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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아 원망을 닦아버리다

글/ 육문(陸文)

​【정견망】

1. 원망의 위험성

원망(怨)이란 무엇인가? 원망이란 독(毒)이다. 마음에 원망이 있으면 질투의 불길 속에서 타오르고 입에 원망이 있으면 나쁜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준다. 원망이 없어야 덕(德)이 있고 원망이 없어야지만 비로소 삼계(三界)를 벗어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부처에게 빌어도 안 되기에 부처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왜 저를 도와주지 않습니까? 날마다 당신에게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 일 때문에 불상도 부숴버리고 이때부터 부처를 욕한다. …중략…. 생활 중의 고생을 자신에 대한 불공평으로 여겨, 많은 사람이 아래로 뚝뚝 떨어진다.”[1]

어떤 이는 구하는 데서 원망이 생기는데 구해도 얻지 못하면 마음에서 원망이 생겨난다. 원망은 질투심을 낳을 수 있고 분개나 분노를 낳을 수 있으며 비참한 고통이나 다툼을 낳을 수 있으며 악독(惡毒)함을 낳을 수 있고 사람의 심성과 층차를 떨어지게 만들 수 있으며 사람을 밑바닥까지 훼멸시킬 수 있다.

어떤 동수는 시댁을 원망하고 남편을 미워하는데 시종일관 내려놓지 못해 원망이 쌓이고 병이 생겨 억울함을 품고 떠났다. 어떤 동수는 서로 원망하면서 피차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데 각종 모순이 중첩되자 내분을 일으키고 내적으로 소모한다. 어떤 동수는 자신이 대가를 많이 치렀고 감당한 것이 많음에도 오히려 온몸이 병 투성이가 되자 속으로 사부님께 대한 원망을 품었다. 원망은 흑색(黑色)물질이라 법리(法理)의 나타남을 가로막고 사부님의 신통(神通)을 격리시키니 결국에는 원한(怨恨) 속에서 구세력에 의해 도태되어 버렸다.

속담에 이르길 “하늘을 원망하는 자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을 원망하는 자는 가난해진다”고 했다. 한 생명에게 원망하는 힘이 크면 클수록 업력이 커지는데, 다시 말해 더욱 나빠지며 더욱 고통스럽고 더욱 위험해진다. 원망을 제때에 깨끗이 제거하지 못하고 장기간 없애지 못하면 원귀(怨鬼 악귀)를 초래해 악귀(惡鬼)가 몸에 달라붙게 할 수 있으며 마난이나 병의 고통 및 위험이 잇따라 오게 된다.

일부 동수들의 상태가 장기간 호전되지 않는 근본원인 중 일부는 바로 원한심(怨恨心)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아무런 원망이나 미워함이 없고 관용하고 자비로운 선(善)이 있어야지만 위험한 일을 만나도 전화위복이 되어 편안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부를 원망하는 생명은 단 하나도 수련할 자격이 없으며 또한 수련할 수도 없는데 왜냐하면 마성(魔性)이 심중(深重)해지고 불성(佛性)이 얕아지기 때문이다. 대법 수련 중에서 사부님을 원망하면 법을 공부할 자격이 없으며 대법에 의해 갱신될 자격이 없기 때문에 병이 낫지 않는다. 신(神)은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만을 구할 수 있으며 원망하는 사람은 구원할 방법이 없다. 원망은 불신(不信)이고 불만(不滿)이며 앙심을 품는 것이다.

2. 원망은 마성

어떤 원망은 불공평한 일에 대해 화를 내는 것에 유래하는데 스스로 불공평하다고 여기고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데 다시 말해서 질투다.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원한하며 질투하는 것은 모두 악념(惡念)이니 다시 말해 마성(魔性)이다. 마음이 고통스럽고 입에서는 원망하는 말이 나오며 표정에서도 미움이 드러난다.

마음속의 원한은 감춰진 악(惡)의 화산(火山)으로 그것이 폭발할 때면 화가 머리끝가지 치밀어 다투고 매도하거나 심지어 살인방화까지 할 수 있는데 심각한 업을 지을 수 있다. 작은 분노와 원망이라도 만약 제때 억제・배척・반대・제거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팽창해서 갈수록 쌓여 무거워질 수 있다. 우리가 걸핏하면 불평불만하고 원망의 말을 하거나 수시로 수다를 떠는 것은 곧 정념(正念)이 관장하길 포기하고 원한이 신체를 통제하도록 내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성하게 원망이 증오이고 마성이며 업력임을 인식해야 하며 예민하게 경계하고 주의해서 수시로 그것을 붙잡아 강한 주의식으로 그것을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3. 원망의 본질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늘날의 이 사람은 바로 이러한데, 문제와 마주치면 우선 책임을 떠넘기고, 탓할 것이든 탓하지 않을 것이든 그는 모두 밖으로 미루어 버린다.”[1]

왜 남을 원망하는가? 문제를 바깥으로 돌리고 안으로 돌리지 않아서 다시 말해 밖으로 밀어내기 때문에 원망이 있을 수 있다. 일을 함에 잘못이 생기거나 생활 속에 번거로운 일을 만나거나 앞길에 좌절을 겪어도 모두 남의 잘못을 찾는데 다시 말해 마음에 불만이 생긴다.

