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진석(珍惜)
【정견망】
1. 수십 년 고생스런 수련 끝에 노비구니가 마침내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얻고 젊은 도사가 불문(佛門) 승지에서 여러 차례 점화로 보서(寶書)를 얻다
1998년 3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안휘(安徽)의 한 도반(功友 역주: 공우란 같은 공법을 수련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도반으로 번역)이 아청(阿清)에게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친구를 대신해 구화산(九華山)에 가서 노비구니를 만난 일을 들려주었다.
비구니는 수십 년간 고생스럽게 수련했는데 사람이 너무 좋아서 그녀에게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고향으로 가는 길에 함께 구화산에 가보자고 하자 아청은 흔쾌히 동의했다. 구화산은 중국 4대 불교 성지 중 하나로 줄곧 홍법하고 싶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합비(合肥 허페이)에 도착하자 현지 도반이 구화산에는 마르크스-레닌 공산사교가 키운 한 유명한 공산당 승려가 있는데 따로 총을 휴대한 개인 경호원이 있을 정도라고 말해주었다.
현지 수련생들이 몇 차례 홍법을 했지만 처한 환경이 너무 어려워서 이후로는 다시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갑자스런 상황은 아청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어떻게 할까?’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산을 올라가기로 결정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구화산에 도착한 이튿날 가랑비가 내렸다. 가느다란 봄비가 사람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가랑비를 맞으며 노비구니가 사는 곳을 거주지를 찾았다. 볼품도 없고 그리 크지 않은 단칸집이었는데 절벽을 따라 지붕을 올렸다.
집에 들어가 보니 빗물이 집 벽(절벽)을 따라 흘러 발아래 물탱크로 들어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알았다. 이 누추한 방이 바로 노비구니가 수행하는 곳이다.
일행이 한 시간 넘게 기다렸을 때 비구니가 마지막 방문자를 보내고 몸을 돌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먼저 무슨 일로 오셨는지 묻자 도반은 그간 몇 년을 못 뵈어 특별히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했다. 비구니 스님이 아주 기뻐하면서 우리 일행을 모두 거사(居士 역주: 중국에서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출가하지 않은 재가 신자를 거사라 부른다.)라고 불렀다.
아청이 설명했다.
“우리는 거사가 아니라 부처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합니다.”
비구니 스님이 아주 진지하게 아청의 간단한 소개를 들은 후 몸을 일으켜 차를 끓여 세 잔씩 주었다. 이 세 잔의 차는 아청에게 서로간의 거리가 짧아진 것을 느끼게 했다. 계속 교류를 진행하고 구화산에도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구니 스님은 학력이 높진 않았지만 젊어서 출가해 이미 40년을 넘게 수행해 왔다.
대화를 통해 어떻게 진정으로 불법을 이해해야 하며 또 어떻게 착실히 수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녀의 인식이 그리 분명하지 못한 걸 볼 수 있었다. 불교는 이미 말법시기에 도달했기 때문에 심지어 불상의 개광(開光)마저도 어찌 된 일인지 몰랐다.
그녀는 단지 출가인들이 오랫동안 따라온 각종 수행 습관에 따르는 형식을 걸을 뿐이었다. 수십 년간 극히 청빈하고 고생스런 생활 속에서 수련하면서 자신도 알 듯 말 듯한 일부 지식을 배웠을 뿐이다.
하지만 방금 내방한 사람들의 표현에서 보다시피 이 노비구니는 비록 청빈하긴 했지만 현지에서 상당한 지위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존칭해 사태(師太 큰 스승)라 불렀다.
세 잔의 맑은 차를 보고 아청은 문득 이 간단하고 초보적인 교류에서 대법의 위력이 반영되어 나옴을 느꼈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언어로 대법을 말씀해주셨는지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또 《전법륜》에서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라고 알려주셨다.
제자들의 제고를 위해 사부님께서는 수련자에게 당신의 모든 걸 주셨다. 수많은 대법 수련자들이 어떻게 자신을 수련하며 무엇을 수련해야 하는지 아주 똑똑히 알게 하셨다!
