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梅宇)
【정견망】
말재주는 속인사회에서 흔히 장점으로 여겨지지만 그러나 수련인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제자들에게 ‘수구(修口)’의 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비록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법을 배웠지만 사부님의 법대로 엄하게 요구하지 않아 수구가 잘 되지 않았다. 근래에 와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말을 하기만 하면 금새 옳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말을 할 때, 그것은 분명히 자신의 몸에 달린 입으로 하지만, 흔히 자신의 진정한 사상(思想)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 없이 한 말은, 사실 당신이 진정으로 표현하려는 뜻이 아니라, 당시 그 입을 통제한 모종의 관념(觀念)이 한 말이다. 지난 후에 생각해 보면 방금 한 말은 대부분 옳지 않고 또 나의 본의도 아니다.
예를 들어 남에게 나는 이 일이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때, 이것은 후천적으로 사람 속에서 형성된 모종의 관념이 한 말이다. 사실 이 일을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왜 당신더러 보게 하는가? 당신은 또 왜 이 일이 틀렸다고 생각하는가? 이 뒷면의 심층적인 원인을 자신은 전혀 모른다. 아마 이 일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했고, 당신더러 보게 한 것은 아마 당신의 마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 또 아직 내가 모르는 많고 많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일 말만 했다하면 이건 틀렸고, 저건 틀렸다고 한다면 그것은 업(業)을 짓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고, 이렇게 일으킨 영향 역시 지워버릴 수 없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다르다. 글쓰기는 사람을 차분하게 하는데 이성적으로 생각한 후에 자신의 생각을 글자로 옮긴다. 또 여러 번 수정하는 과정에서 이 생각이 옳은지 정념(正念)으로 살펴보고, 자신이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인지 검토하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그 속의 사심(私心)과 잡념(雜念)을 마치 잡초를 베듯 하나씩 제거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은 바로 마음을 닦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시간이 좀 지난 후 자신이 쓴 것을 보면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을 순 있다. 그것은 수련의 층차가 높아지면서 한 문제에 대한 인식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천적 관념에 따라 생각 없이 함부로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생각해보면 지금 함부로 말하는 것을 피하는 방법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는 것인데, 특히 자신을 닦지 않고 잡담을 즐기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 자신도 마음을 적게 움직이고 쓸데없는 말을 덜하게 될 것이다.
또 스스로 이성적으로 많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바로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54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