남을 원망할 때 그 근본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과 당연히 안으로 찾아야 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망하는 그 순간이 바로 밖으로 찾는 것이고 밖으로 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간주하지 못하는 것으로 법에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안으로 찾지 않으며 진정하게 수련하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하는 것이다. 남이 얄미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닦지 못했기 때문에 비로소 남의 허물을 보고 원한이 생겨나는 것이다.

원망은 완전히 변이된 관념이다. 공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不怨天 不尤人)”고 했다. 맹자는 “행동해서 얻지 못하면 돌이켜 자신에게서 찾는다(行有不得 反求諸己)”고 했다.

대법 수련 중에서 안으로 찾음은 수련인과 속인의 본질적인 구별이다. 때문에 밖으로 찾으면서 마음에 원망이 생기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4. 원망의 표현

원망은 마성이고 사상업이며 물질이고 또한 생명이고 형상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공간의 일체가 모두 생명이 있는 것으로서, 업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1]

“그러나 당신들은 무엇이 나쁜 사람이고 무엇이 좋은 사람인지 아는가? 당신의 마음속에 담아둔 것이 증오이고 악이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것이 어떤 생명이겠는가? 행위에서 표현될 것이며 심지어 얼굴에도 표현되어 나오는데, 사람이 당신을 보면 모두 악한 것이다.”[2]

불평불만과 원망이 가득차면 틀림없이 얼굴이 근심 투성이로 되어 분노가 치밀고 말이 날카롭게 된다.

원망의 형상은 마치 머리카락은 지저분하고 모습은 초췌하면서 근심걱정이 가득하고 화를 잘내는 부인과 같아서 남을 억압하고 초조하며 불안하게 만든다. 설사 외모가 하늘의 신선(天仙)과 같을지라도 전혀 사랑스럽지 않다. 뻣뻣하고 싸늘하며 화를 내고 원망하는 상(相)인데 이는 고통의 상이자 미움의 상이다.

원망의 표현은 하는 말이 모두 질책이고 이유 없이 트집을 잡으며 마음에 늘 걸리는 게 있고 온갖 잡념이 떠나지 않는다. 또 매사에 미워하며 곳곳에서 억울함을 하소연하는데 어떻게 해도 풀어지지 않고 남을 용서하지 못한다.

사람이 원망과 증오가 많아질수록 원마(怨魔 원망하는 마)를 자양(滋養)하는데 원마는 갈수록 강대해지고 제멋대로 날뛰게 된다. 어떤 동수는 장기간 안색이 어둡고 침침하며 근육도 긴장되어 표정마저 딱딱한데 입만 열면 들춰내고 원망한다. 바로 원력(怨力 원망의 힘)에게 통제당한 것이다. 원력은 또 쉽게 저령난귀(低靈亂鬼)를 초래하거나 심지어 장기간 교란 받을 수 있다.

5. 안으로 찾아 원망을 닦아버리기

성숙하고 수련에 소양이 있는 수련자(修煉者)라면 그 어떤 문제나 잘못 마난에 부딪힐지라도 모두 정면적으로 문제를 보아야 하며 주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모순을 회피하지 말아야 하며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하는데 즐겁게 감당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오직 안으로 자신을 닦는데 힘쓰고 밖으로 미루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아야 층차를 제고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법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 끝까지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같지 않은 사람에 따라 교란도 같지 않다. 번거로움은 모두 자신이 과거에 빚은 것이며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3]

안으로 많이 찾을수록 밖을 향한 원망이 적어진다.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고 밖으로 찾지 않으면 자연히 원망이나 미움도 없어진다.

옛말에 “만약 진수(真修)하는 도인(道人)이라면 세인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진정으로 남의 허물을 보지 않을 수 있고 오직 자신의 잘못만 찾을 수 있다면 원망할 게 뭐가 있겠는가?

“문제가 있으면 안을 향해 찾는 이것은 대법제자와 속인의 근본적인 차이이다.”[4]

우리가 원망할 때가 바로 안으로 찾지 못하는 때이며, 우리가 무엇을 원망한다면 곧 그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며, 우리가 누구를 원망한다면 곧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체는 다 우리 자신의 문제다. 자신을 찾는 것도 여전히 부족하면서도 남을 원망한다는 것은 도리가 없는 것이다.

6. 원한을 감사와 은혜로 변화시켜야

우리가 남을 원망하는 이유는 속인의 각도에서 문제를 보고 자신의 명리정(名利情)이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수련의 각도에서 보자면 만약 그 누구도 모순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사람마음・집착・마성을 발견할 수 없으며 또한 제고해 올라갈 수도 없다.

