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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말하지 못하게 함”을 말하다

【정견망】

속인들의 보편적인 약점이라면 남이 말하는 것을 들으려 하지 않고 남의 비판을 싫어하는 것이다. 남이 자신에 대해 말하면 어떤 이는 벼락처럼 화를 내면서 얼굴마저 벌겋게 된다. 어떤 이는 억지로 강변하면서 계속 변명한다. 그러나 사실상 낯가죽이 얇거나 체면을 따지거나 남이 말을 못하게 하고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명성(名聲)・명예(名譽)・명망(名望)이 건드려진 것으로 자신이 명(名)을 내려놓지 못한 체현이다.

속인 사회 속에서 수련하면서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이 마음이 사(私)를 위하고 명(名)을 위하며 정(情)을 위한 것임을 의식하지 못할 때, 또 누가 말해도 다 되고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안으로 찾음이 수련의 가장 본질이자 기본기임을 인식하지 못할 때면, 그럼 남의 말에 반박하면서 말만 하면 화를 내고 끊임없이 해명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당신들이 한 그 일체를 나는 다 보았고 또 정말 대단하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가장 본질적으로 한 사람이 수련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증명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이것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당신이 어느 방면에서나 다 잘했더라도 이 방면에서 좋지 않다면, 그건 수련인일 수 없다.”[1]

어떤 동수는 속인 중에서 일찍이 무슨 원장(院長)이었고 수련 중에 보도소장이었다. 그녀의 연공동작은 줄곧 정확하지 않았지만 워낙 성격이 강해서 남이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했다. 그녀를 도와 바로잡아 주려 해도 고치지 않았는데 결국 병업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經)은 마음을 닦고 공(功)은 몸을 연마”[2]하는데 동작이 정확하지 않으면 번티(本體)가 어떻게 개변될 수 있겠는가?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연마해도 모두 헛되이 연마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바로 잡을 기회를 거듭 놓쳐버렸다.

또 어떤 동수는 진상 알리기를 아주 잘하지만 줄곧 친척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원망했다. 그녀더러 안으로 찾으라고 하면 한마디에 폭발했다.

“나는 이미 다 고쳤으니 이 일은 전혀 내게 있지 않고 모두 친척이 틀렸어요.”

그녀는 1년 넘게 병업관을 넘고 있는데 나중에는 또 경찰이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 원망과 증오는 모두 흑색물질이니 자신의 원망(怨)이 공산사당의 증오(恨)를 초래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제때에 반성하고 원한(怨恨)을 닦아버렸다면 결과는 아마 달라졌을 것이다.

“사부: 이러한 것은 노제자 중에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의 가장 뚜렷한 표현은, 그들은 늘 사람과 비교하며, 늘 그들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법의 각 층차의 요구로 자신을 가늠하지 못합니다.

신: 이러한 문제는 이미 몹시 심각합니다. 상대방이 어떠어떠하다고 그들이 본 것으로 반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3]

수련은 절대 자만하고 만족하지 말아야 하며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고 끊임없이 자아를 돌파해야만 제고할 수 있다.

또 어떤 동수는 세 가지 일을 아주 잘했지만 친정(親情)이 아주 무거웠다. 가족이 사채의 수렁에 깊이 빠져 동수들이 모두 법으로 가늠하라고 권했지만 그녀는 아주 당당하게 반박했다. “내 가족인데 내가 상관하지 않으면 누가 상관합니까!”

그녀는 가족을 위해 도처로 다니며 돈을 빌렸지만 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자신마저 채무위기에 빠졌다.

“육친정(親情)에 집착함은, 기필코 그로 인해 지치고 얽매이며 마에 사로잡히게 됨이라, 그 정사(情絲)를 잡아 쥐어 일생토록 방해받으니, 나이가 들면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4]

동수들의 일깨움은 아마도 사부님의 점화였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깨닫지 못하고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또 어떤 동수는 속인의 강자이고 능력자이고, 어떤 이는 또 공부에 탁월하거나 지도자, 소장이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남들의 추켜올림과 칭찬을 향수해왔기에 여태껏 누구에게 건드려지거나 남의 말을 들어보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늘 자신이 옳다고 여기며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동수는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그 어떤 귀에 거슬리는 말은 선의적인 일깨움이자 사부님의 점화일 수 있다. 자아를 반성하고 안으로 자신을 찾아야만 비로소 진수(真修)이고 비로소 제고할 수 있다. 사람 속의 모든 영광이나 사람 속의 자랑은 모두 우리가 반드시 내려놓아야 할 것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련에 걸림돌이 된다.

