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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정 경험 : 사부님께서 진선인에 동화하도록 가르치시다(하)

작자/ 서양인 대법제자 구술 번역 정리

【정견망】

세 번째, 참음(忍)

어떻게 해야 참음을 해낼 수 있는가? 만일 당신이 성실하다면, 관용적이며 너그럽게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감수를 고려할 수 있다면, 또 일이 생길 때 우선 안으로 찾고 줄곧 자기를 수련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참음을 해내기란 평지를 걷듯이 매우 쉽다.

왜냐하면 그 무엇도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당신을 건드리거나 고험할 것이 없으며 당신의 심성에 도전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언제든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나쁜 일을 해도 선의로 이해하고 고통을 참을 수 있다면 일이 발생할 때 당신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이와 같은데 당신이 또 뭘 참을 필요가 있겠는가? 당신은 이미 참음을 해낸 것이다.

만일 완전히 진과 선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만나도 줄곧 자기의 부족을 찾고 자기에게 공을 들일 수 있다. 만일 처음 일념이 ‘안을 향해 찾기’라면 곧 당신의 제 일념은 참음을 해낸 것이다.

인은 진과 선의 뒤에 있다. 대선(大善)이 있는 사람은 대인지심(大忍之心)이 있다. 인이 부족하면 선은 없다. 대선(大善)이라야 대인(大忍)할 수 있다.

“당신이 그를 미워하면 당신은 화를 낸 것이 아닌가? 당신은 참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眞(쩐)・善(싼)・忍(런)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선(善)은 더욱 있을 리가 없다.” 《/span>전법륜-제4강

진과 선을 수련하면 인은 자연히 따라나온다. 인은 순리대로 잘 풀려나오며 가볍게 따라온다.

무엇을 참음이라 하며 어떻게 참음을 닦는가? 법 중에 답안이 있다.

만일 ‘쩐싼런’을 이해하려면 《/span>전법륜과 각종 대법서적을 통독해야 한다. 본문은 지면의 제한이 있으므로 몇 가지 설법만 든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 《/span>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何爲忍)>

“우주의 과거는 사(私)적인 것이다. 사람을 말해본다면 정말로 관건시기에 다른 사람을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정법(正法)을 시작할 때, 일부 신들은 나에게 ‘당신만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 씁니다’라고 했다. 당신들이 들어도 불가사의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대법이 육성한 다른 사람을 위한 정법정각(正法正覺)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하지 않는다면 모든 생명은 역시 역사에 따라 결속된다. 그러므로 한 생명으로서,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고려할 수 있는 것과 표현된 관용은 기점이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국제법회설법

“참음(忍) 속에 버림(捨)이 있는 것으로, 버릴 수 있음은 수련의 승화이다.”

“버림은 속인의 마음에 집착하지 않는 것의 체현이다. 만약 정말로 탄연(坦然)하게 버릴 수 있으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자라면, 실은 이미 그 한 층에 있는 것이다.” 《/span>정진요지-무루(無漏)>

“참음(忍) 속에 버림(捨)이 있으니, 깡그리 버리는 것만이 누락이 없는 더욱 높은 법리(法理)이다.” 《/span>정진요지-원용(圓容)>

사악의 박해에 대해 사부님은 멸(滅)! 이라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내게 수인으로 알려주셨다. “오늘의 가르침을 끝내기 전에 또 한가지 이치를 말해야겠다.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악에 대해, 바로 멸(滅)이다.”

당신이 진실하고 선하고 인내한다는 것이 어떤 사악도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약 사악이 대법에 부딪쳐 오면 당신은 그것에 대해 무슨 진실할 것이 없다. 무슨 용서할 것도 없고 선할 것도 없으며 참을 게 없다. 오직 멸(滅)뿐인데 즉시 제거한다!

이것은 당신이 지나야 할 관이거나 빚진 것이거나 진선인의 풍채를 나타내야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사악은 바로 사악이다. 당신은 사악에게 빚진 것이 없다. 또 얻어맞은 수련생이 집착이 있고 빠짐이 있고 정념이 강하지 않고 구세력의 안배를 해체할 능력이 없다거나, 전생에 무슨 빚이나 업이 너무나 크다거나 라고 생각하지 말라.

