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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마음의 근원을 찾아내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우리는 《전법륜》을 학습하는 가운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한 수련인이 나한 과위에 도달해 장차 원만하려 할 때 환희심과 두려운 마음이 생겨 떨어져 내려간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이 일화를 통해 우리에게 법리를 알려주셨고 그 어떤 두려운 마음도 수련의 길에서 사관(死關 막다른 관)이 될 수 있음을 차분히 알려주셨다.

사부님께서는 특히 더 명확하게 지적해주셨다.

“반대로, 어떠한 집착과 두려운 마음도 모두 당신을 원만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두려운 마음일지라도 그 자체가 바로 당신이 원만할 수 없는 관(關)이자 또한 당신이 사악한 방향으로 전화(轉化)하거나 배반하게 되는 요소이다.”[1]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2]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내함(內涵)이 바로 두려운 마음은 구세력이 박해를 가중시키는 하나의 중요한 구실이자 요소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대법제자로서 두려운 마음을 철저히 제거하고 절대 대충하거나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2019년 사악의 불법적인 박해를 받기 전까지는 줄곧 운좋게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영광을 지니고 기본적으로 정정당당하게 사부님께서 부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했고 내게는 두려운 마음이 없다고 여겨왔다.

또 사악에게 불법 감금되어 중공 공안, 검찰, 사법 및 사악한 610 정법위(政法委) 등으로 구성된 소위 전문팀 등의 강온 양면의 박해 압력 앞에서도 사악에 굴복해 협력하거나 대법과 사부님께 면목이 없거나 먹칠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일찍이 간수소에서 《원옥음(冤獄吟) 억울한 감옥의 노래》이란 시를 지어 당시 자신이 이미 생사를 내려놓은 심태와 경지를 보여준 적이 있다.

억울하게 옥에 갇힌 지 어언 1년
일찍이 생사를 가벼이 여겼네
영욕과 고락을 차 마시듯 여기니
명리정과 원망 연기처럼 사라졌네
자비하신 은사님 수시로 보호하며
드넓은 법리로 마음 밭을 적셔주셨네
신공(神功)으로 금강의 몸을 단련하나니
사부님 도와 중생 구하고 원만해서 돌아가리라

身陷冤獄整一年
早將生死作等閑
榮辱苦樂品茶茗
名利情恨化雲煙
恩師慈悲隨時護
法理浩瀚潤心田
神功煉就金剛體
助師救眾圓滿還

바로 이 때문에 박해를 가중하려던 사악의 망령된 음모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갑자기 내 몸에 아주 심각한 병업가상을 연화(演化)해주셨다. 시 병원에 가서 1주일간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자 2차례 ‘위급통지서’를 보냈다. 결국 간수소에서 주동적으로 내 친족에게 연락해 ‘병보석(取保候审)’ 수속을 밟게 했다. 나는 병원을 떠나자마자 곧바로 의약치료를 포기하고 법공부와 연공을 강화해 신속하게 건강을 회복했다. 주위에서 내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대법의 초상성과 신기함을 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치에 따라 말하자면 나는 ‘두려운 마음(怕心)’이란 이 관(關)을 마땅히 넘어간 것으로 여겼다. 사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사당에게 억울하게 투옥당한 박해에서 벗어난 후 가족들이 울면서 내가 박해를 받을 때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압력, 두려움, 곤란과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었음을 말할 때, 또 친정(親情)의 따스함과 천륜(天倫)의 즐거움을 절실히 느꼈을 때, 정사(情絲)는 오히려 내 마음 깊은 곳에 이름 모를 공포와 두려움을 얽어맸다. 가족들은 거듭해서 내가 박해받을 때 자신들이 당한 고통과 재난을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노라고 호소했다.

나는 친정에 이끌려 안절부절 하는 사람마음을 철저히 닦아버리지 못했다. 특히 나에 대한 사당(邪黨) 법원의 불법적이고 억울한 판결결과를 접하고 나서 더욱 그랬는데, 사당의 박해 음모는 나더러 여전히 1년 넘게 형기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공포감과 부면(負面)사유가 수시로 침습해 내 마음을 괴롭혔고 내 정념(正念)을 약화시키며 좀먹었다.