그렇다면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관념을 어떻게 전변(轉變)할 수 있는가?

우선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겸허(謙虛)해야 하며 그래야만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성망(聲望)은 법 학습을 잘함으로써 수립되는 것이다.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잘못이 없을 수 있겠는가?”[5]

허물을 들으면 기뻐하면서 바다처럼 넓은 포용력으로 남의 건의를 자신의 제고를 위한 사다리로 삼아 이를 이용해 경지를 제고할 수 있다.

반대로 허물을 듣고 화를 내면 흉금이 좁은 것으로 남을 배척하고 스스로 잘난 척하는 것은 오성이 비교적 차한 것으로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길 원하지 않는 상태이다.

그 다음으로 부족함을 인식하는 것이 개변의 시작이다.

“수련하는 과정은 바로 부단히 자신의 부족을 인식함으로써 부족을 없애버리는 과정이다. 다만, 가장 근본적인 집착은 일찍 많이 인식할수록 좋을 뿐이다. 인식하게 된 자체가 바로 제고이다.”[6]

어떤 동수는 “어딘가 나의 부족한 점을 보게 되면 반드시 알려주기 바랍니다.”라고 거듭 당부한다. 진정한 책임은 서로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일깨워주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주동적으로 남에게 의견을 구하고 방법을 찾아 결점을 고치려 해야만 비로소 제고가 더욱 빠를 수 있다.

또 하나는 내심에서 우러나와 안으로 찾아야 한다.

“진정한 수련은 곧 마음을 닦아야 하고, 안으로 닦아야 하며,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밖에서 찾는 것이 없다.”[7]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고 남의 건의를 배척하는 것은 바로 안으로 찾길 거부하고 자신을 닦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바람은 아주 중요하다. 매 한 차례 비난에 직면해 만약 모두 진정으로 안으로 찾을 수 있고 극복하고자 고치기 위해 노력한다면 진정으로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오로지 진정으로 안으로 찾아야 하며, 시시각각 늘 자신의 잘못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남이 솔직하게 일깨워주는 것임에랴? 우리에게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또 하나는 꾸준히 법 암기를 견지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변명하거나 반박하길 좋아한다면 그럼 반드시 관련된 법리를 여러 번 외워야 한다. 가령 양치하거나 밥을 먹거나 거리를 가는 등 일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법을 외울 수 있다.

가령 나는 반복적으로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 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8]를 외운 후 나는 비로소 누가 옳고 누가 틀리든 모두 내가 틀린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 반복적으로

“강변(強辯)에 부딪혀도 다투지 말지니
안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수련이라
밝히려 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거니
마음 비워 집착 없으면 명견(明見)이 나온다네”[9]를 외운 후 나는 해명은 바로 쟁투하려는 것으로 바로 안으로 찾지 않는 것이며 해명하려는 것은 모두 사람마음이 무거운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 하물며 자신이 거듭해서 해명하는 것임에랴? 이는 또 자신의 흉금이 활달하고 넓지 못한 것으로 수련한 것이 많이 차한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우리 사부님의 법을 다시 한 번 배워보자.

“오늘 나는 다시 이 문제를 제출하며 동시에 여러분을 도와 형성된 물질을 아래로 제거한다. (박수) 그러나 양성된 습관은 당신들이 고쳐야 하며 반드시 고쳐야 한다. 절대 주의해야 하는데, 지금부터 시작해서 누가 다시 남에게 말을 못하게 한다면 그가 바로 정진하지 않는 것이며, 누가 다시 남에게 말을 못하게 한다면 그는 바로 표현한 것이 수련인의 상태가 아닌데, 최소한 이 한 점에서 말이다. (박수) 누가 만일 이 하나의 고비를 더는 넘기려 하지 않는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럼 너무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련인의 가장 근본적이고 또한 가장 마땅히 제거해야 할 것이며, 또한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것으로, 당신이 제거하지 않는다면 원만을 향해 걸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1]

우리 함께 이 단락 법을 잘 배우고 명심해서 시시각각 대조했으면 한다.

작은 견해니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동화>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시간과의 대화>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수련자 금기>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 4》<2003년 애틀란타법회설법>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8]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 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9]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 3》<논쟁하지 말라>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