사악의 출현은 우리가 바른 일을 하고 바른 길을 걷는 걸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사악이 우리를 박해하게 해선 안 되며 대법제자를 박해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또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는 시도를 허용해서도 안 된다. 대법과 대법제자에 부딪히는 그 어떤 사악이든 모두 멸해야 한다.!

만약 사악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정말로 잘못을 인식하고 제때에 박해를 포기하고 대법을 따를 것을 선택했고 공을 세워 잘못을 보충하기를 원한다면 이런 전제하에서 우리는 용서를 말할 수 있다. 오직 이런 정황하에서만 정법이 끝나기 전에 우리는 용서할 수 있다.

선악(善惡)과 정사(正邪)를 똑똑히 구분하고 법을 박해하려는 사악을 똑똑히 분간해야 한다. 자비는 희롱당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개인수련과 정법수련은 같은 일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정법 중에 있기에 과거의 개인수련과는 다르다. 무리한 상해(傷害)에 직면하거나 대법(大法)에 대한 박해에 직면하거나 우리에게 강제로 주어진 불공정에 직면할 때, 예전의 개인수련처럼 그렇게 대하여 일률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는 현재 정법시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span>정진요지 2-정법(正法)과 수련

“내가 제자들에게 발정념을 하라고 한 것은 이른바 그러한 사악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대법제자의 자비가 도리어 구세력에게 이용당하여 그것들의 보호 하에서 사악한 생명이 고의로 박해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법제자들이 감당하는 것은 이미 단지 자신의 업력뿐만이 아니라 사악한 생명의 박해 하에서 감당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악한 생명들은 극히 저질적이고 더러운 것들로서 정법 가운데서 그 어떠한 역할을 할 자격이 없다.” 《/span>정진요지 2-정념의 작용

“현재 참여한 것이 바른 생명이든지 부(負)적인 생명이든지 구세력에 대해 말한다면 철저한 제거이다. 정법(正法) 중에서 그 속에 참여한 사악한 생명은 그것의 층차가 얼마나 높든지 모조리 도태시키고 있다. 이것은 정법에 대해 말한다면 일반 수련과 뚜렷이 다르다.” 《/span>정진요지 2-길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겨냥해 사부님께선 다른 공간에서 내게 아주 똑똑히 말씀하셨다. 이때 사부님의 태도는 아주 단호하셨고 발음이 또렷했으며 어조가 부드러우면서도 울려 퍼졌다. 한 글자로는 멸(滅) 두 글자로는 전멸(全滅)이었다.

그 후 나는 미래의 한 막을 보았다. 사부님은 나를 위해 정법 수련의 매 한걸음을 준비하셨다.

미래를 뚫고: 중공 박해를 대하다

나는 주의하지 않았으므로 그것이 발생하는 장소와 때는 모른다. 그것은 한차례 홍법과 진상활동을 할 때였다.

내가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50대의 한 흉악범이 주먹을 쥐고 내게 달려들었다. 이어 사부님께서 느린 그림으로 보여주셨는데 그 사람의 주먹이 천천히 내 얼굴에 접근했으나 내 속도가 매우 빨라 그 사람과 같은 시간장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상상도 못했는데 내 팔로 가로막자 그의 주먹은 방향이 비틀어졌으며 내가 힘이 가는대로 밀자 그는 슬로모션으로 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두 발을 움직일 시간이 있었으나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나쁜 행위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나는 제때에 그를 제지했고 다치지 않았다.

나는 또 그에게 가서 넘어뜨리지 않았으며 오직 유효한 방식으로 방위했을 뿐이다. 사람 중에서 속인의 방법으로 속인 상태에 부합하며 정상적으로 대하면 된다. 나는 실제 행동으로 표명한다. 사악의 박해에 대해 대법제자는 개인 수련처럼 움직이지 않고 단순히 참음으로 대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박해에 대하여 참을 것이 없다. 내가 자기를 보호해야만 비로소 다른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 자기를 수호하는 것이 바로 대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우리와 대법은 일체다. 우리는 바로 대법 중에 있는 것이며 신이 세간에서 행하는 것이다.

