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법자(法子)
【정견망】
얼마 전에 명혜망에 어린 동수의 예언이 일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나는 그 문장을 보고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이튿날 어떤 동수가 나를 찾아왔다. 내가 그에게 예언의 대체적인 내용을 들려주자 뜻밖에도 그 동수는 매우 실망한 듯이 장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아직도 7년이나 있어야 한다니, 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린단 말인가!”
그의 이 말을 듣고 나 역시 깜짝 놀랐다.
“당신이 어떻게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싫어할 수 있습니까? 만약 지금 수련이 결속된다면, 먼 것은 말하지 않더라도 나 자신과 주위 동수 누구도 정법 표준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고 수많은 세인들 역시 구도 받지 못할 텐데요. 대심판 때 우리가 어떻게 위대한 사부님을 마주하겠습니까? 마치 올해 션윈 공연에서 늘 놀기만 하던 개구쟁이 학생처럼 시험 보러 가기만 하면 멍해져서 빵점을 맞을 텐데요.”
사실 나는 평소 많은 심성관(心性關)을 다 넘기지 못했는데 예를 들면 안일, 시기, 나태, 말만 하면 폭발하는 것과 색욕, 수구하지 못하고 고생을 두려워하는 등등 아주 많다.
나중에 법공부 팀에서 공부를 끝내고 교류할 때 어느 동수가 또 예언에서 결속 시간이 너무 길어서 곤혹스럽다고 했다. 사실 나는 결속 시간에 대해 원래 매우 집착했고, 2008년 올림픽이 되어서야 이 집착을 제거할 수 있었다. 동수들은 줄곧 국내의 중앙 지도자와 정법이 끝나는 시간에 대해 부동한 정도의 집착이 있었고 결국에는 외국까지 집착했다.
트럼프에게 집착하고 미국 대법관에게 집착했으며, 온라인상의 각종 예언에 집착했고 동수가 꾸린 개인 미디어의 평론에 집착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 많은 동수들이 진실로 믿었는데 우리 법공부팀에서도 예언을 믿고 촛불이나 손전등을 사거나 식량 등의 물질을 축적하며 사람을 구하는 큰일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우리는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올해 션윈의 한 프로그램에서 손오공이 비록 천병천장(天兵天將)을 물리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여래불(如來佛)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누가 진짜 천기를 볼 수 있겠는가? 정법 중의 일체는 모두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장악하고 계신 것으로 우리는 다만 대법이란 바다 속에서 행복하게 여행하기만 하면 된다. 사부님께서는 거대한 몸으로 위에서 우리를 위해 비바람을 막아주셨고 우리에게 전진하는 수련의 길을 지도해주셨다.
우리는 행복의 피안에 이를 때까지 대법이란 바다 속에서 각종 영양을 섭취하고 세인 즉 ‘사부님의 친인(親人)’을 건져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금생에 창세주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얼마나 큰 영광인가! 사부님의 은혜는 보답하기 어려우니 오직 법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바로 잡고 정진 또 정진해서 시험에서 절대 빵점을 받지 말아야 한다.
새벽 연공에 참여하지 않고, 발정념 할 때 손바닥이 기울어지며, 진상을 알리지 않고, 심성관을 넘지 못하고, 단체 법학습에 늦게 가서 일찍 나가며, 앉은 자세가 바르지 않고 조는 등등은 모두 점수를 깎아먹는 것들이다. 호법신은 단지 우리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수련에 점수를 매기는 일도 책임지고 있다.
1. 직장에서 법을 실증
나는 법을 비교적 늦게 얻었다. 연공 동작도 아직 잘 배우지 못했을 때 ‘7.20’ 탄압이 시작되었다. 나는 천안문에 가서 대법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상방하기로 결정했는데 파출소에서 남편더러 나를 감시하라고 했다. 남편은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 나를 가로막지 않았고 내게 말했다.
“당신은 이미 천안문에 세 차례나 갔고 심지어 아이도 데리고 갔는데 나 역시 막지 않겠소. 다만 가기 전에 내게 미리 알려주시오.”
