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뉴스】
2019년 5월 13일은 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전파된 제27주년이자 제20회 “세계파룬따파의 날”이다. 이날은 또 파룬궁을 창시한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생일이기도 하다. 온 세계가 경축하는 이때 1999년 이전에 법을 얻어 수련하는 일부 파룬궁 수련생들이 과거 사부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모두들 감개가 무량하며 감사와 은혜가 끊이지 않는다.
사부님의 자비롭고 상화한 에너지장에 다년간 중독된 담배를 끊다
내 이름은 묘영지(苗英志)로 하북성 석가장 사람이다. 1994년 8월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법을 얻기 전에는 심각한 심장병과 위장질환이 있었다. 당시 32살이던 나는 각종 약을 먹었으며 기공에서도 치료방법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모두 내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통증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배는 북처럼 부어올랐다. 나는 늘 슬픔에 빠져 이미 생명의 끝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 친구가 파룬궁이 치료효과가 좋다고 알려주면서 또 우리 집 부근에 연공장이 있다고 했다.
그날 아침 연공장에 나가보니 40여 명의 사람들이 연공하고 있었다. 연공장 책임자가 내게 파룬궁의 특징을 소개할 때 나는 사부님이 내 신체를 정화해주시는 것을 느꼈다. 배가 이전처럼 부풀어 오르지 않고 편안했다. 나뭇잎도 옛날처럼 그리 칙칙하지 않고 매우 밝아보였다.
책임자는 내게 《중국파룬궁》 한 권을 빌려주었다. 집에 돌아와 단숨에 다 읽었는데 매우 신기한 것은 다음날 나의 병이 완전히 나아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파룬궁 수련으로 들어오기로 결정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광주(廣州)에서 제5기 학습반을 개최하신다는 것을 알고 다른 세 동수와 상의해 함께 광주로 가서 설법을 듣기로 했다.
법을 얻기 전 나는 매일 세 갑의 담배를 피웠는데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광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담배를 빼어 물었는데 아무 맛도 없었다. 그렇게 하여 다년간의 중독증이 단번에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광주에 가서 사부님을 뵈었다. 사부님은 훤칠하고 시원한 외모에 겉보기에도 일반인들과는 다르셨고 말씀하시는 음성도 상화롭고 친근했다. 더욱이 사부님의 강대하고 자비로운 에너지 장이 광주시의 아주 넓은 범위를 덮었다. 우리가 광주에 도착해 막 열차에서 내렸을 때 특히 강함을 느꼈고 길을 걸어도 신체가 매우 가볍고 마치 면화를 딛는 것 같았다. 전체 법을 전하는 기간 동안 마음은 특별히 상화롭고 깨끗했다.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후 나는 세계관마저 완전히 변화했다. 더는 명예를 다투거나 이익을 빼앗지 않게 되었고 사람이 된 의의를 분명히 알게 되었으며 대법 수련과 반본귀진의 의미를 알았다.
온 세계가 경축하는 이 날을 맞아 사부님께서 당시 법을 전하시던 광경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격동되며 진심으로 한 마디 드리고 싶다. “사부님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사부님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사부님께서 육성하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제자는 반드시 가르침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진선인에 동화하는 생명이 되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이 오기 쉽지 않았다”고 수련생에게 알려주셨다
나는 우추매(于秋梅)라고 한다. 1994년 8월 5일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장 행복한 날이다. 비록 시간이 빨리 지나갔지만 나도 모르게 거의 25년의 파룬따파 수련 역정을 걸어왔으며 세월이 지나도 영원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하얼빈 아이스하키 체육관에서 나는 사부님의 전법반에 참가했다. 나는 매우 일찍 들어가 앉아서 사부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리며 사람들이 다 일어섰고 사부님은 강단을 향해 걸어오셨다. 박수소리는 몇 분간 지속되었다.
내가 사부님을 보니 크고 훤출한 몸에 상화롭고 자비로운 얼굴에 절로 존경심이 일어났다. 의지할 수 있다는 행복한 느낌은 말할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 자비로운 미소로 사람들에게 앉으라고 손짓하시고 강의를 시작하셨다.
사부님 강의는 원고가 없고 가장 통속적이고 가장 현대적인 언어로 고심한 대법을 상세히 설명 하시고 박대정심한 법륜불법을 그 자리의 모든 사람에게 전해 구구절절이 나의 심령을 적셨다. 수련생들은 모두 깊이 흡인되었고 진감을 받아 조용히 들었다.
사부님의 자비롭고 상화하며 강대한 에너지장은 매 사람의 심령에 울려 퍼졌으며 심금을 활짝 열어주었다. 현장에 있던 수련생들은 전국 각지에서 왔는데 모두 예의 바르게 서로 양보하며 사부님의 에너지 속에서 사람 사이는 매우 순결하고 아름다웠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심령만 정화해주신 것이 아니라 신체도 정화해주셨다.
