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생
【정견망】
‘수련(修煉)’ 두 글자에서 수(修)가 앞에 있으니, 다시 말해 자신을 잘 닦는 것이 제1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을 잘 닦을 수 있는가? 바로 매사에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한다. 즉 일에 부딪힐 때 대법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대조해 자신의 내심에서 원인을 찾고 사람마음을 찾은 후에 그것을 제거하면 심성이 곧 제고될 수 있다.
이렇게 끊임없이 안으로 찾고 끊임없이 사람마음을 제거해 최후에 자신 사상 속에서 사람마음을 다 제거하면 진정으로 자신의 주원신(主元神)이 철저히 드러나 완전히 자신을 주재하는데 그럼 곧 임무를 완성한 것으로 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의 元神(왠선)은 가장 미시적(最微觀)이고 가장 미소(最微小)한 물질로, 가장 본원적인 물질로 구성되었다. 당신의 성격, 당신의 특성은 물질의 본원에서 이미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시간과 생생세세를 거쳐서도 개변하기가 몹시 어렵다. 하지만 본성은 선량한 것이다.”(《파룬따파의해》〈창춘(長春)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
내가 이해한 것은 우리의 진정한 자신인 주원신은 완전히 법(法)에 부합된 것으로 윤회전세(輪回轉世) 중에서 줄곧 개변되지 않았지만 후천적으로 형성된 자아와 각종 관념에 의해 매몰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할 것은 바로 주원신을 매몰시키는 이런 것들을 모두 제거해 최후에 이런 것들을 다 제거한 후 주원신이 다시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다. 마치 전과 같아 보이지만 주원신이 완전하게 자신을 주재하고 완전하게 법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으며 다시 말해 예전 그런 신(神)의 상태를 회복해 반본귀진(返本歸真)의 목적에 도달한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마음 수련에는 두 단계가 있는데 하나는 법을 잘 배워 수련의 표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대법의 이 표준과 대조해 매사에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아 사람마음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真(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은 우주 중에서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이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 바로 그로써 가늠한다.”(《전법륜》)
“오로지 우주의 이 특성에 부합(符合)해야만 그는 비로소 좋은 사람이며, 이것이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으로서, 이것은 우주 중에서 승인받은 것이다.”(《전법륜》)
마땅히 대법 진선인(真善忍) 표준을 우리가 수련 중에서 안으로 찾는 유일한 표준이 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동수들은 표준이 명확하지 않아 속인 중의 좋은 사람 표준을 수련 속에 뒤섞는다. 그는 일에 부딪혀 속인 중의 좋은 사람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한다. 자신이 속인 중의 좋은 사람 표준에 부합하는 것을 발견하면 자신이 표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더는 안으로 찾지 않는다.
사실 당신이 속인 중의 좋은 사람 표준에 부합한 것이 대법 진선인 표준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진선인의 표준에 부합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표준에 도달한 것이다. 오직 진선인 표준에 도달한 사람만이 비로소 우주 중에서 승인받은 좋은 사람이다. 더 나아가 안으로 찾음은 언제 어디서나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을 수 있어야 하며 이렇게 해야 사람마음을 빨리 제거하고 전면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 중에는 어떤 연고 없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각지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무릇 우리에게 발생하는 일들은 종종 모두 우리 수련과 관련이 있다. 설령 박해받는 상황 속에서 경찰이 당신을 때릴 때라도 당신은 늘 안으로 자신을 찾아야 한다. 그는 왜 나를 때리는 가? 그는 왜 이렇게 악독한가? 표면상으로 보자면 분명 중공 경찰이 사악한 것이지만 그러나 당신이 자세히 생각해보라. 이런 사악한 일이 왜 자신에게 발생할 수 있는가? 아무런 이유나 연고가 없을 수 있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일은 반드시 나의 심성(心性)과 관련이 있다 그럼 곧 안으로 자신에게 어떤 사람마음이 있어서 그가 나를 이렇게 대하는지 찾아 봐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완전히 법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움직일 수 없다”(《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대법이 요구하는 선(善)을 해낼 수 있다면 그가 당신을 때리겠는가? 절대 때릴 수 없다. 그의 표현이 아주 악독한 것 역시 아마 자신의 불선(不善)이 촉성했을 것이다. 그럼 당신이 자신의 심태를 조절해 완전히 선한 마음으로 그것의 악행을 대하라. 구체적인 방법은 바로 발정념으로 그를 박해하는 사악을 제거하고 진상을 알려 그를 구하는 것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그를 선하게 대할 때면 대법의 원칙은 절대 그가 더 이상 당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럴 때면 사부님께서 당신을 위해 주관하실 수 있기에 구세력이 감히 더는 그를 조종해 당신을 때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상유심생(相由心生)”(《따지웬회의설법》)이라 환경이 마음에 따라 변화해서 좋은 방향으로 사정이 변할 것이다.
