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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의 핵심을 찾아내다

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따로 절을 만들어 ‘수구(修口)’를 언급하셨으니 이는 ‘수구’가 수련에서 아주 중요한 것임을 설명한다. ‘수구’에 포함된 내용이 아주 많지만 나는 단지 남에게 나쁜 말을 하지 않는 이 방면에서 나의 체험을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나는 평소 배후에서 남을 말하고 남의 단점을 말하길 좋아하는 습관이 있다. 때문에 닦아내기가 아주 어렵고 이 단점은 정말 고치기 힘들다고 느꼈다. 비록 수구에 주의하긴 했지만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했고 시종 큰 돌파가 없었다. 그러다 최근 한 가지 일이 발생한 후 단번에 그 사건 배후의 요소를 볼 수 있었고 나로 하여금 더 이상 배후에서 남을 말하는 것에 대해 흥미를 잃게 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이미 80이 넘으셨다. 부친은 말씀을 잘하는데 말로 손해를 보지 않는 것 외에 다른 일은 어떤 일이든 잘 못했고 손만 대면 아주 나빠졌고 또 남에게 관심을 갖거나 보살필 줄 모른다. 반면 모친은 기질이 강하고 능력이 있는데다 성격이 대단해서 늘 부친에게 화를 내곤 했다. 온몸에 병이 많은데 특히 최근 몇 년 혼자서 생활하지 못하게 된 후 부친이 시중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자 더욱 억울하다고 느껴 늘 우리 앞에서 부친의 험담을 했다. 때로는 우리가 듣기만 해도 몹시 화가 났다.

병상에 누운 모친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서 내가 두 분을 모시고 함께 살게 되었다. 같이 살면서 보니 확실히 부친에게 많은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렇게 되자 나는 모친과 공통의 언어가 생겼다. 부친이 집에 없을 때면 우리 모녀는 부친의 그런 좋지 않은 일들을 말하곤 했다. 수련인으로서 나는 이렇게 하면 옳지 않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수구’하라고 하신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임을 알았지만 때로는 통제하지 못했고 기어코 말을 해야만 속이 시원했다.

사실 부모님과 같이 산 최근 몇 년간 나 역시 심성이 제고되었다. 매번 나를 화나게 했던 부친의 행동도 점자 담담해졌고 내려놓게 되었지만 최근에 한 가지 일이 또 내 마음을 건드렸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 나는 화장실에 물통을 하나 놓고 세수하거나 세탁하고 남은 물을 보관했다가 변기를 내릴 때 사용했다. 며칠 전 물통 속에 뭔가 하얀 것이 떠다니는 것을 보고 휴지로 건져보니 가래였다. 생각해보니 이는 부친이 뱉은 게 틀림없었다. 전에는 변기 안에 가래를 뱉으셨는데 지금은 물통에 뱉은 것이다. 이를 보고 나는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마음이 크게 움직이진 않았다.

만약 예전 같았으면 한바탕 뭐라고 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됐다, 부친께는 말씀드리지 말자, 어차피 말씀드려도 고쳐지지 않으니 내가 처리하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데 부친이 또 화장실에서 기침을 하면서 가래를 뱉었다. 부친이 나온 후 내가 가서 보니 물통 위에 또 가래를 뱉어놓았다. 나는 여전히 화를 내지 않았고 물통의 물을 버렸다. 그리고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따로 시간을 내서 부친에게 말씀드렸다.

“아빠, 물통에 가래 뱉으셨어요?”

“어, 자꾸 가래가 나오네.”

“앞으로는 거기에 뱉지 마세요. 남들이 보면 너무 더럽다고 해요. 휴지에 뱉어서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그러자 부친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저녁에 무의식중에 보니 물통에 또 가래가 떠 있었다. 나는 단번에 화가 올라왔다.

‘아예 물통을 치우고 이곳에 놓지 말아야겠다. 그럼 당신이 어디에 뱉는지 보자. 당신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엄마한테 말씀드려 대신 말하게 해야 겠다.’

내가 막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다.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도다(視而不見 不迷不惑)”(《홍음》〈도 중에서〉)

나는 반복해서 사부님의 이 시를 외웠고 자신의 불평하는 마음과 대조해 문제를 찾아보았다. ‘방금 움직인 이 일념(一念)은 외부환경을 개변하려는 것이고 남을 개변하려는 것이다. 안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지 않은 것이다. 이는 사부님의 법에 따른 게 아니지 않은가?’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도다”(《홍음》〈도 중에서〉)

내가 이해하기에 그 일을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할 수 있어야만 자신이 도(道) 중에 있음을 설명한다. 본래 마음이 아주 좋았는데 그 일을 보자마자 곧장 화가 치밀어 오르고 곧장 남을 다스릴 방법을 생각한 것은 자신이 도 중에 없고 미혹 속에 있음을 설명한다.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려면 곧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나는 갑자기 명백해졌다. 사부님께서 깨끗함을 모르는 아버지를 이용해 나를 고험하시어, 나로 하여금 더러운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라고 하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눈에서 왈칵 눈물이 흘러나왔고 연속으로 “사부님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이 이치를 분명히 알게 된 후 나는 단번에 수구 문제도 명백해졌다. 전에 늘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말한 것은 그것이 바로 자신이 닦아내지 못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 보게 한 것은 우리더러 그 일이 옳고 나쁜지 평가하라는 게 아니라 우리더러 심성을 제고하라는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고 자신이 어디에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심성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는지 보라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문제를 볼 수 있는데 도달할 수 있다면 또 어찌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할 생각이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이 닦아야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아닌가!

이에 나는 수구(修口)의 관건은 바로 수심(修心)에 있으며 법을 많이 배우고 심성을 제고하는데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매 하나의 표면적인 모순은 배후에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승화가 필요한 요소이며 모순 배후에 감춰진 그 집착심을 제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눈이 단지 상대방의 표면적인 잘못만 바라본다면 그럼 자신의 사람마음에 파란 불을 켜준 것으로 이를 통해 그것이 우리의 대뇌를 주재하게 하는데 그럼 우리는 곧 속인처럼 배후에서 이러쿵저러쿵 담론하게 된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내심(內心)에서 자신의 문제를 찾는다면 일시적으로는 생각이 통하지 않을지라도 곧 가서 법을 배운다면 사부님께서 자신을 점화해주시는 그 구절의 법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왕에 마음을 닦고 또 입을 닦는 것이라면 왜 기꺼이 하지 않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4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