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사람의 관념을 타파해 신을 향해 나아가자

글/ 동북 대법제자 운서(雲舒)

【정견망】

매번 대륙소식을 볼 때 늘 일부 동수들이 불법으로 납치, 심판, 판결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몹시 아프다. 동수들은 모두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 지금은 어려움이 아주 크고 시간이 또 긴박한 상황이라 박해를 받으면 손실이 아주 크다. 동시에 또 가족과 친지들에게 대법이 수련인에게 가져다준 아름다움을 그림자로 덮어씌워 손실이 실로 너무나도 크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자신이 마땅히 할 일을 하면서 또 박해받지 않을 수 있는가? 지금 사당(邪黨)의 감시 장비는 도처에 다 있고, 빅 데이터, 안면인식, 추적 장비, 제보하면 포상하는 등등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 없다. 확실히 중생을 구도하는데 어려움을 가져왔다. 하지만 대법제자가 그렇다고 또 후퇴할 수 없으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사람 이곳에 국한되어, 사람 이 층의 이치로 가늠한다면 그럼 정말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수련인으로 속인을 뛰어넘는다.

사부님께서는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사부: 수련인이 중시하는 것은 정념이다. 정념이 아주 강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인이고 당신은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당신은 속인 요소와 저층 법리에 통제당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곧 신처럼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만 신처럼 될 수 있는가?

어떤 동수는 생각한다.

‘내게 몸을 숨겨주는 투명망토와 같은 옷이 있다면 그럼 진상자료를 배포해도 안전할 텐데.’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런 게 있는가 없는가? 대답은 있다. ‘대도무형(大道無形)’에는 아마도 이 층의 함의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우리 여기서는 法輪(파룬)ㆍ氣機(치지)를 넣어주어야 하며, 일체 수련의 기제(機制) 등 많고도 많은, 만 가지도 넘는 이런 것을 모두 당신에게 주어야 하는데, 마치 종자처럼 당신에게 심어준다.”

여기서 만 가지도 넘는 것에 이런 영패(令牌 역주: 마패처럼 직위와 신분을 밝히는 패찰)와 투명망토가 포함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영패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대법제자다.

이 우주에서 제일가는 칭호로 그 어떤 층차와 어떤 공간에도 다 통용되고 두루 통하며 막힘이 없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연공초마(煉功招魔)를 말씀하실 때 무한(武漢)의 한 30세 젊은이가 색마를 마주해 우선적으로 생각한 것이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자 단번에 무엇이나 다 없어졌다고 말씀하셨다.

명혜(明慧)교류문장 중에 이런 한 가지 일이 나온다.

어떤 여자 동수가 진상을 알리고 돌아오면서 다른 사람의 차를 타고 오다가 우연히 악인(惡人)이 사념(邪念)을 일으켜 동수의 손을 잡고는 놓지 않았다. 이 여자 동수가 나는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말하자 그 악인 기사는 곧 주눅이 들어 손을 놓았고 동수는 차에서 내려 무사히 걸어갔다. 이 공간에서 당신이 정념으로 견정하게 자신의 신분을 말하면 다른 공간의 무수한 정신(正神)과 호법신(護法神)들이 당신을 돕지 않겠는가?

이런 사례는 고서(古書) 곳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또 몸을 숨기는 옷을 말하자면 내가 이해하기에 다른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가 바로 앞에 있어도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다른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무술기공을 말씀하시면서 “어떤 사람은 심지어 다른 공간에 둔갑해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재주가 비록 속인 중에는 없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속인이 아니지 않은가?

동수들의 교류 중에도 이런 내용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여자 동수가 경찰에게 불법으로 쫓기다 어느 언덕 위아래로 모두 경찰에 포위된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보니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었고 몇 포기 쑥 뒤(사실 전혀 몸을 숨길 수 없는 곳이다)에 숨었다. 그녀는 그들이 자신을 보지 못하게 하라고 생각했다. 이들 경찰이 그녀 근처에까지 수색하러 왔지만 찾지 못하고 그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최근 우리 어떤 사람은 여기에 앉았다가 없어지며 잠시 후에 그는 또 나타나는데 곧 이러하며 더 큰 신통도 모두 나타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당시에 학습반에서 수련생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나의 개인적인 이해로 다른 공간에 들어가는 데는 그리 높은 층차가 필요한 게 아니다.

션윈(神韵)공연 속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아주 많다. 가령 ‘한번 꾼 꿈 3백년(一夢三百年)’이 그렇다. 하지만 그건 여전히 속인이 아닌가!

사실 고서에는 이런 기록이 아주 많다. 소도(小道)에서도 어떤 사람이 손으로 벽에 문을 그리고는 나갔다고 했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그가 벽에 손으로 문을 하나 그린 것이 무슨 작용을 일으켰겠는가? 담의 분자성분은 근본적으로 개변되지 않았고 개변된 것은 그의 마음이다.

그는 이것을 문이라 생각하고 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갈 수 있었다. 심지어 외계생물마저도 다 이 물질공간을 돌파할 수 있는데 우리는 왜 돌파할 수 없단 말인가? 왜냐하면 우리가 한 쌍의 육안을 너무 믿고 관념을 전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돌파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로 사부님께서는 이미 이 공간을 돌파해 다른 공간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 같이 《전법륜》의 한 단락을 읽어보자.