어느 날 강의가 끝나고 사부님은 현장의 모든 수련생들에게 신체를 청리해주셨다. 사부님께서 사람들에게 일어서 함께 발을 구르라고 하셨다. 남자는 왼발 여자는 오른발을 구르되 자기 신체의 어느 병을 생각하거나 가족의 신체의 어느 병을 생각하고 사부님 구령을 따라서 하나 둘 셋 하며 일제히 발을 굴렀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에게 손을 뻗어 파룬을 받으라고 하셨다. 손을 평평히 펴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면 열기, 저림, 서늘한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당시 손가락에 바람개비가 도는 것을 느꼈고 매우 신기했다! 불가사의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 사방팔방에서 이곳에 몰려온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암암리에 결심했다. 금후 사부님의 말씀대로 따라서 수련하겠다.
학습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부님은 재삼 우리에게 대법이 오기 쉽지 않았으며 쉽게 얻었다고 해서 쉽게 잃지 말라고 하셨다. 수련은 몸 고생과 마음고생에 시달려야 하지만 수련의 길에서 숫사자처럼 용맹정진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 몇 마디 말씀은 내 마음속에 각인되었으며 내가 정진실수(精進實修)하는데 격려가 되었다. 비록 이따금 수련에 정진하지 못하지만 사부님의 대법은 최종적으로 나의 수련의 길에 하나씩 난관을 뚫고 나가는데 지도하고 있다. 박해의 마난이 왔을 때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고 사부님을 따라 오늘까지 걸어왔고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금생에 사부님의 전수반에 참가한 것은 진실로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하는 행운이다!
사부님은 어떤 가식도 없이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장명(張明)이라 하며 전에 장춘시 교사로 있었다. 1993년 어느 동수가 《중국파룬궁》 책을 빌려줘서 나는 집에 돌아와 하룻밤 사이에 다 읽었다. 그리고 다년간 기공의 각종 의혹이 다 명백해졌다. 암암리에 이것이 내가 찾고 있던 것임을 알았다.
1994년 장춘 설법반의 인원수가 다 찼다. 나는 등록을 늦게 해서 표가 없었다. 나중에 하얼빈에서 또 설법반을 연다는 말을 듣고 나는 곧바로 등록했다. 다행히 1994년 8월 마침내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사부님의 설법은 매우 똑똑하여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전 장은 모두 조용하고 다 귀를 기울여 들었다.
마지막 어느 날 나는 내심 견디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사부님을 보고 싶었다. 나는 체육관 위쪽 구역의 맨 마지막 줄이었기에 아래로 내려가서 끝나기를 기다려 사부님을 한번 뵙기를 기다렸다. 들어가는 통로가 하나 있었는데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므로 나는 그곳에 서서 기다렸다.
사부님께서 오셨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관리하는 사람과 회의장 책임자가 말했다. “밀지 마세요, 사부님 먼저 좀 지나가시게 해주세요.”
나는 사람들이 모두 나같이 사부님을 좀 보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사부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괜찮습니다. 여러분 함께 갑시다.”
내가 본 것은 조금도 가식이 없고 가까이 다가가기 쉬운 사부님이었다. 나는 밀치지 않았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내 옆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직접 사부님의 커다란 장대한 신체와 그림자를 목격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미소는 마음에 새겨졌다.
다년간 나는 수련과 사부님께서 전해주신 불법(佛法)에 대해 내심 비할바 없는 행복과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다. 반드시 잘 수련하고 반드시 진선인 법리에 따라 수련할 것이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해 나는 다년간 유리실소하며 많은 고생을 겪었다. 하지만 수련은 오히려 즐거웠고 내심은 희열이 있었다.
《전법륜》 중의 일이 내 몸에서 입증되다
나는 상세혁(常世革)이라 한다. 1994년 8월 나는 운 좋게 사부님의 하얼빈 8일 법회에 참가했다. 당시 갔을 때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으며 무슨 수련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부님은 정말 자비로웠다. 하얼빈으로 가는 길에 사부님께서는 내 신체를 조정해주셨고 내 병이 나아버렸다. 8일 동안 10번 강의로 나의 사상은 거의 매일 변했다. 파룬궁은 단순히 병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수련이며 사람을 반본귀진 하도록 하는 불법임을 알았다.
그때 사부님이 친히 연공 동작을 설명하셨고 옆에 동수가 시범을 보였다. 나는 자세히 들었으며 손동작과 세부적인 절을 포함하여 나는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당시 하얼빈은 날씨가 매우 더워 많은 동수들은 부채로 바람을 부쳤으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일심으로 설법만 들었다. 사부님은 부채를 사용하지 말라고 건의 하셨는데 그래도 마찬가지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정말 그랬는데 나는 진진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을 느꼈으며 조금도 덥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 넘어져 뇌진탕에 걸렸었다. 당시 수업만 시작하면 졸렸다. 하지만 사부님의 법은 다 들었다. 사부님은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청각부분에 문제가 없어 그는 잠을 달콤히 자지만 도리어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듣는다.” 내가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4일째부터 나는 날마다 바깥에서 사부님을 기다렸고 사부님이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비로소 들어갔다. 8일 반이 끝날 때 나는 섭섭하여 떠날 수 없었다. 그 느낌과 그 며칠을 나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었다. 현재까지 이미 25년이 되었는데 오히려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다.
