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매형(梅馨)
【정견망】
1. 반본귀진해서 천당에 돌아가다
부모님이 모두 병원에서 일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두 분은 모두 문맹이었지만 아주 선량하셨다. 농촌에서 도시로 나와 자식들을 위해 살림하고 아이도 돌봐주셨다. 두 분 모두 경건한 불교 신자라 늘 아주 먼 길을 걸어 절에 가서 예불을 올리곤 하셨다. 그때 어린 나도 데려가서 예불하고 향을 피우게 하셨다. 나는 절을 하라고 하면 절을 했는데 이유를 묻지 않았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여태 왜 향을 피우고 절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여동생은 달랐다. 절을 하라고 하자 단호하게 하지 않겠다고 버텼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할아버지 할머니가 진흙상에 대고 절을 하라고 시켰다면서 고자질했다.
이것을 보면 사람의 근기는 확실히 서로 다르다. 나는 초등학생 때 매년 ‘우수 학생(三好生 역주: 사상, 학습, 품행 3가지가 모두 우수한 학생을 가리킴)’에 선발되었고 시험을 봤다하면 늘 백점을 맞았다. 학교에서는 또 나를 배드민턴 선수로 뽑아 후계자로 양성했으며 매주 성 체육관에 가서 한 번씩 훈련했다. 성적도 좋고 말도 잘 들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나를 총애했다. 어쨌든 그때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행복 속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인생은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3학년에 사당은 ‘문화혁명’ 운동을 시작했고 이때부터 학교는 혼란에 빠졌으며 수업을 중단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 보길 좋아했고 수업이 없으면 곧 잡서(雜書)를 보았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무슨 책이든 다 봤는데 그때 국가에서 ‘금서’로 지목된 《서유기》, 《홍루몽》 등 많은 명작들을 보았다. 누가 이런 책을 보면 반혁명으로 감옥에 잡혀갈 수 있었다. 당시 내가 가장 많이 본 것은 소설이었다. 누가 준 것인지 모르고 어쨌든 손에 늘 책이 있었다.
자라서 직장에 다닌 후에도 늘 건강이 좋지 않아 얼굴이 늘 시커멓거나 퍼랬다. 동료들은 뒤에서 몰래 나를 ‘임대옥(林黛玉)’이나 ‘흑모란(黑牡丹)’(역주: 둘 다 병약한 여자의 대명사)이라 불렀다.
젊을 때 매주 직장 의무실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왔으며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몸이 더 나빠졌다. 39살 때는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기도 했다. 병가를 내자 직장에서는 월급을 주지 않았기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때 병이 더욱 많아서 폐결핵, 갑상선, 신장염, 골질 증생, 부정맥, 신경쇠약, 난소종양, 자궁근종, 맹장염, 비염 등 없는 것이 없었다.
나는 병가를 낸 후 전적으로 병 치료만 생각했고 반드시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 교수, 전문가 등을 3년간 찾아다녔지만 낫지 않았고 돈도 적지 않게 썼지만 몸은 반대로 갈수록 더 나빠졌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근처 어느 도관(道觀)에 가서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려봤지만 여전히 효과가 없었다.
내가 자주 가는 도관에 한 도장(道長)이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나더러 내가 전생에 여러 차례 황궁의 왕비, 황후 등으로 태어났고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남을 해쳤기 때문에 금생에 이런 죄를 받는 것으로 ‘인과병’이니 약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사당의 무신론에 세뇌되어 무슨 전생금세, 윤회전생에 대해서는 전혀 믿지 않았다. 그때 나는 하루가 1년처럼 길었는데 비록 돈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길 가다 면화 같은 것을 밟으면 곧 수시로 쓰러졌고 쇼핑을 하러 다닐 수도 없었고 여행도 갈 수 없었다. 단지 집에서 마음을 졸여야 했다. 또 어리고 약한 아들을 보면서 자신의 운명이 너무 고생스럽다고 느끼고 인생에 대한 기대가 일찌감치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던 1999년 3월 말 어느 날, 새벽에 외출하여 보니 학교 교정에 한 무리 사람들이 가부좌를 하고 있었는데 남녀노소가 다 있었다. 보기에 자세가 매우 우아하고 장엄했다. 나는 바짝 다가가서 그들에게 무슨 공을 연마하는지 물었더니 파룬궁(法輪功)이라고 했다. 내가 이 공법이 병을 고칠 수 있는가 물었더니 병 치료 효과가 매우 좋다고 했다. 이에 나는 즉시 파룬궁을 배우기로 했다.
이때 보도원이 다가와 《전법륜》 한 권을 주면서 말했다.
