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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법의 길을 견정하게 걷다

글/ 중국 제자 왕혜(王慧) 구술을 정리

【정견망】

내 이름은 왕혜로 올해 65세다. 어려서부터 농촌에서 살았고 집이 가난해 학교를 얼마 다니지 못해 아는 글자가 적고 배운 것도 짧다. 오늘 나는 가장 존경하는 사부님과 동수들에게 마음속에 20여 년간 숨겨왔던 말을 하고 싶다.

1. 법을 얻다

1997년 늦가을 남편이 시이모의 소개로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수련 후 매우 짧은 시간에 남편 몸에 있던 많은 병들이 다 나았다. 대법의 신기함을 보고 나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글자를 모르니 어떻게 하겠는가? 남편에게 글자를 몰라도 대법을 배울 수 있어요? 라고 묻자 남편은 “할 수 있어. 배울 생각만 있으면 가능해.”라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정말 당신을 따라서 함께 대법을 배우고 싶어요.”

“좋지! 내일 사부님 설법 테이프를 하나 구해오리다. 또 녹음기도 하나 더 사서 듣게 해줄게.”

“좋아요. 일단 당신을 따라 배울게요.”

그날 밤 나는 남편을 따라 5가지 공법을 배웠다. 내가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그날 밤 5가지 공법동작을 배울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남편을 따라 연공장에 나갔다. 대법은 너무 신기했고 사부님은 너무 자비로우셨다. 내가 법을 배우기도 전에 연공을 하자 사부님이 나를 위해 소업해 주셨다. 내게 있던 몇 가지 큰 병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나는 너무나 감사했으며 대법을 끝까지 배우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남편이 사부님의 설법 테이프와 녹음기를 사왔고 나는 진정으로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나는 날마다 법을 듣고 연공했다. 시간이 오래가지 않아 남편은 우리 집에 법공부 팀을 만들었다. 동수들은 《전법륜》을 돌아가며 각자 한 단락씩 읽었다. 하지만 나는 글자를 몰랐기 때문에 그저 손으로 책을 받들고 동수들이 읽는 것을 듣기만 했다. 그날 밤 동수들이 떠난 후 남편에게 말했다.

“만약 글자를 알아볼 수만 있으면 당신과 함께 대법을 배울 수 있을 텐데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내일부터 내가 글자를 가르쳐줄테니 대법을 배웁시다.”

“좋아요!”

다음 날 남편이 퇴근 후 곧 《전법륜》을 한 구절씩 읽어주었다. 나는 진지하게 따라서 읽었으며 모르는 글자는 곧 기록해서 책 사이에 끼워 넣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반복적으로 남편이 가르쳐 준 《전법륜》 책 속 사부님 말씀을 읽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연습하며 읽었다. 반 년이 안 되어 나는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동수들과 함께 대법을 배울 수 있었고 너무나 행복했다. 나는 진정으로 대법을 얻었고 내겐 사부님이 계신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렸고 남편 동수의 협조에도 감사를 드렸다.

2. 대법에서 이익을 본 후 대법을 널리 알리다

법을 얻은 후 아주 짧은 시간에 신체는 병 없이 가벼워졌다. 대법에서 수익을 얻은 나는 홍법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친척부터 시작했다. 나는 자전거를 이용했고 아무리 멀어도 늘 자전거를 타고 갔다. 내 기억에 한번은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80여 리 떨어진 고향에 갔다. 그곳에서 80이 다 된 모친과 큰오빠에게 대법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거의 3시간이나 달려 겨우 집에 닿았다. 집에 도착한 후 모친은 내가 왜 차를 타고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하자 모친이 매우 놀라며 말했다.

“너 이런 몸으로 혼자 자전거를 타고 왔다니 나는 때려죽여도 못 믿겠구나.”

“정말 저 혼자 자전거 타고 왔다니까요.”

그리고 나는 대법을 배운 후 생긴 변화를 모친에게 말해주었다.

모친이 듣고 나서 말했다. “이 파룬궁은 정말 이렇게 대단하구나. 나도 따라서 배우자.”

그러면서 연공을 보여 달라고 했다.

내가 즉시 동공을 한번 연마하여 모친에게 보여주었다. 모친은 내가 연마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움직였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좋구나. 이 공은 정말 좋아! 나도 따라 배울께.”

내가 말했다.

“그럼 어머니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좀 지내세요.”

