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올 여름 아주 심각한 병업현상이 나타났다. 표면적으로는 에어콘 바람을 쐬고 감기에 걸린 증상이었지만 지금껏 겪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다. 업력이 표현되어 나온 시간에 나는 한 동수를 만났는데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내게 큰 계발을 주었다.
한 차례 우연한 기회에 이 동수를 만났는데 그는 내가 끊임없이 콧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내가 견지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는지 내게 자신이 자료를 만들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음은 이 동수의 이야기다.
장기간 자료를 만들며 법 공부 시간이 아주 적어지자 수련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졌다. 시간이 오래 되면 속인이 대법 일을 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이에 그는 개변(改變)하기로 결정했다.
어느 날 모든 일을 내려놓고 하루 종일 법 공부를 강화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법륜》이든 다른 설법이든 막론하고 계속해서 읽었다. 처음에는 저녁이 되면 좀 졸렸으나 3일 후 이를 돌파해서 저녁에도 졸리지 않았고 하루에 《전법륜》을 한번 다 읽을 수 있었다.
5일째 되는 날 갑자기 대뇌가 폭발한 것처럼 법을 볼 때 법(法)속의 층층 내함(內涵)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요리를 하는데 먼저 감자를 절편으로 얇게 자르고 다시 감자채를 썰었는데 절편 3개가 잘리지 않았다. 이에 다시 자르려고 골라내서 보니 뜻밖에도 세 절편 위에 3글자가 나타났는데, 바로 상천료(上天了 역주: 하늘로 올랐다는 뜻)였다. 그는 너무 흥분해서 주변 동수들에게 알렸고 모두들 와서 글자가 적힌 감자절편을 보고는 큰 격려를 받았다. 글자가 적힌 절편은 약 2달간 신선도를 유지한 후에야 부패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후 나 역시 몹시 기뻤다. 동수의 제고에 기뻤고 또 자신이 이런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기뻤다. 나는 이를 나에 대한 동수의 점화라고 이해했는데 병업관을 만났을 때 안으로 찾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성(悟性)이 좋지 않아 어떻게 안으로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법을 읽음으로써 오성을 제고한다면 법속의 내함이 자연히 펼쳐져 나올 것이다. 다시 말해 안으로 찾을 수 있게 되면 병업관 역시 넘어갈 수 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아내(동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렇게 한번 해보자고 건의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오성이 좋지 않아서 늘 법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렇게 공부해서 머리가 터져 열린다면 오성이 제고될 게 아닌가? 시험해보자! 이리하여 주말에 내가 집안의 일체 일을 도맡아 하고 아내는 집중적으로 법을 공부하도록 했다. 일이 없어서 한가할 때면 나도 아내와 같이 책을 읽었다. 이렇게 하루를 하자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집안이 아주 상화(祥和)롭고 아내의 심태도 아주 좋아졌는데 또 안으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법을 공부할 때 집안 공간 속에서 수많은 신불(神佛)이 자비롭게 웃으시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내가 다른 방에서 공부할 때는 오히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동시에 나는 또 아내 신체(神體 신의 몸)의 일면을 보았다. 그 이후 만약 자신이 오성이 좋지 않음을 발견하거나 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때면 우리는 대량의 법 공부를 통해 자신을 조정한다.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比學比修)”[1]라고 하셨는데 동수의 좋은 방법을 보았다면 한번 실천해보는 것도 무방하다. 마찬가지로 대법의 위력을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병업(病業)속에 있는 많은 동수들을 생각나게 했다. 모두들 자신은 오성이 좋지 않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이 안으로 찾으라고 알려줘도 아무리해도 병업의 근본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시험 삼아 이 동수가 한 방법을 시도해 끊임없이 법을 공부하는 것도 무방하다.
끊임없이 법을 읽는 과정 중에 자신의 수많은 좋지 않은 사상과 업력을 내려놓을 수 있고 동시에 자신의 오성을 제고할 수 있다. 왜냐하면 끊임없는 법 공부는 바로 끊임없이 자신의 신체와 사상 속에 법을 주입하는 것인데, 주입이 많아지면 사상 속에서 사고하는 문제도 자연히 법에 있게 되어 잘 몰랐던 문제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안으로 찾는 이것은 하나의 법보(法寶)”[2]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법보는 우리가 법 공부와 마음 닦음을 통해서야만 얻을 수 있다. 법을 배우지 않고 법에서 문제를 보지 않으며, 마음을 닦지 않아 진선인(真善忍)에 동화하지 못하면 안으로 찾는다 해도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오히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어찌하여 병업이 있을 수 있는가? 라면서 아무리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외에 또 다른 동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나를 크게 계발시켰다. 이 동수 역시 자료를 만들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반신(半身)이 마비된 것을 발견했다. 이에 억지로 침대에서 일어나 벽에 의지해 제3장 공법을 연마했다. 이렇게 구구(九九) 81번을 연마하자 마비된 몸이 좋아졌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마치 마비된 동수의 당시 표현을 본 것 같은데 하늘의 뭇신들이 보고는 모두 탄복하면서 “이 수련인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니 그녀는 대법을 굳게 믿고 사부를 굳게 믿었을 뿐만 아니라 연공을 통해 신체를 조정했다.”고 했다. 신(神)은 당연히 그녀를 도와줄 것이다!