그날 밤 그는 내가 “파룬따파하오” 플래카드를 만드는 게 서툰 것을 보고는 다가와서 도와주었다. 완성한 후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나 이것은 당신들 파룬궁의 골간(骨幹)이 된 게 아니오?”
나는 남편에게 다음날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묵묵히 아무 말도 없었고 나를 가로막지 않았다. 사흘째 나는 동수들과 천안문에서 “파룬따파하오” 플래카드를 펼쳤고 대법의 휘황한 시각을 견증했다.
나는 북경에 가서 상방했기 때문에 공안에 의해 불법적으로 1년간 노교소에 있었다. 또 노교소에서 노동에 참가하길 거절했기 때문에 3개월이 추가되었다. 노교소에서 나온 후에는 성 ‘6.10’에서 나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직접 세뇌반에 보냈으며 또 5개월을 불법으로 감금했다. 세뇌반에서 뛰쳐나온 후 나는 직장에 출근했다.
출근 후 동료들은 모두 사무실로 몰려와 나를 욕했다.
“당신은 집의 형편이 그렇게 좋은데 무엇 때문에 정부와 맞서는가?”
나는 그들에게 대법 진상과 나에 대한 경찰의 혹형과 시달림을 말해주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면서 “당신에게 이 직장이 없고 월급도 깎이면 남편 직장도 문을 닫았는데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앞으로 아이가 대학에 가는 데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더러 당해도 싸다면서 누가 당신더러 정부와 맞서라고 했느냐고 말했다.
당시 직장에서는 내게 월급으로 400위안만 주었다. 보험 등을 빼고 나면 겨우 200위안만 남았다. 아이가 마침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완전히 내 월급에 의지해 살아야 했다. 하지만 상사가 내게 일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매일 사무실 책상에서 스피커로 사부님 설법만 들으면서 매시간 발정념을 견지했고 오는 사람이 있으면 곧 진상을 알렸다.
동료들은 뒤에서 파룬궁이 좋은지 나쁜지는 임대옥(《홍루몽》의 여자 주인공. 나는 연공 전에 건강이 좋지 않아서 동료들은 나를 임대옥이라 불렀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내가 연공한 후 몸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성격도 좋아졌고 노교소에서 수갑에 채이고 매달려 두 어깨관절이 빠져서 꺼멓게 되었어도 나온 후에는 여전히 젊고 예쁘고 명랑하다고 수군거렸다.
이렇게 출근하면서 법공부를 한지 두 달 후 나는 원장(院長) 사무실을 찾아가서 진상을 알렸다. 원장에게 파룬궁을 박해하면 악보(惡報)를 받고 장차 승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파룬궁 박해는 오직 장쩌민이 독단적으로 리(李) 대사(大師)를 질투한 것으로 다른 중앙 지도자들은 찬성하지 않는다. 당신이 줄을 잘 서야 하며 잘못하면 나중에 청산당할 수 있다고 하면서 원장에게 진상책자 하나를 주었다.
그러자 다음 달에 원장은 내 월급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주었다. 원장은 그후 즉시 북경 본사로 승진해서 떠났는데 떠나기 전에 특별히 나를 찾아와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의 상급자에게 거듭 부탁하기를 그녀는 고생을 많이 겪었으니 좋은 일거리를 주고 월급을 좀 올려주라고 했다.
직장 내에서 나는 매일 내가 맡은 일을 잘하고 남들과 다투지 않았으며 휴식 시간이면 나가서 대법자료를 나누어주었다. 그러자 동료들은 배후에서 또 의논하며 말했다.
“그래도 모모(某某)는 파룬궁을 연마하더니 몸이 좋아졌고 지금 월급도 많이 받아. 아들 키가 184센티미터나 되고 일류 대학에 들어갔대. 또 명문대학원에 들어갔고 월급을 많이 주는 좋은 일자리를 구했데.”
그런데 우리는 날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아침이면 치약까지 바로 놓아주고도 겨우 이차나 삼차 대학에 들어갔다고들 했다. 동료들은 모두 나더러 어떤 배경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내가 의지하는 것은 파룬따파입니다” 라고 했다.