구세력은 종종 늘 ‘악으로 악을 다스리는’(以惡治惡) 방법으로 대법제자를 상대한다. 만약 당신이 불선(不善)하면 구세력은 곧 세인을 조종해 당신에게 악을 행하게 한다. 만약 당신이 박해받는 속에서 세인이 구도 받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속으로 늘 자신이 어떻게 해탈할 것인가만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다 자신을 위해 생각하는 사심(私心)이라면, 이런 “자사(自私)”(《정진요지》〈불성과 마성〉)한 표현이 바로 악행(惡行)이고 사심(私心)이 바로 악념(惡念)이다. 구세력은 곧 경찰을 조종해 당신에게 악을 저지르게 한다.
사부님께서는 “수련 중에서 마난(魔難)에 부딪힐 때 자신을 닦아야 하고 자신을 보아야 한다”(《각지설법 4》〈2004년 시카고법회설법〉)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만약 진정으로 자아를 내려놓고 완전히 세인이 구도 받는 것을 위해 생각할 수 있다면 사정은 곧 달라질 것이다.
정정당당한 한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중생구도의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마난 속에서 세인을 대할 때, 당신이 우선적으로 중생구도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해탈만 고려하면서, 움직이는 것이 다 사심(私心)악념(惡念)인데, 그럼에도 여전히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려고 생각한다면 이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신은 법에 입각해 선(善)을 사용해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해야만 한다.
속인은 종종 악으로 악을 다스리지만 우리 수련인은 대선(大善)으로 악을 멈추게 하는데 선은 악을 멈추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일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전법륜》)다.
도가 수련에서 어떤 사부는 도제(徒弟)를 때리는데 그는 왜 이럴 수 있는가? 왜냐하면 도제더러 신의 길을 걸어가도록 핍박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박해받을 때 구세력도 마찬가지로 이런 역할을 한다. 당신은 이 한 점을 기억하라. 당신이 이기적이고, 자기를 내려놓지 못할수록, 자신이 어떻게 박해를 끝내고 어떻게 해탈할 것인지를 더욱 생각할수록, 구세력은 더욱 당신을 박해할 구실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 머릿속에 가득 찬 것이 다 사심악념(私心惡念)이기 때문이다. 구세력이 당신을 놓아줄 수 있겠는가?
반대로 말해 당신이 무사(無私)할수록, 세인의 구도를 위해 더욱 생각할수록, 당신 머릿속은 모두 위타(爲他)한 선념(善念)이 가득해서 이미 완전히 법에 있는 것이라 구세력은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보라, 당신이 이기적이면 그것이 곧 당신을 박해하고 당신이 선량하면 그것은 당신을 박해할 수 없다. 그것이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변칙적인 방법으로 당신더러 사심(私心)을 내려놓고 선량하고 위타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더러 신의 길을 걸어가라고 핍박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구세력이 당신을 박해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변칙적으로 당신의 수련제고를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해를 마주해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정념으로 대하기만 하면 그것은 좋은 일로 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중국은 마치 그 노군(老君)의 연단로(煉丹爐)처럼 대법제자를 용련(熔煉)하고 있는데, 그 불을 세차게 피울수록, 마치 엄혹한 고험과도 같이, 사람마음을 버리게 하고 집착을 버리게 한다. 그럼 물론 이런 시달림은 매우 견디기 힘들겠지만, 연마해 내는 것은 진금(真金)이다. 중공사당은 마치 그 석탄처럼, 타는 것이 더욱 붉을수록, 그것은 점점 더 신이 나는 것 같다. 다 타고나서 다시 보니 진금(真金)이 연마되어 나왔는데, 중공사당 그것은 무엇인가? ‘후’하고 불기만 하면, 재(灰)라서, 없어진다.”(《각지설법 15》〈2019년 뉴욕법회설법〉)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것의 표현이 어떠하든, 이 사회가 어떠하든, 대법제자는 이 사회의 주역이며, 이 연극은 당신들이 부르는 노래(唱)다. 어떻든, 그 석탄가루는 강철과 비교가 안 되는데, 그것이 당신을 용련(熔煉)하지, 당신이 그것을 용련(熔煉)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그 공산사당을 포함하고, 그 마귀를 포함하여, 당신을 위해 존재하고, 당신들을 위해 생존한다.”(《각지설법 15》〈2018년 워싱턴DC설법〉)
내가 이해하기에 그 어떤 환경이든 우리가 제고하는 좋은 환경이며 그 어떤 일이든 모두 우리가 수련 제고할 좋은 기회이며 그 어떤 사람이든 다 우리의 수련제고를 돕는 사람이다.