“좋지, 그러고말고. 이번에 너를 따라가마.”

모친과 말을 통하고 나서 나는 큰오빠 집에 가서 큰오빠 부부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묘함을 말했다. 올케는 모친더러 먼저 알려주면 나중에 자신들도 모친을 따라 배우겠노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날 나는 모친은 버스로 보내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에 욍복 160여 리를 달렸지만 집에 도착해서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고 반대로 마음이 매우 즐거웠다.

나중에 나와 남편은 차례로 여동생과 남편 고향에 가서 홍법을 했다. 여동생과 매부는 모두 법을 얻었고 남편 집의 셋째 동생과 다섯째 동생 두 집 식구들도 대법을 얻었다. 아울러 모두 우리 집에 와서 연공을 배운 후 다시 대법서적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 공부했다. 이 기간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모친이 대법을 배운 후 매일 우리 연공장에 와서 연공을 했는데 보름도 안 되어 백발이던 머리가 아래부터 검은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연공장의 수련생들이 다 보았고 대법은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모친은 대법을 배운 후 많이 변했다. 나이가 거의 100세 가까운데도 자립할 수 있었다. 남편의 셋째 동생은 대뇌에 큰 질병이 있었는데 하루는 우리 집에 와서 연공한 후 침상에 누워있을 때 사부님이 그의 머리를 열어 수술하는 것을 보았다. 깨어난 후 셋째 동생의 머리에 있던 병이 나았다. 셋째 부부는 모두 견정하게 대법으로 들어왔다.

나와 동수들은 20여 리 떨어진 다른 마을에 가서 홍법을 했는데 세 마을에 가서 대법을 널리 알렸다. 한번은 1998년 겨울 큰 시장에 간 적이 있다. 당시 날이 몹시 추웠는데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대법 심득교류회를 열었다. 시내 보도원은 나더러 선전을 잘하라고 했다. 나는 그날 매우 기뻤다. 아침 일찍 가슴에 작은 파룬 뱃지를 달고 목에는 대회 일꾼임을 나타내는 붉은색 명패를 걸었다. 너무 행복했다.

시장에서 나는 끊임없이 오가는 세인들에게 파룬궁 선전 자료를 나눠주었다. 한 장씩 세인들 손에 자료를 나눠주었는데 그 즐거움은 얼마나 기쁜지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은 일생 중 가장 기뻤던 좋은 일이었다. 이 일은 20여 년 간 늘 생각이 나는데 생각할 때마다 기쁘고 또 눈물이 난다. 나는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악의 두목 정쩌민(江澤民)이 박해를 발동한 후 내게 더는 그런 좋은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그런 기회가 올 것이다. 나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으며 사부님이 돌아오실 날을 날마다 기다리고 있다.

3. 박해 중에 세인을 구도하다

박해가 발생한 후 남편이 연공장 보도원이었기에 사악의 핍박을 받았다. 우리 집에 있던 대법 테이프 비디오테이프 등을 다 바쳤고 우리 집에는 사부님의 설법 책만 남았다. 나와 남편은 날마다 법공부, 새벽 연공을 했으며 조금도 빠지지 않았다. 나중에 남편이 또 시내 동수와 연락을 취하여 우리는 신경문(新經文)을 받았다. 더 이후 우리는 시내 동수에게서 대법 진상 자료와 시디 등을 받았다. 나와 남편은 매일 한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주위 촌에 진상 자료를 돌렸으며 함께 법을 얻은 동수들과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나갔다.

한번은 한겨울 어느 밤이었는데 그날따라 큰 눈이 내려 먼 곳으로 갈 수 없었다. 그곳 마을에 머물면서 뿌릴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을 데려 갔는데 처음 자료 배포를 나간 동수였다. 우리 둘은 거리마다 하나씩 뿌렸다. 우리에겐 각자 일백여 장의 진상 소책자와 시디가 있었다. 우리가 거의 다 뿌렸을 때 우리는 진(鎭) 파출소 대문에 도착했다. 대문 양쪽에 경비가 있었고 그들은 불을 켜놓고 건물 안에서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이때 동수가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요.” 하고 대문 방향으로 달려갔는데 거의 입구에 닿으려 할 때 경비실 내의 전등이 갑자기 꺼졌다.