어느 날 노조 위원장이 내게 말했다.
“당신은 좀 조신하게 굴고, 파룬궁을 선전하지 마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내보내겠소.”
나는 즉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다시 나를 핍박한다면 나는 법원에 가서 당신을 고소하고 우리 아들이 당신 아들에게 알려줄 겁니다.”
나중에 그녀의 이름이 악인방에 올라가자 그녀의 아들이 보고는 엄마를 원망했다. 또 얼마 안가서 그녀는 두 눈이 실명했다.
내가 그녀에게 파룬따파하오를 염하라고 알려준 후 눈이 되돌아왔다. 성 6.10은 몇 번이나 사람을 보내 직장에서 나를 자르라고 했는데 원장은 공문이 있는지 물었다. 그 사람이 공문은 없고 구두로 통지하는 거라고 하자 원장에게 거부당했다.
“우리는 모모를 면직시키지 않을 것이며 만약 면직시키려면 우리에게 알려야 합니다.”
한번은 직장 게시판에 공고가 났는데 내용은 모 부문에서 사람을 뽑을 때 파룬궁은 뽑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즉시 노조위원장에게 말했다.
“당신들 이것은 파룬궁을 차별하는 겁니다. 우리 이곳에서 대법제자는 나 혼자인데 이렇게 하는 것은 인격을 차별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즉시 사람을 불러 광고를 제거했다. 한번은 그녀가 원장을 찾아가 모모가 자기더러 탈당하라고 권했다고 고자질했으나 원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날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새벽연공을 견지했으며, 아침에 9평을 나눠주었고, 휴식시간에는 동수와 교류하거나 병업에 걸린 동수를 위한 발정념을 했다. 매번 정시마다 늘 발정념으로 박해를 해체했는데 위력이 아주 큰 느낌이었다. 한번은 직장에서 월급을 올려주는데 매 사람마다 2등급을 올렸다. 하지만 나는 1등급만 올려주었다. 이유는 내가 노교소에 있을 때 시험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래 나는 몇 등급이 오르던 상관이 없었지만 이것이 마침 진상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느껴 북경 본사 사장에게 진상 편지를 썼다. 7명의 사장들에게 매 사람마다 한 장씩 썼다. 그러자 이것이 재앙이 되어 사장은 한달 안에 원장을 면직시켰고 북경에서 새 원장이 낙하산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원장은 놀라고 화가 나서 나더러 편지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고 원망했다. 나는 당신들이 왜 파룬궁을 왜 무시하는가, 내가 좋은 사람인줄 다 알면서 나를 무시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직장에 새로 들어온 한 대학원생이 늘 내 얼굴을 쳐다보곤 했다. 나도 아주 이상했다. 나중에 그녀는 선생님은 어찌 그리 예쁘냐고 말했다. 한 동료가 옆에서 “그녀는 파룬궁을 연마해서 그래. 원래는 병으로 골골대던 임대옥이었어.”라고 했다.
아들 반 담임 교사도 “네 어머니는 어쩜 그렇게 젊어 보이니!” 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대법의 법광 속에 푹 빠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매일 생활에 충실했다. 내가 퇴직할 때에는 주임이 거듭 만류하며 복귀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이 긴요하기 때문에 나는 거절했다.
퇴직할 때 나는 월급과 공적인 적금 외에도 16만 위안의 연금을 받았다. 이전에 퇴직한 사람들은 이런 돈을 받은 적이 없다.
2. 현모양처가 되다
남편은 직장이 파산한 후 줄곧 외지에서 일을 했다. 때문에 나 혼자 가정의 중임을 맡아야 했다. 위로는 90세의 모친을 돌보며 아래로는 아이의 학습, 시험, 학부모회 등 또 출근해야 하고, 집을 이사하는 일, 집을 사고, 수리하는 등 모두 나 혼자 책임졌다. 모친은 나중에 집과 재산을 전부 내게 줄 것이며 올케는 돈만 바라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올케네 집이 아이가 많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것을 고려해 방 3개짜리 집을 그녀에게 주었다. 또 모친이 세상을 떠난 후 남은 돈도 남편이 남겨두라고 했지만 나는 내 통장에서 꺼내 올케에게 주었다. 오빠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조카들은 고모가 할머니를 돌보느라 너무 고생하셨고 우리가 집을 받았는데 돈까지 받을 순 없다고 했다.
