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우리는 수련과정 중에 늘 각종 마난과 고험이 있을 수 있다! 마난과 고험에 직면해, 특히 사악의 교란과 박해에 직면해 수련인의 정념(正念)・신념(神念)을 사용하고 사람 구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만이 교란을 해소하고 마난에서 뛰쳐나올 수 있는 유일하고 정확한 길이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대법제자들은 안정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하며, 사람 마음이 들뜨지 말아야 한다. 대법제자들이 신(神)의 정념으로 최후의 길을 잘 걸어가기를 희망한다.”(《정진요지 3》〈삼계 내에서 정법을 교란하는 데 참여한 일체 난신(亂神)들을 전면적으로 해체하자〉)
그렇다면 우리 신(神)의 일면은 어떤 상황인가? 우리는 마땅히 ‘신(神)의 정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어떻게 ‘신의 정념’을 운용해야 하는가? 아래에서는 이 방면에 대한 개인의 인식을 말해보고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 ‘신(神)의 정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지적하셨다.
“장기간 대법(大法) 중의 중생, 특히 제자는 법에 대해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방면에서 일종 부동한 층차의 오해가 줄곧 존재하였다. 매번 마난(魔難)이 닥쳐올 때, 본성(本性)의 일면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완전히 사람의 일면으로 이해한다. 그럼 사악한 마(邪魔)는 이 점을 이용하여 끝없이 교란하고 파괴함으로써, 수련생으로 하여금 장기간 마난 속에 빠지게 한다. 사실 이것은 사람의 일면이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빚어진 것이며, 인위적으로 당신들 신(神)의 일면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신들이 이미 수련 성취된 그 부분을 억제하여 신의 일면이 법을 바로잡는 것을 저애하였다. 아직 수련 성취되지 않은 일면이 어찌 주사상(主思想)을 억제하며, 이미 법을 얻은 일면을 억제할 수 있는가? 인위적으로 사악한 마를 자양(滋養)하여 그것이 법의 틈을 타게 한 것이다. 제자로서 마난이 올 때, 정말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하도록 마음을 둔다면, 충분히 고비를 넘을 수 있다. 끝없이 끌고 내려간다면, 만약 心性(씬씽) 또는 행위에 다른 문제가 없다면, 사악한 마(魔)가 당신들이 방임(放任)한 틈을 탄 것이 틀림없다. 수련하는 사람은 필경 속인이 아닌데, 그럼 본성의 일면이 왜 법을 바로잡지 않는가?”(《정진요지》〈도법〉)
개인적인 깨달음은 ‘신의 정념’이란 바로 이미 수련성취된 신의 그 부분으로 이 부분은 진선인(真善忍)에 동화된 기초 위에서 온 것으로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다. 우리가 현재 일을 하고 사람을 구하면서 문제를 생각할 때 마땅히 이 기점 위에 서 있어야 하며 오직 이렇게 해야만 우리에게 신의 정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1999년의 7・20에서 7・20 이전의 수련생들을 전부 제 위치로 밀어주었는데 당신들의 가장 높은 위치로 밀어 올렸다.”(《북미순회설법》)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일찍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법제자로서, 그때 신수련생을 포함해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아주 빨리 당신을 그 위치로 밀어준다고 나는 말했다. 어떤 위치로 밀어주는가? 당신이 어디에서 왔으면 곧 그만큼 높은 곳으로 밀어주고, 아주 짧은 시간에 그 위치로 밀어주었다. 사람 몸의 표면에서는 그렇게 큰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당신이 만약 그만큼 큰 능력을 표현하려면, 곧 그만큼 강한 정념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렇게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며, 당신의 정념도 그런 정도로 순수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그렇게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2013년 대뉴욕지역법회설법》)
우리 신의 일면은 대체 얼마나 높을까? 사부님께서는 《논어》에서 “천체의 가장 미시적인 데에서 가장 미시적인 입자의 출현까지, 층층의 입자는 무량무계(無量無計)하며,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또 표층에 이르러 인류가 알고 있는 원자ㆍ분자ㆍ성체(星體)ㆍ성계(星系)에서 더욱 큰 것에까지, 부동한 크기의 입자가 부동한 크기의 생명과 우주 천체에 두루 퍼져 있는 부동한 크기의 세계를 조성(組成)했다.”라고 하셨다.