비구니 스님은 꼼짝도 하지 않고 심지어 눈동자마저 움직이지 않고 사부님의 원래 말씀을 들으며 자신이 제기한 문제의 답을 듣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청은 만약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알고 싶으면 《전법륜》을 보라고 알려주었다.
비구니 스님은 “나는 아는 글자가 많지 않은데 어떻게 하죠?”라고 묻자, 아청은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또 그녀에게 〈논어(論語)〉를 읽어 주었는데 그녀는 갑자기 읽지 말라면서 스스로 책을 보겠노라고 했다.
그녀는 책을 펼쳐 사부님의 사진을 보더니 격동한 듯 말했다.
“당신들은 그분을 사부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그분은 아주 크고 거대한 부처님입니다!”
그리고는 《전법륜》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는 선반 옆으로 가더니 무릎을 꿇고는 하늘에 대고 여러 차례 절을 했다.
바로 이 순간 가랑비가 내리던 구화산 상공에서 세 차례 큰 우레가 쳤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귀를 찢는 듯했다. 그 진동으로 선반이 흔들리면서 “왕왕” 울렸는데 현장에 있던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진동시켰다.
아청은 1996년 4월 25일 《전법륜》과 《전법륜 권2》를 얻었고 이때부터 부부가 함께 법을 얻었다. 하지만 사부님은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다.
바로 지금 이 시각의 일체는 모두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미처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눈물만 줄줄 흘러내렸다. 같이 간 도반들 역시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이것은 노비구니가 고생스럽게 수십 년을 수련하다 마침내 진정으로 불법을 만난 것을 기뻐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이 이 일을 통해 대법에 대해 보다 깊은 인식이 생겨 격동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대법의 끝없는 위력을 보았기 때문일까?
당시 사람 마음을 격동시킨 이 장면은 누구라도 다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아청은 갑자기 사부님께서 자신들의 옆에 계시는 것을 느꼈다.
이때 노비구니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구화산에는 원래 번개가 치지 않아요. 오늘 이곳에서 세 번이나 크게 울렸으니 정말 드문 일입니다!”라고 했다.
빨리 법을 듣고 배우고 싶다는 비구니 스님의 요청에 따라 동수들은 최대한 빨리 설법녹음을 보내겠다고 수락했다.
그날 오후 원래 사진을 찍지 않던 그녀가 특별히 수선이 잘된 깨끗한 가사를 차려 입고는 우리와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헤어질 때는 또 몹시 섭섭해 했다. 아청은 그녀가 대법의 힘을 얻었고 동수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북경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청은 문득 28~9세의 젊은 도사를 떠올렸다. 그는 이틀 전 구화산에 도착했다.
몇 개월 전 그는 가부좌를 하거나 꿈속에서 늘 어떤 사람이 나타나 밖에 나가 법을 찾으라고 말했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이미 도를 닦고 있는데 또 무슨 법을 찾으라는 말인가?’
3월 중순 그곳에 비가 내렸는데 끝없이 내렸다. 그는 또 끝날 듯 끝나지 않으면서 계속 열이 났다. 하지만 흐리멍덩한 중에 늘 어떤 충동이 있었다. ‘나가자, 나가야 해.’
결국 열이 내리지 않았음에도 그는 비를 맞으며 밖으로 나갔다. 7일을 걸었는데 수도인(修道人)인 자신이 무엇 때문에 불문성지인 구화산까지 왔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구화산에 도착하여 이틀을 지내다 우연히 아청 일행을 만났다.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눈 후 그는 두 손을 깨끗이 씻고 아주 공경한 태도로 《전법륜》을 받았다. 이때서야 그는 비로소 자신이 기다려왔던 것이 파룬따파임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사람들과 헤어졌고 그는 《전법륜》을 짊어지고 운유했다.
2. 노비구니는 감로처럼 법을 듣고 도사는 법을 읽고 기쁘게 의혹을 깨뜨리다
북경제자들의 관심과 지지를 가지고 20여일 후 아청 일행은 다시 구화산에 올랐다.
이번에는 안휘 지역의 일부 수련생들이 합류했다. 그들은 비구니와 거리가 가깝고 말이 잘 통하는 데다 아주 열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음력 4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이었다. 여러 동수들은 합비에서 구화산까지 장장 12시간을 걸었다. 제자들은 각자 특유의 방식으로 사부님에 대한 숭경을 표시했는데 바로 그것은 걸어가면서 법공부하는 것이었다.