비록 이 결과는 그것들의 예상을 벗어났지만 사악은 이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악인의 얼굴 하에 숨은 사악은 다시 일어나 권토중래하려 했다. 그 사람의 모양은 흉악하면서도 좀 우스웠는데 그는 재차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 순간 사부님께서 내 몸속 무술기공의 자물쇠를 열어주셨다. 격타와 격타를 막는 기공은 피하로 다니며, 금종조, 칠포삼, 백보천양 등 《/span>전법륜에 언급된 쿵푸는 사부님께서 언제 나를 위해 연마해낸 것인지 전혀 모른다. 사악의 박해를 대해 내가 필요할 때에 나는 놀라지도 않고 당황하지 않으며 두려움이 없을 때 나를 위해 공능을 열어주셨다. 알고 보니 나는 무술고수였다! 나는 그의 팔을 문득 잡고 자연스럽게 앞으로 당겨 어깨를 틀어 던져버렸으며 그는 다시 넘어졌다.

그의 얼굴이 먼저 땅에 닿았으며 일어날 때 온 얼굴이 피투성이였다. 나는 그의 체내에서 그를 조종하는 다른 공간의 사악을 보았는데 다친 것이 그보다 백배는 되었다. 이어서 그를 매수한 중공 건달이 큰소리를 질렀다. “빨리 도망쳐!” 흉수는 쥐보다 더 빨리 사라졌다.

다음 차례 중공 대사관이 돈으로 흉수를 매수하면 그는 감히 받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하려고 할 때 누구도 내공이 심후하고 ‘참을 수 없음’의 법리를 이해하는 대법제자를 만나기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피를 닦은 후 다시 생각할 것이다. 그가 받은 것이 무슨 남는 장사인지. 대법제자는 대체 어찌된 사람들일까? 그와 동료들은 다시 생각할 것이고 사방으로 선전할 것이다. 그가 당한 일이 대사관에서 보증한 것처럼 되지 않는다고. 만일 그가 빨리 도망가지 않았다면 나는 즉시 미국 법률에 따라 ‘공민체포권’을 행사하여 그를 묶었을 것이며 그리고 경찰에 연락하여 그를 감옥에 넣었을 것이다. 이것이 왜 중공대사관의 깡패가 그더러 빨리 도망가라고 했는가 하는 원인이다. 중공의 똘마니 귀신은 모두 약자는 괴롭히고 강자는 두려워한다.

대법의 위엄은 도발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법제자의 자비는 이용당할 수 없다. 어떤 정상인이라도 이런 일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방어하고 제지하며 용감하게 반항한다. 사악이 아무리 우리 주위의 어느 대법제자를 박해하든 다른 동수가 보면 모두 도와야 한다. 당신의 태도가 좀 강경하여 그것에 대해 “不”자를 말하면 그것은 놀라서 두 다리에 힘이 빠질 것이다. 그에게 “띵(定)”이라고 소리치면 그는 일체의 사유가 정지되어 버리며 꼼짝도 않고 멍하게 서 있다. 아니면 그것은 바닥에 흐물흐물 녹아버릴 것이다.

“법은 중생에게 자비로운 것이지만 위엄(威嚴)이 함께 존재한다. 법 역시 표준이 있으며 중생에 대하여 불변불파(不變不破)한 것으로서, 이는 함부로 좌우지 될 수 없다. 나는 중생에게 자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한 생명이 정말로 그 일보를 범하게 되었을 때에는 법으로 가늠하는 것이며 더 자비롭다면 바로 무절제한 것으로, 스스로 훼멸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런 생명은 도태하기로 정해지게 되는 것이다.” 정월대보름 설법