어떤 대륙 동수는 두려운 마음이 아주 심해서 자신이 밖에 나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면 박해를 받을까 두려워한다. 사실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주원신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된 그런 자아(自我)가 두려워하는 것으로 그것이 박해받을까 두려운 것이다. 당신이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러 나가려 할 때 자아가 박해받을까 두려워하는데 바로 당신 대뇌 속에 반영되어 나오는 염두가 당신을 가로막고 당신더러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어떻게 하는가? 바로 당신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어떤 사람이 당신을 가로막고 당신더러 가지 못하게 하는데 아울러 그것이 아주 강력해서 이렇게 당신을 가로막는다. 그러므로 당신이 방해받지 않으려면 그것을 깨끗이 제거해서 그것이 당신을 방해하지 못하게 해야만 당신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려운 마음이 일단 나왔다면 곧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두려운 마음은 또한 층(層)을 나눠서 존재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두려운 마음이 갈수록 약해지는데 당신의 수련이 일정한 층차에 도달하면 그것이 당신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또 실제로 일에 봉착했을 때 당신이 가급적 자신의 주원신을 확고하게 한다면 그럼 법에 따라서 할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해서 철저하게 자아를 내려놓고 더는 자기를 고려하지 않으며 완전히 남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자아가 상처받지 않도록 지키려는 사심(私心)으로 두려운 마음의 뿌리는 자아(自我)다. 당신이 자아를 내려놓으면 동시에 또 두려운 마음도 내려놓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곧 무사무아(無私無我)에 도달할 수 있고 완전히 남을 위할 수 있다.
구체적인 대응은 박해받는 가운데 견정하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지금부터 시작해서 자아를 철저히 내려놓으며 더는 자신의 진퇴나 득실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한마음으로 완전히 세인의 구도만을 생각하고 발정념으로 세인을 박해하는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며 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곧 지금부터 시작해 철저하게 선(善)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법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세력이 더는 당신을 움직일 수 없으며 이 무대에서 당신이 주역이 될 것이다.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으면 사악은 저절로 제거되고 세인이 구도 받을 수 있다.
실제 수련에서 관(關)을 넘는 중에 지나갈 수 있는가 하는 여부는 확실히 당신 수련 층차와 직접 관련이 있다. 층차는 안으로 찾음을 통해 수련해 올라온 것이다. 당신이 안으로 찾을 매번 한 가지 사람마음을 제거하거나 또는 한 층의 사람마음을 제거하면 곧 층차가 제고되는 것이다. 당신이 끊임없이 안으로 찾으면 곧 끊임없이 자신의 층차를 제고하는 것으로 층차가 더 높을수록 사람마음이 더욱 적어지고 더욱 약해지며 정념이 더욱 강해지고 능력이 더 커져서 관을 넘길 때 더욱 쉽고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는 것 역시 더욱 쉬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언제 어디서나 안으로 찾아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 층차 제고가 가장 빠르다. 또한 반드시 선(善)을 닦아야 하는데 자신에게 사심이 있는 것을 발견할 때면 즉각 그것을 제거해야 하며 일에 봉착해 우선적으로 남을 위해 생각할수록 자신이 닦은 것이 더욱 선량해지고 더욱 자비로워진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정한 慈悲(츠뻬이)는 그 어떤 사심도 그 속에 없으며 누구를 대하든, 중생을 대하든 모두 정념으로 문제를 보는데 모두 자애(慈愛)한 것이다.”(《각지설법 9》〈무엇이 대법제자인가〉)
“그는 대가가 없고, 보수를 따지지 않으며, 완전히 중생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선(慈善)이 나오기만 하면 그의 힘은 끝없으며, 어떤 좋지 않은 요소도 모두 해체할 수 있다. 慈悲(츠뻬이)가 클수록 그 힘은 더욱 크다.”(《각지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사실 慈悲(츠뻬이)는 거대한 에너지이며, 바른 신(正神)의 에너지이다. 慈悲(츠뻬이)할수록 이 에너지는 더욱 커서 어떤 좋지 못한 것도 모두 해체할 수 있다.”(《각지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당신 마음속에 사심이 없고 완전히 남을 위해 생각할 때면 당신이 수련해낸 자비가 완전히 펼쳐져 나와 당신 신체 주위에 하나의 자비정념(慈悲正念)의 장(場)을 형성할 것이다. 이 장은 곧 장 속의 일체 좋지 않은 요소들을 해체할 수 있다. 만약 세인이 당신 주위의 이 장속으로 걸어 들어오면 그 사상 속의 좋지 않은 사상들이 모두 해체될 것이다. 만약 사악이 그를 조종하고 있다면 그럼 사악도 해체될 수 있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보라, 당신이 진정으로 이 자비정념의 장을 닦아낸 후, 당신이 인간세상에서 걸어가는 가운데 중생을 동화시키는데 다시 말해 세인을 구도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당신이 진상을 알릴 때 당신이 그의 앞에 서기만 하면 곧 그의 좋지 않은 사상이 모두 해체된다. 그럼, 그는 곧 바르고 선한 것을 인정할 것이며 당신이 삼퇴를 권하면 그가 곧바로 탈퇴에 동의할 것이다.