구화산에 도착한 다음 날 오전, 십여 명의 수련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 기름, 쌀, 채소 등을 가지고 노비구니의 거처로 달려갔다.
노비구니는 여러 수련생을 보고 매우 기뻐했고 아청은 안휘 동수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녀는 흥분하여 이전에 자질구레한 예절은 생략하고 ‘설법 녹음’을 갖고 왔는지 물었다.
그녀는 한시도 참지 못하고 즉시 그녀가 본적도 없는 현대화된 기기를 보고 싶어 했다.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기기를 보자 제1장부터 듣기 시작했다. 이때 그녀는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 같았다. 설법을 들으면서 끊임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 맞아, 그렇지 그래. 그분이 말씀하시는 도리(불법)는 듣자마자 알 수 있어. 정말 똑똑히 말씀하시는군. 내가 갑자기 뭘 좀 알게 된 것 같아.”
구체적으로 무엇을 알았는지 그녀는 말하지 못했고 그저 마음속이 정말 환해진 느낌이라고 했다. 이때 그녀는 누구도 상관하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집에 밥솥이 있으니 스스로 밥을 지어드시게!” 그리고는 카세트를 끌어안고는 한쪽으로 사부님 법을 들으러 갔다.
당시 노비구니의 그런 심정을 아청은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저 감로수를 마신 것 같다고 느꼈다. 그날 사람들이 하산할 때 그녀는 지체 없이 일동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와 자기 친구에게 홍법하러 갔다.
이번 차에 같이 간 사람 중에 네 살짜리 어린이가 두 명 있었는데 북경에서 큰 산을 보러온 것이었다.
아청은 밖에서 그들을 보면서 책을 보고 있었다. 먼 곳에서 한 동수가 앉아서 법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때 한 젊은이가 다가와 그녀와 말을 나누었으며 잠시 후 이 동수가 아청에게 소리질렀다. “이 분과 대화 좀 해볼래요?”
대화를 해보니 그는 기문공법(奇門功法)을 수련하는 사람인데 구화산에 온 것은 4월에 천지의 기(氣)를 채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또 파룬궁(法輪功)에 대해 알고 있었다. 친구 하나가 파룬궁을 연마하는데 책 내용 중에 그의 마음에 찬동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예컨대 기문공법에 대해 그는 당신들 사부는 왜 기문공법이 어리석다고 하는가? 등등.
그가 말을 마친 후 아청은 한마디 했다.
“식사하셨어요?”
그는 “나는 벽곡 중입니다.”라고 했다.
아청은 미소를 지으며 오늘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가 미혹에 빠진 문제와 이번 행차의 목적을 말했는데 아마도 오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청은 그를 집으로 데려가 다른 동수들을 만나게 해주고 그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사람은 먼저 그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 주고 그의 법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부님께서 기문공법이 우둔하다고 말씀하신 게 아니라 천년 래 전통으로 세인들이 그를 폄하해 방문좌도(旁門左道)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이런 수련방법에도 고명한 점이 있다고 증명하셨어요. 당신이 파룬따파와 인연이 있다면 한번 깊은 대화를 나눠봅시다.
그래서 《전법륜》의 ‘기문공법, 벽곡, 기를 채집하다’ 등 세편의 글을 함께 공부했다.
이때 아청이 나가서 두 아이를 돌보았다. 왜냐하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 절벽이기 때문이었다. 2시간 정도 지나 젊은이는 나갔다.
그는 아청에게 말했다.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네요. 마음속에 걸린 것들을 해결해서 진심으로 당신들에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 구화산 여정은 회사에 휴가를 냈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합니다. 얼른 돌아가 출근해야 하고 돌아간 후 먼저 내 친구를 찾아가 《전법륜》을 보라고 하겠습니다. 이 책은 너무 볼 가치가 있다고요. 그 밖에 《정진요지》도 보고 싶습니다. 방금 한번 펼쳐보았는데 어떤 말은 나에게 대고 한 말 같아요. 너무 깊고 예리한 것 같네요.”
