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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다

글/ 후돈(厚敦)

【정견망】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하는가? 그 후 어디로 가는가? 이것은 내가 수련하기 전에 줄곧 해결할 수 없었던 곤혹이었다. 그러다 1996년 다행히 《전법륜》을 읽은 후 비로소 활연히 알게 되었다. 원래 사람의 최초 생명은 우주공간 속에서 생겨난 것으로 인간 세상에 온 데에는 원인이 있다. 이는 좋지 않게 변해서 떨어져 내려왔거나 또는 사명을 지니고 내려왔거나 또는 다른 원인으로 온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세상은 진정한 나의 집이 아니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금 반본귀진하여 되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 수련해서 자신의 천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사람이 된 목적이다.

대법의 깨우침 속에서 나는 서서히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아득히 먼 천체(天體)의 어느 한 층차 속에서 나는 그곳의 왕(王)이었다. 비록 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휘황찬란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왕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우주는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법칙 속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서서히 우주 근본특성 진선인(真・善・忍)에서 멀어졌다.

또한 기나긴 역사변화의 과정을 거치며 점차 괴멸(壞滅)시기로 걸어왔다. 지금은 이미 괴멸의 최후시기에 도달했다. 우주 창세주(創世主)께서는 괴멸 속의 중생이 철저히 훼멸되지 않도록 일부 천국 중생(天衆)들을 이끌고 세상에 내려와 正法하시는 데 주된 의도는 구우주 속의 생명을 새로운 시기의 우주로 제도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나 역시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내려온 천국중생의 일원이었다. 나는 인간세상에 와서 사람의 ‘껍질’(皮)을 쓰고 미혹의 세계에 진입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어렴풋하게나마 자신의 내력을 알았고 세상에 온 대다수 사람이 나와 마찬가지로 위에서 변두리로 내려왔으며 모두 우주 최후 정법시기에 법을 얻고 구도받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대법을 널리 전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세월 속에 세간에서 여러 차례 윤회하면서 두터운 한 층 진흙 속에 파묻혀 점차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망각했고 무엇을 하러 왔는지 잊어버렸다. 세간에서 혼동되었고 사람의 명리정(名利情) 속에 뒤섞여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일찍이 흐리멍덩하게 변이된 그런 인류사상과 인류도덕을 패괴(敗壞)시킨 ‘공산주의(共産主義)’를 따라 선악과 시비를 똑똑히 가리지 못했고, 명리를 위해 다투고 싸우면서 무수한 사람을 해쳤다. 매번 전생할 때마다 늘 많은 나쁜 일들을 저질렀고 매번 아주 많은 빚을 지었다.

나는 본래 사명을 지니고 중생을 구도하러 내려왔지만 그러나 오히려 자신이 오염되어 곧 안 되게 되었다. 다행히 내가 완전히 나빠지기 전에 사부님께서 법(法)을 널리 전하기 시작하셨고 전 우주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장관인 정법노정을 시작하셨다. 세간에 미혹된 천국 중생들이 잇따라 각성해 집으로 돌아가는 정법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만장한 역사 속에 쌓인 먼지를 씻어주셨다. 대법수련에 들어온 수련인들이 법에서 벗어난 일체를 가장 본원(本源)에서부터 바로 잡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가장 표면상에서 우리가 세간에서 형성한 각종 좋지 않은 사상・물질 및 신체를 안에서부터 밖으로 일체 건강하지 못한 요소들을 제거해주셨으며 또한 우리 체내와 가정환경 속의 각종 나쁜 영체(靈體)들을 제거해주셨다. 동시에 우리에게 파룬(法輪)과 치지(氣機) 등 수련에 필요한 일체 기제(機制)를 넣어주셨으며 진수(真修)하는 사람마다 또 사부님 법신이 보호해주신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지옥에서 건져내주신 것과 마찬가지며, 또한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인 《전법륜》을 주셨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모든 사람마음을 깡그리 없애고 끝까지 수련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나 수련(修煉)이란 가장 엄숙한 것이자 또한 가장 간고(艱苦)한 것이다. 줄곧 늘 고험이 있고 마난이 있으며 심지어 또 일부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소업하고 고층차의 법리를 증오(證悟)하기 위해 배치된 것이다.

