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련생
【정견망】
대법제자의 사람구함(救人)은 정념(正念)에 의지하는데 정념은 법에서 내원한다. 정념이 강할수록 사람구하는 효과가 더욱 좋고 힘도 더욱 커진다. 구도 받는 사람은 고층에서 온 생명으로 무량한 중생을 거느리고 대법제자의 구도를 기다리고 있다. 이 역시 대법제자의 사명이자 책임이다.
그럼 왜 오직 대법제자만이 그들을 구할 자격이 있는가? 왜냐하면 대법제자는 법이 육성한 생명으로 법 속의 입자이기 때문이다. 오직 대법제자만이 법을 알고 이해하기에 그들을 구할 때 비로소 법에 있을 수 있고 법이 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법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인류공간에서 일종 전달매체이자 형식이 되어 서약과 사명을 실현하는 작용을 일으킬 뿐이다.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오직 대법(大法)뿐이다!
대면 진상으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중에 일대 일이나 또는 일대 몇 또는 일대 십이나 일대 몇십도 다 가능하다. 사람을 구하는 중에 오직 정념이 충족하기만 하면 곧 지혜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실천 중에서 그들을 구할 수 있다. (이는 단지 말뿐이 아니라 모두 이미 직접 경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법이 펼쳐지고 법의 위력이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인데 법에 불가능이란 없다!
사실 우리가 사람 속에서 하는 일체는 단지 일종의 표상(表象)이며 진정하게 사람을 구하는 것은 법이다. 왜냐하면 법은 원용한 것으로 이치가 완벽해야 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정념이며 진상알림은 보조다. 구체적으로는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해야 하며 모두 주도면밀하게 해야만 비로소 가장 좋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사람을 구할 때는 정념이 반드시 강해야 한다! 오직 강해야만 비로소 그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해체할 수 있고 사람 속의 좋지 않은 것을 억제할 수 있으며 주아(主我)가 비로소 되돌아 나와 태도를 표명할 수 있고 비로소 진정으로 그를 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정하게 구도할 것은 그 생명의 본질(역주: 사람의 주원신을 구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법에 명백한 것과 절반 명백하거나 명백하지 않은 것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진정으로 법에 명백하면 사람을 구하는 중에서 속인과 혼동하기 어렵고 시시각각 늘 청성한 정념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법에 절반 명백하거나 명백하지 않으면 곧 말하기가 어려운데 이미 속인과 혼동한 것으로 그는 또 “나는 법에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람을 구하는 효과와 힘은 아마 좋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의 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법이 그 어떤 작용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영원히 법과의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게 하는데 사람을 구하는 중에서 자신을 크게 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또 수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시각각 사람을 구하는 속에 수련이 녹아들어가게 해야 한다.
구도(救) 속에 수련(修)이 있고 수련(修) 속에 구도(救)가 있으니 혼연일체가 된다.
대법제자가 실증하는 것은 법(法)이고 구도하는 것은 중생이며 자신은 이를 통해 수련한다고 말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