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얼마 전에 정견망에 올라온 ‘동수를 추모하며 정진실수(精進實修)’란 문장을 읽은 후 일부 단락에서 깊은 감수가 있었다.
먼저 문장의 일부 단락을 인용해보자.
한 생명만은 줄곧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오직 네 목숨을 원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그녀는 외쳤다.
“사부님 도와주세요!”
그러자 그 생명이 떠나갔지만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시 오면 반드시 네 목숨을 가져갈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목숨으로 전생에 진 빚을 갚아야만 비로소 서로 간의 원한을 끝맺을 수 있다고 여겼다.
동수는 또 “사부님께서 일찍이 나더러 미리 갈 수도 있다고 알려주셨어.”라고 했다.
처음 보면 동수가 세상을 떠난 것이 필연처럼 보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나는 이 일을 피할 수 있었고 동수도 세상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본다.
이 일은 구세력의 배치임이 명확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정법 이 일은 먼젓번 지구에서 잘 배치해 놓은 것으로, 이미 다 한번 실험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일은 이처럼 오랜 연대(年代)를 거쳐 모두 계통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인류 사회,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이 일체가 우연히 존재하는 것인가? 현재 매 대법제자의 일거일동, 일언일행, 심지어 당신이 사색하는 문제마저 모두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장래에 당신들은 모두 매우 세밀하게 배치된 것임을 볼 것인데, 내가 배치한 것이 아니며, 이는 이런 구세력(舊勢力)이 배치한 것이다.”(《미국플로리다법회설법》)
대법제자가 아래로 내려오던 그 순간부터 구세력은 층층마다 아주 세밀하게 배치했는데 목숨을 요구하는 이런 일이 예외가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법에서 구세력이 배치한 수법을 똑똑히 볼 수 있다. 먼저 동수에게 역사적으로 채권자를 해쳐 죽이게 만들고 다시 채권자가 이번 생에 동수를 찾아와 목숨을 요구하게 한 후, 구세력이 또 채권자를 훼멸시킨다(이는 채권자가 모르는 것이다). 정법은 우주 중에서 가장 큰 일이며 매 대법제자는 다 사부님과 서약을 맺었다. 중생을 훼멸하고 대법제자를 훼멸하는 구세력의 이런 배치는 사부님의 배치와 대립하는 것으로 반드시 부정하고 제거해야 한다.
그러니 교류문장에서 “사부님께서 일찍이 나더러 미리 갈 수도 있다고 알려주셨어.”라고 했다. 내 인식에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시는데 어찌 제자더러 세상을 떠나도록 하셨겠는가? 이는 분명 구세력이 장난을 친 것이다.
구세력이 보기에 그것들은 감독이고 대법제자는 배우라서 모든 것은 다 그것들의 말에 따라야 한다. 감독이 배우더러 언제 죽으라고 하면 배우는 곧 죽어야 한다. 동수가 지금 시기에 세상을 떠난 것은 구세력의 극본에 일찌감치 배치된 것이다.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은 세상을 떠난 동수가 채권자의 요구에 대해 어쩔 수 없어 하거나 심지어 이를 인정하고 순종한 것이다. 이는 구(求)한 것이 아닌가? 기점이 옳지 않으면 틀림없이 구세력이 원하는 길을 가게 된다. 그럼 이는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한 것이 아닌가?
구세력은 단지 개인수련만 알 뿐 정법수련(正法修煉)은 모른다. 그것들이 배치한 일체를 사부님께서는 다 승인하지 않으신다. 채권자가 생명을 요구한다면 선해(善解)할 수 있지만 선해하지 못한다면 그럼 정념으로 제거해야 한다. 정법수련은 중생구도를 위주로 한다. 구세력이 대법제자에게 배치한 일체 업을 갚고 빚을 상환하며 목숨을 요구하는 것은 사부님의 요구와 대립하는 것으로 사부님의 정법에 대한 파괴이자 대법제자가 사람구함을 교란하는 것이니 우리는 마땅히 정정당당하게 이를 제거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그 생명이 “나는 어떤 좋은 것도 다 싫고 그에게 내 목숨만 갚으라고 하겠다.”라고 한다면 정말로 난처하다.”(《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나는 사부님의 “난처하다”는 말씀이 반드시 꼭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난처하다”는 말에는 할 수 있다는 뜻이 들어 있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관건은 난(難) 속의 동수가 오직 사부님을 선택하고 대법을 선택하며 중생구도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럼 사부님께서는 “난처한” 가운데 자연히 방법이 있으신데 불법무변(佛法無邊)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빚을 갚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구세력이 지금 시기에 채권자에게 빚을 받아가라고 배치한 것 자체가 개인수련을 정법수련보다 초과 배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 대법제자를 데려가는 이것은 얼마나 큰 죄인가? 이는 사부님 정법의 토대를 허무는 것으로 그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것들에게 이치가 없다. 아울러 채권자의 죄도 대단히 크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대법제자는 삼계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2018년 워싱턴DC설법》)고 하셨다.
대법제자는 짊어진 사명이 거대한데 한 대법제자가 세상에 있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세상을 떠난다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도될 수 없겠는가? 이 손실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빚을 받으러 온 채권자인가? 아니면 구세력인가? 이렇게 거대한 손실은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게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로서 당신이 정말로 잘 할 수 있을 때면, 내 생각에 그 시끄러움도 당신이 보는 것처럼 그렇게 절대적이 아니다. 당신이 법에 입각해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그 속인의 시끄러움은 곧 속인의 시끄러움일 따름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물체는 변하지 않으나 신의 눈으로 보면 이 일체는 변하는 것이다.”(《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 갚는 것”이 비록 하늘의 이치긴 하지만 구세력이 배치한 기점은 이렇게 작은 것이 아니다. 그것들의 목적은 사부님의 정법을 파괴하고 대법제자가 걷는 매 한걸음을 가로막으려는 것으로 모두 대법제자를 훼멸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법의 기점에 서서 목숨의 빚을 받으러 오는 이 일을 똑똑히 인식해야 하고 구세력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제거해야 한다.
빚을 받으러 온 채권자에 대해서도 선해(善解)하되 선해가 안 되면 제거해야 하며 동시에 그 배후에서 조종하는 구세력의 요소를 제거하고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행동이며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작은 인식이니 여러분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4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