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우리는 어떤 물건을 한 위치에 놓으려면 그것에게 적합한 환경과 평평한 곳을 찾아야 함을 안다. 이렇게 해야만 평탄하고 안정적인 곳에 물건을 잘 내려놓을 수 있고, 이렇게 내려놓은 물건은 외계의 객관적인 요소에 따라 제멋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물건이 그것이 접촉하는 면과 틈이 없어서 외력의 건드림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련도 마찬가지다. 만약 사람 속에서 형성한 관념과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면, 곧 처음처럼 수련하려는 자신의 마음이 흔들려서 정진하지 못할 것이다. 내려놓지 못한데다 또 인위적으로 번뇌를 더하게 된다. 나는 최근 법공부와 모순을 겪으면서 비로소 내려놓지 못한 그런 나의 마음을 보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주 위선적이고 또 몹시 교활해서 모순으로 건드려지지 않으면 여전히 위장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 자신은 어떤 마음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한다. 사실 요구는 높다.”(《각지설법 12》〈세계파룬따파의 날 설법〉)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의 부족을 대조해보니 나는 마치 그 어떤 마음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늘 좌우로 흔들리고 불안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어떤 마음이든 다 내려놓아야지만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자신의 수련상태가 곧 자신을 장애할 수 있다.
왜 내려놓지 못하는가? 왜냐하면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려 하고 목적에 도달하려는 생각이 있으면, 이런 잠재적인 사(私)가 공간장(空間場)을 순정하지 못하고 불순물이 섞이게 한다. 이런 순정하지 못한 마음이 자신의 층차 돌파를 장애해 장기간 모순과 번뇌 속에 빠져들어 뛰쳐나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련환경이 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이 방면에서 자신의 부족을 보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최근 한 단락 경험은 나를 놀라 깨어나게 했다. 이는 자신에게 문제가 나타난 것이지 남이 어떻게 한 게 아니다. 수련이란 마땅히 자신을 찾아야 하며 밖을 향해 볼 수 없다.
자신이 진정으로 내려놓지 못한 사람마음과 집착을 관찰했을 때 나는 마치 그 내려놓지 못한 배후의 가련하고 가증스런 생명을 본 것 같았다. 사람마음과 집착이 당신을 앞으로 끌고 나갈 때 이때 당신의 상태는 가련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이 주(主)가 되려 하지 않고 자신을 관념과 업력에게 넘겼기 때문인데 당신이 가련하지 않은가? 가증스런 것은 더욱 위험한데 당신이 가아(假我)에 몽폐되어 표면적으로는 마치 남을 위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에게 순정한 자신의 사상이 없고 불순한 물질을 지니고 남을 어떻게 좌우지하려는 것이다. 이는 당신의 관념을 사용해 남을 압제하려는 것으로 비록 당신이 인식할 수 없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이런 작용을 일으킨다. 이는 대법을 교란하는 마(魔)와 무슨 구별이 있는가?
수련이란 바로 부족을 찾아내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 한 점을 인식했을 때 자신을 억제해 좌우로 늘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일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당신이 진정으로 사람마음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면 당신의 이때 상태야말로 비로소 법의 표준에 부합한 것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당신은 비로소 그 한 층 경지에 동화할 수 있고 상응하는 법이 당신에게 이 한 층의 일체를 줄 수 있다.
이때 당신은 당신 주위 환경에 변화가 발생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법의 초상성(超常性)이며 주변의 일체는 모두 당신의 마음에 따라 연화(演化)해 나온 것이다.
개인의 작은 수련 체회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