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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는 수련인의 경지가 제고된 표현

작자/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다. 평소 말이 많고 무슨 일을 만나면 늘 한바탕 평론을 한다. 수구면에서 아무 진전이 없었다. 최근 갑자기 몇 가지 기제가 나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말을 하고 싶어도 입을 열 수 없었고 머릿속에 무슨 분리기가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분리해 어떤 것은 바닥에 펴놓고 나더러 보라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어떤 것이 유용한지 어떤 것이 쓸모없는 것인지 알 수 있었고 쓸모없는 말은 자연히 하고 싶지 않았다.

그 후 꿈을 꾸었다. 꿈에 연극 연습을 보았다. 건물에 들어간 후 심사위원석에 앉았는데 이귀염(李貴豔)이라는 연극단원이 나더러 거기 앉지 말라고 했다. 내가 “안됩니다. 당신의 이모부(姨夫)가 나보고 여기 앉으라고 했어요.” 나는 또 구석에 뚜껑을 닫지 않은 빈 술병이 몇 개 있는 것을 보고는 그 병을 들고 갔다.

깨어난 후 생각했다. 이것은 내가 수구하지 않는데 대한 점화이다. 평소 내가 어디를 가든 심사위원 석상에 앉기를 좋아하고 어디를 가든 몇 마디 하려고 한다. 수련이 최후가 되어 더욱 높은 이치(李)로 자기를 단속하고 언행을 바로 잡고(歸는 貴와 통한다), 규율에서 엄(嚴)격히(豔) 자기를 단속하여 성숙한 상태로 수련 성취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나는 평소 입을 다물지 못하는가? 다른 사람에게 원인을 따지길 좋아하고[喜(姨)] 부면(负는 夫와 통한다) 요소가 배후에서 나를 통제해 수구하지 못한다면 닫히지 않은 빈 술병(空口評論)처럼모두 쓸모없는 것으로서 마땅히 청리해 버려야 한다.

왜 이전에 수구 상에서 돌파하지 못했는가? 여전히 자기의 사람 마음이 많고 관념이 많은데 집안이나 친척 또는 동수의 무슨 일이든 생각하길 좋아하고 마음에 둔다. 누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늘 염려하면서 내려놓지 못했다. 동수와 대면하면 사람에게 꼭 몇 마디 하는데 “느슨하지 말고 잘 수련하세요.” 동수 간에 충돌이 있어도 또 몇 마디 한다. 마치 다른 사람들은 나만큼 좋지 않은 듯하고 자아 중에 자아를 모르며 늘 이런 상태에서 배회했다.

수구에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몇 년간 적지 않은 업을 지었고 번거로움을 초래했다. 예컨대 한번은 어느 동수의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동수에게 가서 말했다. “누구 아들이 결혼하는데 가실래요?” 동수는 “나한테는 아무 말도 없었는데요?”라고 했다. 나는 “당신들은 가까우니까 때가 되면 말하겠죠. 어찌 안갈 수 있겠어요?” 며칠 후 또 다른 동수 집에 갔더니 그가 말했다. “모 동수의 아들이 결혼하는데 왜 그 일을 다른 동수에게 알렸어요? 그녀는 돈이 없어서 원래 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에게 불만이 있어요.” 당시 나는 매우 놀랐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본래 나와 무관한 일인데 입이 왜 그리 싼가?

동수의 결점을 어떻게 대하는가? 이것이 수구에서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줄곧 잘하지 못했다. 늘 동수의 결점을 보고 가만히 있지 못했으며 결점을 토론하며 포용하고 자비로 대하지 못했다. 법에서부터 알다시피 우리는 층층이 아래로 내려올 때 윤회 중에 형성된 수많은 사람의 집착과 관념을 모두 법에서 바로 잡아야 한다. 동시에 자신의 우주를 바로 잡는 것이며 자기가 대표한 천체를 바로잡는 과정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우주의 생명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렇게 볼 때 수구는 표면적으로 말을 얼마나 적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심층의 내포가 있으며 그것은 경지가 제고된 표현이다.

이전에 수구에 대해 부딪히는 일이 많았으나 주의하지 않았으니 수련하지 않은 것과 같다. 한번은 내가 동수 집에 갔을 때 동수가 자기 외손녀에게 물었다. “너는 이 삼촌하고 둘째 외숙하고 누가 더 좋니?” 어린 외손녀는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나를 한번 보더니 말했다. “아저씨는 둘째 외숙처럼 점잖지 않고 장벽이 있어요.” 아이의 외삼촌은 속인인데 나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는 왜 그렇게 말이 많은가?’ 속인들도 다 아는데 한 사람이 말을 많이 하면 가볍고 성숙하지 못하다. 오래되면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수련인은 속인보다 높은 것으로 마땅히 자비롭고 장중한 자태여야 하지 않는가? 속인으로 말하면 어린 학생이 말을 많이 하면 귀엽지만 중학생이 말이 많으면 활발하고 고등학생이 말이 많으면 유치하고 대학생이 말이 많으면 성숙하지 못하다. 중년,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주절주절하면 남을 귀찮게 한다. 수련인은 속인보다 높으므로 오염된 먼지를 버려야 하며 우리가 하는 말은 에너지가 있어서 마음대로 남을 비판하면 안 된다. 의도치 않게 남을 비평하면 자기에게 의외의 번거로움을 가져다준다. 사부님은 우리더러 특별히 조심하라고 하셨다. “당신들이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고 의논할 때 신마저도 옳게 보지 않는다.”《/span>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설법

수구의 버릇을 고치지 못한데 또 배후의 원인이 있다. 매 대법제자에 대한 구세력의 안배는 매우 세밀한데 어느 정도인가? 매일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가 누구와 말하는가? 이런 말이 자기에게 무슨 번거로움을 가져오는가? 동수에게 무슨 간격을 조성하는가? 모두 그것이 안배한 기제가 있다. 이런 기제가 끊임없이 도는 과정 중에서 당신은 통제를 받는다. 왜 어떤 말은 반드시 해야 하는가? 참으려 해도 참지 못하는가? 바로 배후의 요소가 당신을 받쳐주기 때문인데 이런 기제 역시 일종의 힘으로서 만일 당신의 정념이 강하면 극복할 수 있다. 정념이 강하지 않으면 그것에게 이끌린다. 그렇지 않으면 왜 어떤 때 당신이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는가? 우리가 발정념할 때 우리가 말하게 조정하는 이런 기제를 철저히 해체해야 한다. 구세력의 안배를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 대법으로 자기의 일언일행을 바로 잡아야 진정으로 신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개인의 얕은 견해이니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과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244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