이때 구세력마저도 당신을 건드릴 수 없으며 그 경찰도 당신 앞에 오면 동화되어 그는 이미 구도 받는 역할만 있을 뿐 악행을 저지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동수는 그 경찰이 어떠어떠하게 사악하고 어떠어떠하게 자신을 박해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당신의 잘 수련되지 못한 것이 촉성한 것이 아닌가? 당신이 자비정념의 장을 닦아내어 중생을 동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구세력이 비로소 그를 조종해 당신을 박해할 기회가 생긴 동시에 또 그를 박해하는 것이다. 이런 경찰들 그들 역시 법을 위해 온 생명이 아닌가? 그의 진정한 자기 주원신은 다급하고 간절하게 대법제자가 자신을 구도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그럼 당신이 자신을 잘 닦지 못한다면 그를 구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가 대법에 대해 죄를 짓게 만들어 그를 훼멸시킬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 생각에, 대법제자 당신들 앞에 놓인 길은 오직 착실하게 수련하는 길 뿐이며 다른 길이 없다.”(《각지설법 9》〈무엇이 대법제자인가〉)
만약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하면 일체는 다 말할 나위도 없다. 진정으로 착실하고 착실하게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비로소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할 능력이 생긴다.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르기 때문에 당신이 선을 했든 악을 저질렀든 대법은 모두 당신이 보응 받도록 배치할 것이다. 이는 바로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 모두 자신에게 해주는 것과 같게 만든다. 조사정법이라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역시 자신을 성취하는 것이고, 중생구도를 말하지만 실질은 자신의 세계를 풍만하게 하는 것이며, 선량하게 남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실질은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사부님과 대법은 언제나 늘 당신에 대해 떳떳하지만, 문제는 당신 자신이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진하지 않는 그런 동수들, 적극적으로 조사정법과 중생구도에 참가하지 않는 그런 동수들은 사람마음에 좌우지되어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자신이 수련할 기연(機緣)을 낭비하는데,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의 앞길을 망치는 것이 아닌가? 수련이 결속되는 그날 남들은 다 정진해서 수련 성취하고 원만해서 날아가겠지만 자신은 정진하지 못해 땅에 남고 만고(萬古)의 기연이 철저히 훼멸될 것이다. 그때 당신은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
백성들은 흔히 “세간에는 어떤 약을 파는 사람이나 다 있다”고 말하는데 다시 말해 팔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 약이 없다는 뜻이다. 정진하지 않으면 장래에 그를 기다리는 것은 분명 회한(悔恨)이겠지만 그때는 후회해도 늦는다. 다행히 수련이 아직 결속되지 않았으니 아직은 새로 잘할 기회가 있다. 그럼 어떤 사람마음이 당신을 가로 막고 끌어당겨 당신이 정진하지 못하게 하는지 안으로 한번 잘 찾아보라.