모친은 휴직간부였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떠난 후 모친에게 나온 장례비 및 직장에서 주는 10개월 치 월급을 모두 올케에게 주었고 또 일가족을 다 삼퇴시켰다.
큰 조카는 매일 “파룬따파하오”를 외운다.
2006년 올케가 위암에 걸려 병원에서 위, 담낭, 비장을 다 잘라냈다. 의사는 석달 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 나는 올케에게 9자 진언을 외우게 했으며 또 파룬궁 연공을 가르쳐 주었다. 현재 그녀의 신체는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올케는 4대가 함께 사는데 온 가족이 아주 활력이 넘친다.
나는 대법을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재물을 담담히 보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올케는 줄곧 모친이 나를 편애한다고 말했으며 나에 대해 늘 다른 의견이 있었다. 또 설이나 명절날이 되어서야 겨우 모친을 보러왔다. 만일 대법수련이 나의 처녀 때 같았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본래 학문을 하던 사람이라 성격이 아주 내향적이다. 대학원 졸업 후 줄곧 외국인과 무역하는 일을 해왔다. 용모가 평범해서 다른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길 나는 한 송이 싱싱한 꽃인데 소똥에 꽂힌 거와 같다고들 한다(역주: 미녀와 야수처럼 남편의 외모가 아내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의미). 하지만 나는 그가 아주 착실하고 믿을 수 있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뜻밖에도 남편 역시 공산당의 세뇌와 나쁜 풍습에 오염되어 퇴직 후 일이 없으니 온라인에서 사당(邪黨)의 뉴스를 보거나 또는 낯선 여인들과 채팅을 하거나 만나곤 했다. 한번은 내가 그의 휴대폰에 어떤 여자가 문자를 남긴 것을 보고 화를 내며 올케에게 전화로 고자질했다. 나중에 법공부를 통해 나는 이것이 질투심이며 반드시 버려야 할 것임을 알았다. 이에 발정념으로 질투심과 남편 공간장의 색마를 제거했다.
어느 날 밤 큰비가 쏟아졌다. 보통 비가 오면 남편은 밖에 나가 산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은 남편이 외출하여 매우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자동차 열쇠가 없는 것을 보고 그가 또 여자를 만나러 간 것을 알고 화가 치솟았다. 속으로 어떻게 할까, 아들과 여동생에 이를까 생각했다.
하지만 냉정해진 후 다시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하니 나는 수련인이니 법의 표준에 따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질투심과 쟁투심이 아닌가? 나는 오늘 반드시 나의 수련을 방해하는 이 질투심을 닦아 버려야 하며 이 기회를 붙잡고 승화해야 한다. 그래서 발정념으로 질투심을 해체했다. 그것은 진짜 내가 아니며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발정념을 마친 후 가부좌하자 다리도 아프지 않고 매우 편안했고 마음도 평정을 회복했다.
남편은 또 아주 알뜰하다. 자기 월급은 한 번도 쓰지 않았고 집안의 저축도 그가 관리했다. 집에서 쓰는 모든 지출은 나의 월급으로 해결했다. 차고 구매비, 관리비, 전기비, 수도비, 가스 비, 부식비, 생활필수품, 과일 등. 나는 대법을 수련하고 나서 돈이란 태어날 때 가져갈 수 없고 죽을 때 가져갈 수 없음을 알기에 돈을 담담히 보고 월급을 마음대로 사용하게 했다. 여태 일정하게 저금을 남겨둔 적은 없지만 대법자료를 만들 돈은 반드시 보장해야 했다. 오로지 대법이 필요로 하기만 하면 나는 반드시 보탰다.
