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20여 년간 수련해왔기에 안으로 찾음이 자신을 수련하는데 중요함을 알지만 지금껏 주동적으로 제때 찾지 못했고 안으로 찾는 유형(有形)의 기제를 형성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착실한 수련 중에서 늘 누락이 있었다. 특히 최근 발생한 한 차례 일이 내게 깊은 교훈을 주었다.
우리 아들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함께 수련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집을 떠난 후로는 수련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수련환경을 잃었다. 졸업 후 다년간 회사에 다니다 서른 무렵 짝을 찾았다. 당시 나는 신붓감이 속인이라 아들의 수련에 영향을 줄까 두려워 결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중에 어쩔 수 없이 타협했다.
비록 7~8년 전의 일이지만 며느리는 당시 내가 결혼에 동의하지 않은 것을 늘 마음에 담고 있었다. 나는 관계를 완화하기 위해 내 퇴직금으로 아들의 생활비를 대주었다. 며느리는 직장에 채 1년도 다니지 않다가 결혼하면서 자동으로 사직하고 줄곧 일을 하지 않는다. 아들 수입만으로 1선(線) 도시에서 살면서 소비를 많이 한다. 집안 친척들이 모두 뭐라고 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그녀가 대법 진상을 거부하는 것이다. 며느리는 1년에 기껏 한두 번 집에 오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녀가 수련을 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진상을 분명히 알고 대법을 받아들여 아들의 수련을 지지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내가 몇 차례나 진상자료를 주었지만 받아서는 옆에 두곤 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컴퓨터 문장에 지옥이란 단어가 나오자 내게 “지옥에 가는 게 뭐 나쁜가요?”라고 말했다. 또 겉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아들이 수련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들이 집에 올 때 내가 아들을 이끌어 법 공부를 하면, 며느리가 억지로 가로막거나 또는 거짓말로 자기에게 오게 한다. 지금 이미 역병 상황이 3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진상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걱정되었고 또 아들의 수련을 방해할까 걱정되었다. 올해 설을 쇨 때 아들 부부가 와서 며칠을 묵었다. 나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연공하고 식사 준비를 했다. 하지만 며느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11시가 다 되어 일어나서는 차려준 밥을 먹었다. 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서 인생의 황금시기에 날마다 먹고 잠만 잔다. 무슨 인생의 가치며 개인의 존엄이라곤 전혀 없다. 나는 그녀의 삼관(三觀 역주: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말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고 장기간 마음속에 원망이 생겼는데 특히 아들에게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는 것을 원망했다.
나는 이미 25년을 수련했지만 몸이 줄곧 민감하다. 공(功) 속에서 반영되어 나와 몸이 불편할 때면, 비록 수련인에게는 병이 없음을 믿지만 때로는 심태가 불안해서 부면(負面)사유가 생겨나곤 했다. 올해는 늘 가슴이 답답했는데 단중혈(檀中穴) 안의 기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연공할 때 심했다. 나는 마땅히 감당해야 할 수련상태로만 여겼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릇 연공(煉功)할 때 관을 돌파하지 못하거나, 기가 내려오지 못할 때 우리들은 心性(씬씽)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어느 층차 중에서 지체한 시간이 너무 오래되지 않았는지, 마땅히 心性(씬씽)을 제고(提高)하고 제고해야 한다! 당신이 진정하게 心性(씬씽)을 제고했을 때면 당신은 그것이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신은 오로지 당신 자신(自身)의 공의 변화만 강조하고 당신의 心性(씬씽)의 전변(轉變)을 강조하지 않는데, 그것은 오히려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를 기다려서야 비로소 정체(整體)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전법륜》)
여기까지 공부하자 나는 비로소 사부님께서 단지 기가 정수리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것만 말씀하신 게 아니라 다른 부위 역시 말씀하신 것임을 알았다. 그럼 나는 마땅히 이 심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마침 나와 사이가 좋은 한 동수 언니가 집에 왔다가 나에게 자신이 며느리를 도와 아이를 돌봐주는데 며느리가 저녁에 쫓아냈지만 묵묵히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노라고 했다. 또 딸이 아이를 낳는 것을 도와주러 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위가 욕을 했지만 여전히 사위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주었고 이를 통해 법을 실증했노라고 했다.
사실 동수의 이런 이야기들을 처음 들은 건 아니지만 우리 며느리는 남의 집 며느리나 사위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우리 며느리의 불만은 애초 내가 결혼에 찬성하지 않았고 또 아들의 수련을 독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일에서 나는 모두 안으로 찾았고 또 내 잘못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나는 동수 언니처럼 그렇게 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동수가 간곡하게 말했다.
“아마 전생에 당신이 그녀의 가족을 죽여서 금생에 빚을 받으러 왔을지 몰라.”
동수의 이 말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할 때, 아마 이 두 가지 정황이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전생에 남을 잘 대해 주지 않은 적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말한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왜 이전에 남을 그렇게 대했는가? 당신이 당신의 그때 일을 모르고, 이 한평생에 그 한평생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안 된다.”(《전법륜》)
사부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 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홍음 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사부님의 법은 나로 하여금 활연히 밝아지게 했다. 나는 자신이 안으로 찾음에 조건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참지 못한 것은 그녀의 행동인데 여기서 내가 찾은 것은 그녀의 잘못이었고 나는 집착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진선인(真善忍) 대법을 수련함에 남이 참아내지 못하는 것도 참을 수 있고 남이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찾아야만 사람마음을 제거할 수 있다. 속인의 옳고 그름을 강조하는 자체가 바로 틀린 것으로 조건을 따져가며 안으로 찾는 것은 진수(真修)가 아니다.
수련인에게 적(敵)이란 없다. 그러나 나는 며느리가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자 적대적인 감정이 생겼다. 수련인에 대한 법의 요구는 속인 앞에서 오직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홍음 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당신은 수련인으로서 당신이 얻는 것은 고층차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고층차의 이치로 당신에게 요구해야 한다.”(《전법륜》)
신우주(新宇宙)는 위타(爲他)한 것으로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법정각(正法正覺)으로 수련 성취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럼 오늘날의 속세는 바로 우리가 마음을 연마하는 곳이니,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역시 나로 하여금 충분한 자비선념(慈悲善念)을 닦아내도록 압박하는 것일지 모른다. 수련 중에 부딪힌 어떤 일이든 모두 우리가 제고할 기회이며 그 어떤 사람의 행위든 모두 우리의 수련을 돕는 것이다.
무조건 안으로 찾은 후 나는 아들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았고 그가 정진실수(精進實修)해서 앞 길을 바르게 걸어가도록 격려했다. 또 며느리가 진상을 듣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정서를 제거했으며 굳게 마음을 먹고 무조건 자신을 찾기로 결심했다. 나는 개인의 일체 득실을 내려놓고 자비선의(慈悲善意)로 속인을 감화시킬 것이다.
이 일념(一念)을 내보낸 후 갑자기 가슴이 훨씬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안으로 찾음은 정말 법보(法寶)로구나! 무조건 안으로 찾음은 신기한 법보야!”
우리에게 신성한 법보를 주셨고 또 신(神)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여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3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