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대법제자 소엽
【정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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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8월 22~23일 싱가포르 세계무역센터에서 법륜불법 심득교류회가 열렸다. 이 법회에는 13개 국가의 2,000명이 넘는 동수들이 참가했다.
우레같은 환영의 박수소리와 함께 사부님께서 강단에 올라오셨다. 사부님께서 자리에 앉으실 때 탁자 왼쪽에 놓인 화환이 아래에 자리한 수련생들의 시선을 가로막아 그들이 사부님을 보는데 지장을 주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 진행요원을 불러 화환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셨다.
이홍지 사부님이 싱가포르 파룬따파 심득교류회에서 설법하시다(1998년 8월 22일)
싱가포르 파룬따파 심득교류회 기간에 수련생들과 함께 계신 사부님(1998년 8월 23일)
8월 말이 가까운 싱가포르는 타오르는 태양의 열기로 화끈거렸다. 법회에 참가한 수련생들은 짧은 바지나 치마를 입거나 또는 발가락 슬리퍼를 신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셨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으로 우리가 표면적인 문명에 주의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일깨워주려는 목적이셨다.
법회에서 사부님은 무엇을 일러 법을 원용한다고 하며 무엇 때문에 우리더러 법을 원용하게 하는지 말씀하셨다. 또 우리에게 말할 때의 어투와 선심(善心)에 주의하게 하셨고 ‘대도무형(大道無形)’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게 인상이 가장 깊었던 것은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만나든 모두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다른 한 방면에서 말할 때 우리의 법은 속인 사회에서 전해지기 때문에, 그 일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부서에게 제멋대로의 공격을 받게 되거나, 혹은 우리에 대해 제멋대로 일부 정의를 내리거나, 혹은 우리에 대해 일부 너무 형편없는 수단을 취하였는데, 나는 이런 문제는 우리도 우리 자신의 한 방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들이 나타났는가. 우리 자신 혹은 우리의 보도소, 연공장 혹은 우리의 모 수련생들이 한 것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우리가 부딪힌 어떠한 일들을 모두 우리 자신의 이 방면에서 한번 가늠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사람을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것인데 원만의 이 길에서 어떠한 장애도 당신을 가로막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일에 부딪혔을 때 모두 밖으로 보고 있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마음속에 일종의 공평치 못한 느낌이 들어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데 이것이 모든 생명의 하나의 제일 큰 치명적인 장애이다. 지난날 일부 사람들이 수련해 올라가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수련해 올라갈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의 제일 큰 장애이므로 누구도 모순 속에서 자신을 보려 하지 않고 자기가 고통을 받았고 불행을 당했는데 또 자신한테서 찾고 자신이 어느 곳에 잘못되었는가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로 행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만약 누가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길 위에서 수련의 이 길 위에서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서 모두 당신을 가로막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정말 이러하다. 우리는 모두 사상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도리 앞에서 비록 우리 마음속이 어떤 때에는 명백하다 하더라도 또 넘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필경 우리는 마음속으로 어느 것이 올바른 것이고 어느 것이 잘못된 것인가를 알고 있다. 한번 잘못하고 두 번 잘못하였으나 우리는 이후에 잘할 수 있게 되는데, 당신이 어떻게 자신을 알고 어떻게 정확하게 자기를 향해 자신의 원인을 찾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싱가포르 법회 설법》)
“우리 이전에 많은 수련생들이 외부의 사람들과 일부 모순이 발생하거나, 혹은 사회의 사람들과 혹은 사회의 어느 부서에서 우리에 대해 공평치 못하면 우리는 언제나 모두 자신의 이 방면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른 방면을 강조하였다. 어떤 것은 매우 나빠서 그것은 제멋대로 파괴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생각해 보았는가. 그것이 비록 나쁘고 그것이 비록 마의 표현이지만 그것이 어찌 우연히 나타났겠는가? 그의 나쁜 일면을 이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나쁜 면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항상 말하는데 두 사람이 모순에 부딪혔을 때 당신들은 서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신 두 사람 쌍방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자신을 살펴보아야 하며 설사 방관자로서 이 문제를 보더라도 당신은 모두 다 마땅히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나는 그것이야말로 제고 속에서 나는 듯 맹진하는(突飛猛進) 것이라고 말한다.” (《싱가포르 법회 설법》)
사부님께서는 수련의 진제(眞諦)와 가장 빠른 첩경을 우리에게 모두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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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 중 점심 휴식 시간에 현지 동수들이 우리를 데리고 노점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마중나온 동수가 사부님께서도 이곳에 와서 식사를 하시고 방금 떠나셨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감동했으며 또한 어째서 사부님을 만나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했다.
한 가지 일화: 몇몇 수련생들이 식사를 마친 후 (음식) 일부가 탁자 위에 남아 있었다. 그들이 몸을 일으켜 떠나려 할 때 사부님께서 다른 탁자에서 다가오시더니 사람들에게 맛있게 배불리 먹었는지 물으셨다. 모두들 다 잘 먹었다고 대답했다. 내가 듣기에 사부님께서 세 차례나 물으셨고 사람들은 다 맛있게 먹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는 더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자리에 앉아 묵묵히 (수련생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드셨다. 이 장면을 보고 그 자리에 있던 수련생들은 전부 부끄러워 사부님께 무릎을 꿇었다.