아청은 좀 주저했다 왜냐하면 《정진요지》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보라고 쓰신 것이니 그가 볼 수 있을까! 또 한권밖에 없었다.
이때 그가 신분증을 보여주며 자신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써주며 말했다.
“만일 안 되면 제가 빌려본 후 다시 부쳐드리겠습니다.”
이에 아청은 “반드시 소중히 하셔야 합니다. 만약 동문 제자가 안 된다면 본 후 반드시 돌려주셔야 합니다.”라고 했다.
저쪽에서 밥이 다 되었기에 아청은 그에게 식사를 하고 가라고 했다. 그는 “저는 벽곡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만 오늘 여기서 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은 오후에 얼른 돌아가서 좀 일찍이 《전법륜》을 찾아보려 합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가 신나게 산을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고 아청은 이미 의심과 불만이 사라진 광서(廣西)의 이 젊은이가 나중에 분명 동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때 올 때의 기차에서 봤던 한 장면이 눈앞에 나타났다. 한 쌍의 모자였는데 30대 젊은이가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인 합비에 가는 중이었다. 그는 여러 사람들과 가는 내내 대화를 했는데 주제가 종교나 파룬궁 및 다른 수련을 떠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릴 때 그는 아청에게 전화번호를 남겨 놓아 그 모친이 파룬궁을 수련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파룬궁은 문제가 없으며 이 공법은 절대 상승 공법임을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유쾌하게 작별했다.
그도 생각지 못하게 그 모친이 이미 여러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어떻게 연공장을 찾는지 물어보았다.
3. 젊은 화상이 부탁을 받고 대법제자를 맞이하고 구화산의 인연 있는 사람들이 단체로 대법을 배우다
1998년 7월 안휘 동수가 아청에게 말했다.
“만일 시간 내서 한번 더 구화산에 올 수 있어요?”
그녀가 비구니 스님의 근황을 말하면서 노비구니가 대법서적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 주었다고 했다.
아청은 아주 이상했고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어느 한 쌍의 부부 및 안휘 수련생들과 함께 구화산에 올랐다. 사람들이 아침에 출발하여 정오 전에 도착하려 했지만 중도에 장강에 큰 홍수가 나서 구화산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끊겼고 타고 간 장거리 버스도 멈춰 섰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아청은 무슨 곤란을 만나도 전진해야 한다고 결심하고 다른 몇 명도 주저하지 않았다.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고속도로 끝까지 밀어부쳤다. 결과적으로 저녁 6시 경 산에 올라 여관에 도착했다. 천목이 열린 한 동수가 사부님 법신께서 줄곧 일행을 따르고 계신다고 했다.
여관에 도착하여 짐도 내려놓기 전에 문밖에서 한 젊은 승려가 달려왔다. 그는 우리를 보고 급히 물었다.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하자 그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3일전 밤에 꿈에 매우 키가 큰 사부님을 보았는데 그더러 9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구화산에 올 것이니 그들을 찾아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젯밤 꿈에는 또 불보살(佛菩薩)이 나타나 몇 사람이 어느 여관에 오는지 도착 시간을 알려주면서 시간에 맞춰 그들을 맞이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말에 동수들은 멍해졌다. 말할 때 5, 6명 동수만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는 확실히 우리가 9명이 왔다고 말했다.
어느 수련생이 《전법륜》을 펼쳐 사부님 사진을 보여주자 스님은 보자마자 꿈에 본 사부가 이 분이라고 했다.
그는 27, 8세쯤 되었는데 끊임없이 최근 몇 달간 자신에게 있었던 변화를 말해주었다. 평소 염불하고 불사(佛事)를 하면 휴식하거나 일을 하는데 웬일인지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불경을 보아도 들고 멍하게 보았고 뭔가 매우 중대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았는데 꿈에 사부님을 본 후 비로소 우리가 어서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전법륜》을 얻고 기쁘게 산으로 올라갔다.
젊은 승려를 보고 아청은 사부님 법신(法身)이 여러 사람들을 호송해 홍수를 지난 광경이 생각났다. 알고 보니 원래 다 안배가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여러 동수들에게 진감이 아주 컸다. 이 젊은 승려는 구화산 제1기 파룬따파 학습반의 수련생이 되었다.
