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제자 중생(重生)
【정견망】
오늘은 최근 법공부 중에서 가장 수확이 깊었던 몇 가지를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 ‘벽곡(辟榖)’이 무엇인지 명백해졌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벽곡이 무엇인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벽곡(辟穀) 문제를 말한다. 벽곡, 이런 현상은 존재하는 것이며, 수련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온 인류사회에서 적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정황이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몇 년이나 십몇 년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지만 오히려 생활하는 것이 아주 좋다.”
“벽곡은 실제상 바로 우리가 특정한 환경에서 채용하는 특수한 수련 방법이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은 산굴 속에서 머무르며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데, 그것을 진짜 벽곡이라고 한다.”
매번 사부님의 이런 설법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몇 년 또는 십몇 년을 먹거나 마시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사람이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면 아무리 길어도 7일밖에 버티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이런 특수한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가?
이번에 사부님의 법을 공부하다가 나는 문득 활연히 깨우쳤다.
“이렇게 많은 생명, 당신이 호흡할 때, 공기를 구성한 분자가 당신에 의해 얼마나 많이 빨려 들어가겠는가? 그 분자 위 역시 별인데, 그 위에는 얼마나 많은 세계가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생명이 있겠는가? 당신에 의해 빨려 들어갔고, 당신의 신체 속에서 당신 신체가 필요로 하는 영양분으로 전화된다. (사부님 웃으심)”【2】
사람 육신의 영양은 사람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에만 의지해 생명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공기 또는 물질이 있는데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 보면 공기를 구성하는 이 분자가 얼마가 되는가? 무량무계(無量無計)하다. 분자는 또한 공기를 구성하는 물질 중에서 원자의 별(星球)이 되는데 그럼 분자 위에 또 얼마나 많은 별이 있겠는가! 무량무계하다. 그 위에 무량무계한 세계가 있고 무량무계한 생명이 있으니 그들이 사람 신체 속에서 우리 몸에 필요한 양분으로 전화(轉化)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죽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2. 사람에게 왜 ‘업력’이 있는지 명백해졌다
사부님께서는 많은 설법에서 늘 사람은 업력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아울러 우리더러 사람이 오직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업을 지을 수 있다고 하셨다. 이런 설법에 대해 나는 줄곧 알 듯 모를 듯했고 때로는 흐릿했다. 그러다가 사부님의 설법에서 “당신이 거기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아도 업을 짓고 있으며, (사부님 웃으심) 당신이 살아 있기에 많은 세계가 당신 때문에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2】를 읽고 나서 나는 철저히 명백해졌다.
사람이 왜 업을 지을 수 있는가 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수많은 생명이 상호 변화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자연히 무수한 생명이 업을 짓는 발원지가 될 수 있다. 또는 다른 공간에서 성구대전(星球大戰)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무수한 생명의 상호왕래 중에서 업력이 생겨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업력은 모두 우리 신체 내에 있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설사 우리가 현실 중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업을 짓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생존 자체가 무수한 업력을 지을 수 있다. 이 법리에 명백해지자 이후 자신의 수련이 보다 명확해졌고 수련인이 고생을 좀 겪고 고통을 좀 겪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업을 없애려면 고통을 겪어야 하며 편안할 수 없는 것으로 곧 견디기 힘든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모두 좋은 일이다.
3. 안으로 찾음은 조건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명백해졌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아무리 좋지 않은 일에 부딪혔더라도 모두 정면으로 가서 보아야 한다. ‘아, 이 일은 나의 제고에 좋은 점이 있다.’ 모순에 부딪히게 되면, 누구의 탓이든, 우선 자신에서 찾는다. 한 수련자로서, 당신이 이런 하나의 습관을 양성할 수 없다면, 당신이 사람과 반대로 문제를 볼 수 없다면, 당신은 영원히 사람 속에 있을 것이며, 최소한 잘하지 못한 그 일보는 당신이 사람 중에 있는 것이다.”【2】
이전에 나 역시 안으로 자신을 찾음에 아주 주의하긴 했지만 요점을 찾지 못했고 수련의 실제문제가 어느 곳에 있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사부님의 설법에 대조해 다시 자신의 과거 수련 중에서 안으로 찾은 것을 보니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과거에 안으로 찾음에는 조건이 있었다. 가령 자신이 잘못을 했을 때는 그래도 자신의 집착심을 찾을 수 있었지만 자신에게 잘못이 없을 때는 종종 흐지부지 넘겼고 일이 발생한 과정 중에서 자신에게 여전히 어떤 사람마음이 존재하는지, 자신의 사람마음을 닦는데 어떤 잘못을 범했는지 근본적으로 찾지 못했다. 다시 말해 여러 차례 심성을 제고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사부님 설법에 대한 공부를 통해 나는 수련인이 안으로 찾고 자신을 닦음은 그 어떤 조건도 없는 것으로 오직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음을 해낼 수 있어야지만 비로소 아주 깊숙이 은폐된 사람마음을 닦아버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련이란 오직 안으로 찾는 일종의 기제(機制)가 형성되어야, 다시 말해 안으로 찾는 하나의 습관을 양성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면 그 어떤 모순 속에서도 자신을 탓하든 탓하지 않든 모두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을 수 있고 그럼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하고 자신을 잘 닦을 수 있다.
4. 수련인은 절대 병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알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의 이 길은 잘 배치해 놓은 것으로, 당신의 신체에 병이 있음을 허용하지 않는데, 정말로 당신의 신체에 병이 있음을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병은 이미 더는 당신을 침해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 바이러스는 당신의 바른 에너지에 의해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업을 지을 수 있으며, 그 업을 지었는데, 그것이 당신의 신체상에 반영되면 그 병과 완전히 똑같다.”【2】
과거에 사부님 설법 중에서 늘 연공인은 병이 없다는 법을 보긴 했지만 종종 법리에서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때문에 병업(病業)이 올 때면 마음이 편치 않았고 자신이 병에 걸린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곤 했다. 사실 우리가 수련의 길에 입문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 신체를 정화해주시는데 연공인은 아무런 병이 없다는 이것은 절대적으로 정확한 것이다. 그런데 왜 업력이 올 때면 편안하지 않은가? 여전히 법리에서 분명하지 못했다.
수련인이 수련의 길 위에서 그 어떤 마난을 만났든 모두 백분의 백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한다. 수련인은 병이 없으며 이는 관(關)을 넘거나 소업하거나 심성을 제고하거나 공이 자라는 것임을 확고히 믿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반드시 그 어떤 관이든 다 넘길 수 있다.
이상은 개인 층차에서 몇 가지 인식이니 바르지 못한 곳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시정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2019년 뉴욕법회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9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