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법공부 소조
【정견망】
우리 법공부 소조는 2021년 5월 15일 사부님의 설법을 다 읽은 후 감촉이 아주 깊었다. 이 글을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하고 공동으로 제고하고자 한다. 본문은 법공부 소조의 개인적인 깨달음이니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질정을 바란다.
구우주(舊宇宙)의 이기적인 속성이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법칙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이 우주에서 제아무리 높은 생명이라도 최종에는 멸(滅)의 결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위대한 사부님께서는 이 만장(漫長)한 우주의 정화(精華)를 소중히 여기시고 불은(佛恩)의 호탕하신 자비로 구도하고 계신다. 하지만 중생 구도에는 표준이 있는 것으로 사람의 사상으로 인정하는 인류사회를 바꾸는 그런 것이 아니다.
대법에 대한 사람의 태도가 사람의 가는 방향을 결정하는데, 구도 받는 표준에 충분한 생명은 법에 씻겨 지고 동화되어 신우주(新宇宙)로 진입한다. 비록 사부님께서 처음에 모든 중생을 선해(善解)해 구하려 하셨지만 강제로 개변하는 것은 구도가 아니라 다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정법에 대한 중생의 행위가 관건이 되었다.
오늘날 구세력 및 사악의 대법에 대한 박해는 이미 20여 년이 되었고 중생은 대법제자가 힘들게 진상을 알리는 중에 이미 각자의 위치를 정해놓았다. 말후(末後)에 구도 받을 수 없는 생명은 그들 자신의 선택이며, 우주의 법칙은 무정(無情)한 것으로 최후의 도태는 곧 도래할 것이다. 새로운 우주는 이미 성취되었고 다음 일보의 법정인간이 곧 시작할 것이다.
법공부 소조의 동수들은 자기의 정법수련에 대조하며 모두들 자신의 부족에 대해 말했다. 아래에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한 가지 정황: 사심(私心)은 우리가 눈치 채고 또 제거하기가 아주 어려운 집착이다. 게다가 수련인마다 수련 정도가 다르고, 인심(人心)이 무거운 수련생은 바로 사람 마음으로 말후(末後)의 혼란한 사회 형세를 본다. 자신의 기호 혹은 자신이 아는 법리를 표준으로 삼아 사회의 방향을 평론하거나 혹은 말후 사회의 정치를 바꾸는데 참여해 마땅히 이래야 하거나 또는 저래야 한다고 여긴다. 정법을 표준으로 끊임없이 사람 마음을 닦아 버리고 정법을 원용(圓容)하려 하지 않는다. 이 과정 중에 사회형세가 자기 관념에 부합되지 않거나, 자신이 인정하는 그런 상태 변화에 따르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원한・의혹 등이 생겨나 자기 수련이나 심지어 정법노정을 엄중하게 저애한다.
한 가지 정항: 사회의 패괴(敗壞)된 조류에 대해 청성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중생구도만이 근본임을 잊어버리고 사람의 표현을 지나치게 중시한다. 개인에 간섭하거나 또는 개인을 공격하고 심지어 악한 생각과 악한 말로 대하면서 적을 만든다. 이는 우리에 대한 법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한 사람의 직위가 어떻든지 설사 조류를 따라 가더라도 또한 그의 대법에 대한 태도를 보고 구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정황: 사회의 가상(假相)을 똑똑히 보고 진상을 환원시켜 세인들이 잘못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속인의 가로등이 되지 못한다. 가령 지금 1년이 넘는 대역병 중 백신과 격리조치의 역할을 과장하고 역병의 본질은 사람의 도덕이 패괴되었기 때문이며 특히나 중공과 같은 편에 선 응보임을 알리지 못한다. 사람의 조치는 잘못된 것이다. 세인들이 신에 대한 믿음으로 회귀하고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며, 창세주를 향해 기도하고 참회하며 잘못을 고쳐 중공을 멀리하는 것만이 역병을 피하는 영단묘약(靈丹妙藥)이라고 인도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정황: 사람 마음이 무거운 수련생은 트럼프는 신이 선택한 것으로 중공을 해체할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오늘날 세상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신이 선택한 사람임을 모르는 것이다. 동시에 구도자와 피구도자의 위치를 뒤집어 놓았다. 우주가 멸망을 향해 가는 역사 중에서 제아무리 높은 신도 하늘로 돌아갈 힘이 없는데 하물며 작디작은 속인임에랴. 설사 소위 호인(好人) 역시 말후 도덕이 패괴된 가운데 낮은 표준으로 전통 중에서 사람의 정상적인 표준과 대비하면 차이가 너무나 크다.
또 한 가지 정황: 어떤 수련생은 마난 중에 정념이 마모되어 정법이 아직도 십년 또는 더 길게 남았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사람의 정상 생활을 하면서 정진(精進)이 가져다주는 압력을 경감시키려 한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매체는 여전히 법정인간 중에도 계속해서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하신 것을 보고는 이 때문에 아직 오랜 세월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정법시간이 매우 길고 길이 아직 멀다고 여기면서 자기의 구실을 찾는다.
한 가지 정황: 사부님 설법 중에 전체 사회 역시 수련이라고 하셨으니 자신이 대법 수련에 정진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오히려 역사상 그 어떤 법문의 수련도 수련성취할 수 없었으며 삼계에 온 중 생명은 돌아갈 힘이 없었음을 보지 못한다. 오직 대법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사회가 다 수련이지만 최종적으로 대법만이 수련성취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법제자는 수련이고 사회 역시 수련이지만 내함이 서로 다르다. 대법제자는 사명과 책임이 있는 것으로 조사정법하며 사람을 구하러 온 것이다. 사회상 사람의 수련은 개인 수련이다.
우리는 이번 사부님 설법을 본 후 얼굴에 진땀이 났다. 사부님께서는 너그럽고 자비롭게 우리의 부족을 말씀하셨고 우리의 위덕을 남겨주신다고 긍정해주셨다. 유감스러운 것은 일부 동수들이 참회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또 칭찬이라 여긴다는 점이다.
사부님의 자비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정법은 곧 결속되고 법정인간이 곧 도래할 최후의 시각에 자기의 사람마음과 사심(私心)을 개변해 자신의 정법기간의 성취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우리를 힘들게 구도해주신 사부님께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려야 한다. 그렇게 무거운 사람마음과 잘못된 인식으로 정법 결속의 시각이 도래하는 것을 맞이하지 말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81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