나는 여러 차례 소업과정을 거쳤다. 한번은 두통이 생겼는데 몇 달 밤낮 연속으로 극심하게 아팠다. 통증이 너무 심해 얼굴이 일그러졌고 심지어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것마저도 곤란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사부님 법상(法像)앞에 무릎을 꿇고 가련하게 사부님을 바라봤다.

“사부님….”

하지만 뒤에 (저를 도와주세요)라는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1997년 《미국법회설법》〈뉴욕법회설법〉에서 우리에게 “그러나 이 우주의 법 테두리 안에는 한 가지 이치가 있다. 당신에게서 업을 없애 줄 때 당신은 반드시 이 일에서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라고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극심한 통증 속에서 십여 일을 버텼다. 하지만 심성(心性)상에서 보자면 나는 아직 “우리의 참음은 전혀 집착이 없고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여러분이 가지려는 것은 이러한 참음이며 이것이야말로 표준에 도달한 참음이다. 이러한 것들 앞에서 당신의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당신이 잘 참는, 실제로 마음조차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이것이야말로 수련의 참음”(《미국서부법회설법》)이라는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다.

나는 초조해졌고 또 걱정되었으며 또 소극적으로 마난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등의 부면(負面)적인 심리가 나타났다. 또한 밖으로 원인을 찾았고 안으로 심성(心性)에서 내부원인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부족한 것을 보았다면 수련상에서 바로 일종 제고다. 나중의 소업과정 속에서 나는 점차 법에서 문제를 볼 수 있었고 ‘병’에 대한 사람의 관념이 담담해졌다.

2005년 목 오른쪽에 계란크기의 단단한 혹이 생겼는데 음식을 삼키거나 숨을 쉬는데도 영향을 주었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다 빨리 병원에 가봐야지 아니면 어떠어떠하게 될 거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속인의 말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내심으로 견정한 일념을 품었다.

‘나는 수련인이니 속인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내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법(法)이 있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지들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나는 자신이 아무리 힘들어도 말하지 않았고 다만 내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연공하면 곧 그것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극렬한 통증이 올 때면 또 그것(혹)을 하루하루 바라보면서 속으로 또 불안해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죽는 것은 아닐까? 죽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연공인인 나를 어떻게 볼까?’ 등의 사람마음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나는 줄곧 법을 공부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옳지 않음을 곧 알았다. 나는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죽는다는 생각이 나오는가? 이는 내가 그것을 병으로 본 게 아닌가? 병은 속인이 걸리는 것이니 나는 또 자신을 속인으로 간주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뉴질랜드법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미 대법을 만났는데 또 그것을 상관해서 무엇 하겠는가? 마음을 내려놓으라. 아직 한 가닥 목숨이 남아있고, 정념이 있지 않은가? 대법 중에서 수련하라. 예컨대 당신이 정말로 다른 부분은 지켜내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정념 이 부분은 당신이 지켜낼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활연히 깨달았다. 그렇다, 나는 이미 대법을 수련하는데 또 무얼 상관한단 말인가? 일체를 다 대법에 맡기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자! 사상적으로 그런 것들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자 점차적으로 그것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그것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고 또 줄어들었다.

여러 차례 마련(磨鍊)을 거쳐 나는 더는 소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그것을 수련 중의 일상적인 일로 간주했다. 고생을 겪으면 업이 사라지니 신체적인 반응을 중시하지 않았다. 다만 매 차례 고통을 오직 마음을 닦고 초상적인 법리를 실증하는 기회로 삼았다. 또한 자신에게 아직 수련을 잘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니 반드시 정진해야 한다는 경고로 간주했다.