나는 또 가족과 친정(親情)이 가져다주는 따스함을 더는 잃고 싶지 않았다. 또한 가족들이 또 한 차례 고난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감옥에 있을 때 당한 비인간적인 모욕 역시 나로 하여금 가슴 떨리게 했다. 나는 내 신체가 감옥의 열악한 환경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더욱이 내 의지가 사악의 가혹한 시달림을 감당하고 저지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나는 한 대법수련자로서 일단 의지가 꺾이면 육신을 잃는 것보다 훨씬 더 두려운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약 2달 전에 중공 사당 법원이 소위 ‘병보석’ 기간이 만료되었다면서 1심 법원에서 가족에게 이 기간 내에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보낼 것을 독촉해왔다. 표면적으로는 ‘병보석’을 ‘보석치료’로 바꾸는데 꼭 필요한 서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병원치료를 아예 받지 않고 대법수련으로 건강을 회복했는데 어디 가서 그런 자료를 구한단 말인가?

그것들의 사악한 논리는 당신이 20년 넘게 파룬궁을 수련했으니 만약 병이 위중해서 보석을 허가하고 연장한다면 파룬궁을 수련해도 온몸이 병 투성이라고 모함하는 것이고 만약 내가 치료를 받지 않고 파룬궁을 수련해서 건강해졌다면 그럼 다시 감옥에 넣어 박해를 가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 이런 비인간적인 죄악이 반복해서 발생하거나 지속되게 할 수 없다. 또한 사악의 요구 및 그것의 소위 규칙에 협력할 수 없다. 그것들의 말대로 될 순 없다. 내 수련의 길은 사부님께서 친히 배치하신 것으로 사악한 구세력 및 중공 사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는 마땅히 바른 법리이며 또한 대법제자의 마땅한 태도이자 정념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현실에서 사당 법원이 여러 차례 가족을 핍박하며 지정된 병원에 가서 나더러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급(中級)법원에서 언제든 사람을 보내 나를 병원에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일이 생길지라도 심지어 중풍으로 마비된 많은 환자들도 마찬가지로 수감했다”고 위협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내 마음 역시 수시로 흔들렸고 ‘두려움’이란 먹구름이 수시로 내 마음을 덮어씌워 내 정념의 빛을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이지(理智)는 나로 하여금 내가 당면한 것이 한 차례 중대한 고험이자 수련의 길에서 큰 고비이며 자신의 공간장 범위 내에서 한 차례 정사대전(正邪大戰)임을 인식할 수 있게 했다. 나는 마땅히 고밀도・고품질의 발정념으로 대법과 사부님께서 부여한 불법신통(佛法神通)으로 나에 대한 사악의 불법적인 박해를 해체해야 한다.

하지만 불법신통을 뜻대로 발휘하고 운용하려면 반드시 우선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해 ‘두려워하는’ 물질요소를 철저히 해체해야 한다. 사악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어찌 사악을 싸워 이기고, 사악을 제거하며 박해를 해체할 수 있겠는가?

이에 나는 신통을 운용해 사악을 해체하기 전에 우선 중점적으로 ‘두려운 마음’을 겨냥해 청리했다. 하지만 ‘두려운’ 생명은 아주 깊이 은폐되어 있었고 또 아주 교활했다. 그렇다면 그것의 근원은 필경 어디에 있는가? 나는 우선 안일을 구하는 마음을 찾아냈다. 진일보로 정(情)에 집착하는 사심(私心)을 찾아냈다. 그렇다, 이런 마음이 모두 존재하고 또 이것들 모두 두려운 마음을 구성하는 일부 요소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운 마음의 완전한 근원은 아니었다. 나는 또 계속해서 깊이 파고 뿌리를 향해 찾아들어갔다.

