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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욕관을 넘는 과정에 느낀 사부님의 자비

글/ 중국 수련생

【정견망】

최근 색욕심이 또 나왔는데 그것도 아주 흉흉했다. 표현되는 것이 분명히 좋지 않은 물건임을 알면서도 또 참아내지 못했고 나중에 또 후회했다. 정법(正法)이 이 한걸음에까지 이르러, 구세력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우리가 깨끗이 제거하지 못한 집착을 강화해, 우리가 수련의 여러 방면에서 느슨해지게 만들고 더 나아가 우리의 신사신법(信師信法)을 에누리해서 근본 상에서 우리를 훼멸하려 한다. 이 한 관(關)을 잘 넘기지 못한 후 이튿날 겪은 두 가지 일에서 나는 사부님의 자비를 감수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사정은 다음과 같았다.

가족이 아주 오랜 기간 외지에 나가야 해서 아침에 그들을 보낸 후 집에 돌아왔다. 집 문을 여는데 문득 탄내가 났다. 깜짝 놀라, 자세히 살펴보니 원래 아침에 가족이 수란(水卵)을 만든 후 부엌의 가스밸브를 완전히 잠그지 않아서 약한 불이 그냥 남아 있었던 것이다. 가족은 이를 몰랐다. 나는 곧장 가스밸브를 잠궜다.

또 낮에 혼자 밥을 먹는데 아침에 작은 사발에 대파 자른 게 남아 있었다. 원래 그냥 버리려고 했지만 웬일인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먹으려 했다. 나는 평소 밥을 급하게 먹는 편이라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삼켰을 텐데 오늘은 웬일인지 아주 천천히 먹었다. 그러다가 막 파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문득 이쑤시개가 눈에 들어왔다. 가족은 평소 식사하고 나서 이쑤시개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는데 아마 그가 실수로 사발에 던져 넣은 게 분명했다.

​이 2가지 사건이 일어난 시간 간격은 겨우 몇 시간에 불과했다. 나는 나중에 정말 몹시 두려움을 느꼈고 또한 사부님께서 정말로 내 옆에 계시면서 구세력이 연속 두 차례나 색욕심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구실로 내게 악독한 수단을 쓰려는 걸 자비롭게 막아주신 것이다.

원래 가족을 보내고 나서 나는 본래 밖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곧장 집에 돌아왔다. 만약 조금만 늦게 돌아왔다면 정말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또 그 사발 속의 이쑤시개 역시 구세력의 배치였는데 파를 이쑤시개와 함께 두면 색깔이나 모양이 비슷해 구별하기 힘들다. 만약 이걸 그냥 삼켰더라면 식도가 손상되거나 아니면 장이나 위가 손상되었을 것이다. 그럼 그 고통은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자비로 나를 위해 해결해주신 것이다.

장기간 법공부와 교류문장을 통해 나는 물론 색욕심(色慾心)을 제거하지 않으면 박해를 받기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 관을 넘기지 못한 후 당시에 머릿속에 한 가지 염두가 떠올랐는데 바로 나는 수련에 희망이 없으며 곧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곧바로 자신을 바로잡았다. 절대 포기할 수 없고 사부님께서는 박해를 배치하지 않으셨다. 내가 잘 수련하지 못한 것은 나의 일이며 구세력은 손 쓸 자격이 없다. 아마 이 일념이 그래도 올발랐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비로소 내 문제를 해결해주셨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사부님도 방법이 없으셨을 것이다.

며칠 후 나는 우연히 정견망 문장 《색심(色心)은 몇 층이 있을까?》를 보았다. 사실 전에도 본 적이 있는 글이지만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이 관은 이미 넘어갔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사부님께서 관을 여러 차례 넘기지 못했다고 해서 낙담하지 말라고 점화해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

교류문장에서는 “대법제자의 신체에는 무수한 층(層)이 있고 삼계 내의 부분에는 모두 색심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 한 부분 역시 수없이 많은 층차가 있다. 때문에 수련 원만하기 전까지 모두 끊임없이 색심을 제거해야 하며 수많은 층이 있기 때문에 색심이란 한 번, 두 번, 몇 번, 몇십 번 관을 넘겼다고 해도 번거롭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다.

이 말은 거의 나에 대해 한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리해도 넘기지 못하자 너무나 고민이 되어 자신은 수련할 재목이 못 된다는 이런 염두를 품었기 때문이다.

수련과정 중에 늘 넘기지 못하는 관이 있을 때, 특히 모종의 관이 반복될 때 자신의 사상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아주 관건이다. 만약 자포자기(自暴自棄) 한다면 이는 곧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것인데 단지 이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관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글을 써내어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리는 동시에 나는 몹시 부끄러움을 느낀다. 앞으로 수련 중에서 오직 정진, 정진할 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