박해제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이렇게 오랜 시간의 배치였고 이렇게 큰 한 가지 사건으로, 대단히 질서가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들이 걷는 매 한 걸음, 당신이 내딛는 그 한 걸음의 크기마저도 모두 안배된 것이라는 말인데, 당신은 믿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이 박해 중에서 몇 마디 외칠 것인지, 당신을 몇 차례 때릴 것인지 그것은 모두 그것들이 안배해 놓은 것이다.” 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우리가 “파룬따파 하오”를 외칠 때, 우리가 플래카드를 펼칠 때, 사악이 폭도를 이용하여 공격하고 경찰을 이용하여 전기곤봉으로 지지는데 이때 우리는 무슨 이유로 사악이 난폭함을 놔둬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사악이 대법제자에게 몇 마디 외칠 것인지 몇 차례 때릴 것인지 배치한 것을 동의할 수 있는가?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법에 부합하는가?

경문 《/span>더 이상 참을 수 없다에 이런 한마디가 있다.

“만약 사악이 이미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면, 부동한 층차의 각종 방식을 취해 제지하고 제거해 버릴 수 있다.” 《/span>정진요지 2>

경문에서 “부동한 층차의 각종 방식을 취해” 라고 하셨는데 나는 사람의 이 한층에서는 우리는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절대적인 위엄으로 악당의 눈을 보고 정의로운 소리로 크게 일갈한다. “멈춰” 혹은 “띵”이라고 하며 정념으로 사악을 정지시키고 박해를 제지한다.

2. 만일 사악이 미친 듯이 발광하여 통제할 수 없으면 우리는 다른 방식을 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악한의 흉기를 빼앗아 멀리 던져 더 이상 역전할 의지를 허용하지 않으며 큰소리로 말한다. “당신은 그 흉기를 가지고 꺼져! 빨리!”

3. 사악이 폭력을 행사할 때 그 손을 제지하며 자기를 때리지 않도록 한다. 강한 정념으로 금강부동의 일념을 가지하여 일념으로 폭력을 제지한다.

4. 사악을 피해 사악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장소를 바꿔 계속 플래카드를 걸고 하고 싶은 말을 외친다.

5. 무슨 일로 사람을 때리는가? 큰소리로 외친다. 누가 권리를 주었는가? 경찰신분증을 내놓아라, 이름이 무엇이냐? 경찰이 아니면 폭도이며 경찰 신분증이 있어도 폭력 경찰이다. 우리가 바른 태도로 폭도의 두 눈을 직시하고 단전의 진기를 움직여 “파룬따파하오”를 외치면 사악의 간을 서늘하게 할 수 있다. 이는 사람에 대한 사람의 박해가 아니다. 우리는 하늘을 떠받치는 호법신의 위엄과 심태로 구할 방법이 없는 사악에 대해 각종 평화로운 방법으로 정념이 충족한 방식으로 제지하고 없애야 한다.

근본적으로 구세력의 일체 안배를 부정하고 실제행동으로 박해를 제지하며 우선 우리 자신부터 시작하되 외부의 변화에 기대지 않는다,

깡패가 흉악할 때 조금이라도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 보면 모두 나와서 제지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 얻어맞을 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 보면 모두 나와서 제지해야 한다. 사악이 대법도를 박해할 때 삼계 내외의 사람 중 천상(天上), 각 길의 인마와 하늘에 가득한 천신(天神)들이 있는데 어찌 냉랭하게 방관하겠는가? 어찌 너무 관용하고 등한시 하고 묵인하면 공범이 됨을 알지 못하는가? 자고로 정과 사는 양립할 수 없고 각계의 호법은 각자 신통을 드러내어 극형에 처해야 한다. 사악은 반드시 ‘현세현보’를 받아야 하며 이는 정법의 수요이자 우주 평형의 수요이다.

“사악을 모조리 제거함은 정법(正法)을 위한 것이지 개인수련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수련 중에는 통상적으로 더는 참을 수 없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span>정진요지 2- 더는 참을 수 없다

박해는 반드시 중지되어야 한다! 사악은 즉시 손을 멈추어야 하며 대법의 관용에 빌고 대법제자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대법을 위배하여 제멋대로 행하는 자는 반드시 연옥에 떨어지고 영원히 형벌을 받으며 끝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2014/11/21/1379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