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북 대법제자
【정견망】
아주 또렷한 꿈속 장면을 보았는데 첩첩 산 속에서 해는 저물고 한 가닥 좁고 길며 구불구불한 산길이 아주 멀리 어둡고 높은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산을 오르는 우리 일행은 좁은 산길을 따라 아주 힘겹게 잇따라 올라가고 있었는데 나 역시 대오 속에 있었다. 선두의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고 발아래 길폭은 겨우 2자(약 60cm)에 불과했다. 우측으로는 정상이 보이지 않는 험준한 절벽이 바짝 붙어 있었고 좌측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만장(萬丈) 심연(深淵)이 있었다. 모두들 아주 조심스레 발아래 길을 보면서 한걸음 한걸음씩 노력해서 앞으로 가고 있었다.
갑자기 전면이 멈춰 서자 뒤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도 모른 채 멈춰서고 말았다. 단지 앞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손으로 좌측 산 아래를 가리키면서 무언가 의론하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산 계곡 중간쯤에 거대한 놀이공원이 나타났다. 각종 현대화된 대형 놀이기구들이 오색찬란했는데 그 안에는 사람들로 넘쳐나 아주 왁자지껄했다.
이 광경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떤 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관망했고, 어떤 이는 손짓 몸짓을 섞어가면서 의론이 분분한 가운데 즐기는 것 같았으며, 어떤 이는 눈길을 거두고 빨리 앞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그러나 대오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길은 아주 좁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서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도 대오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이들이 조급해졌다.
바로 이때 나는 어떤 동수가 날아올라 공중에 뜬 것을 보았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그래! 이곳에 멈춰있을 수는 없어!’ 바로 이렇게 생각하자 나 역시 날아올랐다! 단번에 사람들을 날아서 지나갔다. 문득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산정상이 있고 그곳에 금빛으로 휘황한 궁전이 자리해 찬란히 빛나는 것이 보였다.
날아오른 동수들은 전부 큰소리로 외쳤다.
“빨리 보세요! 봤나요!? 목적지가 바로 눈앞에 있어요! 모두들 빨리 갑시다!”
똑똑히 보진 못했지만 아마 대오도 이미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다. 이때 꿈에서 깨어났고 나는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이 꿈속의 광경은 줄곧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법 학습 팀의 몇몇 동수들과 교류한 후 우리는 모두 이는 사부님의 점화임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조급하신 것이다!
최근 사부님의 신경문 《다시 방할하노라》를 읽고난 후 몇 가지 깨달음이 생겨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하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시정해주기 바란다.
첫째, 대법제자 수련의 길은 확실히 아주 좁아져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이전까지의 공이 전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최근 설법에서 “그러나 우리의 길은 도리어 아주 좁고, 주의하지 않으면 빗나가게 될 것이며, 빗나가기만 하면 문제, 심지어 큰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인데, 돌아오지 못하면 바로 영원한 유감이다.”(《다시 방할하노라》)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전에도 “우리의 길은 아주 좁아 조금만 빗나가도 문제가 생긴다.”(《각 지역 설법 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길이 아주 좁다”는 법을 말씀하셨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은 대법제자 수련의 위대한 사명・내함(內涵)・환경이 결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수련은 극히 간고하고 몹시 엄숙한 것으로 조금이라도 나태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있어선 안 된다. 진정으로 정상에 오르는 것은 오직 한 갈래 길뿐 다른 길이 없으며 다른 길은 모두 죽음의 길이다! 이는 유일하고 정확하게 하늘에 오르는 길이며 바로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이다! 이 길을 바르게 걷고 싶다면 오직 자신이 대법으로 가늠해보고 법속에서 수련하며 법속에서 깨달아야 한다.
둘째, 길을 바르게 걷지 못하는 것은 모두 사람마음이 조성한 것이다. 아주 많은 이들이 근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았고, 또 어떤 이들은 진정으로 이성적으로 대법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대법의 ‘정해신침(定海神針 역주: 서유기에 나오는 여의봉이 원래 우임금이 바다를 다질 때 쓰던 정해신침이었다.)’을 아직도 자신의 마음속에 수립하지 못했고, 또 어떤 이들은 신사신법(信師信法)이 진정으로 백분의 백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풍랑을 만나면 곧 동요하게 되고 유혹을 만나면 속아 넘어갈 수 있으며 갈림길을 만나면 곧 흐릿해진다. 사부님께서는 “사람마음은 곳곳마다 모두 장애이다.”(《다시 방할하노라》)라고 말씀하셨다.
셋째, 수련의 길은 반드시 자신이 걸어야 하며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아무리 어려워도 당신은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다만 당신이 가려고 하는지 하지 않는지 두려워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보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비록 편리하지만 정진하는 것 말고는 매 사람들이 심지어 서로 참조하기조차 아주 어렵다. 이는 대법이 당신들을 위해 개창한 것으로, 여태껏 있어본 적이 없는 것이며, 이 한 갈래 길은 바로 당신 자신이 걸어 나와야 한다.” “매 사람의 길은 또 모두 같지 않다.”(《각 지역 설법 10》〈맨해튼 설법〉)
무릇 큰 흐름을 따르고 여러 사람이 말하면 따라가는 사람은 샛길로 빠지거나 속임수에 넘어가기가 아주 쉽다. 물론 산을 오르는 길에서 멈춘 사람들에게도 모두 자신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앞 사람이 가지 않아서 나도 가지 못했다든가, 모두들 가지 않는데 어떻게 나만 혼자 갈 수 있는가, 잠시 기다렸다가 상황을 보고 다시 말하자는 등등이다.
수련의 길에서 용맹정진하며 산을 오르는 동수들은 왜 길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걸어갈 수 있고 오히려 공중에 떠서 날아갈 수 있는가? 이는 그들에게 확고부동한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곤란이나 그 어떤 마난(魔難)도 마음을 동요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 보고 계신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님께 달렸다! 대법은 불가능이 없고 사부님은 불가능이 없으시다!
넷째로 최후로 갈수록 더 정진해야 하며 정말로 나태해질 수 없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한 유감”이 될 수 있다. 사실 진수(眞修)제자는 나태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생명의 전부 의미가 바로 대법을 실증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배치한 수련의 길은 한 고리 한 고리 단단히 연결되어 있어 매 시각 모두 수련 중에 있어야 하며 시시각각 늘 자신의 길을 바르게 걸어야 한다.
많은 동수들이 큰 관과 큰 난마저 다 지나왔으니 자신의 수련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런 자만심이 생기게 되면 곧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시시각각 겸손한 마음과 안으로 반성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또 어떤 동수는 스스로 비하하는 마음이 아주 심해서 늘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했고 남보다 못하다고 여긴다. 이런 사람마음은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데 매 사람의 수련의 길은 서로 다르다. 착실하고 착실하게 세 가지 일을 잘하며 모든 사람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바로 우리 매 대법제자가 걸어야 할 길이다.
끝으로 우리 사부님의 말씀을 단단히 기억하자.
“대법제자는 줄곧 당신이 원만의 최후 한걸음에 이르기까지 걸어가서도 당신은 여전히 되는지 안 되는지를 고험 당하게 될 것이며, 줄곧 당신이 오직 고만큼 부족해 한 걸음만 닿으면 끝날 때까지도 아마 당신에 대하여 모두 아주 관건적이고 아주 관건적인 고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매 한 걸음은 모두 당신들의 수련과 당신들의 고험에 대하여, 더욱이 최후 단계에 이르러서는, 갈수록 더 관건적이기 때문이다.”(《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