이때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만약 정말로 곤란 앞에서 염두가 아주 바르면, 사악의 박해 앞에서, 교란 앞에서 당신이 정념으로 단호하게 말한 한마디는, 사악을 즉석에서 해체할 수 있으며, (박수) 사악에게 이용된 사람이 고개 돌리고 도망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종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교란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할 것이다. 바로 이렇게 바른 믿음(正信)의 일념을, 누구든 이 정념을 지켜낼 수 있으면, 그는 최후까지 걸어갈 수 있으며 대법이 만든 위대한 신이 될 수 있다.”[3]

나는 이중에서 “이렇게 바른 믿음(正信)의 일념”에서 “정신(正信)”이란 두 글자가 맹렬하게 나를 때렸다

나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왜 박해를 받는가? 왜 교란을 당하는가? 왜 사악을 즉각 해체하지 못하는가? 왜 박해와 교란이 연기처럼 사라져 소실되지 않는가? 왜 사악에게 이용당한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도망치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안절부절 두려워하면서 이것저것을 의심하는가? 이는 자신에게 정신(正信)의 일념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물론 만약 평소에 어떤 사람이 내게 당신은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정신(正信)이 부족하다고 말했다면 나는 아마 그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의문이란 염두가 막 나오는 그 찰나에 머릿속에서 또 다른 인정하지 않으려는 목소리가 변명하면서 항의했다.

“나는 20여 년간 사존을 따라 온갖 역경과 위험 및 놀라운 일들을 겪으며 관을 넘어 오늘까지 걸어왔는데 내가 사부님을 믿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사부님을 믿는단 말이냐? 내가 법을 믿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법을 믿는단 말이냐?”

또 다른 목소리가 조급해하지 말라면서 내게 천천히 물었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4]라고 말씀하셨는데 너는 이를 믿었느냐?

사부님께서는 또 “하나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萬) 가지 움직임을 제압할 수 있다(一個心不動能制萬動)”[5]라고 하셨는데 너는 믿었느냐?

또 있는데 “대법제자로서는 일체 사악하고 구세력이 배치한 것을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한다.”[1]라고 하셨는데 너는 부정했는가? 어떻게 부정했는가?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6]

너는 정말로 행동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았는가? 너는 사부님의 법신께서 늘 네 옆에서 너를 지켜보며 보호해주시는 걸 믿느냐? 너는 사부님께서 반드시 너를 위해 처리해줄 것임을 믿었느냐?

또 “제자의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이 있노라”[7]라고 하셨는데 너는 완전히 믿었느냐?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라는 경문을 너는 몇 번이나 배웠는가? 너는 그 내함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했느냐? 또 어느 정도로 믿었느냐? 너는 자신의 불법신통(佛法神通)에 대해 신념이 있었느냐? 너는 정념을 운용해 사악을 제거하고 악인을 제압하며 아픔을 악을 행하는 자의 몸에 전이할 수 있다는 등의 관련 법리를 이해했느냐? 깊이 믿고 의심하지 않았느냐? 너는 자신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임을 믿느냐? 너는 자신이 아주 높은 층차에서 창세주를 따라 세상에 내려와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위대한 신(神)임을 믿느냐? 너는 대법의 법력(法力)이 끝이 없음을 믿느냐? 너는 사존의 신통은 무소불능(無所不能)임을 믿느냐?

진실로 만약 이런 법리들에 대해 모두 백분의 백 확신하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럼 주불(主佛)께서 친히 전수한 제자이자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주대법이 육성한 끝없는 광염(光焰)을 지닌 미래의 신으로서 두려울 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두려움”이라고? “사부가 있고 법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운가?”[8]

나는 마침내 두려움의 최종근원은 바로 신사신법(信師信法)에 심각한 에누리가 있었기 때문임을 찾아냈다! 아울러 이런 에누리를 조성한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바로 다년간 중공사당 당문화(黨文化)의 무신론, 진화론 및 현대관념의식의 독소가 작용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나는 닫혀서 수련하는 유형에 속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아야 확실하다”는 현대관념의식이 내가 보지 못하거나 만지지 못하는 다른 공간의 진상에 대해 반신반의(半信半疑)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비록 대법 속에서 이렇게 다년간 수련했음에도 사실상 많은 구체적인 문제에서 여전히 감성적인 인식 층면에 머물러 나아가지 못했고 백분의 백 신사신법 하는데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견고한 믿음의 정도를 에누리할수록 신통(神通)의 전개도 상응하게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데 이렇게 되면 악순환이 형성된다. 이 역시 “두려운 마음”을 만들고 자라나게 하는 근원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직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을 굳게 믿어야만 한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9]

