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길림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의 《각지설법 3》을 보다가 구세력이 “대법제자를 고험한다”는 구실로 설치한 층층의 거대한 관(關)과 난(難)이 사부님의 정법(正法)을 가로막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직 남을 개변시키려고만 할 뿐 자신은 개변하려 하지 않는데 근본적으로 자신을 개변하려 하지 않는다.
구세력의 이런 심태로부터 나는 수련인을 생각해봤는데, 특히 자신에게 이런 심태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애초 근본적인 집착을 품고 수련 속으로 걸어 들어와 곤두박질 친 후에 사부님의 일깨움 하에 자신에게 존재하는 이 근본문제를 깨달았고 그것을 닦아버리기 위해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 잡아왔다. 이후 지금까지 걸어온 수련의 길에서 비록 때로 넘어지는 방식이긴 했지만 발걸음은 그래도 갈수록 더 침착하고 안정되었다.
‘근본(根本)’이란 무엇인가? 내가 이해하기에 수련인이 최종적으로 도달할 경계(境界)는 무사무아(無私無我)이며 이것이 근본문제다. 속인의 근본문제는 위사위아(爲私爲我)다. 이는 사람과 신(神) 두 가지 경계의 천양지차다.
수련인은 반드시 사아(私我)를 닦아 없애야 하며 근본적으로 자신을 개변해야만 비로소 신우주(新宇宙) 정각(正覺)의 최고경계에 도달할 수 있고 천백 년 간 뼛속까지 형성된 사아(私我)관념 및 이 관념에서 파생되어 나온 일체 사람의 이치를 개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근본상에서 자신을 개변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련인이 시시각각 파악할 수련의 기점이다.
수련의 기점을 파악한 후에야 비로소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매 하나의 걸음을 바르게 걸어갈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수련의 길 위에서 승화가 빨라진다. 내가 깨달은 것은 법(法)을 잘 배우고 법을 많이 배워 수련의 목표와 최종 도달할 경계를 명확히 하면 수련의 기점을 파악할 수 있고 법에서 벗어나 곤두박질치지 않을 수 있다. 이 ‘근본’이 바로 수련의 기점이다. 기점이 명확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개변할 수 없으며 여전히 속인의 상태다. 수련인의 수련이 부평초처럼 떠다닌다면 조만간에 중도에 폐기하게 된다.
오직 남을 개변하려고만 생각하고 자신을 개변하려 하지 않는 것이 구세력의 심태다. 만약 수련인 역시 이런 심태라면 바로 구세력의 길을 걷는 것으로 바로 밖을 향해 보고 자신을 닦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더러 어떠어떠하라고 요구하면서 자신은 찾지 않고 자신을 닦지 않으면 그것이 수련인의 행동인가? 또한 진정한 수련인이라고 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오직 남을 개변할 것만을 구하고 근본적으로 자신을 개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영원히 수련인이 아니며 아울러 극히 위험해지며 곧 도태되는 결말에 직면할 것이다.
오직 법을 잘 배워야지만 법에 뿌리를 내릴 수 있고 근본적으로 속인의 상태를 개변할 수 있으며 비로소 끊임없이 수련인의 부동한 층차의 표준에 도달해 최종적으로 반본귀진(返本歸真)하고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수 있다.
층차에 한계가 있는 얕은 깨달음이다.
은사(恩師)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