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明心)
【정견망】
최근 일부 교류문장을 읽으니 모두 대부분 대법제자들의 수련상태가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장차 사부님을 따라 법정인간단계로 들어간다고 제기했다. 그런데 원래 대부분 대법제자들은 마땅히 수련 원만해서 인간세상을 떠났어야 한다.
수련생의 수련상태가 과연 그러한가?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또 내가 보기에 대부분 수련생들은 사실 진심으로 잘하고 싶어 하지만 단지 효과가 뜻대로 되지 않을 뿐이다. 가령 나 자신을 예로 들면, 늘 잘하려고 결심하는데 심지어 사부님 법상 앞에서 사부님께 정진하겠노라고 보증했음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해이해졌다. 원인은 대체 무엇인가?
우리 생명의 본질이 충분히 좋지 않기 때문인가? 이건 분명히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애초 의연히 신(神)의 광환을 버리고 사부님을 따라 인간세상에 내려오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세상은 흑업(黑業)이 구르고 구르는 것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역사상 너무 많은 죄업(罪業)을 지었기 때문인가? 분명 업력이 있긴 하지만 업력은 마땅히 문제되지 않는데 사부님께서 계통적인 소업을 배치하셨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사부님과 연을 맺고 최후에 대법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번 세(世)에 수련한 것이 너무 차해서 어떻게 해도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못해서”[1]인가?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개변하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는 노력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가?
이때 내 머릿속에 사부님 경문 중의 2단락 법이 떠올랐다.
“사실 대법과 대법제자의 정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체 것들은 모두 구세력이 참여하여 조성한 것으로, 자신의 바르지 않은 일체 요소를 포함한다.”[2]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들이 걷는 매 한 걸음, 당신이 내딛는 그 한 걸음의 크기마저도 모두 안배된 것이라는 말인데, 당신은 믿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이 박해 중에 몇 마디 외칠 것인지, 당신을 몇 차례 때릴 것인지 그것은 모두 그것들이 안배해 놓은 것이다.”[3]
아마 사부님께서 내가 고뇌하는 것을 보시고 나를 점화해주셨을 것이다. 우리가 충분히 잘하지 못하고 사부님과 대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아주 많은 정도에서 구세력의 참여와 배치로 조성된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문제는 주의식(主意識)과 정념(正念)이 충분히 강하지 못해서 구세력의 배치를 똑똑히 간파하지 못하고 구세력이 배치한 후 가아(假我)의 표현을 똑똑히 갈라내지 못해 그것을 자신으로 간주한 것이다.
때문에 “하사(下士)는 사람마음을 버리지 못하는”[4] 상황을 조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자신의 수련이 차(差)해서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승인할 것이 아니라 정념으로 우리 수련에 대한 구세력의 사악한 배치를 부정하고, 발정념을 많이 해서 구세력이 던져 넣은 그런 패물(敗物)과 사악한 요소를 청리해서 우리의 잘 수련된 그 일면이 보다 많은 작용을 발휘하게 하거나 심지어 불법신통(佛法神通)을 인간 세상에 펼쳐내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성해야 한다.
심성(心性)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이런 표현은 우리 신체에 나타난 상황과 마찬가지로 모두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할 교란과 박해에 속한다. 마치 우리는 성명쌍수 공법임에도 왜 그렇게 많은 수련생들에게 부동한 노화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부님께서는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설법》에서 이 역시 구세력의 교란요소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 해에 막 법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바로 이런 일 때문에 나는 그것들과 맞서 1년이라는 시간을 지체했다. 나중에 나는 더 전하지 않는다면 매우 많은 수련생이 심지어 법을 얻지 못할 수도 있고 매우 많은 중생을 구원하고자 해도 미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많은 일에서 나는 줄곧 그것들과 겨루고 있었다. 당시 나는 표면의 신체를 전화(轉化)시켜 수련이 잘된 부분과 협조하게 하여 신체로 하여금 수련 중에서 사람의 상태를 벗어나게 하고, 수련 제자로 하여금 자신의 정념을 사용하여 사람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게 하려고 했다. 바로 이런 문제로 말미암아 그들과 1년이라는 시간을 맞섰다. 그때 나는 바로 이 일로 인해 나와서 전하지 않았으며 1년의 세월을 맞섰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것들이 견지하는 것을 승인할 수 없고 장래에도 나는 절대 승인할 수 없는데, 교란하고 파괴하는 것과 관련된 일체 생명은 모두 이 때문에 장차 빚을 갚는 중에 해체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설령 역사를 되돌려 다시 시작한다 해도 나의 일을 완성해야만 한다. 이것은 정법 중에 필수적인 내용과 과정이며 이것은 법정인간(法正人間)의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5]
기왕 사부님께서 우리 신체와 심성 및 정진 정도에 대한 구세력의 이런 교란을 절대 승인하지 않으신다면 그럼 우리 역시 단호하게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입으로만 승인하지 않는다고 말해서 되는 게 아니라 반드시 행동으로 해내야 한다.
나 자신의 체회(體會)는 주로 다음 세 가지 점을 해내야 한다.
첫째 시시각각 각성해서 안으로 찾고 어느 것이 구세력의 교란이고 어느 것이 대법의 요구인지 똑똑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진아(真我)와 가아(假我)를 똑똑히 구별해야 한다. 법을 많이 배워야 할뿐 아니라 또 잘 배워야 하며 법이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야만 비로소 자신의 일언일행(一言一行)이나 더 나아가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법에 있는지, 법에 부합하는지 구별할 수 있다. 만약 부합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럼 반드시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니 절대 승인하지 말아야 하며 즉시 단호히 부정하고 그 자체 및 배후의 사악한 요소와 사악한 생명을 제거해야 한다.
두 번째는 발정념을 할 때 내 몸 안에 존재하는 좋지 않은 것들에 대한 청리를 중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반드시 처음 5분을 중시해야 하며 심지어 전면(前面) 시간을 더 늘릴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도가에서는 사람의 인체가 하나의 소우주라고 말하는바, 당신이 당신 인체에 대해 발정념을 해서 그런 좋지 못한 것을 청리하는 것인데, 그것이 작은 일인가?”[6]
세 번째는 꾸준히 나태하지 않게 자신의 신구의(身・口・意) 모든 방면에서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을 바로 잡고 이를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령 수구(修口) 문제를 예로 들면, 매번 표현하기 전에 자신이 한 말이 수련인의 심성표준에 부합하는가,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가, 시비(是非)를 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남을 폄하하는 것은 아닌가 등을 보아야 한다. 가령 머릿속에 부면(負面)사유나 불량(不良)한 정서가 나타날 때면 제때에 그것을 청리하고 소멸해야 하며 그것을 따라 사고하거니 사람마음과 관념으로 사물을 가늠해선 안 된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러한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당신이 이미 진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되도록 바른 것에 따라 하고 법 공부를 많이 하면 자연히 잘할 수 있고 점차 습관을 양성하면 그럼 된다.”[6]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과 시정을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경고하는 말〉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홍음 6》〈남을 제도하고 자신을 제도함은 어렵다네〉
[5] 리훙쯔 사부님 경문: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설법》
[6]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