“여러분이 알다시피 미립자 물질에는 분자ㆍ원자ㆍ양성자가 있는데, 맨 아래로 캐 내려가, 만약 당신이 매 층마다 이 한 층의 면을 볼 수 있다면, 그래서 한 개의 점이 아니라 분자 한 층의 면, 원자 한 층의 면, 양성자 한 층의 면, 원자핵 한 층의 면을 보았다면, 당신은 곧 부동(不同)한 공간 중에서 존재하는 형식을 본 것이다. 사람의 신체를 포함한 어떤 물체든 모두 우주공간의 공간 층차와 동시에 존재하고 서로 통한다.”

내 생각에 만약 정말로 그것들이 어떻게 동시에 존재하고 서로 통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면 아마 이 공간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제자는 정념(正念)을 중시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돌파하고 그렇게 돌파할 필요도 없이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동수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명혜 문장인지 아니면 그가 직접 들은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어떤 동수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자료를 나눠주다가 경찰의 추격을 받아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머리를 숙이고 앞으로 달리면서 보니 양쪽에 두 건물 사이에 철 난간이 있었다. 그는 이를 보지 못했고 그냥 앞으로 나아갔는데 자전거를 타고 철 난간을 그냥 지나갔다. 뒤에서 쫓아오던 경찰이 황당해서 눈이 둥그레졌다.

사실 션윈(神韵)공연에도 신통(神通)을 운용하는 프로그램이 아주 많다. 가령 ‘제공이 악당을 징벌하다(濟公懲惡)’는 무용극에서 제공은 사나운 악당들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마치 장난감 인형을 갖고 놀듯이 마음대로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면 그들은 곧 그렇게 한다. 그 소화상의 이야기 역시 이와 같다.

이런 공능을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다 말씀하셨다. 나의 개인적인 이해로는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신통을 운용하도록 허락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2》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와 《정진요지 3》 〈정념으로 악행을 제지하라〉에서 모두 명확하게 우리더러 신통을 운용할 것을 요구하셨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다 우리에게 주셨는데 단지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이다. 능력의 근원은 사부님께 있고 대법에서 내원하며 그것은 우리의 정념 속에 존재한다.

나 자신도 늘 생각하는데 이렇게 다년간 수련하는데 왜 신처럼 되지 못하는가? 법리상에서는 명백한데 해 해낼 수 없는가?

첫째, 우리가 진정으로 신사신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관념을 개변하지 못했다. 자신을 작게 보고 사악을 크게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사부님을 낮게 보고 법을 얕잡아본 것이다. 우리가 닦는 것은 우주대법(宇宙大法)이고 우리 사부님은 대궁(大穹)의 주(主)가 아니신가! 법이 아무리 크고 사부님께서 아무리 높아도 우리 마음속에 이런 개념이 없다면 모두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봉신연의》 속의 12대 신선(역주: 원시천존의 12대 제자)은 모두 대단한 도행(道行)이 있고 그들의 제자 역시 대단한 신통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한 수행인의 도행과 능력은 그의 근기 및 오성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관건은 그의 사부의 능력에 달려 있는데 다시 말해 사부의 층차 또는 도행이다. 그런데 이들의 사부는 원시천존(元始天尊)으로 바로 여래 층차다.

그렇다면 우리 사부님은 누구신가? 바로 창세주(創世主)시다. 우리의 위치와 능력은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데 왜 이런 위치와 능력이 있는가? 왜냐하면 어깨에 중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렇게 큰 능력이 없으면 이런 사명을 완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그러므로 중생구도 속에서 초상(超常)적인 것이야말로 정상이다.

동수의 교류문장 중에 이런 비유가 있다. 박해받는 것은 바로 금고봉(金箍棒 여의봉)을 손에 들고 구타당하는 것과 같고 금 사발을 손에 들고 탁발하는 것과 같다. 정말로 그렇다. 이럴 때 사부님께서는 어떤 심정이시겠는가? 구세력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어려운 일에 봉착하면 마땅히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청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때 만약 사부님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구세력이 곧 틈을 탈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북미순회설법》에서 이런 법을 말씀하셨다.

“그것들은 “이것이 당신의 제자입니까? 당신이 보십시오. 그가 당신을 사부로 여깁니까? 그가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깁니까? 그에게 정념이 있습니까? 그가 생사를 내려놓았습니까? 그가 금강부동(金剛不動)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자신이 해내지 못한다면 정말로 사부님을 어렵게 한다.

오직 우리가 견정하게 신사신법(信師信法)하고 사람의 관념을 개변해 사람의 인식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곧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즉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더 잘할 수 있고 최후의 길을 더 잘 걸어 자신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 아래에 우리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따지웬회의설법》의 한 단락으로 서로 격려하도록 하자.

“당신이 정념이 족할 수 있다면, 당신은 곧 당신의 범위 중에서 높고 크게 될 수 있고, 당신의 범위 중에서 좋지 못한 그런 것들을 내리누를 수 있을 것이다. 매 한 대법제자가 모두 이 한 점을 해낼 수 있다면 전 세계가 모두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계상에서 당신들 매 한 사람이 하나의 아주 큰 범위를 맡았으며, 한 지방의 중생들을 대표했기 때문이다.”

층차의 한계가 있어서 법에서의 인식 역시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일에 대한 견해에도 분명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런 부분이 있다면 여러분의 지적과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