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제자
【정견망】
속인시절 나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적막(寂寞)을 참지 못했다. 시끌벅적한 것을 좋아했고 호기심이 아주 강해서 누구는 어떻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가? 모두 알고 싶어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이런 단점이 좀 변화하긴 했지만 실질적인 돌파는 없었고 습관적으로 부면(負面)적인 것을 보곤 했다. 어느 동수에게는 어떤 결점이 있는가? 누가 누구와 모순이 있는가? 누가 관(關)을 넘기지 못했는가? 또는 자신이 어떤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는가? 이렇게 습관적으로 주변 동수들과 말했는데 심지어 온통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말이었다. ‘수구(修口)’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으니 곧 입을 단속해야 한다! 하지만 마치 어떤 물건에 좌우지되는 것 같았고 주변 동수들은 모두 내가 말이 많고 입이 가벼운 것을 알았다.
그러다가 사부님의 경문 《크게 꾸짖다》를 읽은 후 나는 깜짝 놀랐다. 사부님께서는 바로 나를 말씀하신 게 아닌가!
“이런 사람은 늘 心性(씬씽)상의 집착을 불만으로 바꾸어 사람을 찾아 쏟아내는데, 어떤 사람은 도리어 맞장구치고 부추기는바, 정말 그런 경지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게 마련이다.”
나는 자신이 이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전에 나는 늘 한 노동수(老同修)의 집을 찾아가곤 했다. 그녀의 집에는 많은 동수들이 드나드는데 나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싶으면 그녀에게 물어보곤 했다.
매번 갈 때마다 노동수는 나를 아주 따뜻하게 맞으며 차를 끓여주거나 과일을 내놓곤 한다. 이어서 나는 곧 내가 알고 싶은 주변 동수들에 대해 묻는다. 동수들의 최근 상태는 어떤지? 이것을 알아보고 저것을 물어보곤 한다. 그러다 누가 생각나면 곧 꼬치꼬치 캐묻곤 하는데 동수 A, B, C는 내가 늘 담론하는 대상이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수련에 문제가 있고 안 되는데 그들의 그런 결점을 나는 다 알면서도 또 줄곧 입에 올린다.
시작은 대개 이렇다.
“최근 A를 본 적이 있나요?”
“한번 왔었어.”
“(상태가) 어때요?”
“다리가 아프데 지금 소업(消業) 중인가봐!”
“분명 누락이 있을 거예요, 그게 아니라면 다리가 아플 리가 있겠어요? 지난번에 댁에서 그녀를 만나 어떤 가 봤는데 자아가 너무 강해서 누구에게도 불복했어요. 그러니 다리가 아프지 않을 리 있겠어요?”
“매일 법공부도 적지 않게 하고 또 일부는 외운다고 하던데.”
“외우면 뭐해요?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속인과 마찬가지인걸요.”
그러면서 나는 또 A의 결점에 대해 한바탕 말한다.
그리고는 또 B는 어때요? 라고 묻는다. 동수가 “그 집은 아들이 골칫거리라, 무슨 양아치 같아. B는 아직 그래, 아들에 대한 관을 늘 넘기지 못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역시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예요? 결국은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거죠.”
그러면서 나는 또 B동수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수다스럽게 늘어놓는다.
이어서 나는 또 다른 동수 C와 D에 대해 묻는다.
마치 자신이 무슨 재판관이라도 된 것처럼 한바탕 평가한 후 차를 다 마실 때쯤이면 마음도 가볍고 상쾌한 느낌이 든다. 마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뒤떨어져 있고 자신만 떨어지지 않은 것 같다. 떠날 때는 또 노동수에게 “누님, 우리는 정진하고 저들처럼 되지 맙시다.”라고 신신당부한다.
당신이 보라? 내가 모두 무슨 말을 했는가? 어떤 물질을 퍼뜨렸는가? ‘주워들은 말’을 진짜로 여기고 말하는데 마음속에 담은 것은 다 쓰레기이고 퍼뜨린 것은 흑색물질인데 멋대로 결론을 내린다. 이게 무슨 경지인가? 나와 함께 대화한 동수 역시 피장파장인데 수구(修口)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어찌 함께 언급할 수 있는가?