나는 매우 감격스럽다. 사부님과 파룬따파의 보호하에 지도하에 나는 비로소 중공의 피비린내 나는 탄압 중에 오늘까지 걸어왔고 나는 자기가 오늘 여전히 대법에서 수련하고 있음을 매우 축하한다.
1999년에서 지금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지 이미 20년이 되었다. 이 29년 간 대륙 대법제자는 강대한 혈성 압력 앞에서 의연히 나태하지 않게 “진선인”을 견지하고 있으며 그들은 생명을 바쳐 대법의 아름다움을 증명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대법제자의 몸에서 바른 믿음의 힘을 보게 해주었다.
5.13 경축하는 날에 선한 역량이 세계 각지에 널리 퍼지도록 한 동수들이 수고에 감사드리며 더욱 자비로운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와 구도에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 모친의 병을 치료해주셨다
나는 왕건민(王建民)이라 한다. 1994년 12월 어느 날 직장동료가 사부님이 대련 체육관에서 학습반을 여는데 이것이 국내에서 여는 마지막 보고회라고 했다. 가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표를 예약했고 다행히 사존께서 국내에서 하신 마지막 보고회에 참가했다.
그날 장춘에서 많은 동수들이 갔는데 체육관에 들어가자 온 체육관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 사부님께서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일어났다. 사부님은 체육관 중간 바닥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몇 시간을 강의해주셨고 마지막에 사람들 병을 고쳐주셨다. 당신이 무슨 병이 있거나 혹 친척이 병이 있으면 한 가지를 생각하라고 하셨다. 당시 어머니가 결장염에 걸렸는데 많은 병원에 가 봐도 낫지 않았고 늘 자기가 암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결장염이 나았으면 했다. 문득 사부님께서 한 손을 휘둘러 바닥으로 휙 뿌렸는데 마치 무엇을 바닥에 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발을 구르라고 하셨다.
나중에 어머니의 결장염이 정말 나았다. 20여 년이 지나갔는데 어머니는 이미 80세이며 줄곧 이 병이 재발하지 않았다.
1998년 7월 26일 사부님께서 장춘이 오셔서 보도원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내 기억에 오후부터 저녁 늦게까지 매우 긴 시간이었다. 나와 아내는 보도원은 아니었지만 매우 운 좋게 참가했다.
사부님이 강의장에 들어오실 때 나는 막 화장실에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우레같은 박수 소리가 건물 안에서 전해져 와서 나는 얼른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람들은 조용해졌고 내가 위치를 찾자 사부님은 설법을 시작하셨다.
중간 휴식 때 사람들은 사부님을 둘러싸고 질문을 했다. 사부님은 인내심 있게 사람들에게 해답해주셨다. 그날 사부님 설법을 몇 시간이나 했다. 끝난 후 사람들은 오랫동안 떠나려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나의 마음은 오랫동안 평정해질 수 없었다.
1994년 수련을 시작한 후 내 병은 자신도 모르게 나아 없어졌다. 수련 전 나는 류마티스가 심했다. 무릎에 류마티스 관절염이 너무 심해 통증을 견딜 수 없었으며 삼복 더위에도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바람이 불면 무릎이 화끈거리며 아팠기 때문이었다. 대학에 진학해 기숙사에 들어가서도 그늘에 있을 수 없었다. 몸이 너무 괴로웠고 약도 소용없었다. 하지만 연공한 후 몇 달 만에 류마티스가 전부 나아버렸다. 나는 또 심한 인후염을 앓아서 연기를 맡을 수 없었는데 집안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면 견딜 수 없었다.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면서 충혈되었고 말을 조금만 많이 하면 목이 쉬곤 했다. 양약이나 한약을 써도 다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연공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다 나아버렸다.
파룬따파는 내 신체가 건강을 얻도록 해주었을 뿐 아니라 나의 심령과 도덕도 승화시켰다. 예를 들면 당시 나는 길림성 석유화학공장에서 일했다. 전 직원이 겨우 수십 명 밖에 안 되는데 나만 결혼하지 않았다. 부서 상사는 또 회사 분방위원회(分房委員會 집을 배분하는 위원회) 멤버인데 나를 위해 집을 하나 얻어(구매가 아님)냈다. 비록 크지 않았지만 결혼하여 몸을 편히 눕힐 수 있는 곳은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었다. 당시 한 여자 동료가 나를 찾아와 자신은 이미 나이가 많은데 회사에서 아직 집을 분배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곧 퇴직할 텐데 집을 자기에게 양보해줄 수 없느냐고 했다.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대법을 배웠고 또 《전법륜》에 이런 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땅히 책에 쓰인 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일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련이 이미 20년이 되었다. 사부님의 법이 나를 구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사부님께 대해 무한한 감격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사부님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출처: 대기원(大紀元)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1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