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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접종에 대한 깨달음

글/ 북미대법제자

【정견망】

속인사회에서 백신을 맞고 안 맞고는 순전히 개인의 문제에 속하는데 속인은 이를 개인의 권리라고 여긴다. 대법수련자는 속인사회에서 생활하기에 백신을 맞고 안 맞고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개인생활의 선택범주에 속한다. 마치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어떤 이는 투표권을 포기한다.

하지만 대법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모종의 특수한 상황 하에서는 백신 접종여부가 개인적인 기호의 범주를 벗어나 수련과정의 한 가지 난관으로 된다. 아울러 종종 집착심의 심한 장애를 받아 관을 넘기는 중에서 겁을 먹는다.

어떤 특수상황인가? 개인적인 깨달음은, 법에서 보면 아주 간단한데, 왜냐하면 우리는 속인사회에서 수련하면서 사람을 구하고 있으며 사명을 이행하고 서약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백신을 맞는 것이 효과적으로 속인사회 각 항목 규정의 제약을 피할 수 있다면, 또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서 시급한 필요가 있거나, 대법의 바른 일을 할 때 필요할 때라면 이런 상황에서 백신접종은 이미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의 고험이자 조사정법(助師正法)을 제1위에 놓을 수 있는가 하는 고험이며, 수련인이 근본적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할 수 있는지 여부를 체현해낼 수 있다.

가령 션윈(神韵)을 보도하는 기자가 일부 극장에 들어가 보도하려면 아마 극장에서 반드시 백신접종을 요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백신 접종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가?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션윈 각 방면에서 공공기관과 협조업무를 맡은 동수라면 많은 회의장에서 백신완료증명을 요구하는데 그럼 그가 백신 접종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가? 물론 션윈에 참여하는 연기자들은 보다 많은 세인을 구하기 위해 고생스럽게 국제무대를 다니면서 각종 속인사회의 규정이란 여러 가지 고험에 부딪혀야만 한다. 이럴 때 수련인이 소위 백신의 독(毒)에 감염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자신을 깨끗이 할 것만 생각하며 본래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람을 구하는 책임을 미룬다면 사실 이는 이미 자신의 수련을 아이들 장난으로 여긴 것이다.

신(神)의 눈으로 보자면, 이런 수련인에게 있어 속인의 백신이 이미 그로 하여금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정도에 이르게 할 수 있는데, 사람마음의 관념이 무거워서 주원신은 정말 이렇게 제도하기 어렵단말인가? 라고 할 것이다.

구세력이 본다면, 이것은 신사신법이란 근본상에서 문제가 나타난 것으로 이렇게 큰 누락을 바로잡지 않았다면서 더 많은 마난(魔難)을 더할 기회로 삼을 것이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사자는 백신을 맞지 않아 백신의 독은 피할 수 있겠지만 만약 사악의 눈에 띄어 다른 공간에서 무수한 배의 독소(毒素)를 수반하는 난(難)을 더해 진정으로 자신의 신체에 쏟아 부을 때면 장차 또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가?

진수자(真修者)에 대해 말하자면 인간세상의 이치는 반대로 된 것이니, 마음을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는데 놓고 자신의 사명을 이행하는데 놓으면 거대한 법속의 에너지가 일체 더러운 때를 씻어버릴 수 있으며 설사 독이라 해도 깨끗한 물로 정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자신이 속인의 사유로 떨어지기만 하면 사실 별다른 독소가 없고 단지 인간세상에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인류사회의 도도한 업(業)의 물결만으로도 자신이 고생스레 수련 성취한 신체(神體)를 독화시키고 침식하게 만들기에 충분하거나 심지어 하루아침에 훼멸시킬 수 있다.

백신접종은 비로 개인의 작은 일이지만 이런 특수한 상황 하에서는 오히려 수련의 성패(成敗)와 긴밀히 연관된 중대한 일로 표현된다. 간단히 말해서 백신을 맞고 맞지 않고는 마땅히 대법 항목에서 사람을 구하는 수요에 따라야 하며 필요하다면 맞아야 하며 지나치게 많은 사람마음의 걱정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비교적 성숙한 한 수련인이 문제를 사고하는 기점이다.

이 기점 위에 서면 그럼 바로 바른 법리(正法理)의 공간이 펼쳐지는데 백신접종 역시 보다 편하게 사람을 구하는 방식에 불과할 뿐이다. 다시 말해 법(法)을 크게 볼 수 있다면 수련자의 신체(神體) 역시 갈수록 더 순정(純淨)해질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