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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동수의 깰 수 없는 혼인관계 역시 대법을 실증하는 것

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에서 한 제자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변하셨다.

“제자: 부부가 모두 대법제자인데 충돌, 모순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혼할 수 있습니까? (뭇 사람 웃음) 이는 수련과 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사실 내가 말하면 당신은 수련에 누락이 있다. 비록 일부 수련생들이 당신을 괜찮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속인의 그러한 것을 너무 집착한 것이 아닌가? 만약 모두 자아를 내려놓고 모두 잘 수련했으며 그렇게 강한 자아가 없다면, 부부가 모두 대법제자인데 이런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겠는가?”

이 단락 설법을 어떤 동수는 외울 수도 있지만 현실의 부부관계 앞에서 모순을 마주하면, 때로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에서도 늘 아주 큰 모순을 일으키곤 한다. 작은 것이 쌓여서 많아지면 결국에는 이혼에까지 이른다. 나 개인의 이해는 사부님께서 법에서 요구하신 안으로 찾음을 해내지 못한 것이다.

안으로 찾음은 겉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진짜 실천 중에서 기초가 없으면 해낼 수 없는 것이다. 뼛속까지 깊어진 모순 속에서 겉보기에는 자신이 아주 옳은 것 같은 상황 하에서, 자신을 찾고 자신의 사람마음을 찾아 자신의 속인 관념을 개변하기란 정말로 아주 어려우며 그 관념은 또 아주 완고하다. 특히 부부관계에서 ‘참음’을 해내기는 더욱 어렵다.

나 자신은 가정관(家庭關) 중에서 잘하지 못했고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은 안으로 찾지 않으면서 아내(동수)의 잘못만 찾았다. 대법으로 자신을 대조하지 않고 아내를 대조했으며 이렇게 하면 좋지 않고 저렇게 하면 좋지 않다고 했다. 십여 년간 내내 이런 상태였으며 심지어는 모순이 많이 누적되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 때면 또 이혼을 생각하곤 했다. 쌍방이 모두 이혼을 생각하니 대법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며 이렇게 속인처럼 적당히 세월을 지냈다.

올해 8월말 외지 동수가 우리 부부의 이런 상태를 듣고는 곧장 달려와서 우리와 어떻게 안으로 찾는가에 대해 교류했다. 그는 자신의 인식을 결합시켜 자신이 부딪힌 문제에서 어떻게 자신의 사람마음을 찾았는지 말해주었다. 또 문제가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때는 사부님께 구하면 효과가 아주 좋았다고 했다. 동시에 또 어떻게 장시간 발정념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교류했다. 우리는 함께 《정진요지》를 학습했고 ‘깨달음’의 마지막 단락까지 읽었다.

“혼세(混世)에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돈을 위해 살고 권세를 위해 죽는다. 파리 대가리만 한 작은 이익을 위해 기뻐하고 걱정하며 고달프게 다투니 일생토록 업(業)을 빚는구나. 이런 사람이 만약 이 법(法)을 들으면 필연 비웃으며 미신이란 두 글자를 뱉어내고, 마음속으로 이해하지 못해 믿기 어려워할 것이니, 이런 사람은 하사(下士)라 제도하기 어렵다. 업이 커서 이미 그 몸을 봉(封)하고, 그 지혜를 닫아버렸으니, 본성이 없구나.”

그는 우리와 교류하면서 사부님 법에서 말씀하신 ‘하사(下士)’를 어떻게 깨달았는지 물었다. 나는 당시 “이 하사란 오늘날 마땅히 진상을 알려 구해야 할 사람이 아닙니까?”라고 대답했다. 동수들이 모두 웃었고 나는 곧 내가 잘못했으며 자신을 대법 밖에 두고 늘 사부님의 설법은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여기면서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나를 말씀하신 것으로 여겼음을 알았다. 동수는 자신의 인식을 말했다. ‘하사’가 왜 우리 자신을 말씀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나요? 만약 우리가 법에 대해 의심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반대로 한다면 그럴 때 우리는 바로 하사가 아닌가요? 내가 깊이 생각해보니 도리가 있었다.

그 후 며칠간 나는 진지하게 사부님의 신경문을 읽었고 자신을 대법 속에 놓고 진지하게 자신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제고가 정말 빨랐고 또 아내와 모순이 발생해도 우선 자신을 찾고 옳고 그름 속에 빠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어떤 사람마음이 이런 모순을 이끌었는지 생각했다. 때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얻을 수 없을 때면 사부님께 점화해달라고 요청 드렸다.

그러자 십여 년간 형성되었던 그런 좋지 않은 물질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짐을 느꼈고 심신이 아주 가벼워졌으며 일종의 환골탈태하는 변화가 있었다. 때로 부부간에 모순이 발생하여 당시에는 참지 못할지라도 지난 후에는 즉각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게 되었고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곧바로 “사부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전법륜》의 한 단락 법을 읽었다.

“한 수련인으로서 금후의 인생행로는 개변될 것이며, 나의 법신이 당신에게 새롭게 안배해 줄 것이다.”

나는 곧 생각해보았다. 나와 아내의 수련의 길은 모두 잘 배치된 것으로 우리가 인연을 맺고 부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일을 잘하도록 배치된 것이다. 그중 부부간의 모순 역시 사부님께서 우리의 심성이 제고해 올라가도록 배치하신 것으로 내가 안으로 찾지 않고 아내를 ‘고치려’ 한다면 이는 사부님의 배치를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과 억지로 틀어지는 것이 아닌가? 비록 구세력이 틈을 타서 소란을 피우진 않았지만 이는 우리가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지 못해 틈을 탄 게 아닌가?

내 주변에도 부부 동수가 이혼한 경우도 있고 또 줄곧 모순 속에 처해 있는 경우도 있다. 지금 내가 이해하기에는 진정으로 안으로 찾지 않았고 겉으로만 법을 배우고 법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으며, 자신을 대법 속에 놓지 않고 대법 속의 한 입자로 간주하지 못한 것이다.

배우자가 동수라면 당연히 대법의 한 입자이며 우리는 세 가지 일을 하기 위해 가정을 꾸린 것이다. 이 역시 최대한도로 속인사회 상태에 부합해 인류사회 이 한 층에서 대법의 요구를 실천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대로 “두 사람 모두 수련생이라, 당신은 나를 고려하고 나는 당신을 고려하는데 어찌 이혼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견고하여 깰 수 없다.”(《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를 할 수 있다면, 혼인관계는 단순히 견고하여 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세인들이 흠모해마지 않게 될 것이며 이는 마찬가지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나 개인의 작은 체험은 이렇다. 우리는 정말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며 곳곳에서 모두 대법을 실증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가정이나 혼인관계 등을 포함한다. 이는 동시에 “세상 쇠락을 끊어 막는”((《홍음 2》-널리 비추다))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1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