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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다

글/ 청풍

【정견망】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사람을 배우고 법을 따라 배우지 않는 것이 잘못임을 알지만 왜 옳지 않은지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본 사람은 아마 아주 드물 것이다. 여기서는 이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깨달음을 말해보겠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음 두 가지다.

1. 남들이 따라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늘 일부 뛰어난 점이 있다. 가령 사악의 박해 앞에서 늠름히 맞서고 아주 견정하거나 또는 기술이 아주 좋은데 사람이 겸손하고 온화하거나 또는 대법 사이트에 많은 문장을 발표하거나 또는 조직능력이 아주 강한 등등이다.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경외감과 호감을 갖게 만든다. 반면 이를 따라 배우는 사람은 종종 이런 방면에서 부족함이 있거나 잘하지 못한다.

속인 중에서는 늘 모범을 세우고 그를 따라 학습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이 만약 속인 중의 일이라면 물론 아무 문제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수련하고 있고 속인에서 뛰쳐나오려는 것으로 마땅히 따라 배우려는 사람 역시 수련과정 중의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그가 어떤 방면에서 잘했거나 잘 표현했다면 이는 모두 수련의 결과 내지는 법의 위력이 체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진정으로 작용하는 것은 법 그 자체다.

마치 과일나무에 달린 과일이 제아무리 산뜻하고 아름다울지라도 역시 나무가 존재하기 때문이지 나무 자체가 없다면 그 어떤 과일도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말(本末)을 전도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수련과정 중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 역시 잘하지 못하는 방면이 있는데 사람을 배우고 법을 따라 배우지 않는 아주 크고 치명적인 급소는 바로 그가 잘하지 못하는 방면 역시 쉽게 따라 배운다는 점이다. 가령 이 사람이 아주 견정하지만 안전방면에서 주의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를 따라 배우는 사람 역시 안전에 소홀하기 쉬운 등등이다. 따라 배우려는 사람이 일단 각종 원인으로 수련을 느슨히 하거나 심지어 포기하거나 또는 반면으로 나간다면 그를 따라 배우는 사람 역시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다.

2. 우리는 우주의 최고특성에 따라 수련한다. 우리 자신 역시 부동한 우주 체계에서 온 것으로 각자 생명의 특징이 다르고 최후에는 각자(各自)의 천체 속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비록 같은 법을 배우는 동수이고 모두 사부님께서 공을 연화해주시만 다른 공간에서 매 사람의 공이 연화되는 과정은 모두 같지 않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고 무엇을 했든 모두 사부님께서 그의 구체적인 상황에 근거해 배치하신 것으로 매 사람마다 자신의 길이 있다.

그런데 만약 억지로 남의 방법을 따라 배운다면 이는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서 가지 않는 것으로 공의 연화과정도 잘못될 것이다. 당신 자신이 구한 것이기 때문에 사부님 역시 어떻게 할 수 없다.

물론 세 가지 일은 우리가 모두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이는 공동의 기초다. 마치 한 덩이 토지에 비유할 수 있겠다. 우리는 모두 이 토지 위에서 자라는 서로 다른 묘목이다. 매 묘목마다 자신의 특징이 있고 최종적으로 어떤 열매를 맺는지 성장과정은 어떤지 물과 비료를 주는 횟수나 시간마저 다 달라서 서로 뒤섞을 수 없다.

물론 동수 사이에 서로 의론하고 교류하며 다른 사람이 잘한 것을 보면서 자신의 부족을 찾는 것은 문제가 없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6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