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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시정”에서 느낀 깨달음

글/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동수 교류문장을 듣다가 “자비로운 시정(慈悲指正)”이란 단어에 대해 약간의 깨달음이 있었다.

“자비로운 시정”은 동수들의 수련교류문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어로 의미는 다른 동수들에게 자신이 문제를 보는 국한성과 부족한 점이 있으면 지적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사실 수련 중에서 남을 “시정”하는 쪽이건 아니면 남에게 “시정”당하는 쪽이든 진정으로 “자비로운 시정”을 해내기도 쉽지 않다.

먼저 남을 “시정”하는 쪽에서 말하자면 “자비로운 시정”에서 자비란 단순히 시정의 수식어가 아니라 보다 깊은 내함(內涵)이 담겨 있다.

동수의 인식 중에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그대로 두어 스스로 닦게 하거나 또는 교류해서 부족한 점을 지적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태도는 또한 수련의 부동한 경계이다.

그대로 두면 한 단락 시간을 경과한 후 동수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할 수 있겠지만 길든 짧든 한 단락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구세력이 억지로 더해 본래는 감당하지 말아야 할 마난을 어떤 것은 지나갈 수 있지만 어떤 것은 지나가지 못할 수 있다. 당신이 아주 분명하게 상대방의 집착을 보았으나 고려하는 마음으로 상대가 거절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하고 체면을 중시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 때문에 솔직하게 지적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자신이 마땅히 닦아 버릴 집착심이 아닌가? 동수 개인 수련상의 손실은 또 우리 정체의 손실이 아닌가?

사실 “시정”이란 이 명사는 바로 자신의 인식을 교류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교류를 들으면서 우선 자신이 닦을 곳이 있는지 보아야 한다. 교류하기 전에 자신에게 과시심이 있는 건 아닌지, 남의 부족한 점만 보고 장점은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마치 도처에서 남에게 병을 치료해주려는 그런 심태가 아닌지 보아야 한다.

만약 이런 심태가 없다면 그럼 동수와의 교류는 정말이지 일종 자비로운 상태일 것이다. 우호적이고 평화로운 태도로 의견을 표현함이 자비이며 적당한 시기에 상대방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표현하는 방식 역시 자비이고, 법을 위해 책임지고 감당하기 위해 동수와 교류하는 것은 더욱 자비로운 것이다.

한편 “시정” 당하는 일방에서 보자면, “자비로운 시정”이 교류 중의 상투어나 표면적인 함양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정말로 자신의 흉금을 열고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당신은 상대방의 교류내용을 인정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상대방의 교류형식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당신과 교류하려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사오(邪悟)하는 그런 교류가 아니어야 한다. 교류 중에 또 진정으로 자신의 제고에 유익한 부분이 있다면 그럼 마땅히 더욱 감격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만약 수련인이 모두 법을 위해 책임지는 심태와 포용적인 흉금을 지닐 수 있다면 내 생각에 심성(心性) 제고든 항목의 발전이든 아니면 정체적인 협력 등의 각 방면에서든 우리에게는 모두 하나의 큰 돌파가 있을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수련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4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