수련 중에서 나는 또 많은 ‘마음고생(苦其心志)’을 겪었다. 사람이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명리정(名利情) 및 각종 욕망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면 그 과정에서 마음이 아주 괴롭다. 하지만 내려놓지 못하면 바로 사람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 것으로 수련 성취할 수 없다.

직장에서 상사가 한 가지 새로운 항목을 맡겼다. 나는 집중적으로 몰두하며 1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기초를 잡고 흐름도를 만들고 제도를 새로 만들었다. 실천 과정 중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수정했고 최후에 우리 업종에서 선도적인 업무경험을 쌓았고 상사의 인정을 받아 널리 보급되었다.

그런데 바로 막 흥이 나려고 할 때 인사이동이 있었고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아주 대범하게 내가 이룩한 모든 것을 그에게 다 인수했고 그는 앉아서 수많은 영광과 보너스 및 승진 등의 혜택을 받았다. 나는 속으로 감정이 상했다. 이는 내가 희생을 치른 성과인데 도리어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그가 얻었다면서 기분 나빠했다.

하지만 법을 공부할 때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해주셨다. 이는 명리를 추구하고 공평함을 추구하는 마음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으로, 당신이 정말 무사무아(無私無我)할 때면 이런 구하려는 마음이 가로막지 못한다. 나는 표면상으로 아주 대범하고 개의치 않는 듯 보였지만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넘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제거할 수 있도록 이후 “남 좋은 일을 시킨” 유사한 일이 두세 번 발생했다. 몇 차례 시련을 겪고 나서 나는 마침내 법리에 명백해졌다. 공평함을 구하는 것은 속인의 위사위아(爲私爲我)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익이 손실당할까 두려워하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명명백백하게 고생을 겪고, 명명백백하게 대가를 치르며, 명명백백하게 잃을 것을 요구하시는데, 이는 우리더러 빨리 사람에서 벗어나와 신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사부님께서는 법(法)에서 진일보로 내게 또 다른 법리를 점화해주셨다. 그것은 바로 신(神)이 사물을 보는 것은 단지 표면만 보고 단지 한때만을 보는 게 아니라 역사적이고 전(全)방위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사건이 발생했을 때 표면적으로 보면 불공평할 수 있지만 정체적으로 보면 공평한 것이다. 수련인은 마땅히 신(神)처럼 사람의 기점에서 문제를 보지 말고 아주 높은 층차에서 봐야만 비로소 근본적으로 사람의 상태를 개변할 수 있고 신의 경지(境界) 속으로 승화할 수 있다. 법리가 명백해져 마음을 내려놓으면 더는 명리에 휘둘리지 않게 되고 심신이 모두 가볍고 즐거워질 수 있다.

대법수련이 비록 고생스럽긴 하지만 또 아주 신성(神聖)한 것이다. 이는 사람 마음을 내려놓는 과정이자 오염을 씻는 과정이며 업의 빚을 없애는 과정이며 고층차로 제고해 진아(真我)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매 하나의 집착을 내려놓고, 매 하나의 마난을 넘기고, 매 하나의 법리에 명백해지면 모두 승화된 후의 감각과 기쁨이 있다. 몸이 새처럼 가벼워지고, 사상이 넓게 열리며, 시야가 높고 멀어지며, 정신이 맑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은 일종 후천적으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벼워진 것으로 일종 자신의 본질에 접근한 느낌이었다. 이는 수련인이 승화한 후 불성(佛性)의 체험이었다.

대법홍전(大法洪傳) 30주년을 맞아 나 자신 수련경험의 일부와 그 깨달음을 통해 아직도 미망(迷茫)의 세간에 있는 천국 중생들을 일깨우고자 한다. 빨리 대법진상을 찾아 인생의 진리를 알고 진짜 자신을 찾아야 한다. 정법노정을 따라잡고 법선(法船)에 올라 사부님을 따라 천국으로 돌아갑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