(3)
대형법회 외에도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조를 나누어 분임 토론과 교류를 하여 각국 수련생 간에 제때 소통하고 서로 학습하게 하셨다. 사부님은 매 조를 두루 다니시며 바로 옆에서 수련생들의 반응을 청취하고 우리의 문제에 대답해주셨다.
법회가 끝날 때 어떤 수련생이 사부님께 대수인(大手印)을 쳐달라고 부탁했다. 사부님께서는 “사실 당신들 사람의 이쪽은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일 호기심을 품거나 재미로 시끌벅적한 마음이라면 나는 매우 불편할 것이다.”라고 하셨지만 그럼에도 수련생의 요청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 세트의 대수인을 쳐주셨다.
이어서 사부님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면 나는 말한 김에 또 한 문제를 말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는 지금 사진을 찍는 문제에 대해 말하겠다. 예전에 여러분들은 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어 언제나 나에게 사진을 한 장 찍으려고 하거나 선생님과 한 장 찍으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하나의 수련하는 마음이면 나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당신이 속인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면 나는 매우 괴로울 것이다! 또 한 점은 여러분들이 사진을 찍을 때 장소와 지점을 가리지 않아 좋지 못한 수많은 모습을 찍어냈는데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좋지 못하다. 당신도 나의 제자이기 때문인데 당신은 어찌 사부를 그렇게 찍을 수가 있단 말인가? 여러분들은 이 회의를 끝나고 가서 다른 지역의 수련생에게 말해도 되는데 당신들이 찍어낸 좋지 못한 그 사진들을 모조리 태워 버려라. 필름마저도 함께 태워 버려라. 만약 당신들이 정말로 사진을 찍고 싶으면 나는 당신들에게 찍을 기회를 줄 것이다.”(《싱가포르 법회 설법》)
비록 사부님께서 이미 사진 찍는 문제에 대한 관점을 표명하셨지만 법회가 끝날 때 여전히 적지 않은 수련생들이 사부님과 단체기념사진을 찍고 싶어 했고 사부님은 아주 시원하게 응낙하셨다.
이렇게 되자 정말 큰 일이 되고 말았다. 2천여 명의 수련생들 중 누군들 사부님과 사진을 찍고 싶지 않겠는가? 이 얼마나 얻기 힘든 연분이며 얼마나 큰 특별한 영광인가?
수련생들은 천지가 떠나갈 듯이 환호했고 흥분해서 사부님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개인 사진, 가족사진, 팀 사진, 지역별 사진, 나라별 사진 등 끝이 없었다.
그날 나는 사진 찍는 대열에 참가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너무 피곤하실까 차마 할 수 없었고 더욱이 내가 수련을 잘하지 못해 사부님을 괴롭게 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강단 맞은편에 서서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한 무리씩 한 팀씩 이리저리 밀려도 사부님께서는 번거로워하지 않으셨다. 특히나 사람이 많을 때면 사부님은 사진 찍는 수련생을 향해 여러분도 다 찍었는지 반복해서 물어보셨다. 심지어 어떤 때는 사부님께서 걸어 나와 직접 사람들의 자리를 배치해주셨다.
나는 멀리서 조용히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분이 바로 우리 사부님이시구나. 곳곳에서 우리에게 남을 위해 생각하는 모범을 보이시는구나! 사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는 기회는 얼마나 얻기 힘든가! 만약 잘 찍지 못한다면 얼마나 큰 유감이 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의 이런 마음을 헤아리시고 몸소 실천해 가급적 모든 이들이 만족하게 하시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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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회가 끝난 후 사부님께서 대만팀을 접견하시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나는 동수와 함께 부려궁(富麗宮) 호텔로 달려가서 사부님의 설법을 더 들으려 했다.
부려궁 호텔 회의장에서 우리는 바닥에 앉아 《/span>논어를 외우며 공손히 사부님 오시길 기다렸다. 갑자기 나는 앉은 자리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고 나도 모르게 “법선을 타니 유유하도다(乘法船悠悠)”(《정진요지》〈깨달음〉)는 말이 튀어나왔다.
수련생들의 사진 요청을 만족시키기 위해 접견시간은 두 시간 넘게 미뤄졌고 사부님께서는 저녁식사도 못하신 채 부리나케 달려오셨다.
대만 동수들은 매우 예의가 바르고 자율적이었다. 사부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한갈래 길을 터주어 사부님이 회의장에 들어오시게 했다. 양쪽에 선 수련생들은 매우 예의 바르게 박수를 치거나 허스 했다.
이틀에 걸친 법회 기간에 사부님께서는 또 시간을 내어 일본팀을 접견하셨다. 나는 또 운 좋게 이 모임에도 참가했다. 이번 접견에서 사부님께서는 한 일본 수련생을 지정해 일본 불학회(佛學會) 회장을 맡게 하셨다. 또 현지 수련생이 자기 민족의 특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이것이 일본 민중이 법을 얻는데 유리하다고 명시해주셨다.
이틀의 법회는 아주 빨리 지나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미 20여 년 전의 기억이지만 여전히 또렷하고 두 눈에 역력하며 사부님의 은혜는 잊기 어렵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1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