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평범(平凡)
【정견망】
어느 날 아내와 가정불화의 원인에 관해 말하는데 아내가 말했다.
“가정불화의 원인은 서로 운명을 인정하지 않고 밖에서 출로를 찾기 때문에 각종 도덕이 어지러운 현상을 초래한 거예요.”
이 말에서 나는 ‘운명을 인정함(認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전통문화에서는 운명을 인정하고 쟁투를 말하지 않았다. 전통문화 서적에서 고인(古人)의 생활태도를 보면 운명을 인정한다고 해서 소극적인 생활태도였던 것은 아니다. 고인은 ‘천명(天命)’을 인정하고 우주법칙을 인정했으며 하늘의 이치에 따라 일을 했다.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하늘의 이치를 분명히 알았고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선택 앞에서 선(善)을 택해 따랐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찌 소극적인 생활태도일 수 있겠는가?
송나라 때 요시가(姚時可)란 사람이 감옥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재상 장방창(張邦昌)의 친척 형제인 장(張) 모(某)가 당파를 결성해 역모를 꾀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장모와 그의 가족들이 모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자신이 죽을 운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여긴 장모가 어느 날 요시가에게 말했다.
“장차 내가 죽게 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오. 내가 어느 암실에 금을 숨겨놓았소. 당신이 가져가도 되는데 번거롭지만 나를 위해 몰래 독약을 좀 사다주시오. 조정에서 (사형) 판결서가 내려온 후 내 즉시 가족들과 함께 자진하리다. 뒷일은 모두 당신께 맡기겠소.”
그러자 요시가가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지금 조정은 널리 인정(仁政)을 베풀고 송사도 대부분 관대하게 처리합니다. 일단, 제가 먼저 당신의 소식을 좀 알아보겠습니다. 만약 확실히 죄를 벗어날 수 없다면 그때 이 계획을 실행해도 늦지 않으실 겁니다.”
나중에 장모는 조사를 거쳐 “모반에 참여하지 않았음”이 밝혀져 무죄 석방되었다. 장모는 요시가가 자신의 일가족을 온전히 지켜준 것에 대해 몹시 고마워하며 은자 1백량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요시가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원래 요시가에게는 아들이 없었는데 이 일이 있은 후 잇따라 8명의 아들을 낳았고 모두들 재능이 뛰어났다. 나중에 아들들이 잇따라 과거에 급제해 모두들 명사(名士)가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보면 요시가는 남의 위급한 상황을 이용하는 대신 선을 택했고 선덕(善德)을 쌓았다. 때문에 그의 운명이 개변되어 여덟 명의 아들이 과거에 급제했으니 그 복보(福報)가 얼마나 깊고 두터운지 알 수 있다!
“운명을 인정함”이란 지금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좋은 운을 기다리거나 액운이 지나가길 기다린다는 그런 뜻이 아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기본적인 학습, 업무, 생활 등 각종 활동이 있고 사람 사이의 각종 교제가 있어 사람이 세상과 격리되어 혼자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운명을 인정한다는 것은 명(命)에 정해진 것이 있고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하늘의 이치를 믿는 것이다. 즉, 인과응보를 믿고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저지르면 악보를 당하는 것을 믿으며 선악의 선택 앞에서 선념(善念)과 선행(善行)을 선택해야만 신불(神佛)의 가지(加持)를 얻을 수 있고 보다 아름다운 생명의 미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공은 “운명을 인정한다”는 함의를 왜곡시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고 하늘에서 저절로 떡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봉건미신으로 왜곡해 하늘의 이치를 왜곡하고 선악에 보응이 따른다는 하늘의 이치를 은폐했다. 중공은 쟁투(爭鬪)・분투(奮鬪)・약육강식 등의 단어로 대신하고 악행으로 선을 행하고 덕을 쌓는 것을 대신했다.
중공의 이런 다년간의 세뇌를 거쳐 많은 중국인들이 분투와 쟁투를 인생철학이자 일종의 적극적인 생활태도로 여긴다. 당신이 만약 “자연스러움에 따름”을 말하면 그들은 비웃으면서 나태하고 진취적인 생각이 없다고 여긴다. 오늘날 중국대륙의 도덕이 타락하고 어지러운 현상들이 잇따라 나타나는 것은 중공이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당문화를 주입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각종 현상들을 보면 부부가 이혼하고 또 재혼하지만, 기본적인 의식주와 생활용품을 마주해 여전히 각종 문제와 모순이 나타나며, 여전히 상상속의 행복을 얻지 못한다.
사람이 운명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늘을 인정하지 않고 신불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부부의 결합이란 연분(緣份)으로 촉성된 것이고 신불의 배치임을 믿지 않는 것이다. 쟁투 속에서 악업(惡業)을 짓는데 신불이 어찌 사람에게 행복한 생활을 배치할 수 있겠는가? 이는 신불이 원하는 것이 아니며 이는 중공 마귀가 원하는 것이다. 신불을 무시해 조성된 패괴된 가치관의 지배하에 사람들은 온갖 나쁜 일을 저질러 신불에 의해 훼멸 당한다.
중공은 왜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하는가? 왜 전력을 다해 우주 특성 진선인(真善忍)을 비방하는가? 바로 인류를 훼멸하려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다. 세인들은 모두 진선인을 인정하고 중공의 거짓・사악・투쟁을 믿지 않으며 진선인에 순응해 좋은 사람이 되려 한다. 아울러 좋은 사람의 경지(境界)란 그 끝이 없는 것으로 사람에게 부동한 정도의 복(福)과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사람마다 모두 남을 위해 생각하고 사회의 발전과 미래를 고려한다면 이 사회는 얼마나 아름다워지겠는가!
하지만 중공이 타파하려는 게 바로 이런 아름다움이며 그것이 원하는 것은 인류가 갈수록 더 나빠져서 철저히 훼멸되는 것이다.
누가 바르고 누가 사악한지 보기만 해도 일목요연하지 않은가? 파룬궁 수련자들이 진상을 알리는 것은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 중공이 진상을 저지하고 파룬궁을 박해함은 진정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파룬궁 진상 속에는 사람의 미래가 달려 있다. 사람이 어떻게 이를 대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가 하는 일념(一念)의 차이에 따라 정말로 하늘과 땅처럼 벌어진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