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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법을 외우며 진수(真修)란 자신의 마음을 닦는 것임을 분명히 알다

법연(法緣)

【정견망】

나는 98년에 법을 얻어 24년간 대법을 수련했다. 그러나 늘 눈이 밖으로 향했다. 주변 가족들을 보면 이 사람은 이기적이고 저 사람은 나와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또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늘 자신의 표준으로 상대방을 대하며 이 친구는 싼 걸 좋아하고 저 친구는 가식적이라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동수에 대해서도 늘 동수의 부족한 점만을 보았는데 이 동수는 하는 일이 법에 맞지 않고 저 동수는 하는 말이 속인적이라는 등등 늘 남들이 자신만 못하다고 여겼다.

나는 이렇게 늘 자신의 세계관으로 외부 세계를 가늠했으며 사람들과 교제할 때도 만나는 사람이나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불평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일 자체의 시비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2019년 8월부터 법을 외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끊임없이 그런 외재적인 사람과 일은 모두 나의 내심(內心)이 반사된 것임을 분명히 알려주셨다. 과거에 나는 오직 밖으로만 닦고 남을 닦았으며 자신은 닦지 않았는데 닦고 닦아도 내 안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마음의 집착이 있었다.

3년간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나를 점화해주셨는데, 과거의 나는 안으로 찾고 자신을 닦는 것을 말로만 했지 진정하게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음을 알려주셨다. 사부님의 법리(法理)를 나는 단지 이론으로만 인식하고 남을 가늠하는데만 사용했을 뿐 자신의 말과 행동을 지도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은 정말로 수련인(修煉人)이 될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

안으로 찾고 자신을 닦는 것을 동수에 대해 말하자면 일찌감치 돌파했다. 그러나 나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전에도 늘 자신이 옳다고 여겼고 수련한 후에도 자신이 남보다 높다는 이런 생각이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지난 30여 년간 교사로 재직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과 다퉈 이기길 좋아하는 강렬한 자아를 지녀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했으며, 사람 속에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마음을 양성했고 사당(邪黨) 문화의 독해를 받아 무슨 일을 하든 힘껏 싸우는 것이 좋고 극단적으로 하고 매사에 극단까지 가는 것을 옳다고 여겼다.

때문에 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강렬한 마음이 생겨났던 것이다. 과거에 누가 나에 관해 말하면 나는 아예 무시하거나 마음에 두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남의 관리를 받고 싶어하지 않았고 더욱이 나를 관리하는 사람이 내 눈에 차지도 않았다.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모두 나를 멀리하고 피했으며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다. 동수 사이에도 나와 마주하고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되자 나의 사람마음은 점차 팽창되었고 일을 하면서도 더욱 제멋대로 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늘 극단으로 나아갔고 때로는 완전히 대법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때문에 20여 년을 수련했음에도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서 때때로 아주 큰 교란이 나타났고 또 사악에게 몇 차례 틈을 타기도 했다. 다행히 자비하신 사부님의 가호하에 늘 놀람은 있어도 위험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수련이란 바로 자신을 닦는 것으로 진수(真修)하려면 바로 그 집착하고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20여 년의 과정 속에서 나는 오히려 진정으로 자신을 닦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오로지 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으며 아울러 원만하는 수단 ― 연공(煉功)을 하여 확실하게 본질적으로 자신을 개변하면 心性(씬씽)이 제고되고 층차가 제고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련이다.”(《정진요지》〈무엇이 수련인가〉)

“진정한 수련은 곧 마음을 닦아야 하고, 안으로 닦아야 하며,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밖에서 찾는 것이 없다.”(《전법륜》)

사실 수련인이 자신을 수련하는 외에 다른 모든 근심은 다 쓸데없는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큰 문제에서 오히려 법을 위배했고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을 닦지 못했다. 두 눈으로 늘 밖을 보면서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어갔다. 때문에 20여 년간 수련했음에도 큰 변화가 없었고 수련인의 대자비심(大慈悲心)을 닦아내지 못했다. 또 사부님께서 대법에서 말씀하신 그런 신적(神跡)을 닦아내지도 못했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펼쳐내지도 못했다.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과거에 내가 집착했던 누가 옳고 누가 그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고 하는 관념은 다 사람마음이며 모두 사람이 집착하고 내려놓지 못하는 물건이지 신(神)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신의 마음이라면 완전해 내려놓아야 한다.

전체 우주는 모두 법으로 구성된 것으로 대법은 전 인류에 속하는 것인데 하필 누가 어떠한지 걱정할 필요가 있는가? 과거에 나는 늘 이 동수가 떨어질 것 같고 저 동수는 법 공부 상태가 좋지 않다고 걱정했다. 사실 지금에 와서 법으로 대조해보면 그런 것들은 모두 표상(表象)이며 모두 내가 보고 난 후 어떻게 마음이 움직이는지 본 것이다. 만약 자신이 법으로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면 일체는 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매 하나의 동수는 모두 사부님께서 관할하시기에 근본적으로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모두 자신을 닦는 것이 아니다. 어찌하여 아직도 이런 우려가 있을 수 있는가? 이는 모두 사람마음이 아닌가?

수련이란 바로 수련인의 사람마음의 관념을 닦아버리는 것이다. 지난 3년간의 법 암기를 통해 나는 이런 관념이 내가 아님을 인식했다. 나는 반드시 이런 좋지 않은 사람마음과 관념을 닦아버려야 한다. 더는 나의 수련정진을 가로막는 이런 것들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반드시 일체 사람마음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사람 몸(人身)에 대한 집착도 포함한다.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서 해야 한다. 그 어떤 일에 부딪치든, 제아무리 큰 곤란이 닥치더라도, 늘 안으로 찾고 자신을 찾아야 하며 자신을 닦는다면 내 생각에 넘어가지 못할 관(關)이란 없다.

3년간 법 암기를 통해 나는 사람과 신은 다름을 분명히 알았는데 신(神)은 조화롭고 자비로우며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우며 모두 한 층차 중에 있다고 본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이 아니다. 기왕 이렇다면 나는 그 어떤 이유로도 더는 사람의 좋고 나쁨을 구분할 이유가 없다. 오직 사람이 사람을 볼 때만 이런 구별이 있는 것이다. 당신은 착하니 내가 당신을 잘 대하고 당신은 악하니 나는 잘 대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사람이다.

신(神)은 사람에 의해 개변되지 않는 것으로 당신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막론하고 늘 법의 요구에 따라 당신을 대한다. 당신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따라 당신을 대하는 것이 아니며 속인 중의 이치에 따라 당신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일체는 대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야 하며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중생을 대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중생에 대해 반드시 자비(慈悲)해야 하며 오직 자비로운 마음을 사용해야만 중생을 보면서 좋고 나쁨을 구별하지 않을 수 있고, 비로소 진정으로 중생을 구도할 수 있게 된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나는 20여 년을 수련했음에도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존께 많은 근심을 끼쳐드렸다. 사존께서는 줄곧 나처럼 이렇게 못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줄곧 제자를 돌봐주셨던 것이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오늘 이미 무엇이 수련인지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고 자신을 잘 닦아 세 가지 일을 잘하겠습니다. 자신의 사전(史前) 서약을 완수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깨달음이 너무 늦어서 후회하고 뉘우칩니다!

법 암기 중의 작은 체회(體會)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