다음날 사람들이 노비구니의 처소를 찾았다. 스님은 이미 탁발하러 하산한 뒤였다. 그녀를 다시 본 것은 탁발에서 돌아온 다음이었다. 스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들려주었다. “이곳의 어떤 거사가 대법서적을 본다고 빌려갔고 또 녹음 테이프를 들어본다고 빌려갔어요.”
상해에서 온 한 거사는 원래 그녀를 방문하러 왔다가 며칠간 법(法)을 보다가 3권을 가져갔다고 했다.
비구니 스님은 자신은 글을 잘 모르기 때문에 법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나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빌려주었다. 자신은 연공음악과 사부님 설법 녹음만 보존했는데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다.
68세의 노비구니는 문화수준이 높지 않아 수십 년간 불교의 것을 닦아왔다. 지금은 완전히 자신의 오성(悟性)에 따라 대법을 배우고 인식하고 있다.
대법과 사부님은 이미 그녀의 마음을 진동시켰다. 지난 두 차례 산에서 그녀와 접촉한 후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법과 사부님이 차지하는 위치를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대법 수련의 길에서 그녀는 정말이지 한 마음으로 완전히 의지했다. 그녀의 대법에 대한 견정함과 끊임없는 홍법은 많은 수련자들을 기쁘게 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은 후 여러 동수들이 머물던 여관을 기점으로 구화산에서 홍법을 시작했다. 여관 주인의 모친은 50대였는데 온 몸이 병 투성이라 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사람들이 있는 방으로 와서 법공부와 교류하는 것을 들었다. 이렇게 사흘을 연속했는데 매번 세 시간 이상이었다. 삼일 째 저녁이 되자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간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원인을 설명했다. 심장병 때문이었다.
마르크스 레닌 공산 사교(邪敎)는 가짜 불교를 만들어냈다. 사찰에 있는 이들은 모두 불제자가 아니라 마르크스의 제자들로 겉으로는 부처를 믿고 신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신을 반대하고 공산 사교를 믿는다.
중국의 사찰은 사실상 국영기업으로 사찰 확장을 위해 그녀의 땅을 점유했다. 하지만 어디 하소연하거나 따질 곳이 없자 화병이 난 것이다.
그녀는 며칠간 방에서 법을 듣고 법공부를 한 후 몸이 많이 편해진 것을 느꼈고 말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한번 입을 열자 끊임없이 말이 나왔다.
이때 아청은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에너지장이 생각났고 법에 대한 인식이 더 깊어졌다. 나중에 그녀의 남편도 법학습 팀에 참가했다. 처음에는 2, 3명에서 나중에 20여 명으로 늘었다. 함께 간 노수련생 중에도 집에서 법공부를 조직한 사람도 있고 사원에 가서 조직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비구, 비구니 등 여러 사람들이 삼삼오오 왔는데 첫날 만난 젊은 승려도 포함되었다.
이렇게 되자 대법서적을 다 공급해줄 수 없었다. 두 부부가 많은 고생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어느 북경 수련생이 천리 밖에서 책, 녹음테이프, 비디오 플레이어 등을 기증해 구화산에 보내주었다.
안휘 수련생이 더 감동한 것은 책뿐만 아니라 수십여 대의 비디오 플레이어, 녹음테이프, 신형 컬러텔레비전 등을 보내준 것이다. 각 지역 수련생들의 사심없는 지원 하에 구화산에서 제1기 학습반이 열렸다. 낮에는 비디오를 시청했고 밤이면 공을 가르치는 9일간의 학습반이 끝나자 아청 역시 북경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때부터 구화산에는 49명의 수련생이 조직한 최초의 연공장이 생겼고 보도소도 생겼다.
구화산에는 1993년에 법을 얻은 노 수련생이 있었는데 그는 단독수련 상태를 끝내고 기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3월부터 8월 15일까지 구화산에서 49명이 법을 얻었고 1999년 봄에는 백여 명에 달했다.
많은 인연 있는 출가자들이 동수가 된 것을 보고 모두들 대법 쩐싼런(眞善忍)이 널리 전해진 것을 기뻐했다.
주: 본문은 명혜망(明慧網)에 발표된 수련자들의 심득교류 문장에 근거한 실화 소설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5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