당신이 잘 생각해보라, 조사정법 중생구도 중에서 당신이 감당한 이 일체 대가는 당신 자신을 위해 감당한 것과 같다. 당신이 심지어 자신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마저 진심으로 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명과 미래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럼 당신의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분명 사람마음으로 정신이 흐릿해져서 자신에 대해 좋고 나쁨마저도 똑똑히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로 마땅히 “깨어나서”(《깨어나라》) 안으로 잘 찾아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마음이 당신을 통제하며 당신은 필경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후천적으로 형성된 자아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진정한 자신의 주원신을 위해 존재하는가? 대체 어떤 사람마음이 당신을 가로막고 당신이 정진하지 못하도록 잡아당기는가? 그러고 나서 이런 사람마음을 철저히 제거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 진정으로 자신의 생명과 미래를 위해 책임져야 하며 용맹정진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에 대해 떳떳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내 말의 근본 뜻(意思)은, 여러분에게 당신들의 생명은 바로 이를 위해 왔음을 알려주고자 함이다! (뭇 제자 열렬한 박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정말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대법제자이다. 속인이라면, 그는 육도윤회하고 각계(各界)로 전생할 수 있으나, 당신들은 할 수 없는바, 당신들은 바로 대법 이 일이다. 그러므로 잘하지 못하면, 그럼 자기에게 남겨주는 그것은 곧 회한(悔恨)이다. 특히 그런 노(老) 대법제자들은 태만(懈怠)하지 말라. 당신들은 그처럼 어려운 세월 속에서 걸어지나와 오늘까지 걸어왔는데, 얼마나 어려웠는가! 당신은 소중히 해야 함을 모른단 말인가? 나마저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 신마저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 (뭇 제자 열렬한 박수) 그러므로 응당 스스로 더욱 자기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각지설법 15》〈2018년 워싱턴DC설법〉)
사람의 세간(世間)이란 이 환경은 바로 사람더러 수련하라고 준 것으로 이곳의 일체는 모두 당신을 집착하게 만들 수 있는데, 당신이 세간의 각종 유혹에서 벗어나 집착에서 걸어 나올 수 있어야만 비로소 신(神)으로 성취될 수 있다.
실질상 인생 전반 과정은 한판 연극으로 다시 말해 한차례 꿈과 같다. 인생이 한판 연극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인생에는 각기 명(命)이 있는데 전체 인생과정은 모두 신이 잘 배치한 것으로 다시 말해 이미 극본이 있기 때문이다. 신은 감독이고 당신은 배우인데 당신은 극본의 배치에 따라 인생과정을 걷고 있다.
또 인생을 한차례 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세간이란 이 환경이 주원신에 대해 말하자면 바로 한차례 꿈과 같기 때문이다. 당신의 주원신이 모태에 들어가 인체 속으로 들어가면 이는 꿈속에 들어간 것과 같은데 전체 인생과정의 경험은 모두 꿈속에서 겪은 것으로 마치 당신이 자다가 꿈을 한번 꾼 것과 같다. 꿈속의 느낌 역시 아주 진실하지만 깨어난 후에야 한차례 꿈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꿈속에 발생한 일체 득실(得失)은 깨어난 후의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비록 꿈속의 느낌이 진실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한바탕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
당신의 육신이 사망할 때 주원신이 육신에서 나온 후 당신은 인간세간의 이 꿈속 환경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이는 꿈에서 깰 때에 해당한다. 이때 당신은 인간세간에서 발생한 일체 일이란 모두 꿈속에서 발생한 일과 같아서 당신이 세간에서 무엇을 지녔든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음을 발견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인간세상이란 이 꿈 속 환경 속에 남겨놓는다.
이렇게 연극이나 꿈과 같은 인생을 당신이 투철히 보고난 후 당신은 꿈과 깨어 있을 때를 구별할 수 있다. 당신 주원신의 각도에서 보자면 인간세간의 일체는 이미 당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 아예 그것을 중시하거나 집착할 필요가 없다.
인간세간의 일체에 대해 우리는 잠시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을 수련하고 사명을 완성하며 수련결속을 기다리는 것으로 그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청성(淸醒)해야 하며 인간세간에 대한 일체 명리정의 집착을 내려놓고 그것에 방해받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인간세간이란 이 환경 속에서 수련해 나올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예전에 말했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 일들이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 비록 구세력이 존재해도, 당신들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그것들은 방법이 없다. 당신의 정념(正念)이 매우 충족하다면 구세력은 방법이 없다.”(《각지설법 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설법〉)
내가 이해하기에 일체는 다 자신의 마음이 촉성한 것으로 만약 우리가 자신의 심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다른 문제는 곧바로 해결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자신의 이 마음을 바로 놓는가가 바로 가장 관건적인 문제다.
안으로 찾아야 한다!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한다! 끊임없이 사람마음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층차를 제고해 자신의 수련이 더욱 순정(純正)해질수록 더욱 무사(無私)할수록 더욱 선량할수록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을 닦아낼 수 있다.
이상은 현 단계에서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