다른 방법은 없고 오직 법 공부를 강화해야만 한다.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찬 자신(自身)이란 이 그릇에 대법의 맑은 샘물을 관통시켜 끊임없이 씻어내고 끊임없이 세척해야 한다. 이 그릇속의 더러운 물질들이 대법의 맑은 샘물에 씻겨진 후 갈수록 적어질 때면 자신 역시 갈수록 순정(純淨)해진다. 완전히 깨끗해서 밝아질 때면 자신이 이미 대법법리와 우주특성과 절대적으로 용흡(溶洽)되어 대법의 원재료로 자신의 일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며 그럼 자신은 이미 대법의 한 입자가 된 것이다.

백분의 백 신사신법(信師信法)하면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의 일체 사악한 배치를 승인하지 않으시며 그것의 출현과 존재 자체도 승인하지 않으시는데 그것들은 전혀 정법에 참여할 자격이 없고 대법제자에 대해 소위 고험을 진행할 자격은 더욱 없다. 대법 법리 속에는 본래 대법제자의 수련 중에 박해와 박해를 감당한다는 배치가 아예 없다.

나는 법을 읽고 법을 베끼며 법을 암송하는 등의 각종 방식으로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강화하는 동시에 중점적으로 신사신법에 에누리를 조성한 무신론, 진화론, 현대의식관념 등의 패괴(敗壞)된 물질요소를 정념으로 제거했고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신념을 갈수록 견정하게 했다. 부면사유가 갈수록 적어졌고 갈수록 약해지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자 ‘두려움’이란 물질이 연기처럼 날아갔고 ‘두려운’ 생명이 깡그리 사라졌다.

“대법제자로서 당신의 일체는 곧 대법(大法)이 구성해 준 것”[1]이다.

대법제자 수련의 길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전반적으로 배치하신 것이다.

이에 나는 확고한 일념을 발출했다.

“감히 나를 찾아올 수 있는 것은 대법진상을 명백히 알고 대법의 구도를 받으려는 인연 있는 생명들뿐이다! 망령되게 대법제자에게 소란을 피우거나 박해하려는 생명은 오직 불법신통(佛法神通)에 의해 깨끗이 제거되고 소멸될 뿐이다! 계속해서 미혹에 빠져 깨닫지 못하고 대법과 대법제자를 파괴하는데 참여한 세간의 악인들은 마땅히 즉각 현세현보(現世現報)를 받아야 한다!”

“法正乾坤 邪惡全滅! 法正天地 現世現報!”[10]

대법은 나를 깨끗이 씻어주고 나를 충실히 해주었으며 내 정신(正信)과 정념(正念)을 강화해주었다. ‘두려움’의 요소는 공격하지 않아도 저절로 타파되었고 사악의 박해음모도 연기처럼 사라졌으며 내 공간장과 수련환경 역시 끝없이 맑은 하늘로 되었다!

최근 수련의 길에서 겪은 심로(心路)여정이자 현재 개인 층차에서의 얕은 체오(體悟)다. 이를 써내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여러분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정진요지 2》〈대법은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다〉
[2] 리훙쯔 사부님 저작:《홍음 2》〈두려울 것 뭐냐〉
[3] 리훙쯔 사부님 저작:《미국서부국제법회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전법륜》
[5] 리훙쯔 사부님 저작:《각지설법 13》〈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7] 리훙쯔 사부님 저작:《홍음 2》〈사도은〉
[8] 리훙쯔 사부님 저작:《시드니법회설법》
[9] 리훙쯔 사부님 저작:《정진요지 2》〈교란을 배제하자〉
[10] 리훙쯔 사부님 저작:《정진요지 2》〈발정념 2가지 수인〉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