남편은 나더러 “당신 돈은 모두 글자가 적혀 있고 수납원도 몇 번이나 말했다.”고 원망했다. 하지만 나는 집에 진상화폐 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여전히 매일 진상화폐를 사용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 돈을 꺼내서 써야 하기 때문이다.
3. 다섯 대불(大佛)과 호법신
우리 집은 법공부 장소다. 한번은 발정념을 할 때 눈을 뜨자 맞은편 소파에 다섯 분의 대불(大佛)이 단정히 앉아 계셨는데 장엄하고 또 수승했다. 나는 닫혀서 수련하며 평소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이번에 갑자기 다섯 분 부처를 보게 되어 매우 장관이란 느낌이 들었다. 법공부가 끝난 후 이 문제에 대해 동수들과 교류했다.
동수는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시는 거라고 했다. 이후 단체 학습에서 더는 이런 장면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네 동수는 늘 대면 진상을 했고 비바람을 가리지 않았다. 가장 젊은 사람이 60대였고 가장 많은 사람은 80이 가까웠는데 그중 A동수가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녀는 시력이 좋지 않아 길을 걷기도 불편하고 집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매일 5층 건물을 오르내린다. 이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B 동수의 남편은 사당에 잡혀가 3년간 억울한 형을 받았고 직장에서 해고되어 연금도 깎였다. 그래도 그가 사람을 구하는 발걸음을 막진 못했다. 이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내가 생각해보니 내가 본 장면은 바로 다른 공간에서 동수의 신체(神體 신의 몸)이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는데 검은 얼굴의 사나이가 나를 안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놀라서 당신 누구세요? 라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줄곧 나를 안고 창문으로 갔다. 나는 그가 나를 공중에서 나르려는 것 같았다. 과연 그가 나를 안고 창문에서 나가서 매우 멀리 날아갔는데 그 후 나를 거리의 어느 식당 옆에 내려놓았다. 그는 아침을 사러 간다고 했다. 내가 입구로 달려가 보니 생소한 곳이었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또 돌아와 그곳에 서 있었다. 이때 어느 15살쯤 되는 영준한 소년이 다가오더니 빙그레 웃으며 당신 파룬궁이죠 하고 물었다. 나는 몹시 기뻐하며 즉시 그렇다고 했다. 속으로 여기서도 누군가 내가 파룬궁을 하는지 아는구나. 너는 어떻게 알았니? 했더니 그는 자신에게 천이통(天耳通)이 있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천이와 천목은 한 계통이라고 하신 것을 상기하고 갑자기 깨어났다.
이것은 호법신이 위험할 때 나를 구한 것이로구나. 매 대법제자 신변에는 모두 호법신이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고 또 사부님 법신이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니 우리는 반드시 잘 수련해야 한다.
4. 법을 외워 마난에서 벗어나다
작년 무한 폐렴으로 우리 지역이 봉쇄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나가서 마당에서 산보하며 개를 데리고 나가는 사람이나 청소하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렸는데 효과가 좋았다. 오전에는 법공부를 하고 오후가 되면 전화로 진상을 알렸다.
동료, 고향사람 친구, 동창, 생소한 사람에게도 일부 진상을 말했다. 봉쇄가 해제된 후 어느 날 외출하여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졌다. 돌아온 후 몸이 갑자기 아파왔다. 두 다리와 발이 많이 부어올랐다. 나는 법공부와 발정념을 강화하는 동시에 안으로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질투심, 원한심(怨恨心), 다른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마음, 말만 하면 폭발하는 마음, 쟁투심, 안일한 마음, 가족 정, 두려움, 색욕심,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 등이 있었다.
나중에 통증이 갈수록 심해져서 잠을 잘 수 없었고 오직 앉아 있기만 했다. 그때 우리 구역은 아직 봉쇄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동수를 만날 수도 없었다. 연달아 삼일 동안 세 개의 꿈을 꾸었는데 아주 뚜렷했다.
첫 번째 꿈에서 나는 광활하게 쭉 뻗은 큰 다리 위에서 우연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사부님께서 다리 아래에 서 계셨다. 나는 매우 기뻐하며 단번에 내려가서 사부님 곁에 섰다. 그 후 또 한 동수를 봤고 그에게 방금 사부님을 뵈었다고 말했다.
