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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잘 닦은 체오(體悟)

글/ 중국 대법제자 소은룡(小銀龍)

【정견망】

때로 일부 나와 맞지 않는 남편의 표현을 볼 때면 마음속에서 바르지 않은 염두가 생겨나는데, 그의 표현이 내 심사(心思)에 맞지 않는다거나 또는 자신의 관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종종 맹목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남편의 다른 행동에 대해서도 평가 절하한다. 처음에는 그래도 이런 염두가 옳지 않음을 알고 끊임없이 그것을 배척했지만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이런 염두가 또 뛰쳐나왔다. 때로 법공부가 따라가지 못할 때면 또 이 염두를 자신이라고 여긴다.

어느 날 나는 남편의 행동은 내게 보여주는 것임을 맹렬히 느꼈다. 남편이 나의 관점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배척하는데, 생각해보니 자신이 만약 어느 방면에서 법을 잘 원용하지 못했다면 그럼 세인들에게 주는 감각은 대법제자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이 아주 중요함을 알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을 대표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대법제자의 칭호를 부여하셨으니 그럼 우리의 일언일행(一言一行)이 모두 마땅히 법에 부합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언짢은 일에 부딪히고, 당신을 화나게 하는 일에 부딪히며, 개인이익과 자아가 자극받았을 때, 당신이 안에서 찾아보고, 자신을 수련하며, 자신의 누락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갈등 속에서 당신이 정말 무고(無辜)하다 해도 “오, 알겠다. 내가 틀림없이 무언가 잘못했구나. 설사 정말로 잘못이 없다 해도, 아마 이전에 빚진 업을 갚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잘해서 갚아야 할 것을 갚겠다.”고 하면 된다. 끊임없이 이러한 문제에 부딪히고, 끊임없이 이러한 일에 부딪히며, 끊임없이 당신 자신을 수련한다.”

(《각지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사부님의 법이 알려주다시피 자아(自我)가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비로소 타인을 배척하는 반응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안으로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어디에 누락이 있음을 보고도 도리어 여전히 관념을 사용해 남의 옳고 그름을 가늠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을 닦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관념에 이끌려 비이지적으로 되는데 이렇게 한다면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표준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진다.

사부님께서는 《2019년 뉴욕법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부가 이 휘황(輝煌)을 개창했는데, 당신들을 이런 역사적인 시각으로 이끌어 주었다. 당신들 자신을 잘 수련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당신들 자신을 한껏 펼쳐 보이고, 더욱 잘하라!”

사부님의 설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우주는 정법(正法)하고 있고 일체 생명은 모두 사부님의 정법 속에 있다. 대법제자는 조사정법(助師正法)의 사자(使者)로 우주 중에서 바른 요소의 보위자이다. 사실 우리도 생명의 본원에서부터 시작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사부님의 법속에서 끊임없이 바로잡고 끊임없이 동화해야 하는데, 우리가 바로잡고 동화하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우주 중의 변이된 요소를 닦아 버린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체(主體)가 수련하고 있고 사람 속에서 우리의 수련 상태가 바로 우리의 경지(境界)와 층차의 체현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사람 속에서 자신을 잘 닦지 못한다면 그럼 이때가 바로 우리 현재 있는 층차 속에서 바로잡지 못하고 동화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대법제자의 내원은 모두 아주 고층차에서 온 것으로 무량무계(無量無計)한 운운중생(芸芸眾生)을 짊어지고 있다. 표면상으로 보자면 우리의 개체 생명이 인간세상에서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고 있지만 입체적으로 보자면 이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소위 모순에 부딪힐 때 사실 이때 당신의 본성의 일면이 작용을 발휘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선과 악 두 가지 본성이 있고, 수련이란 바로 끊임없이 마성(魔性)을 닦아버리고 선(善)의 요소가 갈수록 더 강대해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 앞에 모순이 나타날 때 당신의 첫 일념이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대하는가? 아니면 사람의 방법에 따라 해결하는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나 자신의 20여 년간 수련과정을 돌아보니 마치 시시각각 늘 선(善)과 악(惡)의 대결 속에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수련이 끊임없이 제고됨에 따라 이런 상태를 갈수록 더 체험하고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구우주(舊宇宙)는 위사(爲私)한 것으로 자아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사부님의 정법 속에서 구우주 중의 바로잡히지 않은 생명은 곧 자신을 견지하고 사(私)를 수호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나온다. 대법제자에 대해서도 그들의 변이된 이념에 따라 소위 고험하고 사부님의 정법을 교란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는 구세력의 일체를 전반적으로 부정한다”(《각지설법 4》〈2004년 시카고법회설법〉)고 하셨다.

사부님의 법에서 깨달은 것은 우리 이 소우주(小宇宙)의 변이되고 불순한 요소들은 구우주의 사(私)에서 온 것으로 우리가 자신을 수호하고 자아에 집착하며 남을 강제할 때 표현되어 나오는 게 바로 구우주 변이된 요소의 축소판이다. 표현되어 나온 상태가 바로 수련인의 표준으로 문제를 볼 수 없는 것으로 완전히 사람의 관념으로 대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 남에게 정의를 내리는데, 이는 구세력이 변이된 관념으로 대법제자를 고험하는 것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만약 당신이 만난 소위 모순이 사부님께서 당신의 제고를 위해 안배하신 거라면, 당신에게 모순을 만들어준 사람은 바로 인간세상이란 이 큰 무대의 배우이다. 당신은 이 모순 속에서 법을 스승으로 삼고 안으로 자신을 찾으며 이를 통해 제고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연극은 곧 원만(圓滿)해지는데 왜냐하면 당신이 법속에서 자신을 바로잡았고 당신이 이 연극의 주역이기 때문에 자신을 잘 수련하는 동시에 중생을 구도하고 있는 것이다.

얕은 수련 체오(體悟)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