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청죽(清竹)
【정견망】
‘전단지 한 장(一張傳單)’이란 영화를 본 소감
뉴 센츄리 필름에서 최근에 공개한 ‘전단지 한 장’이란 제목의 단편영화를 몇차 례 보고나니 확실히 내게 주는 수익이 적지 않았다. 이 영화 속에서 나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의 자비와 선량함을 보았고 그들의 무사무아(無私無我)하고 숭고한 경지(境界)를 보았으며 또한 그들이 중공의 잔혹한 박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희생을 무릅쓰고 용감히 나아가는 견인불굴(堅韌不屈)의 정신을 보았다. 이 정신은 중국인들을 감동시키는 동시에 또 일깨워준다.
영화에서 한 여자 파룬궁 수련생이 진장전단을 나눠줄 때 옷을 잘 갖춰 입고 행동거지도 우아하며 얼굴에는 시종 자연스런 미소를 띤다. 그 자태와 그 장면은 그야말로 와! 선녀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처럼 보는 이들이 탄복하고 흠모하게 만든다.
물론 우리가 보다시피 파룬궁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고 전단지를 배포하는 것은 아주 고생스럽다. 1년 사계절 빗속에서도 중단하지 않으며 아울러 중공에 체포될 위험도 무릅써야 한다.
그렇다,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잔혹한 박해는 이미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파룬궁 수련생들이 중국에서 진상을 알리는 일은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그것은 정말 일반적인 경지의 일반적인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과정 중에 나는 생각했다. 한 떠돌이가,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무시당하던 사람이 왜 최후에 파룬궁 수련생들처럼 거리에 나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가장 대단하고 가장 신성한 일을 하게 되었을까?
영화에서 내가 본 것은 파룬궁 수련생의 선(善)이 그를 감화한 것이다. 파룬궁 수련생이 전단지를 나눠줄 때 그를 혐오하지 않았고 진상전단뿐 아니라 자신이 지니고 있던 1백여 위안의 돈을 전부 그에게 주었다. 당시 이 떠돌이는 전단지와 돈을 받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그는 이 세상에 이렇게 선량한 사람이 있고 아울러 그렇게 소중한 것을 왜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주는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한 부의 소중한 전단과 돈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고 그에게 천지가 개벽하는 거대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파룬궁의 수익을 얻은 사람이 된 것이다. 때문에 중공이 이들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해 은인(恩人)을 체포하는 것을 본 떠돌이는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고 목숨을 걸고 수련생을 구했던 것이다.
전통문화에서는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滴水之恩當湧泉相報)”는 말이 있다. 이 떠돌이의 행동은 바로 중화전통(中華傳統)의 이념과 부합하는 것으로 이 때문에 그는 더욱 큰 복을 받는다. 어떤 복보(福報)인가? 그것은 바로 천서(天書)인 《전법륜(轉法輪)》을 얻은 것으로 이 때문에 그가 그런 용기를 내서 거리에 나가 그렇게 신성하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왕에 떠돌이마저 이 점을 해낼 수 있다면 나는 왜 할 수 없는가? 나 역시 파룬궁의 수익을 입은 사람이 아닌가! 나는 과거에 B형 간염을 앓아 일을 할 수 없었고 가사책임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때 어떤 파룬궁 수련생이 내게 “파룬따하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복을 받으실 겁니다.” 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정말로 이 말을 믿었다! 내가 진심으로 외우자 내 몸에 기적이 나타났고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었던 병이 뜻밖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보라, 내가 이런 은혜를 보답하지 않을 수 있는가?
또 다른 방면에서 말하자면 “사람은 지나간 후 이름을 남기려 하고 기러기는 지나간 후 소리를 남기려 한다(人過留名雁過留聲)”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생의 추구는 무엇인가? 5천년 중국역사를 되돌아보면 제왕장상(帝王將相)에서 재자가인(才子佳人)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좋은 명성을 남기려하지 않은 이가 누가 있는가? 어느 한 제왕이든 한무제나 당태종 강희제가 되고 싶지 않았겠는가? 어느 한 사람이든 악비(岳飛)와 같은 민족의 영웅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겠는가? 영원히 대를 이어 전해져 만민의 존경을 받고 싶을 것이다.
좀 더 식견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예견할 수 있다시피 파룬궁 수련생,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그런 성자(聖者), 군왕(君王), 지사(志士)들도 모두 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머지않은 장래에 매 파룬궁 수련생의 사적(事跡)이 모두 드러나 백세(百世) 천세(天世) 만세(萬世)에 걸쳐 전해지게 될 것을 확신한다.
기왕에 이 일체를 분명히 안다면 그럼 나는 왜 영화에 나오는 떠돌이처럼 하지 못하는가? 왜 거리에 나가 현지 민중들에게 진상전단을 나눠주지 못하는가? 이것은 공덕이 무량하고 백세(百世)에 걸쳐 좋은 명성을 남기는 게 아닌가?
공자는 “어진 사람을 보면 같아지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또 전통 아동교육서인 《제자규(弟子規)》에서도 “남이 선한 모습을 보면 같아지려고 생각한다”고 했다. 즉 좋은 일과 어진 행동은 따라 배우려한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 자유사회에 살고 있고 중공사당의 박해문제에도 연루되지 않는다. 하물며 현지 파룬궁 수련생들이 제작한 전단지는 내용이 아주 좋고 또 정교하다. 이렇게 좋은 조건이 있는데 왜 나는 아직도 주저한단 말인가?
이에 나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영화 속 수련생을 모방해 옷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예의바른 행동과 넓은 도량으로 대범하게 하는데 지금은 비록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내가 웃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지만 내심으로는 웃는 얼굴로 맞이한다는 이런 일념을 내보낸다.
거리에 서서 많은 사람들이 아주 예의바른 모습으로 내가 건넨 진상전단을 받는 것을 보는 그 순간 내게는 어떤 감수가 있는가? 나의 심정은 대단히 기쁘고 흥분되는데 마치 매 세포가 다 뛰어오르는 것 같다. 나는 정말로 자신이 그렇게 신성(神聖)하고 위대함에 진감했다. 불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7층 탑을 세우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성인 역시 “공덕(功德)이 무량(無量)하다”고 하셨다. 어쩌면 내가 한 이 일 역시 공덕이 무량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뉴센츄리 필름 관계자들이 좋은 작품을 연출해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이 영화는 나의 양지(良知)를 일깨워주었고 나의 인성(人性)을 회복시켜 나로 하여금 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는 꿈이 아니라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