천체의 가장 미시적인 데에서 가장 미시적인 입자가 출현하기 전의 생명은 입자가 없는 것으로 다시 말해 무형(無形)으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최초에 아마 이런 상태(물론 여기에도 또 층차의 구분이 있다)였을 것이다.
우리의 본원(本源)이 설사 입자가 나타난 후 유형적인 미시 층차라 할지라도 역시 아주 높은 층차의 신(神)일 것이다. 그럼 진신(真身)・진신(真神)・사상(思想)이 삼위일체일 것이다. 우리 대부분의 대법제자들이 비록 사람 이 면에서는 모르지만 실제상 이미 수련해 낸 원영(元嬰)・불체(佛體)는 다시 말해 신체(神體)이다.
사상(思想)이 진정으로 나를 잊고 내가 없는 상태에 도달할 때면 사람 이 면이 존재하지 않고 신의 그 일면이 곧 작용을 발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진신(真身)・진신(真神)・사상(思想)이 삼위일체로 작용을 발휘하는 것이다. 마치 연공할 때 ‘신신합일(身神合一)’을 말하는 것과 같은데 정말로 신체(神體)가 연공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데 사람의 표면육신은 단지 한 장의 가죽일 뿐이다. 발정념을 할 때도 신체(神體)에서 발출하는 것이지 육신이 아니다. 이 신체(神體)는 부동한 공간을 통과할 수 있으며 발출해낸 공(功) 역시 부동한 공간의 사악한 요소를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
2. 어떻게 ‘신(神)의 정념’을 운용할 것인가
법(法)에서 우리는 분자 이 한 층으로 구성된 세계에서 더욱 미시적일수록 더욱 세밀하고 에너지가 더욱 강함을 알고 있다. 만약 우리 본원이 무형적이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없는 곳이라면 이곳에서 발출한 공의 에너지는 아주 강대해서 위에서 아래까지 관통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 표면의 사악한 요소와 교란을 해체하기란 아주 쉬워서 일념(一念)이면 이뤄질 것이다. 일사일념(一思一念)에 이런 상태를 유지한다면 자신의 에너지장이 아주 강대할 것이다.
나는 발정념을 할 때 주의식(主意識)이 종종 이 공간에 진입하곤 하는데 그것은 금빛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발출한 에너지도 상당히 강하다.
설령 유형의 미시적인 층차라 해도 사람의 층차보다 높기만 하면 그 능력 역시 사람의 일면을 훨씬 넘어서고 발정념 역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사람의 표면은 여전히 사람의 상태에 부합해야 하며 사람 이 층의 법을 원융(圓融)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깨어나라》에서 “법이 천체를 바로잡는 것(法正天體)은 이미 끝나고, 지금은 법정인간세상(法正人間)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하셨다. 우리 인체의 일정한 층차의 미시적인 곳은 우주천체와 상통하는데 다시 말해 우리 생명의 미시적인 층차는 사실 이미 정법(正法)이 끝난 것으로 지금은 사람의 표피를 향해 돌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가 신념(神念)을 움직이기만 한다면 정념(正念)이 곧 올라올 수 있고 아주 빨리 돌파할 수 있으며 사람 표면의 교란요소를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주진리(宇宙眞理)에 대하여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는 정념(正念)은 선량한 대법제자의 반석같이 확고한 금강지체(金剛之體)를 구성했으며, 일체 사악으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케 했고, 방사(放射)해 낸 진리의 빛은 일체 생명의 바르지 못한 사상 요소를 해체시켰다. 얼마만큼 강한 정념(正念)이 있으면 그만큼 큰 위력이 있다.”(《정진요지 2》〈역시 두세 마디를 말하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당신은 사부를 도와 사람을 구하는 대법수련인으로서, 사람을 구하는 중에서 당신은 이미 아주 많은 사람을 도와 역병(瘟疫)보다도 천배 백배나 강대한 세균・바이러스를 소멸했다.”(《깨어나라》)
그러므로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는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하는데 다시 말해 우리에게 이렇게 큰 능력이 있음을 확고하게 믿어야 한다. 우리는 기왕에 이미 이렇게 높은 층차가 있고 또 이렇게 큰 능력이 있는데 우리가 집착할만한 가치가 있는 속인 중의 물건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또 무엇이 있어 우리를 속박할 수 있겠는가?