“우선 집에 가서 이 책을 읽어보세요. 좋다고 느끼면 다시 와서 배워도 늦지 않아요.”
당시 내가 그녀에게 돈을 주었지만 받지 않았고 일단 가져가서 읽어본 후 좋으면 그때 10 위안을 내고 경서를 가져가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후 《전법륜》을 하루 종일 보았는데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읽었다. 어떨 때는 심지어 소리 없이 통곡도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보았지만 책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나는 겉으로 유약하게 보이지만 뼛속으로 강한 주관이 있었고 무엇에 의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당시 나도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다. 왜 책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걸까? 마치 오래 전에 헤어진 가족을 만난 느낌이었다. 다시 사부님 사진을 펼쳐 보니 비록 매우 친근했지만 금생에는 분명 모르는 분이었다.
나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구구절절 마음속에 와 닿았다. 또 책을 보면서 끊임없이 설사를 했다. 비록 설사를 하긴 했지만 신체는 그다지 괴롭지 않았다. 아마 사부님께서 신체 정화를 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법륜》 책을 사흘간 본 후 나는 보도원을 찾아가 파룬궁을 배우겠다고 했다.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 후 겨우 한 달 만에 모든 약을 다 버렸다. 온몸이 병 없이 가벼워졌고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 되살아난 느낌이었다. 마치 새로운 삶을 얻은 느낌이었다. 하늘을 보니 또 파랗고 생활도 희망으로 가득했다. 일체는 그렇게 아름다웠다.
남편은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 후 몸이 좋아지고 성격도 좋아지고(전에 그는 나를 ‘호랑이’라 불렀다) 복직해서 돈도 벌어오자 매우 기뻐했다. 그도 나중에 파룬궁을 배우겠다고 했다. 직장 동료들도 모두 말했다.
“파룬궁이 좋은지 아닌지 우리 직장의 ‘임대옥’을 보면 알거야. 지금 그녀는 신체가 아주 좋고 마음도 평온하여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고 매사에 다투지 않아. 피부도 발그레 해서 사람의 피부가 아니라 천상의 피부 같아. 미용에 돈을 쓸 필요도 없고 일도 많이 해서 돈도 잘 벌고 아이도 품행이 좋고 공부도 잘하니 파룬궁은 정말 좋아.”
하지만 운명이 내게 늘 미소만 짓진 않았다. 좋은 경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연공한 지 불과 4개월 만인 1999년 7.20 강택민(江澤民 장쩌민)은 개인적인 질투심 때문에 다른 6명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시작했다. 《전법륜》을 금서로 분류해 전국적으로 공안을 시켜 책을 태워 신불(神佛)께 하늘에 사무치는 큰 범죄를 저질렀다.
옛날 사람들은 승려를 때리고 욕하면 반드시 악보를 받는다고 했다. 나는 어릴 때 문화혁명을 거쳤기에 이른바 ‘금서’가 좋은 책임을 안다. 그래서 박해가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날마다 《전법륜》을 읽었고 날마다 공법을 연마했다. 끊임없이 《전법륜》을 보면서 나는 서서히 파룬궁은 단순한 기공이 아니라 진정한 불가수련(佛家修煉) 공법(功法)임을 알았다. 단지 기공의 형식으로 전해져 나왔을 뿐이다. 나는 이미 부처 수련을 하고 있었다. 또한 속인 사회 중에서 수련하니 절에 들어가지 않아도 불가 수련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연공한지 오래지 않아 천목이 열렸다. 다른 공간에서 사부님 법신을 뵐 수 있었고 동수들의 다양한 높이의 공기둥을 보았으며 직접 백일비승(白日飛升)을 체험해 밤이면 꿈에서 밤하늘의 나무 가지 끝에 날았다. 또 누워서 날거나 서서 날 수 있었고 어떤 때는 천장에서 날았다. 나중에 나는 담이 작고 오성이 차해 감히 볼 수 없어 사부님께 천목을 닫아 달라고 부탁했다.
대법을 수련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나는 꿈에서 진실하게 자기의 천국 세계로 돌아갔고 아들을 데리고 함께 천국 세계로 가서 천국 세계 가족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서방 세계의 신(神)이었다. 바로 이렇게 어려서부터 공산사당의 무신론에 세뇌되었던 내가 실제 경험을 통해 반본귀진의 금광대도(金光大道)를 걷게 되었다.
소위 ‘금서’ 《전법륜》은 사실 천서(天書)였다. 불과 몇 달 만에 나를 인간 지옥에서 아름다운 천국으로 데리고 돌아갔다. 현재 《전법륜》은 4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일백여 개 나라에서 보고 있다. 리훙쯔 선생님은 연속 4년에 걸쳐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각국 정부로부터 수많은 상장을 받으셨다. 또 그가 창립한 션윈(神韵) 예술단은 다년간 세계 순회공연을 하면서 주류 사회의 찬사를 받고 있다.