이 몇 초 사이에 동수는 진상 자료와 시디를 경비실 입구에 놓고 순간 되돌아왔다. 이때 방안의 불이 또 켜졌다. 동수가 돌아오자 내가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내가 그곳에 갔을 때 전등에게 말했어요. ‘꺼져라!’ 그러자 불이 어두워졌으니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 거에요.”

우리 둘은 두 손으로 허스하며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반복했다 그 후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4. 남편의 갑작스런 별세

2003년 5월초 긴 공휴일이었다. 남편에게 병업 현상이 나타났다. 직장 상사가 이를 알고 남편을 시내 인민 병원에 보냈다. 병원에서 검사해보니 속인들이 말하는 혈액암 말기였고 이미 위급한 시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날 밤 대학에 다니던 아들에게 연락했고 다음날 아들이 돌아왔다. 당시 병원에서 남편에게 수혈 치료를 할 때 남편은 퇴원을 요구했으나 직장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단지 병원을 바꾸는 식으로 하여 퇴원 수속을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후 사부님의 《북미순회설법》이 나왔다. 우리 4, 5명의 동수들이 집에서 함께 사부님의 신경문을 공부했다. 남편은 집에 돌아오자 뚜렷이 좋아졌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법공부가 깊지 못해 철저히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하지 못하고 틈을 타게 하였다.

집에 돌아온 지 한 달이 못된 6월 2일 정오 남편은 큰 소리를 지르며 직장에 가서 누구누구를 불러오라고 했다. 내가 남편이 원하는 사람을 불러왔으나 남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 갑작스런 변고에 나는 멍해졌다. 그러나 대법제자로서 반드시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고 남편의 후사를 처리했다.

남편의 후사를 처리한 후 아들을 보내고 나서 나는 텅 빈 방에서 울었다. 상심해서 울고 난 후 나는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이며 사부님이 계신데 무엇이 두려운가?’ 당시 시부모님이 나와 함께 있자고 했지만 나는 사람에겐 각자 집이 있으니 다른 사람이 장기간 이곳에 있을 수 없고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동수들도 격려하여 나는 《전법륜》을 받들었다. 오직 대법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동수들이 매일 밤 나와 함께 법 공부와 연공을 했다. 한 단락 시간 후 나는 천천히 심연에서 빠져 나왔다.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리며 또 도와준 동수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2년간 나는 아들을 결혼시켰고 나중에 또 아들이 진료소를 열었다. 아들은 경험이 없어 성공하지 못하고 만 위안 이상의 손실을 보았다. 당시 우리의 경제상황에선 매우 큰 손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아들을 지지했다. 다시 기회를 찾아 일어나자. 또 1년이 지난 후 아들이 조금씩 경험을 쌓아 다시 큰 약방을 열었다. 과거 경험이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성공적이었다. 1년 사이에 또 체인점을 열어 장사가 잘되었다.

나는 이것은 아들이 대법을 믿어 복을 받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아들은 대법을 배운 적이 있다) 현재 나는 대도시에서 손자를 돌봐주고 있다. 또 그곳 동수들과 연락해 작은 법공부 모임에 참가해 사람을 구하고 있다. 아들이 대법을 지지하므로 장사도 갈수록 잘되어 현재 이미 자기 자동차와 집이 있고 3층 건물의 3개 체인점까지 경제 수입이 매우 좋다. 이것은 모두 대법이 아들에게 가져준 복보(福報)다.

오늘까지 걸어오면서 나는 만약 사부님께서 제자를 포기하지 않고 시시각각 제자를 점오해주며 자비롭게 대신 감당해주시고 거대한 난을 풀어주지 않으셨다면 제자는 절대 오늘까지 오지 못했을 것임을 깊이 알고 있다. 사부님께 대한 감사한 은혜는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저 고개 숙여 감사드릴 뿐이다. 나는 아직 수련의 길에서 사람 마음을 많이 버리지 못했고 또 사람 구하는 일을 많이 하지 못했다.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해 사부님께 걱정을 많이 끼쳐드렸다. 사부님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맺는 말

수련이란 이 길 위에서 아직 아무리 멀리 가야한다 해도 나는 계속해서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대할 것이다. 정념을 많이 갖고 유감은 적게 하며 전력을 다해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할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더욱 잘 듣고 세 가지 일을 더욱 잘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더욱 잘하여 원만해서 사부님을 따라갈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글을 쓸 줄 몰라 내가 구두로 한 말을 동수가 정리했다. 이곳에서 나를 도와 문장을 정리해준 동수에게 감사드린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9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