오직 우리의 정념이 충분하기만 하면, 다시 말해 신념(神念)이 충분하기만 하다면 사악은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할 것이며 또 우리를 박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대담하게 하면 되는데 마음을 써서 사람을 구하기만 하면 된다. 사악이 박해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럼 우리의 신심(信心)이 충분하지 못하고 정념이 부족한 것으로 내려놓지 못한 사람마음이 있어서 ‘신(神)의 정념’을 운용하지 못하고 사악이 틈을 타게 한 것이다. 그것들의 구실은 바로 우리의 정념을 때려서 나오게 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내가 막 발정념을 할 때 갑자기 신체가 날래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무 몽둥이를 들고 한 동수의 가슴부위를 때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즉각 의념으로 그것에게 “너는 어찌하여 사람을 함부로 치느냐?”라고 통박하자 그것이 손을 거두고 내게로 몸을 돌려서는 말했다. “나는 그녀의 정념을 때려서 나오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는 곧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 동수를 만나니 그녀는 요즘 확실히 명치가 불편하다고 했다. 이를 통해 보자면 우리가 수련 중에 강대한 정념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사악이 박해하는 구실은 뜻밖에도 우리의 정념이 부족한 게 미워서였다.
요즘 많은 동수들의 신체에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나는데 나는 이것이 전부 병업(病業)이 아니라 많은 정도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사람에서 걸어 나올 필요가 있고 최후의 사람마음을 깨끗이 제거해 보다 고층의 법에 동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각지설법 3》〈대뉴욕지역법회설법〉에서 이미 “하지만 또 당신들이 어떤 때에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거나, 마음속으로 집착이 있거나, 무슨 일을 잘못하고도 또 깨닫지 못하는 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구세력 또는 사악한 생명의 교란으로 신체가 불편해질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어떤 노동수가 관을 넘기는데 신체가 좀 불편했다. 주변에 있던 일부 동수들이 여러 차례 그녀를 찾아가 교류하고 발정념을 하자 그녀는 이미 지나갔다. 그녀는 나에게 “눈보라 속에서 중공 영사관 앞에서 대법을 실증하니 마땅히 상쾌해야겠죠.”라는 문자를 보냈다.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사부님께서는 《홍음 2》〈두려울 것 뭐냐〉에서 ‘신(神)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인간세상에서 법을 실증하는 신입니다. 각종 잡념은 모두 당신이 법을 실증하는 것을 교란하는 요소이니 정념으로 깨끗이 제거하세요. 정념이 확고해야 하는데 마치 전쟁을 하는 것처럼 그것을 소멸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요괴로 당신의 수련 성취를 파괴하려는 것이니 절대 용인하지 말고 깨끗이 제거해야 합니다.”
또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를 제 위치로 밀어주셨습니다. 즉 우리 본성의 일면은 이미 아주 높은 층차의 생명입니다. 신사신법(信師信法)하려면 사부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불법무변(佛法無邊)이니 무엇이든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미 그렇게 높은 층차의 생명이니 자신에게 그렇게 큰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하고 또 자비와 지혜를 사용해서 신통(神通)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마음은 다 진정한 자신이 아니며 장애하는 요소이니 부처가 이것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필요 없고 절대로 필요 없습니다.”라고 했다.
물론 이는 또 나 자신에게 대해 한 말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이 동수는 신심이 더욱 커졌고 정념도 더욱 강해졌으며 영사관 발정념도 꾸준히 견지한다.
3. 신의 정념으로 사람마음과 각종 교란을 제거
과거에 우리는 모두 사람에서 수련을 시작해 늘 사람의 각도에서 수련을 대해왔다. 사람은 미혹 속에 있기에, 수많은 집착과 관념을 인식하지 못하며 돌파하려면 확실히 어려움이 아주 크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깨어나라》 경문을 발표하신 후 나는 우리가 더는 과거처럼 그렇게 해선 안 됨을 깨달았다.
기왕에 사부님께서도 우리를 제 위치로 밀어주셨으니 우리는 곧 고층차에 서서 반대로 수련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법을 스승으로 삼고 수련 성취된 그 일면을 동원해 정법(正法)할 수 있으며 신(神)의 정념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진아(真我)와 가아(假我)를 가려내 사람마음과 각종 교란을 제거하고 전심을 다해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할 수 있다.