2. 멍청했던 아들이 인재가 되다
아들은 어릴 때 마난이 많아서 약 한달 반을 미리 태어났다. 출생 시 체중이 약 2.7킬로그램에 불과해 한 달 내내 눈도 뜨지 못했다. 입술도 검붉어서 친정어머니는 아이를 감히 씻기지도 못했다. 한 살 반이 되었을 때 병원에서 장이 꼬였다는 오진으로 수술했다. 이때부터 악몽이 끊이지 않았고 매달 발열과 기침으로 영양제 주사를 십여 일이나 맞고 서야 좋아졌다. 밤이면 나와 남편은 늘 병원에서 아들을 지켜보아야 했다.
아들은 세 살이 되어도 말을 하지 못했다. 동료들은 뒤에서 몰래 내가 바보를 낳았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로도 몸이 약해서 늘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다. 내가 법을 얻은 후 아들에게 함께 수련하자고 하여 아들은 여름 방학이 되면 하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아들이 공원에서 겨우 며칠을 연마했을 때 공산사당의 파룬궁 탄압이 시작되었다. 당시 아들은 겨우 11살이었다. 박해 이후 나와 아들은 집에서 《전법륜》을 보았고 또 연공도 했다. 아들은 연공을 하고 나서 더는 열이 나거나 기침을 하지 않았고 주사도 맞지 않았다.
2000년 10월 연휴기간에 나는 12살 난 아들과 함께 북경에 가서 대법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우리는 천안문 광장에서 여행객들에게 대법진상 전단지를 나누어 주며 강택민의 죄상을 폭로했다. 나중에 사당에 의해 불법으로 노교소에 감금되었다. 아들을 돌볼 사람이 없자 남편은 아이를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보내 공부하게 했다. 한번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파룬궁을 비방하는 서명을 하게 했는데 아들은 서명하지 않았고 친구들에게 서명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노교소, 세뇌반에서 나온 후 보니 그 허약했던 아이가 머리 하나 만큼 자라 있었고 품행도 좋아졌다. 나는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아들을 돌봐주신 것임을 알았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키는 이미 184 센티미터였다. 요즘 학교 아이들은 다 나약한데 아들은 오히려 품행이 단정하고 성실하며 남 돕기를 좋아한다. 부반장이 되어 정수물 갈기, 약 치기, 전구 갈기, 짐 나르기, 더러운 일도 다 한다. 같은 반 여학생들이 나중에 시집가면 저런 사람에게 가겠다고 말할 정도다. 교사들도 아이를 좋아했다. 결국 아들은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학에 들어갔고 나중에 또 대학원에 들어갔고 졸업 후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아들의 전공은 원래 금융인데 취업 후 혼자 공부해 사법고시를 통과했다. 게다가 단번에 통과해 자격을 얻었다. 사실 사법고시는 매우 어려운 시험이다. 어떤 법대 졸업생은 몇 년간 시험을 보아서야 겨우 통과할 정도다. 회사 동료들도 모두 당신 아들은 정말 우수하다고 말한다. 당신이 감금되어 집에 있는 것도 아닌데 아들이 독학으로 이렇게 잘하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그는 신이 돌보시지 않는가? 나보다 더 잘 돌봐주신다고 했다. 동료들은 더 이상 내 아들이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대법이 아들의 운명을 바꿔 병약한 환자에서 나라의 동량으로 만든 것이다. 한번은 꿈에 똑똑히 보았다. 어느 광활한 체육관에서 사부님의 두 큰 손이 한 손에 한 명씩 나와 아들을 동시에 들고 아름다운 천국 세계로 데리고 가셨다. 그때 아들은 수련한지 두 달밖에 안되었을 때였다. 우리 둘을 동시에 사부님께서 밀어주신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인연 있는 분들이 조용히 《전법륜》이란 이 천서를 읽어보기 바란다. 그는 사람을 자기의 천국세계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보물과 같은 책이다. 그는 사람을 반본귀진(返本歸真)하게 하여 진정으로 천당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게 할 수 있다.
제자는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그 무엇으로도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이전처럼 아무 것도 돌보지 않고 사부님을 따라 법으로 인간세상을 바로잡고 정진해서 법을 공부해 사람을 많이 구하고 자신의 사전 소원을 원만히 완성하겠습니다.
명혜망과 정견망 동수들에게 감사하며 여러분 고생이 많습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5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