이튿날 꿈은 깎아지른 산간에 몇몇 도사가 나를 보고 웃으면서 아래위로 날아 다녔다. 나는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세 번째 꿈은 눈앞에 큰 쟁반이 있었는데 각종 과일이 담겨 있었는데 인간 세상의 것보다 종류가 훨씬 더 많았다.
나는 시종 이 몇 가지 꿈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다.
나중에 혼자 거동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가족들이 나를 병원에 보냈다. 병원에서 나는 저녁이면 가부좌를 했고 낮에는 앉아서 동공을 연마했다. 병원에서 한참 검사를 하더니 무슨 병인지 찾아내지 못했고 주사나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웃 병상의 환자가 말하길, 자기는 검사비만 3만 위안이 들었다고 했다. 의사는 또 그녀에게 폐(肺) 천자(穿刺)를 하자고 했다. 폐 천자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가족이 옆에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일찍 이혼했기 때문에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남편을 불러 그녀가 천자술을 하는데 옆에서 좀 돌봐달라고 했다. 그리고 순조롭게 삼퇴시켰다. 그녀가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받지 않았다.
입원 5일째가 되자 남편은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고 혈압도 높아졌다. 나는 이 기회에 퇴원하겠다고 했다. 그 기간에 나는 정말 의기소침해진 것을 느꼈다. 다행히 동수들이 발정념으로 도와주었고 법공부와 연공을 격려했다. 나는 매일 연공을 했는데 서 있을 수 없으면 앉아서 했다. 매일 두 차례 연공을 하고 다리를 푼 채 두 강의를 읽었다.
나중에 통증이 다시 심해져 다시 자립하지 못하게 되자 식구들이 또 나를 끌고 가서 입원시켰다. 입원한 지 5일째 되던 날 사부님 법신이 갑(甲) 동수를 보내 나를 퇴원시키게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변변치 못한 이 제자의 마음이 조급한 것을 보셨음을 알았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세 환자를 삼퇴시킨 후 나는 단호하게 퇴원을 요구했다.
그중 한 대학생은 몇 번을 권해도 탈당하지 않았는데 내가 또 말하자 남편이 화를 내는 바람에 포기했다. 내가 퇴원하던 날 그녀는 오후에 낮잠을 자지 않으면서 내게 말했다.
“아주머니가 퇴원할 때 제 잠들면 배웅을 못하잖아요.”
나는 그녀의 주원신이 구도를 부탁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또 권고하여 마침내 삼퇴한다는 약속을 하게 했다. 내가 떠날 때 그녀들은 몹시 서운해 하며 거듭 손을 흔들며 작별했다.
우리 법공부 팀의 갑 동수는 늘 멀리서 달려와 나와 함께 공부하고 격려하며 나더러 병원에 가선 안 된다고 했다. 조금 더 나아진 후 나는 곧 다시 법을 외웠다. 법을 외운 후 나는 주의식이 강해진 것을 느꼈고 가아(假我)를 똑똑히 구별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 마음과 후천적 관념이 모두 가아임을 알았고 즉시 입장(立掌)하고 좋지 않은 사람마음을 조성한 가아를 제거했다.
나중에 또 《도법(道法)》을 외우자 나의 신의 일면이 작용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나는 휠체어를 밀면서 자료를 배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30분만 걸어도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견지하자 점차 한 시간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진상을 알릴 수 있었고 부근에 채소를 사러갈 수 있었다.
이 어리석은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마난 속에서 희망이 없는 가운데 내가 가장 많이 외친 것은 바로 “사부님 살려주세요!”였는데, 매번 사존의 무량한 자비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또 동수가 나를 떠나거나 포기하지 않고 도움을 주고 격려해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법을 외우고 마음 수련을 통해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하면 나는 곧 마난을 벗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다그쳐 사람을 구해 사존의 자비하신 고도(苦度) 및 천국 중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친애하는 동수들이여, 수련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남았든지 우리 법을 스승으로 삼고 함께 손 잡고 정진합시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6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