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대법제자 희망(希望)
【정견망】
최근 법을 외우면서 늘 법이 잘 외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제6강을 외우면서 또 마음이 불편하고 코를 후비거나 발을 만지는 등의 불량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것이 나를 경각(驚覺)하게 했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안으로 찾아보니 이런 불량한 행동은 함부로 하고, 욕망을 방종하며, 허위적이고, 질투하고, 과시하며 수구에 주의하지 않고, 밖으로 보는 것에 집착하는 등 내 몸의 당문화(黨文化)의 것들임을 발견했다.
단적으로 동수가 발정념을 할 때 손이 넘어가거나 손이 떨리거나 또는 법 공부를 할 때 몸이 흔들리는 등의 현상을 보기만 하면 나는 참지 못하고 직접 대놓고 남을 지적했는데 말투가 선하지 않았으니 참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또 남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조 법 공부에 정력을 집중할 수 없다고 여겨 공부하러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문제가 심각한 것을 몰랐고 안으로 찾아 자신을 수련하지 못했다.
오늘 법을 외우면서 이런 교란이 나타나자 나는 손을 씻고 다시 무릎을 꿇고 법을 외웠다. 이때 사존께서 내 머릿속에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으며”란 구절을 떠오르게 하셨다. 나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나는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음을 해냈는가?
사존의 《정진요지》〈성자(聖者)〉에서 이 단락 법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 사람은 세간(世間)과 천상(天上)에서 천명(天命)을 부여받았으니, 두터운 德(더)를 갖추었을뿐더러 그 마음이 착하고,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으며(懷大志而拘小節), 법리에 해박하여 미혹을 타파하나니,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제도하여 공이 절로 크도다.”
세밀하게 외워보니 정법시기에 사람을 구하는 대법제자로서 어찌 이렇게 불선한 행동을 할 수 있는가? 법에 대조해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사존께서는 이 십악독세(十惡毒世)의 위태로운 시각에 온갖 고생을 다 겪으시며 이 위대한 법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우리를 구도하셨으며 또한 시시각각 우리를 돌봐주고 계신다. 그러니 우리가 이 고덕대법(高德大法)을 읽으면서 그 어떤 이유로도 경사경법(敬師敬法)하지 않을 수 있는가? 어느 각자가 또 이렇게 단정하지 못한 행위를 한단 말인가?
아울러 사부님께서는 동수의 상태를 이용하시는데, 목적은 보이는 것은 모두 거울처럼 자신을 보는 것이라 나에게 안으로 자신의 마음을 찾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깨닫지 못했고 또 동수를 질책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이런 단정하지 못한 행위가 나타난 것은 마음이 바르지 않아 불러온 번거로움이 아닌가? 법의 표준에 대조해보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안으로 찾아보니 자신의 사(私)를 보았고 차이가 아주 큼을 보았다. 나는 당문화로 남을 질책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고 또 하늘의 공을 탐하는 마음이 깊이 숨어 있음을 발견했다. 진정으로 사람마음을 개변하는 것은 법(法)이지 내가 지적해서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이 과정 중에 자비가 없었고 사존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법리를 망각했다.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大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정진요지》〈청성〉)
이를 통해 또 당문화에서 내가 남보다 높이 있다는 마음을 폭로해 냈다.
생각해보니 이 바르지 못한 언행은 모두 마땅히 닦아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후천적인 관념에서 내원한 것으로 이미 습관이 형성되어 당연히 여기며 몰랐기 때문이다. 이번에 법을 외우면서 “많은 마음이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그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한다.”(《전법륜》〈과시심리〉)는 한 구절을 외울 때 심각하게 나를 일깨워주었다. 이는 단지 질투심의 문제가 아니며 다른 방면에서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원래 이렇다고 여겼던 것이다.
사실 평소 부딪힌 모순을 안으로 찾고 자신의 사람마음의 집착과 욕망을 닦아버릴 좋은 기회로 삼지 못했던 것이다. 매번 늘 자신이 일하느라 바쁘다는 구실로 자신 닦음을 소홀히 했으며 설사 찾는다 해도 뿌리를 캐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반복적으로 나타나도 제거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전법륜》을 다 외우고 또 사존의 《홍음 6》〈깨어나면 안다네〉를 외우면서 단번에 사존께서 이런 마음이 여기서 내원한 것임을 알려주셨다.
“신의 길 이미 열렸으나 사람마음이 가로막네
무신론 배후에는 흉악함이 있고
사악한 진화론은 더욱 근거가 없다네
현대 행위는 신과 멀어지고
각종 관념은 장애이거니
몇 사람이나 구원받고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즉, 현대 행위는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무신론 교육은 사람이 경외(敬畏)의 개념이 없게 만들었으며 신을 공경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마음을 더욱 사라지게 했다. 진화론은 또 사람의 수성(獸性)을 방종하거나 심지어 범람하게 했다.
장기간 밖으로 밀어내고 밖으로 보는 것을 형성한 당문화의 원한(怨恨) 등 이런 변이된 사람의 행위가 우리의 제고를 방해하고 우리가 대법에 동화하는 것을 저애해왔다. 심지어 사람마음으로 자신을 용서하고 전보다는 훨씬 진보했다고 여기게 하는데 이는 법의 요구와는 차이가 너무나도 먼 것임을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게 했다.
오늘 나는 마침내 경지(境界)를 제고할 수 없게 한 뿌리를 찾아냈다! 그것은 진아(真我)가 아니고 오히려 진아를 얽어매는 것이니 빨리 그것을 분리해 없애는 동시에 폭로해 내야 한다. 또 이를 통해 동수들이 나처럼 굽은 길을 걷지 않게 하고 이런 변이된 것이 우리 이곳에서 자라나게 하지 말아야 하며 엄격하게 대법표준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대조하고 검사해야 한다.
정법이 마무리에 접어든 관건적인 시각에 마음을 닦고 제고할 그 어떤 기회든 놓치지 말아야 하며 가급적 자신에게 깊이 감춰진 변이된 현대관념들을 모조리 찾아내 법속에서 일사일행(一思一行)을 바로잡고 법에 동화하고 제고해야 하며, 누락이 하나도 없도록 닦아내,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 사존의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시시각각 늘 가호하고 점화해주시며 자비롭게 구도해주시는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작은 깨달음이니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부디 자비로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