만약 그 누구도 고통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업력을 제거할 수 없고 병의 고통이나 고난과 재앙 등이 마치 그림자처럼 따르게 되는데 이는 너무나 위험한 것이다. 만약 그 누구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아무도 우리에게 덕을 주지 않는다면 덕이 없게 되며 그럼 공(功)도 없고 층차도 없으며 과위도 없게 된다. 만약 아무도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다면 모순이 없어서 심성 제고나 미래의 원만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모든 상처는 우리를 계발하고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속인의 관념을 전변(轉變)해 원한을 감사와 은혜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원한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미운 마음이 올라오면 끊임없이 ‘일거사득(一擧四得)’의 법리를 외우자. 법(法)은 요괴를 베는 검이자 마귀를 없애는 단(丹)으로 백번 단련한 강철은 부드럽게 변화된다. 겨냥성을 지닌 법 외기를 꾸준히 견지하면 곧 마성을 제거하고 불성(佛性)을 강화할 수 있다.

7. 마음이 속세에 없으면 원망도 사라져

진수(真修)는 외재적인 명리를 내려놓아야할 뿐만 아니라 내재적인 사람마음을 더욱 내려놓아야 한다. 원망은 사람의 정(情)으로 사람을 미혹시키며 사람을 어리석은 바보로 만들며 마음을 속세에 연연하게 한다. 하지만 마음이 속세에 없다면 원망은 사라진다. 만약 원망을 품고 미움을 품는다면 다시 말해 사람의 껍질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신(神)으로 성취 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절대로 사람과는 어떤 은혜와 원한(恩怨)이 없다. 당신이 나를 좋다고 말하든 당신이 나를 나쁘다고 말하든 모두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므로 나는 당신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5]

“물론 나는 어떤 사람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단지 여러분에게 법리(法理)를 말해주고 이치를 말해주고 있다. 설사 당신이 나를 욕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마음은 속인 중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6]

자신을 수련인으로, 속인보다 높은 신(神)으로 여기고 마음이 사람 속에 있지 않으면 즉, 사람에 대한 원망도 없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을 돕고 사람을 구하며 사람을 연민하고 사람을 아끼시지만 사람을 원망하신 적은 없다. 만약 우리가 사람을 원망한다면 우리는 곧 사부님의 가르침에 부끄럽고 법도(法徒)로서 부끄러운 것이다.

8. 소결

원망이란 무엇인가? 원망은 독(毒)이다. 마음에 원망이 있으면 바로 질투와 미움을 마음에 품은 것이고 입에 원망이 있으면 나쁜 말로 남을 해친다. 수련인은 마음에 자비를 품고 입에서는 연꽃을 토해내야 하며 원한은 반드시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 오래된 원망과 낡은 원한이 있다면 쌓인 원한이 깊고 무거운 것이다. 자신이 화가 나고 억울하다고 느낄 때면 바로 질투의 불꽃 속에서 타오르는 것이고, 우리가 자주 질책할 때면 바로 원망의 소리가 넘쳐나는 것이며, 우리가 남의 잘못을 말하려 할 때가 바로 남을 미워하는 것이고, 우리가 이것저것 까다롭게 고를 때면 바로 원망이 날뛰려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마음에 원망이 숨어 있으면 몸 위로 원망이 달라붙고 주위가 원망으로 얽매인다. 그것은 방법을 찾아 언제든 우리를 따라 다니는데 천방백계로 도처에서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원망을 품고 에너지를 보충해 그것이 생존할 공간이 있게 해주길 바라는데 이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은 발각당해 청리(淸理)되는 걸 두려워하며 소멸당하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때문에 원망은 스스로 떠나려 하거나 스스로 제거되길 원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가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시시각각 도처에서 원망을 경계하고 그것을 움켜쥐고 제거하며 해체해야만 비로소 그것이 숨을 곳이 없어지고 점차 소멸시킬 수 있고 철저히 제거할 수 있다.

원망은 악(惡)이고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고 원망은 독이라서 남을 해치며, 원망은 사(邪)라서 난귀(亂鬼)를 초래한다. 원한이 있으면 자비가 줄어들고 원한이 있으면 구도할 수 없다. 원한이 많으면 번뇌가 많아지고 남의 잘못을 원망하면 자신의 허물이 늘어난다. 원망을 닦아버리면 선(善)이 저절로 자라나고 원한이 사라져야만 마음이 즐거워진다.

원망이 없어야 덕(德)이 있을 수 있고 원망이 없어야 초탈(超脫)할 수 있다. 사람은 원망이 있기에 고생이 있고, 부처는 원망이 없으니 근심도 없다. 원한을 내려놓고 옳고 그름을 내려놓으며 다툼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양해하고 사람마음과 결별하면 자신도 편안해질 수 있고 자신의 성취를 돕고 자신을 승화시킬 수 있다. 원한을 내려놓으면 대자재(大自在)하고 대청정(大清淨)하며 대해탈(大解脫)할 수 있다.

작은 소견에 불과하니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각지설법 7》<2006년 캐나다법회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정진요지》<대법(大法) 산동 보도소에>
[5] 리훙쯔 사부님 저작:《창춘보도원법회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7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