많은 때 한 수련인이 신사신법(信師信法)할 수 있는가 여부를 보려면, 종종 늘 난관(難關)에 직면했을 때 여전히 수련원칙을 견지할 수 있는가를 보는데 수련인의 이런 행동은 법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믿음을 증명한다.
때문에 나는 또 이 동수의 방법도 배웠다. 당시 나는 허리가 마치 부러질 듯이 심하게 아팠지만 의연하게 가부좌를 견지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시간 내내 줄곧 아팠다. 제4장 공법을 연마할 때는 몸에서 마치 물이 새어나오는 것처럼 몸 앞뒤로 끊임없이 땀이 흘러내렸다. 연공을 마친 후에 좀 부드러워졌다. 나는 좀 쉬려고 생각하며 출근하지 않으려 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쉬려는 생각은 사람마음이 아닌가, 그래도 출근해야 한다. 이에 출근을 견지했다.
견디기 힘든 때일수록 더욱 연공을 견지하면 소업은 오히려 더욱 빨라진다. 결국 나의 심한 감기 증상은 반달 만에 사라졌고 몸도 더는 힘들지 않았다.
많은 동수들이 병업관을 넘긴 이야기를 보면 모두들 각자(各自) 부동(不同)한 방법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동수는 안으로 찾아 자신의 집착을 제거하자 병업이 소실되어 몸이 좋아졌고 어떤 동수는 연공을 통해 몸이 좋아졌으며 어떤 동수는 설법비디오를 본 후 안으로 찾음을 결합해 몸이 좋아졌고 어떤 동수는 다른 동수와의 교류 및 발정념을 통해 신체가 호전되는 등등이다.
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성공경험이 있는데 보편적인 법칙은 늘 법에서 제고해 좋아진 것이다. 이 역시 부동한 형식의 ‘안으로 찾음’이다. 이런 소중한 경험은 모두 사부님께서 수련인에게 부여하신 관을 넘는 법보(法寶)로 부동한 형식의 안으로 찾는 법보다. 병업관을 넘기지 못한 동수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그들을 도와야 하는가? 내 생각에 앞서 소개한 두 동수의 방법을 한번 시험해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장기간 병업관에 처한 동수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똑똑히 법을 말씀하셨고, 동수의 권고도 모두 아주 명백하지만 그러나 돌파하지 못한다. 어떤 원인이든 동수에게 장시간 법을 공부할 것을 건의한다. 하루에 몇 강을 읽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읽는 것이다. 오직 머릿속에 의식이 있기만 하면 법을 읽는데 병업관을 넘기지 못했다면 곧 이렇게 한다. 이렇게 하면 안으로 찾지 못하는 이도 찾을 수 있고, 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도 이해할 수 있으며, 법에서 문제를 보지 못해도 법에 입각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온몸에서 상하(上下) 내외(內外)가 모두 대법으로 충만했을 때 여러분 생각해보라, 그럼 병업이 어떻게 신체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병업 배후의 교란요소는 단지 법속에 융화되거나 또는 백색물질인 덕(德)으로 전화되거나 혹은 공(功)으로 전화되는데 이렇게 해야만 법과 병존할 수 있다.
법을 읽은 후 머리가 맑아졌다면 그럼 곧 장시간 연공을 견지한다. 연공음악에 나오는 시간에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시간만 나면 연마하는 것을 말한다. 일어날 수 없거나 앉을 수 없어도 그래도 연마해야 한다. 끊임없이 연마하는데 오직 조금의 힘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럼 연마한다. 연공할 수 없다는 다른 구실을 찾지 말고 스스로 연공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신사신법(信師信法)은 바로 우리의 작은 행동 속에 있다. 효과는 분명히 좋을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에 수련인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은, 신(神)의 눈으로 보자면, 바로 법 공부와 연공이다. 법을 공부하지 않고 연공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이 대법제자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법 공부와 연공, 발정념을 제외하면 대법제자가 하는 일체 일은 속인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수많은 동수들이 세상을 떠난 일에서, 비록 원인은 아주 많지만 시종 유감스러웠다. 내가 전력을 다해 동수를 돕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또한 중생구도에 대한 손실이기도 하다. 한 동수가 얼마나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렇게 떠나가다니 얼마나 애석한가! 그러므로 나는 두 동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병업관을 돌파하는 방법에 대해 마음이 확 트이면서 분명해졌다. 오성이 좋든 나쁘든, 총명하든 아니든, 문화가 있든 없든, 이 두 동수의 방법에 따라 한다면 반드시 법에서 제고해 올라와 병업관을 돌파하고 새롭게 중생구도의 홍류(洪流) 속에 투입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수련은 주의식(主意識)수련으로 수련 중에서 자신이 어떻게 관을 넘고 제고했는지 자주 총결해보는 것도 좋은데 이는 또 수련자의 이성이다. 심성제고(心性提高)야말로 관건이다. 사부님께서 주신 법보인 안으로 찾음을 할 수 있는가, 수련의 길에서 스스로 관과 난을 돌파할 수 있는 법보를 닦아낼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착실한 수련 중에서 획득해야 한다!
이상은 단지 자신의 개인인식이며 참고로 제공할 따름이다.
허스.
주:
[1] 리훙쯔 사부님 경문:《홍음》〈착실한 수련〉
[2] 리훙쯔 사부님 경문:《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193
