋은 사람이라 수련 후 부모에게 효도하고 생활비를 드렸으며 치료비도 보태드렸다. 친구나 형제들에게도 매우 의리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 곤란을 당해 도움을 청하면 반드시 도왔으며 다른 사람이 갚지 않아도 독촉하지 않았다.
수련 후 우리 부부는 한마음으로 장사를 했고 원수에서 동수로 변했다. 대법의 요구에 따라 성심으로 고객을 감동시키니 장사는 갈수록 잘되었다. 그래서 대도시로 이사 가서 장사를 했고 엘리베이터가 두 개나 있는 건물을 샀다. 더 위안이 되는 것은 자식들도 대법의 영향을 받아 말을 잘 듣고 순박하며 대법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직접 밥을 짓고 빨래를 했다. 딸은 북경 최고 학부 대학원에 재학중이고 아들은 일류대학 본과에 다니고 있다. 우리 장사도 매우 잘되어 가정이 행복하고 걱정이 없으며 자녀들이 학업에 성취가 있고 대법이 나의 부서진 가정을 구하고 사부님이 나를 고난에서 구출하시고 수련을 보호하시며 또 돈 한푼 원치 않으셨다. 어디 가서 이런 좋은 사부를 찾을 수 있는가! 정말 너무 행운이다. 그저 정진 수련하여야 고심하게 나를 구한 사부님께 떳떳할 수 있다.
나는 원래 줄곧 시어머니를 미워했다. 그녀가 매정하게도 한겨울에 나와 딸을 문밖으로 내쫓았다고 원망했다. 수련 후 법공부를 하여 관념에 변화가 생겼고 인간세상의 모든 것이 인연의 까닭임을 알고는 더 이상 원망하지 않았다. 동수의 협조 하에 원래 생각이 대법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시어머니에 대한 원한을 내려놓고 지금은 시간만 나면 찾아뵙고 용돈을 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또 시동생들과도 전에는 관계가 나빴는데 수련 후 점점 나아졌다. 또 장사를 하면서도 가능하면 그들을 고려해주었다. 그들은 형수가 대법을 수련하더니 달라졌다면서 대법은 사람을 더 선량하게 만들고 생활도 더 좋아지게 한다고 느낀다. 대법 수련은 나를 환골탈태하게 했으니 원망 많던 아줌마에서 이치에 통달한 현모양처가 되게 했다.
이번에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았는데 시간이 긴박함을 알고 틈만 나면 나가 사람을 구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며 사전 서약을 실천하고 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2016/09/03/1544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