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동진(同真)
【정견망】
한 70대 할머니가 매일 밖에 나가 진상을 알렸다. 어느 날 그녀가 한 할아버지에게 진상을 막 끝냈는데 노인네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는 “당신 사진을 찍어 신고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도 즉각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내서 자세를 취하고는 “나도 당신 사진을 찍겠다. 당신은 악인(惡人)이고 내가 당신을 위해 말해줬는데도 나를 신고한다면 나는 당신을 악인방(惡人榜)에 올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인의 손이 즉시 느슨해졌고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할머니의 정기에 눌린 것이다.
이 노인은 처음에 큰 소리로 공갈을 쳤는데 아주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1]라 오직 우리가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이 바르고 생각이 바르기만 하면 바로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1]이다.
수련인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아무것도 두려워할게 없다. 속담에 동풍(東風)이 서풍(西風)을 압도하지 못하면 서풍이 동풍을 압도한다고 했다. 우리가 커질수록 사악은 작아지고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악이 두려워한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2]
할머니의 정념이 충분하자 사부님께서 곧 그녀를 도와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셨다.
무엇이 정념(正念)인가? 우주특성(宇宙特性)에 부합하는 사상이 바로 정념이다. 무엇이 충분한(十足) 것인가? 아무런 의심도 없고 조금의 두려움도 없는 것이다. 우주대법(宇宙大法)은 올바른 것이고, 사악을 폭로하는 것 역시 올바른 것이며, 우리가 하는 것은 바른 일이고 우리는 진리를 장악하고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기왕에 한 것이 바른 일이고, 한 것이 옳은 일이라면 사부님을 믿고 자신을 믿어야 한다. 마음이 착실하고 당당해야 하며 호연한 정기(正氣)로 자신만만해야 한다.
정념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념의 내원은 법리(法理)를 똑똑히 알고 꾸준하고 착실한 수련(實修)에서 온다.
이 할머니는 혼자 살면서 매일 세 가지 일에 정진해왔다. 사람의 두려운 마음이 사람을 구하는 과정 중에 한차례 한차례씩 제거되었고 진상을 알리는 중에 신(神)의 정념이 서서히 누적되자 그녀의 심성도 착실히 올라왔다. 그러므로 위난(危難)의 시각에 위기에 닥쳐서도 어지럽지 않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정념이 충분함에 도달할 수 있는가? 지름길은 없다. 그래도 지름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착실하고 착실하게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법을 공부하는데 이는 마치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과 같다. 오직 마음을 써야만 비로소 사부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생활 속에 부딪히는 마난은 바로 점검이다. 매일 하는 발정념은 악을 제거하는 것이자 군사훈련이며 진상을 알리는 중에 위험에 봉착하는 것은 바로 실제 전투다. 오직 매일 진지하게 세 가지 일을 잘해야만 비로소 관건적인 시각에 법리가 명백하고 정념이 충분할 수 있다.
“수련인이 중시하는 것은 정념이다. 정념이 아주 강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인이고 당신은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당신은 속인 요소와 저층 법리에 통제당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3]
왜 어떤 사람은 매일 진상을 알리는데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하는 일도 없는데 무엇이든 두려워하는가? 왜냐하면 진상 알리기를 견지한 사람은 두려움의 층차를 돌파했기 때문이고 줄곧 진상을 알리지 않았던 사람은 여전히 두려움의 경계(境界) 속에 있어 두려움에 통제당하기 때문이다.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 두려움은 생각에서 일어난다.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으로 정념이 얼마나 강하면 위력이 그만큼 강하다.
[역주: 진섭(震懾)이란 상대를 두려워 떨게 한다는 의미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홍음 2》<두려울 것 뭐냐>
[2] 리훙쯔 사부님 저작:《홍음 2》<사도은>
[3] 리훙쯔 사부님 저작:《로스엔젤레스시 법회 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2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