“정말 그런 경지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게 마련이다.”(《크게 꾸짖다》)
나는 이미 이런 상태를 다년간 지속해왔고 제자리에서 맴돌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해 수구에서 실질적인 돌파가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의 불만을 내려놓으라. 그것은 당신의 집착이다. 당신의 입을 잘 단속하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 당신의 입을 잘 단속하라.”는 사부님의 이 구절 법(法)에 나는 크게 진감(震撼)했고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자신의 입을 잘 단속하지 못하는가?
나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설마 수구가 생사를 내려놓는 것보다 더 어렵단 말인가? 수련인은 칼산이며 불바다도 모두 가로막을 수 없는데 몇 마디 말을 적게 한다고 숨이 막히는가?’
나는 자신이 수구가 수련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법에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단속하지 못하고 함부로 하는 말은 남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해친다. 이를 알고 난 후 나는 굳게 결심했다.
“반드시 입을 단속하고 말을 적게 하며 구업(口業)을 짓지 않아야 한다.”
나는 또 내가 왜 말이 많아졌는지 파헤쳐 보았다. 이는 구세력(舊勢力)의 배치인데 구세력은 매 대법제자마다 모두 말을 하는 기제(機制)를 넣어주었다. 이 기제가 작동하면 당신은 곧 멘트가 나간다. 어느 날 누구를 찾아가는가? 누구를 만나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화제를 담론하는가? 매 하나의 염두는 모두 잘 준비된 것으로 때가 되면 곧 머릿속에서 안달하다가, 당신이 입을 열기만 하면 곧 그것의 기제로 들어간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번은 내가 밥을 먹을 때 갑자기 같은 직장에 다니던 X란 인물이 생각나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 직장의 XX는 지금 어때?”(수구에서 보자면 이런 말은 할 필요가 없는 쓸데없는 말이다.) 아내는 그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아 화를 내면서 말한다. “그 사람 최악이에요. 눈을 위로 치켜뜨는 게 아마 일찍 죽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한바탕 욕을 퍼붓는다. 당신이 말해보라 이것은 내가 업을 지은 것이 아닌가?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길에서 동수를 만나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묻는다.
“식사는 하셨어요? 어디 가시나요?”(역시 쓸데없는 말이다.)
동수와 한바탕 대화를 나눈 후 갑자기 또 다른 동수가 전에 했던 잘못이 생각나 그에게 묻는다. “듣자하니 X동수는 전에 술을 마셨다고 하던데, 지금도 마시나요?” 만약 상대 동수가 수련이 잘 되었다면 그저 웃고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만약 사람마음이 있다면 곧 나와 함께 논평할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자신의 수련이 너무 차(差)한 게 아닌가? 다른 동수가 술을 마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대체 언제인가? 법을 얻기 전인가? 아니면 법을 얻은 후인가? 누군들 결점이 없겠는가? ‘주워들은 말’을 입에 올린다면 이것이 동수에 대해 책임지는 것인가? 누가 기뻐하겠는가? 더 나아가 이름을 언급하면서 동수의 결점을 말한다면 진짜든 가짜든 이것이 마땅한가? 동수는 미래의 불도신(佛道神)인데 입을 열어 함부로 논평한다면 그럼 얼마나 큰 업을 짓는 것인가? 자신의 수련에 아주 큰 관과 난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닌가?
구세력은 이 누락을 움켜쥐고 당신에게 조건을 만들어주어, 당신더러 말하게 해서 구업(口業)을 많이 짓게 하고 마난을 증가시키고는 나를 끌어내릴 것이다.
구세력의 기제가 가동되는 가운데 당신을 사람 속에서 가둬두고 당신더러 사람의 말을 많이 하게 한다. 목적은 당신더러 사람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점을 알게 된 후 나는 “이 기제를 철저히 제거한다!”는 발정념을 했다. 법으로 자신을 바로 잡고 대화할 때 자신을 통제하며 함부로 남에게 말을 걸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대답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굳이 목적을 갖고 속인과 교류할 필요가 없는데 속인에게 크게 부합하면 그게 바로 속인이다.
이렇게 하자 점차적으로 나는 실질적인 돌파가 있는 것을 느꼈고 말이 줄어들었으며 마음도 가벼워졌다.
작은 인식이니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0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