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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면사유의 습관을 고쳐 없애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우리 지역 공안부문 계통에서 통일적으로 전동차에 번호판을 부착해야 하며, 차주는 신분증과 헬멧, 차량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가져와서 등록할 것으로 요구했다.

어떤 동수는 긴장해서 말했다.

“이건 파룬궁을 겨냥한 겁니다. 일단 실명으로 등기하면 어디를 가든 감시할 수 있어요. 경찰이 당신의 행방을 추적하고 싶으면 번호판으로 당신 위치를 추적할 수 있으니 협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어떤 동수는 등기하지 않았고 어떤 동수는 인맥이 있는 교통경찰을 찾아가 번호판을 달라고 했으며 또 어떤 이는 친척더러 대신 파출소에 찾아가 등기하게 했다. 즉, 차량은 자신의 것인데 남의 명의를 사용하면 자기 신분이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은 진(真)에 위배되며 정정당당한 대법제자답지 못한 거라고 본다. 소문만 들으면 곧 부면사유가 먼저 자신을 둘러싸는데 이것은 인식이 아직도 사람 이곳에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이미 많은 도시에서 번호판 부착과 차주의 헬멧 착용을 요구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시행되어 오고 있다. 이는 속인의 안전 측면에서 말하더라도 잘못이 없다. 그런데 왜 우리가 긴장한단 말인가? 이는 두려운 마음이 있어서, 부면사유를 사용해 사악이 어떻게 한다고 분석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옳지 못한 것이다.

대법제자는 신(神)을 향해 나아가는데 신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봉착한 매 하나의 사건은 모두 사람이 신으로 나아가는 계단으로 돌파해야 한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우주대법이며 일체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시기에, 우리의 신체, 사상, 내재적인 일체 기제(機制) 등은 사람을 아주 멀리 초월한 것인데 사람의 고만한 거동이 우리를 제약할 수 있단 말인가?

번호판은 단지 속인을 단속할 뿐인데 대법제자를 단속할 수 있겠는가? 만약 정념으로 경찰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생각한다면 경찰은 심지어 당신의 그림자조차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일체는 수련인을 제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크고 거대해져서 제약받지 않게 되는데 마음도 가볍고 담담하다.

어떤 동수는 차를 타고 출근하는데 회사 주차면적이 부족함에도 매번 주차할 자리가 있다. 그가 마음속에 주차할 자리가 없다는 부면사유가 없고 마땅히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매번 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를 위해 자리를 남겨놓은 것 같았다.

한번은 한 동료가 그의 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말했다.

“오늘은 늦어서 아마 주차할 자리가 없을 겁니다.”

그러자 동수는 “있어요. 틀림없이.”라고 시원스레 대답했다.

결과적으로 회사에 가보니 과연 빈자리가 있었다.

동료가 놀라서 말했다.

“당신 말이 정말 정확하네요.”

사실 이는 그의 말이 정확한 게 아니라 동수에게 부면사유가 없고 그런 확고한 마음으로 제약한 결과이다. 그것은 일종의 힘이며 낮은 층차를 제약할 수 있는데 당신이 바르게 할 때면 토지신(土地神)마저도 당신을 돕는다. 우주 중의 생명은 모두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태도가 생명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내보낸 것은 아주 강렬한바, 층차가 높을수록 생각해 낸 것이 더 강하고, 더 크며, 시간이 더 길게 지속한다.”(《각지설법 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어떤 동수는 진상을 알릴 때 문이 열리기도 전에 부면사유가 곧 올라온다. 사복경찰을 만나지 말아야 하고, 감시 카메라를 좀 주의해야 하는 등등.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마스크를 잔뜩 뒤집어쓰고 두 눈만 내놓으며 옷도 자주 갈아입는다. 만약 부면사유를 돌파해서 자신을 신으로 여긴다면 저 감시카메라가 작용할 수 있겠는가? 그 무엇이 당신을 제약할 수 있겠는가?

부면사유를 개변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는데 마음이 가볍고 담담해진다.

또 어떤 동수는 문밖을 나설 때 불심검문을 할까 두렵고, 경찰이 핸드폰을 수색할까 두려워한다. 신분증을 검사하는 장비는 우주 중에서 가장 낮은 층차의 거친 물질로 만든 것이고 대법제자의 염두는 위력이 있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바르고 두려움이 없을 때면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한번은 전에 박해를 받은 적이 있는 동수가 내게 말했다.

“나는 비행기를 타거나 고속철도를 타거나 차량을 타거나 단 한 번도 불심검문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속으로 그런 것들이 내 아래에 있다고 여깁니다. 나를 검사하려 하는가? 그럼 나의 이 층차가 되어야 한다.”

사람의 염두를 움직이는가? 신념(神念)을 움직이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한 농촌 동수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사는 지역의 한 여자 동수가 병업이 아주 심각했다. 뱃속에 종양이 있었는데 크기가 농구공만 해서 복부 피부마저 투명하게 비칠 정도였다. 7일간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며 그저 앉아 있기만 하니 가족들도 모두 후사를 준비하려 했다. 그녀에게 발정념을 해주러 간 동수가 이 모습을 보고는 부면사유가 또 올라왔다. “다 이렇다면 안 되겠구나.” 어떤 동수는 발정념도 진지하게 하지 못했다.

그러다 칠일 째 되는 날 저녁 병업 중의 동수가 회색 옷을 입은 저승사자 넷이 자신을 데려가려고 온 것을 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너희들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로 사부님의 관할에 속한다.”

이 일념을 아주 견정하게 선택하자 네 저승사자가 즉시 사라졌다. 그녀는 또 즉각 정신이 났고 병도 호전되었다. 이때 배에서 구멍이 나더니 밖으로 검은 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가족들에게 빨리 대야를 가져오라고 하자 큰 대야로 하나 가득 더러운 물질이 흘러나왔다. 이후 건강을 회복했다.

요 몇 년 적지 않은 동수들이 병업으로 떠났지만 가기 전의 심각한 병업상태는 이를 마주하고 발정념을 하는 동수에 대해 말하자면 사실 일종의 고험(考驗)이다. 무슨 고험인가? 얼마나 되는 동수들이 가상(假象)에 이끌리지 않고 충만한 신심을 지니고 부면사유 없이 발정념을 할 수 있는가? 얼마나 되는 동수들이 이 문제에서 수련해낼 수 있는가?

내가 본 일부 현상과 얕은 소견을 써내 여러분들에게 참고로 제공하는 바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