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섬남(陝南 섬서 남부) 대법제자 요로(堯路)
【정견망】
수련(修煉)이란 집착을 제거하는 거지만 어떻게 해야 집착을 제거하는 상태라 할 수 있는가? 집착이 표현되어 나올 때는 일종 어떤 상태이며 또 어떻게 해야만 닦아서 넘긴 것인가? 집착이 표현되어 나오는 그 순간의 상태에서 집착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동작을 늦추고 집착을 제거하는 이 상태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나는 스물 한 살이던 96년에 법을 얻은 남자 제자다. 당시 겪었던 한 가지 체험을 말해보고자 한다. 당시 나는 색욕심(色慾心)이 강했는데 때로는 반응이 아주 강해서 때로 조심하지 않으면 자신마저도 몹시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그 단락의 시간이 매번 반나절이 지나야 서서히 사라졌다.
한번은 잠자기 전에 침대 위에서 색욕심이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무의식중에 오직 사상이 움직이지 않도록 지키기만 했다. 침대 위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몸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었다. 일체가 다 조용히 멈췄고(靜止) 주의식이 조용히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대략 1분 정도 후에 이 강렬했던 반응이 곧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생리 및 심리반응도 다 사라졌다. 의외로 이렇게 한 게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전에는 인위적으로 배척하고 억누르거나 법을 외우는 등의 효과는 모두 즉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아주 서서히 없어졌다.
당시 나는 곧 이 상태를 한번 분석해보았다. 나는 집착이 표현되어 나온 이 상태를 붙잡고 집착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움직임을 늦추고 한번 분석해보았다. 이것이 바로 심성(心性)을 지킴이 집착을 제거하는 상태임을 인식했다.
이때 마침 사부님께서 《도법(道法)》 경문을 발표하셨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집착을 제거하는 바로 그때 마땅히 있어야할 상태임을 인식했다. 인위적인 배척・압제・법암기는 일념(一念)으로 만념(萬念)을 대체하는 것으로 인위적으로 신(神)의 일면을 억제한 것이다. 이때에 사람 이쪽 면에 너무 많은 인위적인 생각이 존재하지 말아야 하며 인위적으로 신(神)의 일면이 정법(正法)을 억제하지 말아야 한다. 이때 사람 이쪽 면은 마땅히 생각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데 오직 의념을 움직이지 않음을 지켜낼 수 있어야만 관(關)을 넘어갈 수 있다. 하나를 들면 나머지를 알 수 있듯이 수련의 다른 방면에서도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
가령 남이 당신을 화나게 한다면 당신이 막 성질을 내려고 하는 그때가 바로 집착심이 표현되어 나올 때이자 닦아야 할 때다. 이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화를 내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정념(正念)을 지키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지켜낼 수 있다면 곧 닦아낸 것이다. 오직 의념을 움직이지 않음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곧 관을 넘긴 것이다. 사람 이곳에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은 화를 내지 않고 남과 다투지 않는 것이다.
이때 즉각적으로 어떤 마음을 제거해야 하는지 인식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인식하지 못했다면 지나간 후에 다시 잘 찾아보고 다음에 이 마음을 주의해서 찾아보아야 한다. 오직 움직이지 않음을 지킬 수만 있다면 어쨌든 관은 일단 넘긴 것이다. 만약 자신이 성깔이 나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냈다면 이것이 바로 심성(心性)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닦아내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안으로 찾아서 이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자신의 화를 촉성시켰는지 분석해보아야 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화를 내고 미워하는 마음, 쟁투심, 억울함, 남에게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 악독하게 악을 쓰는 등등. 우리가 심성을 지키면 화를 내거나 미워하고 쟁투하는 등을 배척할 수 있다. 오직 심성을 지켜야 하면 이를 해낼 수 있음이 수련이다. 중점은 지킴에 있다(重在守).
이는 사람 이쪽 면에서 해내야 한다. 물론 설사 동일한 집착이라도 단번에 다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렇게 집착이 한번 표현되면 한번 닦아내고 매번 닦을 때마다 조금씩 옅어진다. 한번 닦아내면 조금 옅어지는데 줄곧 수련과정을 끝까지 걸어 원만에 이를 때까지다.
물론 고층차에서의 수련은 법(法)이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에서 인식하면 직접 집착을 타파할 수 있다. 혜안(慧眼)으로 정(正)과 사(邪)를 알 수 있다. 수련의 층차가 높아질수록 안으로 집착을 찾는 깊이와 폭도 더욱 깊고 더욱 넓어지기 때문이다.
가령 한 차례 법공부에서 내가 법이 창조한 생명의 특징이 서로 다름을 인식했다면 근본적으로 질투심이 생겨나지 말아야 한다. 하늘을 나는 조류가 물에서 헤엄치는 어류를 질투할 필요는 없고 반대로 어류도 조류를 질투할 필요가 없다. 각자 그 명이 있는 것이다. 질투를 한다 해도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도 없고 그저 자신만 더 망칠뿐이다. 이를 인식했다면 그럼 질투의 뿌리를 타파한 것으로 이때부터 질투심이 거의 다 사라져서 아주 옅어질 것이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질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6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