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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수련의 기점에서 집착을 제거

글/ 일본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수련을 통해 자신과 일부 동수들이 이미 분명히 집착심을 찾았고 또 발정념으로 그것을 제거하고 있음에도 이런 집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마치 늘 뿌리를 제거할 수 없는 것 같음을 발견했다. 마치 가지치기를 할 때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가지와 잎을 잘라도 끊임없이 또 자라는 것처럼 분주히 가지치기 하느라 피로했다.

나는 착실한 수련과 사부님의 점화를 통해 이 상황은 구세력의 배치와 박해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때 마땅히 정법수련(正法修煉)의 기점에 서서 집착의 근원과 기제(機制)를 철저히 제거하지 않으면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다.

1. 집착의 근원을 똑똑히 간파

사부님께서는 《미국플로리다법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법 이 일은 먼젓번 지구에서 잘 배치해 놓은 것으로, 이미 다 한번 실험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일은 이처럼 오랜 연대(年代)를 거쳐 모두 계통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인류 사회,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이 일체가 우연히 존재하는 것인가? 현재 매 대법제자의 일거일동, 일언일행, 심지어 당신이 사색하는 문제마저 모두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장래에 당신들은 모두 매우 세밀하게 배치된 것임을 볼 것인데, 내가 배치한 것이 아니며, 이는 이런 구세력(舊勢力)이 배치한 것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고층공간에서 아래로 걸어 내려올 때 구세력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상세한 배치를 했고 우리 몸에 한 세트 구세력의 기제를 설치했는데 여기에는 우리의 사상을 포함한다. 집착은 사상 속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해하기에 진아(真我)는 사람마음의 집착이 없는 것으로 구세력이 우리에게 억지로 더한 것이다.

2. 정법의 기점에서 집착을 제거

나는 구세력은 개인수련을 중시함을 깨달았는데 그것들은 단지 수련인에게 강제로 사람마음을 더하고 그를 주목하면서 만약 수련인이 그것에게 교란당하면 그 기회를 이용해 박해한다. 당신이 반복적으로 관(關)을 넘는 속에서 전력으로 정법(正法)에 참여할 수 없게 만든다. 이 한 방면에서 말하자면 정법을 교란하는 게 아닌가? 이는 또 일부 수련인들이 집착심을 자신으로 간주하게 하고 그것의 내원을 철저히 간파하지 못하게 한다. 다시 말해 마음속으로 단호하게 그것을 부정하고 제거하지 못하게 하는데 이 때문에 그것을 철저하게 제거하지 못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가 정법 일을 하고 있거나 또는 하려고 준비할 때 병업가상이 나타나면 우리는 모두 똑똑히 가려낼 수 있고 구세력의 교란과 박해임을 알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제거하고 이를 통해 구세력의 박해를 타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반복적으로 나타나지만 제거하지 못하는 집착에 대해서는 오히려 동일한 인식과 방법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사실 병업관(病業關)이든 심성관(心性關)이든 본질적으로는 모두 같은 것으로 모두 심성관이다.

특히 때로 구세력이 강제로 집착을 더한 후에 물질이 대단히 커지는 것을 느끼는데 동수를 소침하게 만들어 움직이지 않게 하거나 심지어 발정념이나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는 일조차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이는 또 다른 형식의 교란과 박해가 아닌가? 그럼 왜 병업가상처럼 단호하게 그것을 부정하고 제거하지 못하는가? 그러므로 ‘간파’가 아주 관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집착을 간파할 수 없는 것이 사실 구세력의 배치와 조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거할 때 과감하고 단호하지 못할 것이며 효과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사실 이전에 발정념을 할 때도 의념 속에서 그 배후 구세력의 기제와 요소를 제거하긴 했지만 그러나 그때는 집착심과 구세력 기제의 관계 및 구세력이 그것을 이용해 우리를 험악하게 박해함을 심각하고 투철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때는 단지 표면만 알고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다. 비록 일념을 더하긴 했지만 역시 형식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마치 모호한 인식으로 발정념을 하면 곧 정확하게 목표를 조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반대로 우리가 진정으로 집착심의 근원을 깨닫고 아울러 이 법리를 똑바로 간파한 후에 다시 발정념을 하면 진정으로 겨냥하는 것은 그 배후의 구세력 및 기제를 함께 제거하고 소각할 수 있다. 마치 폭탄으로 적의 지휘부를 단번에 폭파시킨 것처럼 사악이 곧바로 약화됨을 느꼈다. 집착을 제거하는 힘도 아주 크게 강화되었다.

3. 사부님께서는 이미 정법제자에게 사악을 제거할 능력을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2》〈제자의 위대함〉에서 “대법제자가 정법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선례가 없다.”라고 하셨다.

또 《북미순회설법》에서 “나는 1999년의 7.20에서 7.20 이전의 수련생들을 전부 제 위치로 밀었는데 당신들의 가장 높은 위치로 밀어 올렸다.”라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도법》에서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제자로서 마난이 올 때, 정말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또는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하도록 마음을 둔다면, 충분히 고비를 넘을 수 있다. 끝없이 끌고 내려간다면, 만약 心性(씬씽) 또는 행위에 다른 문제가 없다면, 사악한 마(魔)가 당신들이 방임(放任)한 틈을 탄 것이 틀림없다. 수련하는 사람은 필경 속인이 아닌데, 그럼 본성의 일면이 왜 법을 바로잡지 않는가?”

나는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정법의 사명과 능력을 부여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 우리를 가장 높은 위치 즉 신(神)의 위치로 밀어주셨음을 깨달았다. 내가 이해하기에 우리의 신의 일면은 이미 정법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 우리는 법속에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정법능력을 부여하셨음을 알고 또한 우리에게 발정념이란 법보(法寶)를 부여하셨음을 안다. 우리는 역사상의 수련인에게 종래로 없었던 영광과 전례 없이 막강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이 도달하지 못하면 또 어떻게 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마치 정사대전(正邪大戰) 때처럼 시시각각 사부님께서 당신에게 초정밀도의 막강한 화기를 주셨음에도 당신이 사용하지 못하고 여전히 소총 하나를 들고 싸운다면 그 결과는 뻔할 것이다. 적을 물리치지 못하거나 아마 패배할 수도 있는데 바로 정법의 위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반대로 만약 우리가 자신이 이미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확신하고 충분히 불법신통(佛法神通)을 발휘하고 발정념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사악을 제거하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북미순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들이 수련을 잘 하지 못한다면 여러분도 보았지만, 표면신체의 변화 또한 상대적으로 작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대표한 그 방대한 천체와 당신의 신체는 같은 것이며 대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많은 생명들이 당신이 수련을 잘 하지 못함으로써 제도되지 못할 수 있고, 당신이 수련을 잘 하지 못함으로써 좋게 변할 수 없을 것이며, 당신이 많은 마음을 제거하지 못함으로써 그들을 교란하며 역으로 그들 역시 당신을 교란하게 된다.”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의 신체는 우리 천체대궁(天體大穹)의 중생과 대응한다. 우리 천체 범위 내에서 우리는 마땅히 정법(正法)을 책임져야 하며 천체 내에서 바로잡히지 못한 것들을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 바로잡히지 않으려는 것은 제거해야 하며 우리 세계의 중생을 구도하는 동시에 신우주의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이상은 현재 층차에서 깨달음으로 만약 법에 없는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