신(神)은 자비롭고 완전히 무사무아(無私無我)한 것으로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조금도 없다. 남을 위하는(爲他) 생명으로서 가장 주요한 것은 다른 생명을 위해 영원히 책임지는 것이다. 중생이 인간세상이란 고해(苦海)의 미혹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곧 구도할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러므로 진상을 알려야 하고 법을 실증해서 사람들더러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또한 정법시간에 대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정법이 결속하는 시간에 집착하고 하루 빨리 결속을 바란다면 구세력은 이 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이며 사람더러 빨리 떠나게 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자비는 거대한 에너지이며, 바른 신(正神)의 에너지이다. 자비로울수록 이 에너지는 더욱 커서 어떤 좋지 못한 것도 모두 해체할 수 있다.”(《각지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선의 최대 표현은 바로 자비이다. 그는 거대한 에너지의 체현이다. 그는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모두 해체할 수 있다.”(《각지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내가 체험한 것은 자비 속에는 수련인의 경지(境界)가 포함되어 있고 또 지혜와 능력을 포함한다. 진정으로 신(神)처럼 자비롭다면 곧 신의 정념이 있을 것이며 그럼 자비롭게 중생을 대할 수 있고 자비롭게 신변에 발생한 일체 모순과 문제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자신이 모순 속에 있을지라도 자신의 마음은 그곳에 있지 않을 것이다. 속인 중의 모순에 이끌려 속으로 불평하지 않을 것이며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질투심이나 원한심 쟁투심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많은 수련생들이 자신이 잘 수련해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노라고 말한다. 이 역시 틀리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단순히 자신의 천국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제 위치로 밀어주셨으니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그런 고층차에 도달한 것으로 남은 시간은 사람을 구하는 것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때면 곧 곤란이 있고 저애력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이 부적합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 나타난 것은 우리에게 마음을 닦아 버리고 층차를 제고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심(信心)을 가져야 하고 마음이 안정되어야 하며 반드시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 분명히 성취할 수 있으며 하는 과정 중에 점차적으로 완벽히 제고될 것이며 갈수록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여러분들은 때때로 문제를 고려하면서 모두 한 가지 습관을 양성했는바, 나는 한 가지 일을 할 것이고, 나는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이고, 그 일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사고하는데, 어이구, 스스로 아주 전면적이고 아주 완벽하다고 여긴다. 일단 하려고 하면 진정한 실제 상황 그것은 변화가 무궁한 것으로 잘 안 된다. (웃으심) 안 되면 또 다시 사고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정념을 사용하라. 당신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그렇게 하라. 부딪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당신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정념이 강하면 일체가 모두 순조로울 것이며 틀림없이 잘할 것이다.”(《각지설법 3》〈대뉴욕지역법회설법〉)
“나는 무엇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는가? 마치 아주 피동적인 것 같지 않은가? 아니다. 당신이 잘 닦은 그 면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어떻게 해도 모두 되며, 어떻게 해도 이 일들을 모두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곧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함을 알면 당신은 하라. 당신이 하면, 당신의 지혜는 끊임없이 올 것인데 그 시기에 당신의 잘 닦은 그 면이 당신의 이 면과 함께 용합하고 관통되기 때문이다. 신이라, 못할 것이 없는바, 당연히 그 작은 일은 단번에 풀리게 되고, 지혜가 오는데, 그것은 다른 상태이다. 안 되면 그 때에 가서 사부도 당신에게 지혜를 줄 것이다. (웃으심) (박수)”
(《각지설법 3》〈대뉴욕지역법회설법〉)
사부님께서는 또 “대부분의 대법제자가 법으로 인간세상을 바로잡는 사부를 따르게 될 것이다.”(《깨어나라》)라고 하셨다. 나는 법정인간 시기에도 표준이 있는 것으로 많은 일은 장차 다 우리가 독립적으로 주관해서 해야 하니 지금은 단련해야 하며 진정으로 제고해 올라가야 함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사부님께서 《각지설법 6》〈2004년 부활절 뉴욕법회설법〉에서 하신 “대법제자의 신의 일면 역시 부활하라!”를 인용하면서 교류를 마치고자 한다. 만약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4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